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2 6 / 1년 만에 만난 너희들에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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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는 건 슬슬 사양하고 싶다.
부글부글 들끓는 짜증을 곱씹으면서 눈을 떴다.
“하아… 또냐고.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그리고 덧붙여 눈을 뜨고 났더니 모르는 장소로 옮겨져 있는 것도 이젠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질 지경이기도 하고.
마취약에 당한 탓이었는지 살짝 흐릿한 시야를 눈을 누르고 비벼서 또렷하게 되돌린 뒤 조금 멍하고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욱… 뭐야, 이 좆 같은….”
그리고 차라리 눈이 조금 흐린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역겨움에 생각이 치달았다.
신 쉬푸의 상품 쪽이 오히려 나았다고 할 정도다. 그것들은 차라리 대개… 죽어있기라도 했으니.
끼이익, 하고 유리병 안에서 벌레가 울었다.
누리끼리한 몸뚱이는 성인 남자의 주먹만 했고, 물결치듯 흐느적거리는 수많은 복족(?足)으로 유리병 벽에 들러붙은 채 질척거리는 점액질을 묻혀대고 있었다. 등에는 하얗게 뿌리를 내린… 곰팡이들이 기둥처럼 자라나서는 마치 고슴도치 같기도 했다.
다른 쪽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 숨을 삼켜야 했다.
갓난아기… 인가? 벌레를 갓난아기처럼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느다랗게 감긴 눈이 몇 개나 옆으로 이어져 겹눈을 이루었는데, 그것의 입이 여닫힐 때마다 묘하게 사람의 치아와 비슷한 치열이 드러났다가 감춰지곤 했다. 아기의 것과 똑 닮은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대고 있는 가운데… 그런 손들이 긴 몸뚱아리로 이어져 느릿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비대하게 살이 오른 등판은 마찬가지로 정체 모를 곰팡이의 묘판으로 전락해 있었다. 뻐끔거리며 여닫히는 입이 무엇인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슬슬 이런 것에는 어느 만치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입을 막지 않으면 말이 아니라 구토를 쏟아낼 것 같아 손으로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에게 좆같은 기분을 선사할 수 있을지를 골몰한 듯한 결과물이 즐비해 있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역겹다…
그런 표현으로는 부족한 생물들이 하나같이 썩어가는 몸뚱이에서 죽어가는 목숨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실험장이었다. 광기의 신이 빚어낸 피조물이라고 할 만했다.
“누구냐고, 이딴 미친 짓을 벌이는 새끼가.”
부그르르…
마치 대답처럼 거품 이는 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커다란 수조가 하나 있었다. 오래 묵은 피처럼 검붉은 액체에서 비릿한 쇳내가 흘러나왔다. 또 얼마나 징그러운 게 들어있나 생각했었다.
“욱….”
그 안에 잠겨있는 ‘것’은 이 기괴한 실험실의 다른 표본들에 비하면 외견만은 상당히 멀쩡한 편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의 감긴 눈을, 그 아래의 코와 입, 턱 아래로 이어지는 몸을 본 순간 시각적인 불쾌감이 아닌… 생리적이라고 해야 할 법한 혐오감을 느꼈다.
마치 정교하게 사람을 흉내낸, 그런데도 인간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조물과 맞닥뜨린 것처럼. 흔히 ‘불쾌한 골짜기’라고 말하곤 하는 그런 거부감이 훅 끼쳐 올라왔다.
마치 식물을 억지로 사람의 모습으로 뒤틀어놓은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주 가느다란 식물의 잔뿌리에 가까웠다.
피부처럼 보이는… 그러나 실상은 차라리 식물의 겉껍질에 가까운 표피 아래, 이 수조를 채우고 있는 붉은 액체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부그르르, 하고 조금 벌어진 코와 입에서 거품이 새어 나왔다.
그것… 차마 ‘그’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렇게 부르도록 하자.
그녀라고 칭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의 생김새를 사람과 비슷하다고 인정했을 때… 사타구니께에서 툭 튀어나온 그것이 어딜 어떻게 봐도 남근처럼 생겨먹었던 탓이다.
“…개지랄도 이 정도로 미쳤으면 그냥 얼척이 없을 정도네.”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있을까.
지나치게 자기 세계에 심취한 예술가가 빚어낸 전위적인 미술품 같은 그 앞에서 등에 오싹한 감촉이 섬세하게도 꿈틀거리더라.
아니, 이렇게 정신 빼고 있을 때가 아니지.
왜 자신을 여기에 데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내 등에도 저런 곰팡이를 박아놓고 화분으로 쓸지 누가 알아. 다행히 아직 감각이 좀 둔했지만 움직일만했다.
“자아, 정신 차리고….”
짝, 가볍게 양 뺨을 손으로 때리고 눈을 한번 꽉 감았다가 떴다. 조금 더 정신이 또렷해진 것 같다. 방의 가운데에 있는 수조 뒤편의 문에…
“…더 보지 않고 그냥 가려는가?”
으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면서 물러섰다. 반사적으로 겨눈 지팡이 끝이 후들거리면서 수조 안의… 식물? 인간? 어느 쪽인지 애매한 그것을 겨눈 채 희미하게 빛났다.
“내 작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친데.”
그것의 입가가 살짝 위쪽으로 말려올라갔다.
공격 주문을 품은 채 자신을 향해 흉흉하게 겨누어진 지팡이를 마치 어린아이가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것을 보는 마냥,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해 좋아.”
…슬슬 조금 자신감이 깎여나가려고 하는데.
상대하는 녀석들에게 하나같이 얕보이는 건 생각보다도 더 짜증 나는 일이다.
“그럼 어디 쓸데없는 짓인지 아닌지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지!”
어차피 사람에게 냅다 화살을 쏘고 정신을 잃은 틈에 이런 변태 같은 장소에 내던져놨겠다.
좋은 의도를 가진 녀석일 리가 없겠지.
으득, 하고 이를 물고는 유리 수조를 향해 냅다 마력 화살을 내쏘았다.
유리 수조에 얇게 금이 갔다.
“…휴우. 꽤 성질이 급하지 않은가.”
무척이나 짙은 권태감, 나른함을 담고 있는 노란 눈동자를 깜빡이면서 유리 수조에 새겨진 실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글거리는 거품이 살짝 열린 입술 사이에서 새었다. 한숨…을 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피가 아니라 수액이 흐르는 것이 맞을 듯한 앙상한 팔이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이 유리 벽면을 짚고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표면에 얇게 퍼진 균열이 지우개로 지우듯이 메워지는 것에 숨을 삼켜야 했다.
핏빛 액체 속에서 울려온 목소리는 자못 한탄조였다.
실험용 흰쥐의 반응을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무덤덤한 반응이었기에 더더욱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게 말하지 않았나? 쓸데없는 짓이라고.”
방금 그거… 마법이었나? 아니면 스킬?
어느 쪽이든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도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그냥 손을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보기 흉한 것을 지워버리듯 수조의 균열이 지워졌었다.
아주 조그마한 흠결도 용납할 수 없다는 양 꼼꼼히, 금이 갔던 흔적마저 전부 지워낸 뒤 손이 늘어졌다. 나무껍질 같은 손가락 끝이 귀찮은 듯이 잠시 꿈틀거렸다.
“여기 있는 것들이 전부… 네 ‘작품’이라고? 변태 새끼,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뭐 하는 놈이길래 이딴 토 나오는 것들을 작품이라고 말하는 거냐고.”
자기도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틀림없이 고함이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답해!”
대신 대답을 요구하는 목소리 끝이 조금 떨렸을 뿐이다.
애초에 서로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다른 에일리언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무의식적으로는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그치자, 그쪽에서도 결국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대화에 응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이번 소재는 참 소란스럽군. 별로 마음에 드는 소재도 아니니… 파기하도록 할까.”
결이 거친 나무토막을 앞에 둔 조각가처럼 한탄했을 뿐이다.
오싹, 하고 등줄기에서, 뒷목으로… 소름이 끼쳤다. 그대로 몸을 옆으로 비껴뜨려 넘어진 것은 거의 본능의 발로에 가까웠다.
우지직… 드득, 콱!
서 있던 자리에 가시가 험악하게 돋아난 넝쿨이 자라나, 위쪽으로 뻗쳐올라간 상황은 나에게는 특별히 낯설지는 않았다. 내가 자주 해먹던 짓이기도 하니까.
나도 일단은 마법사이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방금 그것은… 마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장미 여왕의 포옹’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잖아.
“학, 학, 학….”
다만 규모의 격이 달랐을 뿐.
내가 주로 상대를 포박하기 위해 이 주문을 사용했다면…
저것은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꿰뚫어 짓이겨버릴 법한 파괴력을, 아주 간단하게 자아냈다.
성가시게 왱왱대는 파리를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듯이.
“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점만은 높게 평가해줘야겠어.”
“변태 새끼….”
소재, 파기…
겉모습이 인간인지 식물인지 모호해서가 아니다. 정신 쪽이 철저하게 썩어있다.
“…그런가. 내 수족들이 한 일이라면… 한번 가볍게 시험해볼 만한 가치는 있겠지.”
수조 안에서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던 그것이 눈동자를 느릿하게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늑대원숭이가 전했던 센의 전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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