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2 8 / 미쳐버린 드래곤, 무슈마헤트에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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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베어링턴에 돌아오고 나니 해가 서쪽 능선으로 숨어들었다.
이미 소문이 퍼지기라도 했는지 거리에는 사람 한 명, 개나 고양이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텅 빈 거리에 발을 들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 때문… 이야.’
만약 내가 베어링턴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떠들썩하고 평범한 하루의 마무리를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만약 내가 우루 늪지에서의 그 키메라 사냥에 대해 듣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냥 넘겨듣기만 했었더라면 이렇게 되었을까. 머리를 감싸고 입술을 깨물었다.
거점으로 삼은 루시탄의 안전가옥에 모여서 작전을 설명할 때조차 다소 어깨가 처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각오는 하고 있다. 각오는 하고 있지만…
만약 이 도시가 용의 불길에 휩싸여 멸망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마지막이 될 작전 회의를 마치고 여관방으로 돌아오고서도 그 생각이 머리 한구석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으….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씨바아아알…. 진짜 개 좆같네, 니미랄, 썅….”
침대에 머리를 깊게 묻으면서 긴 탄식을 토해냈다.
계속 우울한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내일을 어떻게 넘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계속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불안감이 통 가시질 않는다.
그렇게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것 같았지만 그대로 다시 얼굴을 침대에 묻어버렸다. 오늘은 얼굴 보이고 싶지 않단 말야.
“대충 이럴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의기소침해하고 있다니, 꽤 너답지 않은데.”
“이럴 것 같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계속 이러고 있게 내버려 둬….”
루시탄의 빈정거림에는 평소와 같은 패기가 부족했다.
아마 어설프게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심란해졌다. 괜스레 고집을 부리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나도 똑같이 칭얼거려버렸다.
침대에 털썩하고 진동이 일었다. 아주 조금 눈을 옆으로 돌리니 바로 옆에 루시탄이 주저앉았다. 섣부르게 위로 같은 건 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뭐라도 좀 말해줬으면 하는 투정이 엇갈렸다.
“네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데. 너, 지금 이 상황이 네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렇게 날 잘 알면 좀 더 우울해하게 내버려두란 말야.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서 루시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굴을 파는 두더지처럼 그렇게.
“나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말하는 거야. 그냥 들어. 나도 로젤라이가 죽은 게 내 탓이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로젤라이.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녀석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네 탓이 아…”
“그래, 아니지. 나도 알아.”
녀석의 웃음이 그때 유독, 몹시도 씁쓰레하게 보였던 것마저도 내 우울한 마음이 빚어낸 탓이었을까.
침대를 짚은 내 손에 제 손을 얹어 누르면서 녀석의 이마가 내 이마에 맞닿았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힘주어서 말하는 목소리가 고막에 툭툭, 아프도록 박혔다.
“그리고 형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고. 그러니까 잘 들어, 로즈. 네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든, 내일의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정말 속 편하게 말하네, 너.”
“어디의 누구 씨가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 준 덕이지.”
천천히 이마가 떼어져간다.
아직 이마에 녀석의 열기가 남은 것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조금 얼굴이 뜨거워졌다.
1년 전에는 다소 음울한 웃음을 비틀린 듯이 웃고 있던 녀석은 지금은… 1년 전의 고난에서 해방된 탓인지 조금쯤 더 시원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꽤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을 때, 의도하지 않게 녀석의 입가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루시탄은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거부하지는 않았고.
“너다운 위로야. 그래도 힘이 되네.”
“사실 위로하려고 온 건 아니었지만 말이지.”
그럼 대체 뭘 하러 온 건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려 하자, 녀석의 웃음이 조금… 음흉한 빛을 띠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조금 뒤로 물러났다.
“알리바이 만들러 왔는데.”
“…성기사 나리…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알고 이래?”
“내일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판인데 오늘쯤은 괜찮잖아.”
어깨에 손이 얹어지고, 천천히 그 손이 아래로 누르듯이 힘을 주었다.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이 녀석은 진짜…
툴툴거리면서도 하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 녀석도 이 녀석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맞이하기 전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이러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천천히 입술에 까끌한 감촉이 스며들었다.
눈을 살짝 감은 채로, 깔딱거리는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조금 볼이 달아오르면서 숨소리에 옅은 물소리가 엮여 들었다. 맞닿은 입술을 의식한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세게 뛰었다.
“루시탄, 넌 진짜… 답도 없는, 변태…야.”
“하, 누가 할 소린데.”
아주 조금 입술을 떼어놓고는 그 바로 위에서 루시탄이 키득였다. 웃음에 콧김이 와닿는 게 꽤나… 간지럽다. 어깨를 짚고 있던 손이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천천히 끌러냈고, 드러난 윗가슴에 입술이 지분거렸다.
“으, 흐읏. 응….”
조금 달뜬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허벅지가 바들거리면서 확 좁아들었고, 루시탄의 입술이 연신 가슴살에 잇자국을 새기면서 출렁거렸다.
“진짜… 무슨, 개도 아니고오. 깨무는 거 너무, 좋아하…”
투덜거리려던 말이 가볍게 튕기듯한 숨소리에 녹아 묻혀버렸다.
슬쩍 속옷을 내린 손 아래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천천히 풀어주듯한 손짓이 달아서.
“아, 으응. 흐으, 읏.”
“그럼 그 개한테 그런 소리를 내는 넌, 뭔데?”
암캐라고라도 하고 싶은 건가. 발갛게 물든 볼을 슬쩍 쓸면서 루시탄의 입술이 다시 가까워졌다. 눈을 감고 눈꺼풀을 파르르 떤 순간 다시 호흡이 뒤엉켰다.
“흐읍… 츄, 츱. 흐으, 으으응.”
가만히 떨리는 숨소리. 은은하게 녹아드는 목소리.
서두르지 않고 몸 여기저기를 스치는 손끝마다 살결이 바들거렸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몸에 조금 차갑고도 단단한 손길이 스며들었다.
“너… 손, 좀… 거칠어졌, 어.”
제 목소리에 자꾸만 신음이 끼어들어서 말을 한 번에 하기가 어려웠다.
자꾸만 포개어졌다가, 비벼졌다가, 달라붙는 입술 사이에서 목소리가 울렁거렸다. 하아, 하아… 가쁘게 내쉬는 숨과, 서로 입술을 강하게 탐하는 빠는 소리에 눈두덩이 바르르 떨렸다.
“까슬거려서 아프, 다구.”
“익숙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 앞으로는 더 거칠어질 예정인데.”
앞으로라.
꽤나 기약이 없는 말이잖아. 특히 오늘 밤에 한해서는.
짐짓 투덜거리자 루시탄은 조금 뻔뻔하다 싶은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내 어깨를 손으로 짚어 제 쪽으로 당겼다.
“으읏.”
저항하지 않고 당겨지는 대로, 슬쩍 기댄 품에서… 묘연히 땀 냄새가 풍겼다.
아마 이 녀석도 하루종일 베어링턴을 바쁘게 뛰어다녔을 테지. 내가 그러했듯이.
“루시탄….”
서로 고생스러운 하루였고, 그 고생보다도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서로에게 미련없는 밤이라도, 보내고 싶어지고 만다.
가만히 루시탄의 어깨에 팔을 갈고 한 번 더, 한 번 더… 입술을 겹쳤다가, 떼었다가, 다시 겹치기를 되풀이했다.
내가 먼저, 그리고 녀석이 먼저. 다시 한번 내가 먼저.
가슴 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서로의 입술을 탐할 때마다 점점 더 단단하게 부풀어갔다.
“그래서… 그 세 번째 조력이라는 건 어떻게 됐어?”
“하아, 하아… 어떻게든, 일단. 도움이 될 만한 도움을 구하기는 했, 어. 얘기 안 했었… 나?”
“너, 아까부터 계속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으니 말이지.”
그럼 안 되는데.
기껏 세운 작전도 제대로 설명을 못 했다면 큰일이다.
“그렇게… 티가 날 정도로?”
“적어도 나한테는 다 들켰지.”
이마에 가볍게 입술이 와 닿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같이 싸워줄 사람들에게 불안하게 만드는 꼴이잖아, 그런 거. 진짜 한심하다, 나.
저쪽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간, 좋은 녀석들이 모여줬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이 녀석에게 제일… 그…
의지하고 있었다는 건, 죽어도 말할 수 없다. 부끄럽잖아.
“너무 너 혼자 전전긍긍하지 마. 나한테도 나름의 비장의 카드라는 게 있어. 세 명의 조력이라. 어떻게 생각하면 꽤 시의적절한 예언이었지.”
이 녀석, 또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조금 부아가 치솟는 얼굴로 루시탄의 옷깃을 젖혀 탄탄하게 단련된 맨살을 드러내면서, 느긋하게 서로의 몸에서 여분의 것을 벗겨갔다.
“후으, 으읍… 크후, 으으응.”
다리 사이에서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들이밀어진 루시탄의 남근, 부풀어오른 끄트머리에 쪼옥, 입술을 가볍게 대고는 묵직한 살덩어리를 입 안에 담아, 빨아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국부를 입으로 빨아내는 행위.
무척이나 두근거리고, 부끄럽고도, 달아올랐다. 다리 사이, 구멍에 물기가 번져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소리로 들었다.
긴 밤. 긴긴 밤.
만약 이 밤이 지난 아침 이후, 내가 여행을 마치는 때가 오더라도.
지금을 생각하면서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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