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3 1 / 숲 속의 마녀 리제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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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벙클 색깔의 눈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털은 다소 거칠었고 발톱은 닳아있었는데다 꼬리는 반 정도로 짧게 잘려있어서 귀엽다고 하기는 어려운, 다소 거칠어보이는 인상의 고양이다.
카벙클 눈의 고양이는, 비가 그친 뒤 지붕 아래 고인 더러운 물을 조금 핥다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등의 털을 부풀리면서 경계하는 기색을 내다가, 다가온 이를 올려다보고는 다시 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다가온 이는 손에 들고 있던 옷가지를 몇 개 내던지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꼴이 그게 뭐냐.”
마치 사람에게 타박하는 듯한 말투였고, 누구라도 말을 건넬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벙클 눈의 고양이는 목을 쭉 앞으로 내뻗었다. 온몸을 덮고 있던 털은 짧아졌지만 대신 팔다리와 허리는 길어졌다. 고양이의 네 다리가 아닌, 사람의 네 다리가 바닥을 짚은 채, 익숙해지지 않은 감각을 몸에 새기려는 양 부르르 떨었다.
이제 그녀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 마리 고양이였다는 사실은,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 사이에 돋은 고양이귀와 엉덩이 사이에 돋아난 꼬리로만 증명할 수 있을 터였다.
한 가지 더… 굳이 꼽자면, 크게 벌린 입 사이에 도드라진 유난히 날카로운 송곳니 정도일까. 그녀는 손을 뻗어, 남자가 내던진 옷을 받아 몸에 걸쳤다. 고양이였던 여자의 나신을 바라보는데도, 욕정 한 조각 어리지 않은 무덤덤한 눈이라서 오히려 여자 쪽이 툴툴거렸다.
“뭐 어때요? 이쪽이 원래 내 모습인데.”
“그조차 진짜 모습은 아니지.”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구석에 버려진 나무통 위에 태평하게 앉은 채 이 도시에서는 ‘노엘’이라는 이름을 쓰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난 왜 불렀지?”
“성급하시긴.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손님 한 분이 더 오실 테니까…. 아무렴 ‘메이가스’쯤이나 되시는 분께서 그렇게 기다리는 걸 싫어하셔서야.”
“내가 네 실수의 뒷처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조금쯤 자각해줬으면 좋겠는데.”
“네에, 네에. 메이가스께 귀찮은 일거리를 떠안겨드려서 참 송구하네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새삼 따지는 건 오히려 지고 들어가는 것이지.
남자는 그저 한쪽 눈을 조금 찡그리고는 불쾌한 듯 숨을 내뱉고는 그녀가 기다리는 ‘다른 손님’이 오길 기다렸다.
다행히도, 그 손님이 도착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어딘지 힘없이 끌리는 발소리가 들려와, 사내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쥐었다.
“오셨네요.”
“…흠?”
한 번인가, 그 얼굴을 보았었던가.
아직 어리디어린, 소년이라고 칭하기에도 부족한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낯이 익는 게 분명 한 번쯤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기억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척이나 깡마른 모습이었다는 점일까.
다른 무엇인가에 생기를 모조리 빼앗기고 있는 모습. 목 뒤에서부터 등에 걸쳐,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혹이, 마치 제2의 심장처럼 두근거렸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그 부분에 진력을 순환시키는 맥을 가지고 있었지.
남자는 눈을 꿈틀거렸다.
불쾌감을 넘어선 옅게 번져가는 모멸이 술렁거렸다.
“…정말 의외의 손님이잖아. 여전히 구역질나는 천성이 아니더냐, ‘쉬푸(??)’? 그래, 황제에게 바친다는 불사의 방초(??)는 찾았고?”
아이는 말이 없었다. 다만 목 뒤에 악성 종기처럼 돋아난 살덩어리가 불쾌하다는 듯이 꿈틀거렸을 뿐이다. 남자는 흥, 하고 비웃는 소리를 낸 뒤, 칼자루를 쥐고 있던 손을 떼었다.
“말 그대로 천년 쌓은 공덕이 한순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군. 네놈에게 가르친 선술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래서, 이 머저리를 내 앞에 오게 한 건 너겠지?”
남자의 얼굴이 반 바퀴 선회해서, 고양이귀의 여자를 향했다. 기묘한 관계의 사제(??)를 바라본 노엘은 몹시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흥미로운 것에 이끌리는 고양이 같은 여인이라, 이 상황을 눈으로 보기 위해 일부러 자신을 불러냈을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 ‘머저리’의 덕을 좀 보았다고요? 필요한 만큼의 미미르를 만들 수 있었고… 마지막에 좀 뻗대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을 볼 뻔했지만, 그 정도는 뭐.”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처리 방식이야. 네놈이나, 네놈의 주인이나.”
“어머. 메이가스끼리 한판 붙으시려는 건가요? 꼭 좀 그 자리에 불러주시겠어요? 구경 좀 하게.”
“원한다면 지금부터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건 어떠냐.”
떼었던 칼자루에 다시 손을 짚고 철컥, 위협하듯이 한번 흔들자 고양이귀 여자, ‘노엘’은 카벙클 색깔의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물론, 정 원하신다면 상대해드릴 수도 있지만… 메이가스를 상대해 드리려면 저도 나름대로 사력을 다해야 해서요. 그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시지 않으실 거고?”
“…이매망량 년이.”
남자는 눈두덩을 불쾌한 듯이 움찔거리고는, 등을 돌렸다. 어깨에 걸쳐진 외투가 펄럭이도록,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튼 부탁받은 일은 전부 끝냈다. 네년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으니 썩 꺼져. 그놈은 어떻게 할 거지?”
“뭐, 일단… 같이 데려가야겠죠? 왜요, 무슨 일을 당할지 궁금하신가요? 신경쓰이시려나, 나름대로… 제자라서?”
“헛소리는 가급적이면 괭이 모습으로 했으면 좋겠군. 최소한 알아듣지는 못하게 말야.”
떠보듯이 말하는 노엘의 말을 일축하고는, 남자는 골목길을 거슬러 사라졌다. 생기가 거의 사라져가는 아이, 토마스의 머리를 즐거운 듯이 쓰다듬은 노엘은 키득거리면서,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한번 바라보았다.
“참, 부리기 힘든 분이라니까. ‘염제’께서는.”
목소리의 울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보다 먼저 노엘과 아이의 모습이 뒷골목에서 지워지듯이 소실되었다.
(1)
베어링턴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짐마차를 얻어타고 이틀. 그리고 갈림길에서 얻어탄 짐마차는 페랄 주(?)의 수도인 모겐슈테른으로 향했고, 그 다음은 길을 따라 걷는 이틀 간의 느긋한 여행이었다.
…였으면 좋겠지만.
장거리 도보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걷는 건 조금 고역이었다.
하다못해 웬즈데이와 즈왈트를 떼놓고 오지 말 걸 그랬다는 투덜거림이 그치질 않더라.
“으, 지쳤다….”
해가 지고 나면 일단 야영 준비를 한다.
내가 잠자리와 불을 준비하면, 루시탄은 먹을 걸 조달해오는 분담이었다.
「불이여.」
부싯돌을 죽어라 두들길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영창 한 번에 불을 피울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편하긴 하다. 금새 불이 붙어서는 마른 잔가지를 파먹으면서 열과 빛을 부풀렸다.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하아… 못 살겠네, 진짜.”
왕자랑 같이 여행하는데 이렇게 야외 캠핑족 같은 분위기여도 되나. 불을 쬐면서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루시탄은, 금방 돌아왔다.
빈손인 이유는 모르겠다.
“…너 말야, 자신만만하게 뭐라도 잡아오겠다고 했으면서 빈손이면 하다못해 쪽팔리는 얼굴을 하는 게 정상아냐?”
“의외로 토끼가 조금 잽싸더라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왕자 같으니.”
루시탄은 평소대로 다소 뻔뻔한 표정이다.
저 뻔뻔함은 대체 어디에서 살 수 있는 건가요. 루시탄은 언 몸을 불을 쬐어 녹이면서 가까이 다가앉았다. 조금 기른 금발이 다홍색으로 물들었다. 눈을 조금 가릴 듯이 자라난 앞머리와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뒷머리는 아무래도 손질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대신 다른 걸 알아왔지.”
“다른 거?”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콩 스프를 찍어 우물거리면서 되물었다.
아마 그 알아왔다는 다른 것 때문에 이렇게 의기양양한 모양인데, 한번 들어나 보자.
“이 바로 근처에 온천이 있다더군.”
“…에, 정말? 온천?”
온천!
귀가 번뜩 뜨이는 것 같다. 뜨거운 물이라… 몸을 씻을 때 쓰려면 못 쓸 것도 없지만, 그게 다 마법으로 돌리는 것이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아침에 찬물을 머리에 들이붓는 것도 2년쯤 이 세계에서 사는 사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는 것도 놓칠 수 없다고.
“그럼 식사를 마치고 바로 가자고. 다행히 정말 근처인 것 같으니까… 지금 네 얼굴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려나 몰라.”
“시끄럽거든.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니.”
난 지금 딱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라면을 다시 만났던 그때처럼 설레고 기대되고 그러는데. 입가가 헤실거리는 정도는 좀 딴지를 걸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기대감은 기대감이면서, 약간 의심되는 점도 있다.
이 근처에 화산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지맥의 마나가 어느 지점에서 지하수와 함께 뿜어져나오는 간헐천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건 그냥 온천보다도 훨씬 더 드물 텐데.
“듣자 하니 최근에 만들어진 온천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직 입소문도 타지 않은 모양이야. 뭐, 계속 뜨거운 물이 솟는다면 조만간 큰 마을이 되겠지.”
루시탄이 눈을 반짝일 때는 대개 돈과 관련된 생각이 떠올랐다는 뜻이다.
뭐야. 그 마을에 돈이라도 묻어놓게? 그런 건 별 관심없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얼른 가 보자고.”
순식간에 제 몫의 빵을 삼키고 수프를 비운 뒤 일어섰다.
온천은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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