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2 9 / 베어링턴에서 가장 긴 하루 (7)
* * *
(7)
웬즈데이의 의식이 내 의식에 순간 섞여들었다.
나를 거쳤다가, 스쳤다가, 빠르게 멀어져가는 그녀의 의식이 잠깐 내 안에 얕게 흔적을 남겼다. 손톱자국처럼.
‘웬즈데이!’
할 말도 없는데 이름을 불렀지만, 웬즈데이의 의식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내가 불러낸 마(?)의 안에 몸을 던졌다.
마치 나를 대신해서 심연에 삼켜지는 것 같았다. 깊고 깊은 검은 물 속으로 잠겨드는 그 모습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샤무라마트,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마물의 움직임이 멎었다.
너울거리던 넝쿨이 바닥에 늘어지고, 가면 쓴 얼굴, 그 입가가 달싹거렸다.
가쁜 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한 번도 움직인 바 없었던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자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완전 쩔어요!”
비탄에 찬 목소리… 로?
방금 뭐라고?
“장미 씨! 으아아, 굉장한 힘이 용솟음쳐요! 이건 대체!”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상상 이상으로 웬즈데이는 멀쩡한 모양이다.
“야, 너… 괜찮… 아?”
“괜찮고말고요!”
그런데 너무 신나서 펄펄 뛰는 걸 보면 내가 짜증이 나려고 그런 건 어쩔건데.
웬즈데이인지, 샤무라마트인지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는 저 녀석은 자신이 의도하는 대시 머리카락… 인지 넝쿨인지 애매모호한 그것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는 게 신기한 것 같았다. 마치 등에 팔이 달린 빌런 같다.
“장미 씨가 만들어주신 몸도 물론 최고지만 다른 몸을 쓰는 것도 나름대로… 응, 재밌어요. 으헤헤, 완전 쩔어. 이 촉수 좀 봐. 이거 쓰고 있으면 장미 씨한테 이런 짓 저런 짓….”
“야! 너 진짜 시간 장소 봐가면서 말 안 할래?!”
“으.”
이 판국에 이상한 소리나 하는 걸 보면 내 걱정은 정말 기우였나보다.
웬즈데이의 의식이 샤무라마트를 어떻게 누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상상 이상으로 자아가 옅었거나, 단순히 귀찮아서 지배권을 넘겨줬거나. 그런 이유가 떠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녀석한테 저 몸을 오래 쓰게 해선 안 되겠어.’
얼른 볼일 끝내고 제 녀석은 몸에서 쫓아낸다. 저… 사역마는 돌려보낼 방법을 찾는다.
아무튼…
[내 등에 올라 웃기는 소리만 하고 있을 셈이냐…! 네놈들은 광대로구나, 그럼 어디 불놀이로 나를 즐겁게 해 봐라!]
지잉, 하고 공간을 후려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동시에 또다시 허공에 물결치듯 마법진이 연거푸 펼쳐졌다. 하나같이 증오와 비탄에 가득찬 흉흉한 주문을 품은 채로.
주변의 공기마저 이글이글 불살라버리는 지옥불 앞에 피부가 찌르르 떨렸지만, 겨우 버티어 설 수 있었다.
“이보세요, 드래곤 아줌마! 진부한 소리 한마디 할게요… 아줌마 상대는 제가 해드릴 거거든요! 장미 씨한테는 손 못대요!”
그거 굉장히 위험하게 들리는 거 아니.
한마디 딴죽 걸고 싶어졌지만, 웬즈데이는 호언장담하며 나설 만큼 샤무라마트의 기능을 십분 발휘했다.
샤무라마트의 주변으로 빛알갱이가 모여들었다.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민들레 홑씨처럼… 허공을 살랑거리던 씨가 발아하여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그 꽃에서부터 열매가 맺히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을 빨리 감아버린 것처럼.
툭, 툭, 툭, 툭, 툭…
다 익은 무화과 열매가 터져서 벌어지는 것처럼 한껏 과육이 갈라졌다. 동시에 무슈마헤트의 마법진에서도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큭…!”
불길과 과실이 부딪힌 순간, 거친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고, 얼굴이 찌푸려졌다. 폭발로 불길을 쓸어버리는 일종의 맞불 효과…를 노린 거려나?
아무튼, 웬즈데이가 버티는 동안이… 승부다!
“고정 부탁해!”
“네!”
웬즈데이가 발랄하게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발아래로 녹음이 퍼져갔다. 이끼…처럼 보이는 지의류(???)가 용의 비늘을 얕게 덮어서 내 발치에까지 도달하더니, 두 가닥의 굵은 넝쿨이 단단히 내 다리에 감겨들었다.
“으으음, 으음….”
“왜 그래?”
“넝쿨로 감각이 이어져서… 이거 좀 야하네요. 음, 말랑말랑한… 장미 씨 다리. 레깅스 좀 찢고 싶당.”
“제대로 좀 안 할래?!”
진짜 끝나고 가만 안 둬!
괜히 말해서 본전도 못 찾을 소리 하는 건 대체 왠데?!
다리를 칭칭 감고 있는 넝쿨이 굉장히… 찜찜해졌지만 이제와서 우는 소리도 못하겠고.
샤무라마트와 마법 대결을 벌이면서 동시에 베어링턴의 모험가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흐트러진 지금밖에는 타이밍이 없다.
손에 용의 심장을 움켜쥔 채로, 그대로 남은 손을 두근거리면서 드래곤의 비늘에 갖다대었다. 그저 비늘 한 장에조차 거대한 힘과 피, 그리고 독이 맥동하고 있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웬즈데이, 내 몸 좀 잘 지켜 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같아 불안해서 어쩔 수가 있어야지.
이를 악물고 정신을 손끝에 집중했다. 헤카이트 당주가 준 가죽신을 이렇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있을 때 시험해볼걸 그랬다.
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다.
지금은 지르고 볼 수밖에 없다.
“좋아, 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맥동치는 게 느껴졌다.
나와, 내 손에 쥐고 있는 심장과, 이 비늘 안쪽으로 이어진 가장 강인하고 거대한 심장이.
그 맥동이 한순간 똑같은 타이밍에 덜컥 내려앉은 바로 그 순간, 내 의식을 집어던졌다.
“…강령, 개시!”
끄으, 으으, 으으, 으윽!
몸에서 혼이 뜯겨져 나와, 무참히 빨려들었다.
겪어본 적은커녕 본 적도 없지만, 아마 블랙홀에 잡아먹히는 빛에게 감정이 있다면 이럴까.
고통, 공포, 후회, 비탄. 세상에 존재하는 나쁜 감정이란 감정은 모조리 뒤엉켜서 어둠에 빨아먹히는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육신이 없는 느낌. 체온도, 고동도, 감각도 없는 느낌은 그저 먹먹한 허무함 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정신… 차려! 아직, 아직이야! 이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어, 할 수 있는 걸… 해!’
형체가 없는 이를 아득 문 순간, 겨우 내 존재를 강하게 의식했다.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의 빛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한번 숨을 내쉬어봤지만 공기가 들락거리는 느낌은 없다. 도저히 살아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좋아.’
새카맣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대로 무슈마헤트의 의식에 침입했다면,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난 이미 여기에 있다. 마녀야.]
육신이 없었다는 건 잠깐 다행한 일이긴 했다.
내가 육신을 가진 채로 여기에 침입했다면, 분명 이 장면에서 심장마비라도 일으켰을 것이다. 거대하게 울리는 울림에 고막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고.
“…여전히, 분위기로 조지는 거 좋아하네.”
한 번 겪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제 몸보다 열 배는 거대한 눈과 마주하는 것은.
타오르는 것처럼 황금빛으로 이글거리고, 쭉 찢어진 동공이 나를 속속들이 살피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같은 열기가 이 자리에 없는 육신 대신 내 영혼을 태우려 들었다.
[이번엔 네년이 자초한 게지. 건방진. 감히 내 안으로 직접 파고들어오다니. 뭘 믿고 이런 만용을 부렸느냐? 흥, 그야 뻔하겠지.]
무슈마헤트가 눈을 찌푸리며 비웃었다.
지나치게 거대한 용의 눈은 내가 뭘 생각하는지 꿰뚫어보고 있었으니까.
이 자리에서는 멀쩡한… 내 왼쪽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추방된 반역의 신, 발로딘이 남긴 힘의 한 자락이 네 한쪽 눈에 깃들었구나. 그것으로 나를 어떻게 할 심산이었겠지. 아니더냐?]
미쳤다고들 말해도, 어쨌든 드래곤.
그녀는 내 수작 정도는, 손을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었다.
“맞아. 당신의 과거를 봤으니까.”
[뭐라?]
헤카이트 당주의 서재에서 보았다.
탐욕의 전쟁에서 동족을 버리고 도망쳤던 무슈마헤트의 모습. 그리고 ‘공허의 눈’ 고르기아스의 능력. 이 세상의 어둠에 군림하는 89위의 마왕 중 하나.
시선이 마주친 자를 극한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 능력.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그 능력을 가졌던 자가, 이 베어링턴에 있었다.
아니, 우연이었을 리가 없지.
“‘탐욕의 전쟁’. 동족을 버린 죄책감을 자라지 않은 동족을 키우는 것으로 갚고 싶었던 거지?”
[이 년이… 건방지구나, 뚫린 입이라고. 넌 지금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영혼을 지워버릴 수 있음을 알아라!]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능력도 갖추고 있겠지.
그래서 최소한의 보험을 ‘들고’ 왔다. 영혼인데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들어 보이자, 무슈마헤트의 눈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악독한 마녀 년이…!]
“너와 얘기를 나누려면 꼭 필요한 일이었어.”
용의 심장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미성숙한 드래곤의 영체다. 튜닝 스킬을 응용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지. 최대한 감정을 죽이고 말을 하면서 용의 눈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지금 네가 나를 죽인다면 나와 같이 이 녀석도 정말로 죽어. 그걸 바라진 않겠지?”
[…할 말이라는 게 무엇이냐?]
후우… 호흡의 필요성이 없는 이상, 심호흡은 각오와 마음을 다잡는 용도 외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용도가 어느 것보다도 필요했다.
“‘라오후’의 두령이라는 자. 반은 식물인 그 인간. 내 세계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그자도 ‘고르기아스’가 쓰던 능력을 사용했어. 당신, 알고 있다면 대답해줘. 혹시 우리 걸리버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라는 건….”
잠깐 쉬고.
생각을 정리하고.
“…89위의 마왕과 연관이 있는 거야?”
무슈마헤트는 침묵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조금 눈에 일렁이던 분노가 다소나마 식은 것처럼 보였다. 침을 삼켜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그 느낌이 조금… 답답했다.
영겁과도 같은 침묵 끝에, 무슈마헤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존재했다는 드래곤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한단 말이야?
하지만 완전히 의미가 없는 답인 것만은 아니었다. 가설에 조금 무게가 실렸다.
이는 생각보다 어두운 이 세상의 비밀과 닿아있는 단서라고 해야겠지.
“당신은, 당신과 당신의 아이를 지금 이 불행에 빠뜨린 자들이… 바로 여기, 베어링턴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우루 늪지의 도바츄들을 여기로 오게 만들었지. 당신의 독으로 중독시켜 조종해서. 하지만 당신 자신은 움직이지 않았어. 왜냐하면…”
드래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하는 데에는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내야만 했다.
말라붙은 입술에서 말을 토해내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이 공간에서 시간이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그 녀석과 맞섰다간 탐욕의 전쟁 때처럼 당신은 도망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고르기아스와 같은 능력을 갖춘 자에게 패배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어.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으니까. 아이를 되돌리는 것도, 당신의 복수를 하는 것도. 그래서 그자가 죽은 뒤에 움직인 거야.”
[…마녀여. 네 말을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네 말에는 틀린 점이 있다.]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드래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고.
아주 희미한, 실낱같은 자애가 깃든 무슈마헤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광기에 빠져들기 전의 그녀는 원래 이런 목소리로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보듬었던 걸까.
[너희들의 능력은 죽으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다시 그 능력을 맡기로 예비된 자가 올 때까지.]
“…잠깐. 맞…아. 그랬었지….”
그래. 그걸 간과했다.
「노신왕의 각인안(Odin’s Sphere)」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까지나 현세에 남아있는 자의 것뿐. 이제 현세에 남아있지 않은 ‘노래하는 성녀’ 로젤라이의 능력을 쓸 수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 그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아직 이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이다. 육신이 있든, 아니면 갖지 않은 상태든.]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내 눈앞에서… 그것은… 목이 잘려 죽었다고. 루시탄에게… 목이 잘려서 죽었는데, 살아남을 수 있었단 말야? 그 상황에서?
“…하지만, 베어링턴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 것만은 확실하지. 그렇지 않았으면 당신도 여기에 오지 않았을 거야. 물론 나도 단 한 번,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당신을 쫓아낼 수도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걸 상정한 작전이었는데도,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약 잘 되어서 드래곤을 쫓아냈다고 해도, 그녀는 돌아올 것이니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불운하고 무관한 이들이 죽고 다칠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그 작전을… 결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택했어. 당신과 나 사이에 맺힌, 우리 둘 중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빚을 청산하려고.”
한 번 더. 이번에야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 베어링턴에서 있는 모든 일의 마무리를, 여기서 짓겠다고.
그렇게 각오했다. 손에 쥐고 있는 용의 영체를 보였다.
“…이걸 당신에게 돌려주겠어. 이 녀석은 아직 살아있어. 당신이 가슴으로 품은 아이를… 되살릴 수 있다고. 만약 거부한다면 나는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어. 이 녀석이 원치 않더라도, 이 녀석의 힘을 전부 다 끌어내서라도 싸워서 살아남고 말 거야.”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같이 살아가고 싶은 녀석들이 여기에서 잔뜩 생겼다.
저쪽에서 얻지 못한 행복이라는 녀석이, 여기에서는 내 곁에 와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할 것이다.
후욱, 후욱, 후욱…
불길이 잦아드는 듯한 소리였다. 용이 숨을 쉬는 소리란.
[허나, 한 가지.]
용의 눈에 드리운 증오가 천천히 엷어져갔다.
하지만 그 눈에 담긴 증오가 완전히 녹아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증오는… ‘그녀’의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애를 광기로 바꾼 다른 요인이 있었다.
[나와 계약을 맺은 자가 있다. 너를 증오하고, 너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는 자다. 마녀. 그 자가 너에 대해 알려주었다. 내 분노와 증오, 광기는 그 자가 휘두르는 검과 이어져 있다. 그 목숨을 거두지 않는 한, 나는 멈출 수 없다. 네게 가능하겠느냐? 용의 힘을 부리는 검사를… 쓰러뜨리는 것이?]
…발스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변신한 술라 님의 화염 숨결을 맞고도 그는 살아남아, 지금은 누구보다 내 죽음을 바라는 망자가 되었다.
그 배후에는… 분명 ‘복음회’가 암약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인 드래곤을 그들은 마치 사냥개를 부리듯 철저하게 이용하고 농락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한번 눈꺼풀을 부르르 떨었다.
“…나에게는 불가능해.”
[그렇다면 나는 멈출 수 없다.]
아니, 좀 더 들어봐.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나갈 때쯤에는 내 동료가 그 개자식을 벌써 죽여버렸을 거니까.”
죽은 자를 또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카르티가, 내 동료, 내 친구가.
그 개자식한테 질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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