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141화 (141/157)

〈 141화 〉 3 ­ 2 / 골렘에 진심인 마법사 벤 가브롤에게 (3)

* * *

(3)

그동안 대접받은 식사도 정찬이라고 할 정도로 대접받았지만, 오늘 저녁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만찬이라고 부를 만했다. 시녀 골렘들이 줄지어 요리를 가져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일류 요리사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법한 맛이, 한동안 그 맛에만 온 정신을 빼앗기게 했다.

몇 번의 빈 접시가 날라져간 뒤에야, 식사 자리는 천천히 갈무리되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골렘인 주제에 음식을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어대는 웬즈데이가 있는 한편, 술라는 예의상 식기를 들었다 놓았을 뿐 음식을 거의 들지 않았음에도, 그는 이 자리에서 루시탄보다도 더 정중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뵙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전하.”

“그렇군.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 아버지께서는 평안하신가?”

“전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폐하께서 지금 평안하시겠습니까?”

“뭐, 하기사 그렇겠지.”

루시탄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술라는 가능한 돌려 말하려 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 나라의 국왕… 이름이 뭐랬더라. 아무튼 루시탄의 아버지는, 아들내미의 반항 때문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루시탄의 반항 또한 마냥 이유없는 반항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발스턴의 기억은 루시탄의 마음에 결코 쉽게 아물 수 없을 상처를 남겼으니까. 그 탓에 루시탄은 아버지… 국왕에게 의혹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그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부자간의 균열은 봉합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여.”

저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참 오랜만이다.

나무뿌리같이 가느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술라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진짜 용이라는 말을 듣고보니, 그 시선을 받는 것이 생각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네, 술라… 님.”

“흠. 그 태도를 보아하니… 이미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군. 하지만 본디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옳으이. 나는 나 자신을 용이 아니라 인간으로 여기고 있네. 용이 되었다고 하여,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용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여전히 인간이라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네.”

차를 한 모금 마신 루시탄은 입가를 슬쩍 말아올렸다. 비웃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제껏 ‘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대마법사’로 알려져 있지만, 뭐어… 사실을 알면 대개 너처럼 반응하거든.”

할 말은 없다.

용으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과, 용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양자를 가르는 조건이란, 진짜 자신을 어디에 규정하는지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술라가 자신을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이쪽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

하지만 골렘은 어떨까. 나는 웬즈데이를, 즈왈트를, 리제를… 누가 보아도 인간성을 가진 그들을 인간으로 여겨줄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다.

울고, 웃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싸우고, 사랑하고.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이들을 나는 여전히 골렘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굉장히 편협한 시선이 아닐까.

서둘러 화제를 돌린 건 어쩌면 내 옹졸함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페리링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우수한 제자일세. 지금은 내 비전을 전수해주고 있지. 회복마법사의 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약간의 흠결이라면 흠결이지만… 본인이 그러길 바래서야, 내가 더 보탤 말은 없으이.”

고집쟁이 페리링은 공격 마법이라든지, 저주 같은 누군가를 해하는 마법을 꺼렸다. 배우려 하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술 정도만 구사했던가. 내 경우에는 거리낌없이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그 생명력을 빼앗고, 영혼을 모독하는 흑마법을 배웠는데.

페리링은 대단하다. 나 같은 것보다 더.

그렇기에 가시의 마녀라는 내 칭호는 정말로… 내 목에 박힌 가시처럼 때때로 따끔했다.

하지만 늙은 용, 아니… 늙은 대마법사쯤 되면, 고작해야 스무살 남짓인 내 생각 정도는 간단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모양이다.

“자네 자신을 너무 폄하하진 말게나.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자네는 자네대로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한 게야. 마도란 본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서로 그 색이 다를 뿐, 진리를 궁구한다는 점에서 결국 종착점은 같네. 그 길에서 얻은 유산을 어떻게 다루는지야말로. 마법사가 하기 나름인 게지.”

“…말씀 감사합니다.”

어쩐지 다소 처지기 시작하는 분위기에, 입가에 소스를 묻힌 웬즈데이가 눈을 좌우로 도로록 굴렸다. 으이구.

“웬즈데이, 이리 와 봐.”

“네?”

이쪽을 본 웬즈데이의 뺨을 닦아주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난 이 아이를 얼마나 인간으로서 여겨주고 있을까. 웬즈데이는 골렘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을 뿐, 내가 이 세계에 왔을 때부터, 제일 먼저 날 도와준 게 바로 웬즈데이였는데.

‘생각해보면 난 웬즈데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그냥 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보조해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골렘 몸을 만들어준 이후에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이 아이가 한 명의 인격체라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은 것 같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분을 저에게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아, 미안. 그러고보니 소개가 아직이었네.”

술라가 말하는 내내 경청하고 있던 리제가, 나와 웬즈데이, 그리고 즈왈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이 셋이 서로 초면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가능한 온건한 내용으로 소개해줄 말을 떠올렸다.

“이쪽은 웬즈데이. 내가 여기에 왔을 때부터 여러가지로 도와주고 있어. 그리고 즈왈트는 내 부름에 응해줘서, 그 뒤로 도움받고 있고. 둘 다 몸은 골렘을 쓰고 있어.”

“리제 씨라고 하셨죠? 장ㅁ… 아니지, 아니지. 로제 씨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감사드려요.”

웬즈데이는 제법 점잖고 정중하게 리제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리제는… 아주 살짝, 아주 살짝이지만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그것은 분명 미소였다.

“즈왈트요. 주인의 호위를 맡고 있소… 최근에는 주인의 명령으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많았으나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내게 주어진 임무에 전념하고자 하오.”

“반갑습니다, 두 분. 벤 가브롤 주인님의 저택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녀석들의 어디가 골렘이라는 거야.

자신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반성하는 사이, 시녀 골렘들이 다가와 빈 접시를 치워냈다. 서서히 저녁식사 자리가 파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로제이아 님은 당분간 이 저택에 머무르면서 골렘 연구를 하실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두 분에게도 방을 제공해드리면 될까요?”

“아니, 그게 그렇게 되지 않겠다. 리제.”

뜻밖에도 술라가 제지의 목소리를 냈다.

루시탄과 내 시선이 늙은 마법사에게 향했고,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어흠, 소리를 냈다.

“만약 전하를 뵙지 않았더라면 제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을 것이옵니다만, 저는 일단 폐하를 섬기는 몸입니다.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지요…. 두 분은 왕의 칙명이 전달되는 즉시 페랄 주의 주도 모겐슈테른으로 향하여, 그론 선제후를 알현하도록 하십시오. 이는 그론 선제후가 왕께 직접 요청한 사안이라고 합니다.”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노마법사는 생각보다 융통성이 없었고, 루시탄은 싫다는 듯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하지만 왕의 정식 명령을 마냥 무시할 만한 입장도 아니었다.

그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형한테서 왕세자 자리를 받아둘 걸 그랬나. 그랬다면 이런 되먹잖은 명령 같은 건 안 받아도 됐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린 하지 마.”

한 마디 보태고는, 손을 뻗어 루시탄의 손을 쥐었다.

제법 차갑고, 살짝 긴장한 듯 떨림이 전해져 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루시탄은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게 된 사람 중 하나다. 이 녀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는 몰라도.

루시탄이 이쪽을 보고, 살짝 웃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하.”

“다른 방도가 없지 않나. 일단 선제후를 만나서 비위를 맞추고, 붙잡기 전에 가능한 빨리 빠져나올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그론 선제후라.

대체 왜 루시탄을 그렇게 만나고 싶은 거지? 아니, 왕실에 줄을 대고 싶은 것까진 있을 수도 있겠는데, 거기에 나는 왜?

“지금 말씀은 못들은 것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왕명이 집행되기만 하면 그 뒤에 어떻게 처신할지까지는 명을 받지 못한 터라. 날이 밝으면 바로 모겐슈테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만.”

“수고를 끼치게 되는군, 술라.”

“왕가에 대한 봉사는 제 사명입니다.”

늙은 마법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문득 리제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그녀는… 어딘지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술라가 찾아오자마자 다음 날이 밝는 대로 떠난다는 사실에, 말을 하지 않을 뿐 못내 서운한 모양이었다. 물론 술라도 그걸 모르는 눈치가 아니었고.

“리제. 한동안 네 몸을 조정해주지 못했지. 오늘 밤에는 찬찬히 점검하고 조정하도록 하자꾸나. 그동안 쌓인 이야기도 있을 터이니.”

“…네, 술라 님.”

벤 가브롤의 친구인 술라.

그리고 벤 가브롤의… 어찌 보면 딸에 가장 가까울지 모르는 리제.

그들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교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 골렘에서 언뜻 보았던 벤 가브롤의 과거.

저들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얽혀있는 걸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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