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2 7 / 가끔은 휴가를 받고 싶은 골렘 웬즈데이에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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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하에서 있었던 일은 그다지 유쾌한 화제라고는 할 수 없다.
별로 유쾌하지도 않고 두서도 없는 이야기는 식사가 끝나고도 계속 이어졌다.
“…이 정도에요.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라고는.”
그동안 카르티의 표정도 휙휙, 재미날 정도로 잘 바뀌더라.
대조적으로 센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뚝뚝함 그 자체를 체현한 표정을 유지한 채였지만.
“흠….”
하지만 팔짱을 낀 채 몹시도 담배 한 모금이 고프다는 듯한 표정인 게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이녁의 말을 찬찬히 들어보고 느낀 건 말이지.”
아무튼,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어제의 일을 끝맺음하자 품에서 짤막한 곰방대 한 자루를 꺼낸 센이 물부리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재난이었겠구만. 거기다 이녁은 별로 이야기를 못 하는데.”
“누가 아니래요…. 아니, 뒤에 붙은 건 전혀 쓸데없잖아요.”
한숨을 서로 주고받는 나와 센과는 달리, 카르티는 몹시도 분개한 표정이었다.
이봐, 당한 건 나라구. 너나 케라우노스 씨가 아니라.
뭐 대신 화내주는 건 고맙긴 한데.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고! 세상에 뭐 그딴 변태 새끼가 다 있어?! 확, 내가 찾아가서 불알을 잘라다가 장작으로 써버리게 갖고 오고 싶네!”
“조수. 내 가열로에 그딴 거 넣을 생각 마라. 부정 타니까.”
애초에 불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다. 자지 비스무레한 건 붙어있긴 했는데… 그거 섹스할 때 쓰는 게 맞긴 한가? 반쯤 식물이니… 다른 방식으로 번식할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래도 센 씨의 덕은 봤어요.”
센이 늑대원숭이를 통해 전해주었던 전언이 아니었다면, 아마 최소한의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그 식물인간의 스킬에 당했을 것이다. 일단 농락당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런데 그놈한테 그런 스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언젠가 떼인 돈 받아내겠다고 라오후에 쳐들어간 제자 녀석을 내가 빼내온 적이 한번 있었지. 그때 제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뭔지 모를 눈과 마주치고 나서 손도 못 쓰고 당했다고.”
그래서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을 못 하고 ‘라오후의 두령’이라고 뭉뚱그렸던 건가?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지만, 아무튼 이야기의 얼개는 대충 맞아들어간다.
“그나저나 앵속(??)을 키우고 있었다고? 그걸로 마약 장사라도 하려고 한 건가? 물론 그쪽이 훨씬 남는 장사였겠지만… 흠.”
여기든 저기든 불법적인 장사의 일종의 정점이 약장사인 것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센은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곰방대를 한 모금 물었다가, 훅 뱉었다. …생각해보니 이 세계에 온 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센 외에는 보질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묘하군. 꽤 오랫동안 그 영약을 쌓아두면서 마약과 혼합할 생각을 했다면 어딘가에 앵속을 재배하는 곳이 있어야 할 텐데.”
그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걸리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계다.
특히 그런 걸리버들이 많이 산다고 알려진 베어링턴이라면… 양귀비에 대해 아는 걸리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야, 눈에 띄는 곳에 대놓고 재배하지는 못하겠지.
다만 카르티는 얘기를 전부 따라오지는 못한 것 같다.
“어… 로제 너도 아무 데서나 막 넝쿨을 불러내거나 하잖아? 그렇게는 안 되는 거야?”
“그건 말 그대로 아무거나 자라나게 해야 할 때나 쓰는 주문이지. 아니면 이미 심은 종자가 잘 자라게 보조하거나. 게다가 그런 주문은 지력을 크게 소모하니까, 대량으로 재배하는 데 쓸 수 있는 건 아냐.”
그다지 이해한 눈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식물계 마법사의 비술을 술술 털어놓을 수야 없지. 그냥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일단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르누레르 숲이겠군. 앵속을 야생화인 척 몰래 심어두고 관리한다면 어지간해선 발견될 일이 없겠지.”
“하지만 거긴 지금 늑대와 도바츄가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잖아요.”
“숲이 아니라 습지에 살던 외래종이 들어온다… 는 건 그다지,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지.”
양귀비 재배를 위한 공작이라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나와 카르티가 그다지 신빙성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눈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센은 산뜻하게 물러섰다.
“그보다 신 쉬푸…라고 했지. 그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 얘기가 있는데.”
“무슨 얘기요?”
“흠….”
입에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후욱 내뱉은 센은 조금 몽롱하게 변한 눈으로, 마치 공중에 옅게 피어오른 담배연기 너머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꽤 옛날얘기겠지, 이녁한테는.”
…어쩐지 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런 경험은 없습니다. 저쪽에서든 여기에서든.
“옛날 어느 나라에 도사가 한 명 있었다. 도사는… 그 옛날 사람인 도사에게도 옛날 사람일, 어느 오래된 신선을 만나 도를 닦았다고 해.”
일단 참을성 있게 듣기로 했다.
센이 이야기를 꺼냈으니 뭔가 곡절이 있겠지. 무슨 곡절인지까지는 아직 짐작할 수 없어도.
센은 눈을 굴려 나와, 무슨 말인지 여전히 아리까리한 얼굴의 카르티를 건너보고는 한 모금 더, 곰방대를 깊게 빨았다.
“어느 정도 도를 닦아 대강 한 명의 도사라고 이름을 댈 수 있을 즈음 도사는 거대한 제국을 만든 황제의 눈에 들었다더군. 황제는 그야말로 천하에 자신보다 높은 이가 없었으며, 그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죽음뿐일 정도로 강대했고.”
…슬슬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내용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스멀거리는 담배 연기처럼 아직은 불분명한 형태였지만.
아무튼, 센은 이번에는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뒤를 이어갔다.
“도사는 흠. 황제에게 선술을 보여서 신망을 얻은 다음, 불로불사의 영초를 찾아 바치겠노라고 하여 황제를 설득하여 수천 명의 동남동녀와 함께 동쪽으로 배를 몰아 떠났다. 그리고 ‘이주(??)’에 도달하여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지.”
어느 대목에서 목덜미가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주, 이주. 신 쉬푸의 가게 간판에 씌여 있던 글자잖아.
“그 도사의 이름은 서복(??). 뭐, 이녁에게 익숙할 발음으로는 그렇게 불리지만… 그 놈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감춘 적도 없는 거지. ‘신’씨를 자칭했다고? 어지간히 황제를 농락한 것이 즐거웠던 모양이지.”
키득거리는 센이 곰방대를 내려놓았다.
조금 할 말을 잃은 나와는 달리, 저쪽에서의 기억이 아예 없다시피한 카르티에게는 센의 말은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 식물 같은 놈은….”
“아마 놈이 말하는 불로불사의 비방, 흠… 이녁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게 익숙하겠지. ‘불로초’일 거다. 혹은 그 연구의 끝에 알아낸 결과물이라거나.”
헛짓거리였지만, 하고 센은 비웃는듯한 소리를 내곤 차 한 잔으로 입을 행궜다.
인제 와서 그 변태 식물의 정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까마득히 오랜… 말 그대로, 진시황 시절의 인물까지 이 세계에 걸리버로서 찾아올 수 있었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긴 했다.
“어… 그러니까, 그 로제를 덮친 변태 새끼가 결국 엄청 오래된 걸리버란 얘기잖아.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
“성질도 급한 녀석. 잠자코 들어라. 이녁은 그놈의 목을 쳤다고 했지?”
센의 눈이 내게 향했다.
조소(??)와 고소(??)가 양쪽 눈에 각각 회오리치듯이 술렁이는 눈동자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쉬이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려는 거다.”
아마 틀림없이 살아있겠지, 덧붙이고는 센은 어깨를 한번 우두둑 풀었다.
…만에 하나라도 거기에서 죽지 않았다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지?
우두머리가 잠적해서 와해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진 라오후가, 만약 외부에는 그렇게 보이려는 책략을 쓴 것이라면?
고육책, 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아니, 루시탄이 그 변태의 목을 베어버린 건 아마 상정 외의 사태였을 것이다. 그런 걸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어?
다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계략을 짜내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략의 주체는 라오후일까, 아니면… 루시탄이 말했던, ‘복음회’일까. 둘은 어쨌든 갈등하고 있다. 누가 먼저 상대의 품으로 뛰어들지에 대해, 끈질기게.
우루 늪지에서 시작된 일련의 모략이 여기에서 하나의 맺음을 맞이하려 한다.
한 가지는 일단락이 되고, 또 다른 한 가지가 다시 매듭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저, 그 실을 따라 기어오르는 한 마리 거미에 불과한 걸까.
그런 건, 진절머리나도록 싫다.
“좋은 참고가 되었어요, 센. 말씀 감사해요.”
“난 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야, 카르티.”
다만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할 따름이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잠시 눈을 감고, 이 세계에서 내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루시탄. 웬즈데이. 즈왈트.
카르티. 키르케. 헤카이트 당주.
잭 단장과 꼬마 도령 토마스. 그리고 키에리가 속한 유적단인지 뭔지는… 일단 보류.
센과 늑대원숭이도… 아직 온전히 터놓고 믿을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2년간 쌓은 인간관계치곤 참 얄팍하네. 자신도 우스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가능한 내 손에 쥘 수 있는 패들을 모을 수밖에 없다.
뭘 해야 할지, 조금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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