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3 1 / 숲 속의 마녀 리제에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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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강 이 저택을 둘러보면서 루시탄은 어딘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첫째로는, 저택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대인기피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집에는 생활감이라는 게 없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난다고 해야 할까.
저택의 관리는 골렘들이 전담하는 것 같다. 어느 방에 가든, 어느 복도에 가든 골렘들이 있었다. 저택을 지키는 역할의 윤중한 갑옷형 골렘과 저택의 관리를 담당하는 시녀형 골렘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주인의 부재에도 그들은 입력된 일과를 당연하게 수행하는 것 같았다. 주인이 얼마나 자리를 오래 비웠는지까지는 몰라도, 그 주인이 있든 없든 이 골렘들이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치, 자신의 바로 옆에서 안내를 담당하며 곁을 떠나지 않는 시녀형 골렘처럼.
“한 가지 물어봐도 좋을까?”
처음에는 혹시 주인이 보고 있지 않나 싶어 정중한 말씨를 사용했지만, 이 골렘은 그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만이 탑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굳이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어, 루시탄의 말도 편한 투가 되어 있었다.
[네. 무엇인지요, 손님?]
“주인께서는 자주 자리를 비우시는 편인가?”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다소 출타가 길어지시고 있습니다.]
루시탄은 그 뒷말을 묻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저택은 제법 규모가 되었고, 관리도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위화감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이 저택에는 누군가의 기호나 취향이라는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벽에 그림 한 점 없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조각상이나 화분이 없는 것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저택에 마법 시계도, 하다못해 창문조차 없다는 건 명백하게 이상하다.
어차피 고용인이라곤 한 명도 없이 골렘이 모든 가사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 아니다. 아무리 골렘이 많다고 한들 그 골렘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일 것이오, 인간이 사는 집이라면 반드시 창문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그걸 구태여 묻는 것은 그만두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득, 다른 방들보다 조금 더 큰 방에 눈이 갔다.
물론 다른 방문도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지만 특별히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신경 써서 닦은 듯한 문이 보였다. 게다가 다른 방과는 달리 유독 이 방만 밋밋하지 않고 나름의 새김을 넣은 장식이 돋보였다.
‘흠… 이 방이 아무래도 주인의 개인 공간인 것 같은데.’
유일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방이다. 들어가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과연 주인의 개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과연 옆의 시녀 골렘이 용인할지가 문제다. 일단 모르는 척 운이라도 띄워보자고 생각했다.
“이 방문은 다른 것들과 조금 분위기가 다른데. 이 방은 무슨 방이지?”
[그 방은 주인님의 서재입니다.]
서재, 서재라.
이 기묘한 저택에서 시시각각 촉감을 찌르는 듯한 위화감을 해결할 단서는 높은 확률로 저 안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중한 보물이 들어있는 금고라도 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잠시 옆의 시녀 골렘을 바라보자. 시녀 골렘은 유리알 같은 눈을 한번 부자연스럽게 깜빡거렸다.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손님. 주인님의 방은 주인님이나, 아니면 아가씨의 허락이 있어야 문을 이루는 결계를 풀 수 있습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문을 봉인하고 있는 결계였단 말이지.
점점 단순한 서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실체를 얻어 머리를 들고 있었다. 그에 더하여 작은 단서도 하나 손에 넣었다. 주인님은 그렇다치고, ‘아가씨’라는 인물이 있는 모양이다.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인물일까. ‘아가씨’는.
[식당은 바로 앞입니다. 가시죠.]
이 이상 지체하면 쓸데없는 의심을 살지도 모르겠다. 루시탄은 최대한 이상하지 않게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자리를 지나쳤다. 하지만 그 위치만은 분명하게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청결하지만 정감은 가지 않는 복도를 걷는다.
여전히 집주인의 취향이라든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밋밋한 공간을 지나는 사이 루시탄의 머리에 몇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완전히 들어맞지를 않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는 이유, 골렘뿐인 공간, 주거 공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생동감이 부족한 구조. 가설은 몇 가지 성립했으나 추리로 성립하기 위한 재료, 증거가 부족했다.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도착한 식당에는, 의외라고 해야 할지 제대로 사람을 위한 식사가 준비되어있었다. 다행이다. 골렘에게 주는 마력핵이나 진흙 같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빵과 스프, 채소와 고기여서.
“그러고보니 나와 같이 있던 여자에게도 식사를 제공해 주었나? 그 여자, 배고픈 건 잘 참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네. 그분에게도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잊고 있던 일행이 제대로 밥은 먹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물어보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정신없이 자고 있던 사이 식사를 대접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대체 지금은 어디서 뭘 하길래 이렇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지?
“…그 뒤에 어디 나가기라도 한 것인가? 영 보이질 않아서 말이지. 제멋대로 돌아가기를 좋아하는 여자라서 조금 마음이 쓰여서.”
[다른 손님께서는 지금 주인님의 지하 연구실을 견학하고 계십니다.]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여자다. 나중에 얼굴을 보면 한 소리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루시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여자와 만나고부터 한숨 쉴 일이 많아졌다는 건 비밀이다. 물론 로즈 또한, 루시탄의 행보 하나하나에 한숨을 쉬고 본다는 것을 그는 아직 미처 알지 못했다.
◆
마치 용광로와 대장간, 공장을 한데 합쳐 놓은 듯한 금속제 골렘 주조실을 지나쳐, 다음 전시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무슨 골렘이 전시되어있을지, 호기심과 긴장감이 어지럽게 뒤엉켜 한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끼이익,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유리로 된 돔이 한눈에 보였다. 특히나 온도조절에 신경을 쓴 공간이었나보다. 지나치게 뜨겁지도, 또 차갑지도 않은 선선한 바람이 뺨을 한번 쓸었다.
눈앞은 외길이었다. 공중에 걸쳐진 튼튼한 다리는 아마 다음 연구동으로 통할 것 같은 문으로 쭉 이어졌고, 그 아래로 녹음이 짙게 깔렸다. 보아하니 살아있는 나무를 기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공간은 나무 골렘을 만드는 공간이려나.
그런데 나무의 상태도… 이쯤 되니 평범한 나무로는 보일 것 같지가 않았다.
“저기, 리제 씨. 그러니까… 저 나무도 뭔가 평범한 나무는 아니지?”
“평범한 나무입니다만?”
리제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몹시도, 그녀의 ‘평범한 나무’의 기준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질문을 바꿔야 할까…. 나도 식물을 다루는 마법사다. 저 나무들이 평범한지 아닌지는, 일단 알 수 있다고.
“…저 나무들, 어디에서 공수해온 거야?”
“아, 네. 저쪽에서 저쪽부터는 니네베의 정령숲에서. 저쪽은 윈드 엘프의 바람숲에서. 저쪽은 컬브랜드의 페이 숲에서 구해온 나무들입니다.”
머리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다. 어떻게 구했든, 그 나무들은 그냥 숲에 간다고 덜렁 묘목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헤카이트 당주의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떠올렸다.
‘니네베, 윈드엘프, 컬브랜드….’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데.
북쪽 끝의 자유항구 에트루사에서 배를 타고 폭풍해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엘프들의 섬나라 ‘니네베’. 그리고 인간들을 극도로 꺼리는 배타적인 윈드 엘프들의 바람숲. 컬브랜드의 페이 숲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데.
할말을 잃어 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을 리제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몹시도 자연스러운 눈꺼풀을 이상하다는 듯이 깜빡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는 주인님께서 우드 골렘을 연구하시던 곳입니다. 좋은 나무를 찾아내셨다고, 각지에 자생하는 품종을 전부 여기에 모아 기르시기 시작했죠. 그리고 저 아래를.”
리제의 손짓에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법 높이가 있어서, 떨어지면 꽤 다칠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자세히 보니… 인공적인 배치의 숲 아래로 어른거리며 움직이는 실루엣이 언뜻 보인 듯도 한데.
“…이제는 묻는 것도 새삼스럽다 싶긴 한데… 저것들도 골렘이지?”
“네. 우드 골렘입니다. 여기에서 만들어낸 골렘 중 일부를 이곳에 필요한 노동에 투입하고 있죠. 수령 연한이 다 된 골렘 중 재활용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여기에서 처분하여 생장을 위한 양분으로 사용하고 있고요. 효율적인 재생 체계라고 할 수 있죠.”
이번에도 리제는 꽤나 뻐기듯한 말투였다. 더 까놓고 말하자면, ‘너희는 이거 못 하지?’ 같은, 자기 주인에 대한 경외가 지나쳐 숭배가 되어버린 듯한.
리제의 상태가 어딘지 걱정스럽긴 했지만, 70여년을 주인의 유산을 돌보면서 살아왔다면 제아무리 잘 만든 골렘이라도 변질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게다가 아직 최초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돌 골렘 다음에는 금속 골렘. 그리고 그 다음은 우드 골렘… 각각의 재료를 테마로 만들어진 골렘을 이렇게나 만들어서까지… 대체 벤 가브롤이 추구하던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이 쉬이 풀릴 것 같지 않아서, 어쩐지 이 골렘 연구동의 성과를 순수하게 만끽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대단한 성취를 이룬 골렘술사의 연구, 그 결정체를 이 눈으로 보고 있는데 순수하게 집중할 수 없다니. 몹시 아깝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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