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2 8 / 미쳐버린 드래곤 무슈마헤트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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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웬즈데이와 즈왈트, 완전 복귀.
그 순간이 이렇게 기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좋아. 즈왈트. 방금 봤던 건… 그리고 예전에 봤던 것까지 전부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쳐서 잊어버려. 지금 당장.”
“미안하다, 주인. 유감스럽게도 골렘의 신체로는 잊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희대의 골렘술사 가브롤의 작품, 인간에 가장 가까운 걸작 골렘, '아담 카드몬'에게는 가장 인간다운 기능인 '망각'이 빠져 있었다…
그 사실에 절망해서 주저앉아있는 내 등 위로, 즈왈트의 측은한 시선이 내려앉았다.
씨발, 진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골렘에게 따먹히는 모습을 골렘에게 보이다니, 이젠 진짜 시집 다 갔어…. 아니, 첫 번째는 나한테도 공동 책임이 있지만 두 번째인 이번에는 난 완전히 피해자라구.
풀 곳이 없는 분통을 맥주에 풀면서, 커다란 나무잔을 비운 뒤 그것을 탁자에 세게 내리쳤다. 탕, 소리가 나도록. …즈왈트. 부럽다는 듯이 보지 마. 술 마시고 싶다는 얼굴도 하지 말라고.
“아줌마! 여기 흑맥주 꽉꽉 눌러서 한 잔 더 줘요! 안주도 말린 개암 말고 좀 씹을만한 거로!”
젊은 처자가 낮부터 술을 푸고 있는 것을 본 주점 주인아줌마의 눈이 이상하다는 듯이 일그러졌지만, 댁이 뭘 알아! 울고 싶은 걸 술로 대신 풀고 있는 거라구.
즈왈트와 웬즈데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저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을 한 웬즈데이 쪽이 100배는 더 나빠! 젠장, 그래도 예뻐서 참을 수밖에 없네, 진짜로.
그렇게 술을 푸고 있는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발소리에 즈왈트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웬즈데이도 그 다음으로 반응했고, 나는 제일 늦었다. 누가 다가오든 말든, 어쩌라고요.
“실례하겠네.”
“실례하지 마세요, 지금 누구 실례 받아줄 기분이 아니…”
었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강짜는 못 부리겠다.
루시탄과 같이 있었던 그 영감님이었다. 분위기를 엄청나게 풍기는 노기사는 이런 싸구려 뒷골목 여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들어와 주위에 눈짓했다.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손질된, 그러나 흠집 하나 없는 갑옷을 입은 노기사는 발스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본인에게는 그럴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어 보인다는 게, 더 무섭다구.
“칼 프레드릭 바츠네. 왕자님을 모시고 있는 기사지. 자네가 왕자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걸리버인가?”
“…교… 아, 아뇨. 실례했어요. 로제이아에요. ‘가시의 마녀’로 통하죠. 왕자님과 교제하고 있는지는 저도 몰랐는데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속에서 부글거리는 짜증은 일단 접어둘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텐데. 아니, 그것도 그렇고…
“상관없지. 왕자님께서 찾고 계시네.”
“제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
“다 아는 수가 있네.”
미행을 붙인 건가? 설마 웬즈데이에게 따먹히는 모습까지 들키지만 않았길 바라면서 나온 술을 마저 쭉 삼켜버렸다. 내 기억이 맞으면 왕을 지키는 기사였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나온 술을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까.
“루… 왕자님과 헤어진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요. 저를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는 모르시는지요?”
“편하게 해도 되네.”
“루시탄이 왜 저를 찾는데요?”
편하게 하라니, 편하게 한다.
주는 밥은 챙겨먹는 게 나다우니까. 그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기사였다면 여기에서 화를 냈겠지만, 그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아니, 한 술 더 떴다.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니네. 녀석에게 직접 듣게나.”
쓸데없이 예의 차리고 있던 건 나만이 아니었던 건가요.
어쩐지 무지막지한 분위기와는 달리 제법 말이 통할 것 같은 인상의 노기사는 탁자에 반짝거리는 금화를 두 닢 놓았다. 술값도 대신 치러줄 정도라니, 반해버릴 것 같아.
“가자, 즈왈트. 웬즈데이. 루시탄은 어디에 있어요?”
“가까운 곳에 있네.”
“직접 오지 않고?”
“세간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한 이야기거든.”
대체 무슨 볼일이기에. 라오후 건이라면 구태여 주위의 이목을 신경쓸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공공연한 비밀인데다가 어차피 강제 진압에 들어갔다고 했으니까.
두 구획쯤 지난 건물로 들어갔다. 어제 루시탄과 잤던 여관과는… 다른 여관이다. 여관을 바꿔가면서까지 할 말이라는 게 대체 뭐지?
“데려왔네.”
“수고하셨습니다. 바츠 경.”
가장 안쪽의 방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뻗어온 손이 내 손목을 붙잡아 안쪽으로 확 이끌었다. 얼굴만 문틈으로 내민 루시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츠 경. 알고 계시겠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란 말이지. 알고 있네. 거기, 자네 둘도 잠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네.”
프레드릭의 제지에 즈왈트와 웬즈데이의 시선이 이쪽에 와닿았다. 판단을 요구하는 듯한 눈이어서 표정을 조금 굳힌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빗장까지 잠그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탁자 위에는 포도주와 잔이 놓여있었다… 이미 한잔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녀석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껏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왕명이 떨어져서 잡혀갔을 때조차 이렇게 초조해한 건 본 적이 없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몇 가지만 물어보겠어.”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루시탄은 포도주를 한 잔 채우고는 급하게 삼켰다.
목이 마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여기에 오면서 수상한 일은 없었어?”
“수상한 일투성이였지. 어제 다 말해줬잖아.”
여기까지 오기 전에 겪었던 일들은 어제 다 말해줬었다.
수상하다는 말 정도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일들이 계속 몰려와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나날들이었다고. 루시탄은 그랬었지, 하고 잔을 비운 뒤 내게 내밀었고, 포도주를 채워주었다.
“나 술 마시다가 잡혀온 참인데.”
“한잔 더 해. 내 말을 듣고 나면 술 생각이 더 간절해질 테니까.”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자기 골렘에게 따먹히고, 다른 골렘에게 그 모습을 들킨 것보다 술 땡기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주는 술을 마다하진 않는다… 여기 술이 그다지 독한 게 많지 않다 보니, 나도 꽤나 주량이 늘었다. 포도주를 홀짝이려니 녀석이 날 조금 바라보다가, 겨우 입술을 뗐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 우루 늪지 쪽에서 이 방향으로 드래곤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바닥에 조금 남은 술과 잔이 바닥을 땡그렁, 굴렀다.
루시탄이 갑자기 꺼낸 말에는 현실감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뭐가 날아와?
“뭐가 날아온다고?”
즉각 다시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방증할 뿐이다.
루시탄은 입을 다물었다가 내 얼굴을 똑바로 보고는 힘주어 말했다.
“드래곤이 날아온다고.”
우루 늪지에서 봤던 그것이 떠올랐다.
추하고,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징그럽게 생긴데다가 동시에 케라우노스와 나, 카르티… 셋이 덤벼도 벅찼던 괴물이 떠올랐고, 또 술라가 변신했었던 드래곤도 떠올랐다.
전자는 어떻게 쓰러뜨렸지만, 후자는… 아예 답이 없었다. 커다란 범선 한 척을 숨 한번 내쉬는 것으로 태워버리는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드래곤이… 왜?”
“거기에 대해서는 몰라. 다만 독수리를 보내온 쪽에 의하면 그건 ‘미친 용’이라고 하더군.”
헤카이트 당주의 수업에서도 배운 적이 있다.
드래곤은 아주 높은 지성과 완벽한 육체, 그에 어울리는 게으름을 타고난 종족이어서 본체의 일생 대부분을 잠으로 소비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드물게, 그리고 곤란하게도 그 완벽한 육체를 이용해 분노를 풀려 하는 개체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게 분노에 휩싸인 용을 사람들은 ‘미친 용’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미친 용은 자신을 분노케 한 대상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뒤쫓는 끈질긴 사냥꾼이며 무시무시한 파괴자이기 때문에, 그런 용이 나타나면 그 나라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꼴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미친 용이, 이 방향으로 날아온다고 하면… 그 분노의 표적이 여기만이 아니길 빌고 또 빌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드래곤과 맞설 수 있는 건 오로지 다른 드래곤 뿐이니까.
하지만… 키에리를 중독시킨 독 또한 용의 독이었고, 도바츄들도 우루 늪지에서 왔다고 한다면… 미친 용이 내려앉을 곳이 여기일 가능성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술라 님… 술라 님을 오시게 할 순 없어?”
“술라는 왕도로 불려갔어. 이 나라의 대마법사는 전부 왕도에 소환령이 떨어졌고. 아버지와 형의 안위가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럴 것이다. 술라는 드래곤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이 나라의 최대 전력이다.
그가 없는 사이 만에 하나 왕도에 미친 용이 내려앉으면 왕과 왕세자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영토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소리인가?
“긴말하지 않겠어. 당분간은 여기에 있도록 해. 성벽 밖에서 드래곤을 만나면 끝장이야. 드래곤이 널 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친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몬스터들도 미쳐서 날뛰니까.”
산 넘어 산이라더니.
호랑이굴에서 겨우 빠져나왔더니, 이번에는 드래곤이라고 한다.
루시탄의 말마따나, 정말로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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