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3 1 / 숲 속의 마녀 리제에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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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리제의 집은 자그마한 오두막이었지만, 지하실 아래로 나선형의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심연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여서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발을 조심하십시오. 혹 헛디뎠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주의를 당부하는 말치고는 꽤 인간미가 부족하지만, 골렘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그저 계단 하나하나 딛는데 충분히 조심할 수밖에. 마나맥이 꽉 막힌 듯한 답답증이 계속되는 이상 제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다.
다행한 점은 리제 쪽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 환한 빛무리 몇 개가 천천히 우리 둘을 따라오면서 발밑과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이제 반 정도 왔습니다.”
예의상으로라도 ‘거의 다 왔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꽤 깊이 내려온 것 같은데도 아직 반이나 남았다니, 대체 왜 이렇게 깊은 곳에 연구실을 마련한 건지 모를 노릇이다. 내려갈수록 어쩐지 더워져서, 리제가 마련해준 새 옷이 금새 땀으로 축축해졌다.
“…매번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일이겠네. 뭔가… 오르내릴 수 있는 장치 같은 것도 없어? 지금이야 내려가는 것이니 조금 낫지만 올라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질릴 것 같아.”
“그렇습니까?”
뭐가 그렇습니까, 냐고.
하긴, 리제는 골렘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이 계단을 그냥 오르내리는 건 엄청난 고역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주인님께서 생전에 사용하시던 도르래 장치가 있었습니다. 연구동을 견학하시는 동안 쓸 수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만.”
불길한 예감이 술렁였다. 주인님의 생전이라고 하면 70년 전의 물건이라는 거잖아.
목숨을 맡겨도 괜찮은 걸까, 그런 거…?
아무튼,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계단의 끝이 보이고, 단단한 원형 바닥이 빛무리에 드러났다. 그 바닥에 발끝이 닿은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아 휘청이는 몸뚱이를 리제가 잡아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긴 한데, 리제… 씨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보네.”
리제는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단단한 손으로 날 잡아주었다. 그녀의 손이 부축해주는 대로 겨우 자세를 바로잡고는, 땀에 젖은 옷을 팔락거렸다. 정말 깊이 들어와서 그런지, 지열이 꽤 후끈거렸다.
“장난 아니게… 덥네. 진짜 이런 곳에 연구 자료를 보관했단 말야?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은데.”
이마에 끊임없이 맺히는 땀을 닦으면서, 리제가 낡은 열쇠를 꺼내 안쪽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을 열자마자… 놀랍게도, 다소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땀을 식혔다.
“…와….”
문 안으로 발을 들이자,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종유동 같은 내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굴을 그대로 연구실로 만든 듯한 구불구불한 복도에, 천장에는 수정으로 만든 듯한 벌레들이 빛을 뿜으며 광원을 제공하고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반딧불이 같은 벌레들이…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골렘의 일종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몰라도 리제의 설명은 다소 뻐기듯한 것처럼 들렸다.
“말씀하신 대로, 이곳은 지열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지열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 바로 위에 마나를 가득 함유한 지하수가 지나가는데, 지열과 지하수로부터 이 시설의… 동력을 제공받습니다.”
즉,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수정 반딧불이들은 지열과 마나 지하수로부터 열과 마나를 흡수해 빛을 제공하고, 덤으로 이 안의 온도를 유지한다는 걸까. 꽤 그럴듯한 구조다. 희대의 골렘술사라는 이름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꽤 인상적이긴 한데… 그래서 연구는 어디에서 볼 수 있어?”
“지금 보고 계신 전부가 주인님의 연구입니다.”
“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정 벌레들 외에… 이 동굴에 또 뭔가 있는 건가? 일단 여기에는 마치 수석처럼 길을 따라 놓인, 이끼 낀 바위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데. 에이, 설마.
리제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길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손을 얹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손바닥에 어렸다가 바위로 흘러들자, 그 바윗덩어리가 부르르 한번 떨렸다. 주변에 놓인 자그마한 돌멩이나 조금 작은 돌덩어리들이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바윗덩어리에 들러붙었고, 이윽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설마 여기 있는 돌 전부가….”
“네. 여기는 주인님이 돌 골렘을 연구하시던 곳입니다. 골렘의 기초라고 하면 역시 소재는 돌이라고 하셨죠. 그냥 널린 돌덩어리들처럼 보여도, 여기 있는 돌들은 전부 ‘상실의 땅’에서 온 것들입니다.”
상실의 땅… 어쩐지 가슴이 죄여드는 것 같았다. 헤카이트 당주의 수업에서 들은 적 있다.
‘서부 사수지’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수백 년 전, 지금은 상실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부터 터전을 잃고 온 사람들이 개척한 땅이라고 했었지. 듣기로는 신들의 싸움으로 하룻밤 사이에 가장 거대했던 왕국이 멸망해버리고, 지금은 아무도 살 수 없는 유사(??)의 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곳까지 가서 공수해 온 돌로 골렘을 연구했다면, 벤 가브롤이 얼마나 골렘술에 심취했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전 도르래 장치를 확인해보겠습니다. 편히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잠깐. 이 골렘들… 나한테 덤벼들거나 하진 않을까? 그리고 연구서 같은 건 딱히 없고?”
“그 지팡이를 갖고 계신 이상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서는… 주인님께서는 연구를 문자로 남기는 것을 몹시 귀찮아하시던 분이시라, 이 연구동에는 그분 자신이 남기신 기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어쩐지 슬슬 벤 가브롤의 인물상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분명 괴짜에 외곬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골렘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아부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리제를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 리 없고, 재료 하나하나에 그렇게 정성을 다했을 리도 없지.
그런 사람이 제 골렘들을 두고 차마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리제의 뒷모습을 보곤 어쩐지 쓸쓸한 기분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골렘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새삼 생각해보면 자기 스스로 판단해 자연스럽게 마법을 사용하는 골렘이라니. 리제는 정말로 완성도가 높은 골렘이다. 아니, 슬슬 골렘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방금 리제가 마법으로 숨을 불어넣은 골렘이 보석으로 이루어진 눈에서 빛을 일렁이면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둥둥 부유하는 돌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조밀하게 마력 회로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설마… 여기 있는 돌들 전부에 이 성가신 짓을 한 거야?”
골렘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마력이 흐르는 회로는 말하자면 핏줄이자 신경이다.
빽빽하게 회로를 새길수록 핵에서부터 받는 마력을 더 섬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골렘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하지만 돌 골렘은 일반적으로, 잠시 소환해서 방패막이나 힘쓰는 용도로 써먹는 게 보통. 최소한의 움직임만 가능하게끔 즉석에서 가설 회로만 부여해서 써먹는 경우가 많다. 돌 골렘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 건 차라리 변태의 영역에 가깝다.
리제의 말에 의하면 주변의 돌 전부가 골렘인데… 이 정도로 회로를 새겨놓았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난 이렇게는 못 할 거야.”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지팡이를 들어 돌 골렘을 진정시키고는 손을 짚어 제 마력을 흘려보았다. 낯선 마력이 스며들자, 골렘이 돌로 된 이빨을 득득 갈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력 회로에 제 마력이 스며들자, 이번에는 한층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금이잖아…?!”
놀랠 노자다. 이 골렘의 내부에 촘촘하게, 정밀회로처럼 들어찬 홈을 따라 채워진 것은 금이었다. 이 무슨 돈지랄이냐고. 턱이 벌어져서 달달거리면서 골렘을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손을 뗐다. 이제 슬슬 이다음에 뭐가 있을지 슬슬 무섭기까지 했다.
물론 마력 전도율이 높은 순금으로 회로를 만들면 분명 고성능의 골렘을 만들 수 있긴 한데… 설마하니 여기 있는 돌 골렘 전부 이런 식의 회로를 만들진 않았을 거야, 응.
“…아니, 진짜로 만들었을지도….”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이 골렘 팔면 노후는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불온한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게 조금 슬프다.
“분명 엄청 흥미롭긴 한데… 루시탄은 괜찮으려나?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으면, 음….”
그 녀석이라면 뭐, 느긋하게 잘 먹고 잘 기다리고 있겠지. 메모도 남겨놨으니까.
적당히 편하게 생각하면서 돌 골렘을 떠나 다음 공간으로 향하는 문으로 다가갔다.
다음에 뭐가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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