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2 8 / 미쳐버린 드래곤, 무슈마헤트에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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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자의 옆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제 아래에서 달게 신음하는 그 여자의 얼굴이 열락에 젖어 있어서, 순간 가슴이 시큰하게 아렸다. 이를 꾹 깨물면서 허리를 흔들 때마다, 쾌락감만큼이나 죄악감이 욱신거렸다.
언젠가 마음의 한켠을 빼앗겼던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자신이 아닌 남자를 사랑했었다. 그 여자는 이제 여기에 없다.
“아아, 앗, 으응. 흐읏, 으.”
서로가 강하게, 깊게 연결된 부위가 연신 바들거린다.
안쪽을 후벼팔 때마다 등골이 욱신거린다. 무심코 뻗은 손이 여자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단단하게 서오른 감촉이 짚어졌고, 무심코 숨이 짙게 배어나왔다.
“루, 시이… 타안. 조금 더어. 읏, 응.”
열락. 쾌락. 애락.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마저 잠시 미뤄두고, 서로를 강하게 탐닉한다. 처음에 이 여자를 만났을 때, 자신은 이 여자와 그녀를 겹쳐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 여자와 그녀는 다른데도. 한번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낸 적도 없었으되, 동시에 그를 사죄한 적도 없었다. 허리를 강하게 밀치면서, 여자에게 입술을 요구했다. 팔이 움직여 제 목을 끌어당기고, 서로 입술을 포갰다.
츄읍, 츠읍. 츳, 쯔읍… 츠읏.
사양하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위와 아래, 서로를 강하게 의식한 탐락이 이어져갔다. 되풀이한다. 미끈한 혀에 혀가 진득하게 엉겨붙고, 뒤엉키고, 얽혀들었다.
“야해빠진 얼굴, 하고 있다니까. 정말.”
단지 분위기만은 다르다.
그 여자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끌어안는 자애로운 태양. 그래, 어쩌면 어렸던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따사롭게 곁을, 볕을 내주는 한낮의 태양과도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이 여자는 질기고 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결국 꽃을 맺는 씨앗이었다.
열매를 맺게 하고 싶다고, 문득 생각한 순간 눈 아래 여자의 얼굴이 비쳤다.
달떠서, 허덕이면서, 땀투성이인데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흩어진 게 요염한 여자.
한없이 나를 이기적으로 만드는 여자.
터억, 터억, 터억, 터억.
거칠게 살결을 비벼댄다. 하복부와 하복부가 맞닿을 때마다 찐득한 감촉이 들러붙었다.
“아, 읏, 크흥. 하앗, 아아앗. 좋, 앗. 깊…어. 읏, 흐윽.”
여자의 살결이 바르르 떨렸다.
손에 가득하게 품어진 젖가슴에도 오한이 인 것처럼 떨렸다. 넘쳐나는 열락에 젖어든 눈동자에 제 얼굴이 얼핏 비쳤다.
우는 것처럼 바르르 떨리는 속살이 뜨끈하게 달아올라, 덮쳐든다.
억세게 휘감아, 강하게 조여든다. 끅, 하고 약간의 당혹이 섞여든 소리가 입에서 새었다.
“하, 하아, 하흐, 지금… 네 얼굴, 엄청…”
여자가 바르르 떨리는 뺨과 턱을 움직였다. 그 턱에 침 흐른 자국이 자못… 음탕하다.
여자가 보는 내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못 참겠다는 표정, 하고 있, 어.”
여자의 말이 쿡 하고 가슴 언저리를 화살촉처럼 예리하게 찌른 것 같다.
손이 뻗어와서, 뺨을 감싸고, 입술을 겹쳤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면서 콧김이 후웃, 하고 얼굴을 간질인다. 칭얼거림이 맞닿은 입술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그렇게, 보지 마아.”
이 순간에 실감하고 만다.
나는 이 여자를.
그리고 이 여자는 나를.
“으, 하앗. 아아, 크흐응. 참지… 않아도, 되는데, 에. 흐으, 으으응…”
마치 고삐가 풀린 것처럼 허리가 움직였다.
빠르게, 더 빠르게.
세게, 더 세게. 기교는 그만두었다. 그저 천천히 들끓어오르는 욕망을 풀어내는 것만을 원했다.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그대로 허리를 좀 더 위로 끌어올렸다. 앗, 하고 남근에 꿰인 여자의 하복부가, 유연한 허리가 휘면서 들어올려졌다.
“앗, 으…! 하아, 아흑, 으으으, 으응.”
여자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을 잠시 상관하지 않았다. 거부하지도 않았다. 좀 더 체중을 실어서 찍어누르는 교합에 응하듯, 여자의 다리가 허리에 교차하여 감겼다.
바르르 떨리는 살결이 거듭 겹쳐져서, 머릿속의 심지가 타버리는 것 같다. 혈관에 흐르는 피가 말라붙을 것처럼 목이 말랐다.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르지 않는 샘을 두레박으로 바닥까지 긁어내듯, 서로를 탐했다.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고, 깍지낀 손을 잡고, 몸 여기저기에 제 흔적을 남겼다.
“하아, 읏, 기분 좋, 아. 이제에… 갈 것 같, 아. 루시탄, 루시탄, 루시, 탄….”
최고점에 달한 여자의 감각과 마찬가지로, 허파에까지 쾌락감이 들어찬 것 같았다.
내쉬면 조금 숨이 편해질까. 오히려 더 숨이 가빠졌다. 연거푸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안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서로 얼굴을 맞대어 몸을 세운 뒤, 여자가 허리를 스스로 세워 튕겼다. 가벼운 무게게 지분거리면서 남근을 속살로 긁어대, 뻐근한 감촉을 자아냈다. 한계까지 좁혀들어 바들거리는 고기구멍이, 꽈악, 붙잡듯이 조여붙었다.
벼락같이 등골을 후벼판 느낌이 쾌락중추를 관통했고,
여자의 허리를 붙잡은 채 바르르 허리를 떨었다.
득, 득, 득, 득, 득.
안쪽을 긁어내던 귀두가 멈추고, 몇 번의 분출로 그녀의 안에 제 씨앗을 남겼다.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쳐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숨이 턱 막히도록 묵직한 기쁨에 심장을 붙들린 사이, 절정에 달한 여자의 몸이 천천히 흐트러져, 땀투성이인 몸을 침대에 뉘였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숨을 내쉴 때마다 들썩거리는 몸은 김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뜨겁게 포화해, 여분의 열이 땀으로 맺혔다. 그녀의 등에 제 몸을 얹듯이 누우면서, 풀어놓은 열락이 조금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 간극을, 다른 감정이 와서 채웠다.
몹시도, 몹시도 사랑스럽다.
그 생각에 여자의 반질반질한 이마에 입술을 댈 정도로 충동적인 감정에.
“정말… 간지러워.”
여자는 칭얼거렸지만 입가에는 살짝 곡선이 그어져 있었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기분 좋은 피로에 젖었다. 누인 몸을 읏차, 하고 힘겹게 일으키면서 여자는 천천히 뺨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그리고 뺨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 살짝 건강미 있는 옅은 갈색의 손목이 땀을 훔쳐내는 모습. 요염하다기보다는, 생생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꽤 초조해 보였던데. 그냥 한숨 재울 걸 그랬나?”
놀리듯한 말투는 평상시 그대로다.
자신이 알고 있든 그 여자의 말투 그대로다. 그렇다면 자신도 축 처져 있을 수만은 없다.
이 여자도 이 여자 나름대로, 제 안의 초조함과 싸우고 있을 테니까.
“피곤해 죽겠다고 한 건 너라고. 오히려 네 쪽이 잠이 부족해서 실수하지나 않도록 해. 벌써 해가 뜰 때가 됐어?”
“아직 조금 남았어. 다시 잠들기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여자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발끝이 닿자마자 약간의 휘청임이, 그리고 가벼운 요통에 끙끙거리는 모습에 조금 키득거리고 만다. 하지만 이내 여자의… 허벅지를 타고 조금 새어 흘러나오는 점액질에는, 조금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너랑 만나면 왜….”
여자는 병에 담긴 물을 잔에 따라 마셨다. 이번에는 투덜거림인가.
“…꼭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어.”
이 여자와의 첫만남이 생각났다.
분명 그때는 서로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던 만남이었을 텐데.
문득 여자의 온기가 남은 침대를 짚은 손에 가죽조각이 잡혔다. 끈과 끈으로 이어진 검은 가죽 가죽조각. 제법 두껍다. 그 용도를 생각한 순간 약간의 씁쓰레함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
여자의 옆얼굴. 그 한쪽 눈가를 칼자국이 잡아먹었다.
자신이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 안대를 내려다보자, 손이 다가와 안대를 가져갔다.
“애꾸눈 처음 봐? 뭐 그렇게 불쌍하다는 것처럼 보고 있어.”
기억났다.
이 여자는 꽤 많은 것을 싫어했지만 특히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것을 아주 몹시도 싫어했다. 그랬지, 그랬었지. 그래서 자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여자를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랬었는데, 무의식적으로는 자꾸 잊고 말곤 했지.
여자가 안대를 차는 것을 보고는 입가를 조금 일그러뜨렸다.
손이 슥 움직였다.
“햣?!”
이런. 조금 웃음이 나고 만다.
옆구리를 슬쩍 찔렀더니 어설프게 안대를 쓰던 여자가 대번에 울그락불그락 표정을 붉히고는 퍽 하고 머리를 때려온다… 이래 봬도 왕자인데.
“뭐 하는 거야!”
“…손 험하긴. 너야말로 긴장한 것 같아서 좀 풀어주려고 한 건데.”
“다음에는 좀 더 젠틀한 방법으로 해. 긴장하지도 않았다고.”
그러고보면 손도 매웠지.
분명 1년 전쯤이었나. 일이 해결된 다음에 이 여자에게 턱을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건 꽤 아팠다. 지금도 생각하면 턱이 얼얼할 정도로.
혹시 모르지. 세상은 넓으니 이 세상 어딘가에는 용에게 어퍼컷을 날려서 퇴치하는 이가 있을지 누가 알겠나.
“결국… 잠은 다 잤네.”
로브 아래에 갖춰입는 방어구를 하나하나 챙겨입고는 여자는 마지막으로 벽에 세워둔 지팡이에 손을 뻗었다. 1년이라.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이 여자는 자기가 호언한 대로 한 명분의 마법사가 되었다.
오늘은 그렇다면 아주 길고 긴 하루가 될 것 같지만…
남자로서, 오기로라도 보여주지 않을 수 없겠다.
자신에게도 요 1년은 그저 놀고먹으면서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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