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2 6 / 1년 만에 만난 너희들에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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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숨이 턱 막혀왔다.
얼굴을 뺀 나머지 부분이 물에 푹 잠겨서, 형체 없는 손들이 붙들어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팔다리, 그리고 폐에 감겨들어 숨통을 꽉 옥죄는 감각에 여닫히는 입으로 숨이 드나들지를 못했다.
눈동자를 돌릴 수조차 없이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마치 플레밍의 전기 실험에 쓰인 개구리가 된 것 같다.
불과 수 초 정도의 시간이었을 텐데, 그 시간마저 타서 눌어붙은 것처럼 갑갑했다.
“학, 하악… 이건 또 무슨, 개씹지랄, 이…”
속이 메스껍다.
마치 달팽이를 통째로 삼켰는데 이게 한 번에 위로 넘어가지도 않고 뱃속을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토해내려고 헛구역질을 해 봐도 식도에 딱 들러붙어서 넘어가지도, 게워지지도 않는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역했다.
이게 저… 자식의 스킬인가?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몸뚱이를 갖고 있었어도 저 녀석은 걸리버였다. 놈이 사용하는 능력에 내 왼쪽 눈… [노신왕의 각인안(Odin’s Sphere)]이 반응하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무슨 능력이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겨우겨우 숨을 이어가면서 손끝에서부터 뻐근하게 붙잡힌 몸을 어떻게든 감각을 되살려 움직이려고 했다. 입안에서 문득 비릿하게 쇠 맛이 났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번진 모양이다.
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능력인가? 아니면 무엇인가의 환각?
놈은 여전히 수조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지도 않고 마치 사전을 뒤적거리듯 눈동자만이 경련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 무슨 속셈…
바삐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추고, 놈이 흡족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분히 비웃는 투의 말은 마치 표본을 집도하는 수집가처럼 아주 자그마한 열의만이 일렁였을 뿐이다.
“꽤 골계(?)스럽지 않은가.”
“끅…!”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억지로 붙들고 있던 힘이 탁 풀렸다.
막혀있던 숨통도 다시 트이면 기침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으로 깨닫고 있었을 때…
인기척이 났다.
뒤쪽이다. 원인 모를 오한이 등줄기를 슬그머니 어루만지고 안개처럼 사라져갔다.
돌아봐야 하나? 아니, 돌아본다면 그 사이 수조 안의 놈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지팡이를 겨눈 그대로 돌아보는 대신, 옆으로 몸을 던졌다.
무엇인가가 부딪혔다.
벽이었을지도 모르고, 표본이었을지도 모르고, 어떠한 집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그런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을 마음의 여유 따윈 없으니까.
무너지는 선반에서 떨어진 유리병이 잇따라 깨졌다.
안에 담겨있던 표본 중 몇몇은 목숨을 잇기 위해 바닥을 기었고, 나머지는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목숨을 그대로 놓았다. 그 또한,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몸을 옆으로 던진 것으로 시야는 일변했다.
등 뒤의 벽을 제외하고 이 기이한 실험실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를 점한 것은 좋았으나… 동공이 확 커진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악했다.
놈이 있었다.
이죽거릴 여유가 있다는 게 의외인 상대가.
“…캐스팅 한번 최악이네.”
애써 허세를 부려봤지만, 겨눈 지팡이 끝을 덜덜 떨게 하는 동요는 감출 수 없었다.
겨우 트였던 숨통을 다시 얼어붙게 만드는 악연이.
단정하게 빗어넘겼던 머리카락은 바닷물에 푹 젖어서 아무렇게나 늘어뜨렸고, 몸 여기저기에는 따개비가 들러붙었다. 퉁퉁 불어터진 손은 녹슨 검을 움켜쥐었다.
몸의 반은 바닷물에 절었고, 나머지 반은 화상 자국에 뜯어먹혔지만…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내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악연.
이 세계에 와서 나를 가장 증오했고, 내가 가장 증오했을 이.
로젤라이를, 카테르네를, 그리고 나를 죽이려 했었던.
발스턴… 그가 텅 빈 눈동자에 다만 한 가닥 살의를 품고 다리를 끌며 다가왔다.
루시탄의 호위기사였으며, 그를 왕위에 올리겠다는 오직 자신만의 그 대의를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을 부수려 했던 자.
그리고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증오스러웠던 상대.
그럼에도 지팡이 끄트머리를 달달 떨게 만든 건 그 증오도, 솟구치는 분노가 아니다. 그가 내게 품고 있을 법한 살의도 아니다. 보다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이 어깨를 짓눌렀다.
무섭다.
“익…!”
바닥을 긁으며 다가오는 칼소리가 삐걱인다.
물에 푹 젖은 구둣발이 깨진 유리조각을 짓밟았다. 빠직, 하고 깨어지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반쯤 가누고, 주문을 입안에 뇌었다.
마력 화살이 허공을 가로질러 놈의 어깨 부분을 때렸다. 견제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놈의 머리가 아니라 해진 옷의 견장쯤을 때려맞힌 것은 견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떨리는 손끝이 조준을 그르친 탓이다.
화살이 때린 어깨가 크게 파여 썩은 피와 살점이 튀었다.
바닥에 허무하게 쏟아진 피는 시커멓게 죽었고, 늘어진 팔은 화상이 짓무른 그 위로 물에 푹 절어 불어있어, 역겨운 꼴이었다. 물을 먹은 팔의 무게를 끊어진 어깨가 견디지 못하고 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하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썩어 문드러진 바닷물 냄새에 질겁했다. 물자국을 남기면서 질질 끌리는 걸음에도.
“가까이… 오지, 맛…!”
조금도 진정되지 않는다.
등 뒤가 벽인데도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공포가 몸을 부추기고 있었다.
구둣발에 밟힌 것이 역겨운 표본인지, 깨진 유리 조각인지도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악몽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몰골의 발스턴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을 기울일 수 없었다.
“윽, 으…!”
도망갈 곳 따윈 없었다.
그에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던 그때와는 지금의 자신은 다르건만.
마녀로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여기에까지 왔고, 그는 아주 오래오래 바닷속에 처박혀있다가 이제야 바다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그저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발스턴이라는 존재는 자신에게 여전히 공포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죽임당할 뻔했던 상대. 이성이 버티고 있음에도 본능은 여전히 그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가고 있을 정도로.
놈을 다시 만나면 이성을 잃고 분노할 것으로 생각했을지언정, 지금처럼 그를 여전히 무서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떨림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지팡이 끝을 제대로 겨누고 머리를 쏠 수 있다면, 그 한 발의 화살로 저 발스턴을 제가 기어 올라왔던 심연으로 다시 처넣을 수 있으련만.
“역시…”
이를 악물고 한 발 더, 화살을 내쏘았다.
빛의 화살이 약 1m의 공간을 날아가 가까스로 노렸던 곳에 착탄했다. 얄궂게도 녀석의 왼쪽 눈가에 명중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둥글게 파먹었다.
후두둑… 눈구멍에서 뭉그러진 안구와 썩은 핏덩어리가 흘러내렸다.
끔찍한 광경에 속이 스멀거린다.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눈앞의 망자는 죽은 발스턴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수조 안의 괴물이 보여주고 있는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씨발… 알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놈의 팔이 움직였다.
썩어가는, 구더기가 슬은 손에 붙잡힌 검이 제 옆의 선반을 베어 갈랐다.
집기와 표본이 깨져나가고, 떨어지는 것을 봐버려, 모공이 좁아지는 듯한 긴장감에 이마에 땀이 스며들었다. 환각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다못해 어느 쪽인지라도 좀 확실했으면 좋겠는데…!”
만에 하나 환각이 아니라면… 저 검을 맞으면 에누리 없이 죽을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으면서 학… 막힌 숨을 토해냈다.
조금 전의 빗나간 칼질 탓에 오히려 조금 더 냉정을 되찾은 것 같다. 머릿속으로 재차 되뇌었다. 저건 자신이 알고 있는 그자가 아니라 그저 환각이다.
지팡이를 꽉 붙들었지만, 미세한 떨림까지 완전히 가라앉히진 못했다.
정신 차려, 로제이아.
다그친 뒤에야 겨우 환각 속의 발스턴에게서 눈을 떼어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에 시선을 줄 수 있었다. 냅다 그것을 손에 쥐었다.
“끅…!”
깨진 유리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면서 서늘한 통각이 시큰했다.
살갗이 베이고 손가락이 찢긴 사이에서 피가 번졌지만, 다소 멍했던 통각 탓에 안개가 낀 것 같았던 정신이 조금 개운해졌다.
아주 잠시 발스턴의 모습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또렷하게 바뀌었다.
그것만으로도 자해한 가치는 충분했다. 어느정도의 확신. 다만 그게 필요했다.
“씁, 더럽게… 아파. 기분도 더럽고.”
뚝, 뚝, 뚝…
피로 물든 유리 조각을 바닥에 내던졌다. 핏방울도 함께 튀었다.
최소한의 치유 주문도 익히기 어려운 흑마법사라는 직종은 평소에는 불편하긴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런 아픔이 반갑기까지 하다. 마조는 아니지만.
“…하아, 하아… 덤벼, 이 빌어처먹을 자식아.”
물론 발스턴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무섭고, 떨린다.
여전히 끔찍하도록 빌어처먹을 몰골인 채로 그 자리에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
썩어문드러졌고, 벌레가 기어다니고, 불에 그을린 데다, 바닷물에 푹 젖었으면서도.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 바닥을 기는 망자가 새삼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째서인지 웃음이 났다. 하나 남은 놈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내 하나 남은 눈도 그러려나.
내게도 놈은 증오의 대상이지만, 또한 놈에게 나는 가증스러운 계집에 불과할 테니까.
“어디 한번 해 보잔 말야…!”
뱃속에서 진득하게 들끓는 악다구니가 지금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예 여기서 결판을 낸다.
녀석과의 악연도, 악몽도, 두려움도. 전부 여기에서 끝을 내겠어.
입술을 꾹 물고 숨을 들이마셨다.
난 네게 장난감처럼 휘둘리던 레짐의 걸리버 창녀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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