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3 1 / 숲 속의 마녀 리제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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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솔길을 조금 벗어나 걸어서 대략 1시간 정도.
슬슬 루시탄이 헛소문을 잘못 듣고 온 것이 아닌가 싶어질 즈음, 코끝을 간질이는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살짝 희미하게 매캐한 냄새도 함께.
얼마쯤 더 나아가, 이윽고 도착했다.
넘쳐나는 옥색 물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더 의심할 여지가 없어서 그 자리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진짜로 있을 거라고는….”
“넌 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아예 없기라도 하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든가.”
한 마디씩 서로 독설을 주고받고는 조금 더 다가갔다.
단단한 암반에 뚫린 틈으로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더운 물에서 머리를 조금 멍하게 만드는 열기가 새어나왔다. 게다가…
“…와, 이거… 게다가 마나 간헐천이잖아. 이런 곳이 알려지지 않았다니, 말도 안 돼.”
천연 온천이라는 게 얼마나 희귀한지는 사실 잘 모르지만, 적어도 지맥의 마나가 한 군데에서 더운 물과 함께 뿜어져나오는 마나 간헐천보다는 흔하겠지. 농밀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공기에 섞여서 조금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루시탄은 놀라는 내 얼굴을 힐끔거리고는 흠, 하고 흥미롭다는 눈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온천이 왜? 뭔가 특별한 게 있기라도 한가보지?”
“마법사한테는… 역시 그렇지. 거금을 주고서라도 갖고 싶을 만한 곳이라고. 그렇다고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네. 왜 이런 마나 간헐천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걸까.”
뭐, 깊이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누군가가 돈 내라고 요구하지 않는 이상 굳이 내가 나서서 주인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지.
편하게 생각하자구, 편하게.
물가로 다가가서는 손가락을 물에 대 보았다. 몸을 담그면 딱 기분 좋은 온도에, 수면에 댄 손끝을 통해 물에 함유된 지맥의 마력이 느릿하게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뭐 됐어. 일단 몸이나 좀 담그고 볼까.”
요리를 앞에 두고 이것저것 눈치보는 건 내 성미가 아니다.
훌러덩, 로브를 먼저 벗어버리고 몸에 걸친 옷을 한 벌씩 벗어내자… 루시탄은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자신도 따라 선선히 옷을 벗었다. 하지만 볼멘소리 한 마디는 빠뜨리지 않았다.
“…넌 참, 레짐에서부터 쭉 봐왔지만 도통 사양이라는 걸 모른단 말이지”
“이런 데서 누구한테 사양을 하는데? 너?”
“됐다, 됐어.”
뭘 새삼스럽게 인제 와서 내외한담.
저번에는 어둠 속에서 봤었지만… 루시탄의 몸도 꽤 울퉁불퉁하게 근육이 붙었고, 잔상처가 많이 늘었다. 아마 프레드릭 바츠 경에게 지독하게 단련받아서겠지. 그 사람, 왕자라고 인정사정 둘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후우우우….”
천천히 발끝부터 물에 몸을 담그자마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피로가 갑작스럽게 확 몰려오는 것 같았다. 찌릿찌릿하게 혈맥으로 스며드는 마나와 온기. 볼에 피가 몰려 불그레하게 달아오르고, 물 밖으로 내민 머리에 땀이 솟았다.
“좋, 다, 아….”
이렇게 마음 편히 쉬어본 게 얼마 만이더라.
지금만은 모든 걸 다 잊고, 그냥 이 시간을 즐기자.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곤 딱 좋게 뒷머리에 닿는 평평한 돌에 뒤통수를 대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은 무척 맑은데다 구름도 적어,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나한테는 그냥 뜨거운 물이지만. 뭐, 조금 일탈감은 있네.”
“하긴, 온천 같은 게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 너?”
내 반응이 우습다는 듯 키득거리면서 루시탄도 별 거리낌 없이 온천에 몸을 담갔다.
아무래도 그의 신분이 왕자이다 보니 뜨거운 목욕이 아쉬운 일은 그다지 없었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특별한 기분을 모른다는 건 오히려 가엾기까지 하다.
사방이 숲이 둘러쳤고, 인적은 없고, 뜨거운 물과 마나가 끝없이 솟아나는 천연 온천.
이런 건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이래저래. 내 경험상 이런 곳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주위로 뭔가 돈벌이가 생기곤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한걸.”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아니면… 뭔가… 으으응. 다른 이유가… 있거나….”
어쩐지 머리가 좀 어질어질해지는 것도 같지만… 응, 기분 좋다. 눈앞의 풍경이 조금 빙빙 도는 것 같고, 색감이나 실감이 천천히 어긋나는 것 같다. 왜 이러지. 혀가 무거워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로즈?”
이상하다는 듯 부르는 소리가 조금 귀에서 일렁이는 것 같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내면서, 어질어질한 머리 그대로인 채 옆에서 물에 몸을 담근 루시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붙었다. 내가 왜 이러지.
“루… ㅅ….”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면서 맥동하기 시작하는 게 심장만이 아니었다. 등 쪽과 양 어깨, 그리고 뒷목에 걸쳐 뻐근하게 풀리는 감촉이 머릿속을 살살 어지럽혔다.
어쩐지 무척이나,
참을 수가 없어졌다.
“읍… 읏, 읍.”
제 쪽에서 키스한 건 그다지 많지 않았던가.
언제나 이 녀석 쪽이 먼저 멋대로 해왔으니, 이번 정도는 내 쪽에서 기습하기로 했다.
“너, 갑자…기?”
“몰… 라. 그냥, 입이나 대.”
시끄럽네, 거.
루시탄의 파란 눈동자가 조금 당혹한 듯 살짝 커졌다가 조금 웃음기가 감돌았다. 벌어지는 다리 사이에 쏘옥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았다.
키스는 이어졌다. 땀방울의 짭잘한 맛과 질척이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후우, 후우… 정돈되지 않은 숨 탓에 잠깐 떨어졌다가, 다시 맞붙었다.
혀끝과 혀끝. 입술과 입술.
맞닿는 곳마다 단맛이 퍼져서, 더더욱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시간감각이 애매해진 사이로 한없이 늘어지던 키스가 천천히 떨어져나가자, 무척이나… 가슴이 술렁였다. 숨이 가빴다.
“이런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밝히잖아, 너.”
“하아…. 뭐야, 꼭… 싫다는 것처럼 말하네.”
“그럴 리가 있겠어?”
겨드랑이 사이로 슬쩍 뻗어 나온 루시탄의 손이 젖가슴을 덮어 주물러내었다.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가슴팍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첨벙이는 소리와 만져대는 촉감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조금… 조금씩 몸이 점점 더 강하게 원해, 달아오른다.
“으응, 읏, 흐으… 아, 응.”
코끝에 걸린 숨이 신음이 되어 새었다.
물 밖에 빼꼼이 내민 어깨가 떨리면서, 더운물 너머로 파문이 일어 퍼져갔다.
“아, 흣. 거… 기. 좀 더.”
강하게 주물렀다가, 달래듯이 한 번 풀었다가, 이번엔 젖꼭지를 지분거리면서 튕겨대는 사이 천천히 서오르기 시작하는 게 조금 부끄럽다.
보그르르… 물 밖으로 솟아오르는 물거품을 살짝 뜬 눈으로 보고 나서야, 저 스스로 허벅지를 비벼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탄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오늘따라 꽤 적극적인데? 아니, 평소에도 조금 끼가 보이긴 했지만 오늘은 특히 그래.”
“그럴지도… 아응, 아무 생각도 못 하겠… 어.”
여분의 생각을 밀어내고, 그저 기분 좋은 나른함이 머릿속을 채워간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아무 것도 의식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를 떼어놓고 이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웬즈데이는 무슨 표정을 할까. 자기도 모르게 키득였다.
슬쩍 얼굴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녀석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읏.”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이 별안간 확 달아올랐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내 취향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라, 이상하다. 지금 뭔가 확실히 이상한데… 위화감이 잠시 일었지만, 온천물의 열기에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아무려면 어때.
등을 돌리고 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마주 보았다. 루시탄의 어깨를 짚은 채 숨을 조금 헐떡였다.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몸에 꽂히는 게 오싹거려서.
“루시탄, 나… 지금 굉장히 하고 싶은 기분이야.”
“너 지금….”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쓸데없는 말을 하려거든 지금은 넣어두시지. 조금 있다가 다 들어줄 테니까.
아니, 반만 흘려들을 테니까 지금은 몸이나 대라구.
“…무슨 말을 해도 들을 것 같지 않네.”
입가를 슬쩍 말아올리면서 한 마디 괜히 보태고는, 손을 뻗어 미끈한 허리를 붙들었다.
물에 젖은 허리와 골반 사이 어딘가를 붙잡는 물에 젖은 손이, 꽉 하고 힘을 주어 내 몸에 흔적을 남겼다. 손가락이 살결을 붙들어서 휘감기는 게 기분 좋다니, 나 조금 M인가.
물 밖에서도 어른거리는, 굵직하게 부풀어오른 남자의 자존심이 언뜻 비친다.
천천히 다시 가라앉으면서, 파고들어 오는 감촉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읏….”
맞물리고, 맞닿아서, 뒤섞였다. 뒤엉켰다.
부그르르… 물 밖으로 물거품이 일었다.
기분… 좋아.
단지 그 감촉과 생각이 몸을 천천히 녹이며 채워간다.
꿀렁꿀렁, 데구르르 구르는 듯한 귀두가 질육을 밀어 올리며 긁었다. 허리가 멋대로 반응해 바들거리면서, 엉덩이가 찰박였다.
왜 이러지.
평소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교합에 제정신이라는 게 녹아서 사라져간다.
시간도, 감각도, 생각도 덧없게 의미를 잃어가는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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