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2 6 / 1년 만에 만난 너희들에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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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루 늪지에서였나. 진흙탕에서 뛰는 두꺼비를 본 적이 있다.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허리를 그에 반비례해서 짧고, 번들거리는 눈은 툭 튀어나왔다.
뭉툭한 팔다리는 짧고, 피부는 우둘투둘하면서도 번들거려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하는 데다 탐욕스레 쩍 벌어진 입은 넙데데하고, 쉴새없이 코를 벌름거렸지.
세상에. 하필 바로 맞은편에 앉은 셴 타이펑이 꼭 그런 인간이었다.
두꺼비가 호랑이 가죽을 둘러쓰고 있는 듯한 기묘한 인상에, 그리고 그 기묘한 인생 속 작은 눈이 하필이면 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왜 이런 사람과 만나려고 했는지를 후회했을 정도다.
추하다거나 비대하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음흉하고 진득한 시선이… 노골적으로 날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소름이 돋았다.
“이봐요, 셴 방주. 벌써 시간을 충분히 낭비했는데, 슬슬 시작하시죠?”
노엘이 쏘아붙이고 나서도, 그러잖아도 좁쌀만큼 작은 눈을 한층 더 가늘게 뜨고 나서 셴 타이펑은 등받이가 삐걱이는 비명을 지르도록 등을 기댔다.
“뭐, 그럽시다. 쉬푸, 동항로 회사였지? 안건이 뭐였더라?”
성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태도는 본래부터가 그런 인간인지, 아니면 상대를 떠보기 위한 나름의 책략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인간일수록 속에 능구렁이를 품고있다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이쪽은 그냥 머저리로 보인다.
“그새 잊었는가? 우리 상회에서 위탁하여 취급하고 있는 ‘미미르’ 물약에 대해서 협의할 게 있다고 했지.”
“아하, 그랬지. 맞아, 기억이 나네. 요즘 참…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단 말야.”
미미르… 이 물약이 그런 이름이었나.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주로 섬기는 마법의 신은 ‘말로키르’지만, 그와는 다른 계통의 마법의 시조라는 설명을 헤카이트 당주에게 들은 적이 있다.
서로 차이가 있다면 말로키르가 교활한 책략가로서의 마법사라면, 미미르는 순수한 지식 탐구자의 면모에 가깝다고 그랬었지. 미미르가 관리하는 샘의 물을 마시면 지혜의 눈을 뜨게 한다나.
물론 셴 타이펑의 작명은 아닐 것이다… 선입견을 배제하더라도 누가 봐도 문화권부터가 다르게 생겼잖아. 인종도.
거기에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점은… 셴 타이펑은 그저 거드름을 피우고 있을 뿐이고 눈이 기분 나쁜 뚱보인 데 비해 기분 나쁘게 생긴 건 매한가지인 신 쉬푸가 오히려 조직의 운영을 맡은 듯한 인상이었다는 것. 최소한 둘은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셴 타이펑은 기침인지 트림인지 애매모호한 소리를 꺼억 내고는 입을 연 김에 말을 한다는 투로 성대가 지방에 눌린 듯한 목소리를 냈다.
“일일이 실어오고 내리고… 또 번거롭게 재료 실어가고. 그러지 말고 미미르, 아예 여기서 만드는 게 어떠슈? 그편이 서로 덜 귀찮을 것 같은데?”
“설비라면 이쪽에서 준비하겠네. 값도 넉넉히 치르지.”
셴 타이펑과 신 쉬푸, 말 그대로 뚱뚱보와 말라깽이의 제안에 노엘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바꿔 꼬고는, 팔짱을 끼면소 베일로 둘러싸인 입술에서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났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여기서 만들기 시작하면 은근슬쩍 제조법을 알아낸 다음 사업에서 우릴 내치려는 걸 모를 줄 아시나.”
“자네는 사업 동지에 대해 영 신용이 부족하군.”
“언제 신용을 제대로 지킨 적이나 있어야죠.”
이쯤에서 한번 내가 찔러보도록 할까.
노엘이 했던 말 중에서는, 양자 모두를 당혹하게 만들 만한 내용도 있었다.
“동항로 회사에서는 새 거래 상대를 물색하고 있던 모양인데요?”
홱, 노엘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뼈가 걱정될 정도라서 조금 쾌재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당황했나?
“다른 거래 상대라고? 이 베어링턴에서?”
말라깽이 신 쉬푸는 비웃었지만, 뚱뚱보 셴 타이펑은 비웃지 못했다.
척 봐도 붉으락푸르락 얼굴색이 바뀌는 게 어지간히 이 말이 비위를 거슬렀던 모양이다.
“저 말이 사실이슈?”
“…아, 네 뭐.”
노엘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시인했다. 아마 부정할지, 시인할지를 잠시 저울질하느라 침묵했겠지. 깨소금 맛이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지만, 잠시 이쪽을 노려본 것이 어지간히 당황하긴 한 모양이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이쪽은 물건이 풀려야 장사가 되는데, 셴 타이펑 방주는 미미르를 손에 꽉 움켜쥐고 풀지를 않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더 많은 물량만 넘기라고만 하고. 그 많은 미미르를 쌓아둬서 대체 뭘 하려는지 궁금할 정도예요.”
기왕 말하기 시작했으니 노엘은 아예 쌓아둔 말을 전부 토해낼 심산인가보다.
당황하면 말이 많아지는 건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가. 한 방 먹여준 기분이다.
“우린 물건만 넘기면 되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고요? 계약 내용을 굳이 상기시켜드릴 것도 없이 당신네 일 처리는 몹시 유감스러워요. 물건은 안 돌리지, 재료는 제때 안 넘기고 어깃장 놓고 있지, 할 말 있어요?”
“우리 방(?)의 방침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이야기군?”
“그러고도 베어링턴에서 장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앙? 아니, 여기에서 뒈져서 나가게 해 줄까?”
셴 타이펑의 뱃살 들썩거리는 소리에 등 뒤에 서 있던 호위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노엘의 등 뒤에 서 있던 그에 질세라 흑기사가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진정들 하게. 물러나라.”
신 쉬푸가 손을 들고 흔들자 호위들은 물러섰고, 흉흉했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대충 이 조직의 역학관계가 보이는 듯도 한데… 침묵을 지키던 노기사가 불쾌한 듯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무익한 대화를 듣게 할 셈인가?”
“물론 저쪽이 유익한 대화를 할 준비가 되기 전까지죠. 그러는 댁네도 대응이 미적지근하잖아요? 양쪽에서 눈치 보느라.”
칼 프레드릭 바츠… 라는 이름이었지.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아무리 짜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주측의 대리인으로 이 회담에 참여한 후, 그는 동항로 회사와 라오후 간의 신경전이 무척이나 지긋지긋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베르겔미르 해가 말라붙기를 기다리는 게 더 빠르겠지. 나는 너희… 불량배 무리와 장사치의 알력다툼을 마냥 구경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따라서 이곳 영주의 뜻만 전달하겠다.”
어흠, 하고 노기사는 숨을 고른 뒤 양피지를 펼쳤다. 흘려 쓴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진 아래, 영주 인장이 보란 듯이 밑부분에 박혀있었다. 공문서를 본 노엘의 얼굴이 그다지 달가운 기색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영주가 베어링턴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게 됐냐고요. 어차피 여기는 관리만 보내서 감독하는 도시였는데.”
“언사가 심히 불경하군. 동항로 회사가 언제부터 나라가 하는 일에 뒷말을 당당히 붙여도 되는 위치가 됐나?”
“딱딱하게 나오시네.”
동항로 회사는 분명 큰 무역회사였고, 알트슈타인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고압적으로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역시, 저 여자의 뒤에는 더욱 큰 배후가 있다… 본인의 입으로도 말했듯, 니이냐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적어도 이 나라 왕위의 계승에마저 관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배후.
“그럼 들어나 보죠. 영주 나리의 명령이라는 거.”
“이번 줄리아 다리에서의 소동은 조사 결과 라오후 측의 도발이었던 점이 명확했던바. 이에 따라 라오후의 책임자와 소동의 주모자는 즉시 영주성으로 출두하라. 그리고 길드 측이 요구하는 배상금을 지불하라.”
라오후의 책임자, 셴 타이펑의 붉으락 푸르락거리던 얼굴이 대번에 흙빛이 되었다.
그가 아무리 천지구분을 못하는 머저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영주의 권위에 직접 맞설 수는 없는 일개 불량배 우두머리에 불과했으니까.
잠깐, 소동의 주모자라고 하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던 듯, 노엘의 뒤에 서 있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흑기사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길드의 전사장 돌프를 죽인 건 저 흑기사였지 않았나?
명령서 한 장으로 베어링턴 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세 세력 중 둘에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을 가한다… 누구인지 몰라도 꽤 수완가임에는 분명하다.
“불복할 텐가?”
노기사는 낮게 내리누른 목소리에 위압을 실었고, 흙빛이 된 셴 타이펑의 얼굴은 이제는 아예 사색이 되어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처럼 다급히 신 쉬푸를 바라보는 셴 타이펑에 비해서, 깡마른 노인은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휴회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 각자… 의사를 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네만.”
“허튼수작은 소용없다고 말해두지. 끌고 갈 수 없다면 베어서라도 데려갈 테니.”
“10분간일세. 10분 후에 다시 이 자리에서 회담을 계속하지.”
으름장을 놓은 뒤, 노기사… 칼 프레드릭 칼츠는 일어섰다. 그 옆에 앉아 죽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작은 몸집의 교회 기사를 대동하고는 그는 자리를 떴고, 노엘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흑기사에게 무엇인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텁텁한 이 자리의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 몸을 일으켰다. 잠시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졌다.
슬슬 가슴팍의 상처가 아려오는 것이, 지독한 맛을 참아야 할 시간이 되기도 했거니와.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혼자 가는 건 위험하오. 동행하지.”
“됐어요. 고작 10분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 당신도 좀 쉬고 있어요.”
따라나서려는 늑대원숭이를 만류하고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텁텁한 안쪽 공기와는 다르게 시원하게 식은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리를 헝클고 지나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황을 풀어보려고 뛰면 뛸수록 오히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꼬이는 것을 번번이 눈앞에서 지켜볼 뿐이다.
조금쯤은 나도 편하게 다니고 할 수는 없나? 투덜대면서 뜰에 핀 꽃에 시선을 옮겼다. 눈에 띄게 선명한 붉은색을 띤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래도 이 을씨년스러운 가게에 제법 멀쩡하게 생긴 꽃이…
“어? 잠깐. 이거 설마…?”
하늘거리며 펼쳐진 붉은 꽃잎. 안쪽의 초록색 씨방. 정신이 확 들었다.
젠장, 조금 알 것 같다. 라오후 측에서 왜 미미르를 계속 쌓아만 두고 있었는지! 이건 이제 길드와 라오후 간의 알력다툼 정도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 칼 프레드릭이라는 사람에게부터 말해둬야…
“윽…!”
몸을 다급히 돌리려는 찰나 어깨에 통증이 내달렸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로브에 피가 물들어가고 있었다. 겨우겨우, 제 몸에 화살이 박혔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통보다도 먼저 참을 수 없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달달 떨리는 손끝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을 지탱하고 있던 지팡이가 미끄러져 땅바닥을 굴렀다.
“이번엔 또 뭐냐고….”
목소리에마저 힘이 빠져나간다.
지면에 부딪힌 아픔보다 아무렇게나 옆으로 돌아간 시야 탓에 제 몸이 쓰러졌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씨발, 독에 이어서 이번엔 마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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