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83화 (83/157)

〈 83화 〉 2 ­ 6 / 1년 만에 만난 너희들에게(2)

* * *

(2)

늑대원숭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나를 바보 취급했지만, 그 외에 다른 방도를 떠올리는 데에는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방침은 세워졌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를 가진 사람과 직접 담판을 짓는다. 다음 일은 되는 대로 해치워야 할 테고.

문제는, 셴 타이펑을 어떻게 만나느냐인데.

늑대원숭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뒷골목에 가게를 차린 장물아비 중에 ‘신 쉬푸’라는 노인이 있소. 그 노인이 셴 타이펑을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곤 하지.”

“그렇게 대놓고 바보 취급할 것 없잖아요. 댁도 돈을 받으려면 그 인간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었어요?”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이오.”

“이쪽도 지극히 개인적이에요.”

신 쉬푸라…. 셴 타이펑도 그렇고, 이 거리에는 유독 중국계 이름이 흔했다.

음습하고 음산하고 음침한 것이 마치 오래된 홍콩 영화에서나 나오는 차이나타운의 뒷거리 같은 곳이다. 자칫하면 삼켜져 버릴 듯 깊고 눅눅한 어둠이 만연한.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군.”

“난 대개 언제나 진심이라고요. 어쨌든 그 사람을 통해야만 셴 타이펑을 만날 수 있다면 여기서 미적거릴 이유가 없어요. 서두르자고요.”

더는 술이나 마시고 안주나 까먹으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마저도 아까워 바삐 일어섰다. 늑대원숭이는 여전히 만류하려는 눈치였지만, 결국 보란 듯이 한숨을 쉬고 말았다.

늑대원숭이가 내기값으로 줬던 50탈랭은 술값으로 잘 썼다.

주점을 나와 구불구불하게, 무계획적으로 조성된 뒷길을 늑대원숭이의 앞서가는 등을 따라갔다. 여기저기에서, 수상쩍게 여기는 시선이 느껴지는 건 그저 모른 척하면서.

“여기요.”

늑대원숭이는 뒷골목의 한 구획을 차지한 제법 그럴듯한 구조의 점포 앞에 멈춰섰다.

이주(??), 나무간판에 쓰인 글씨는 그렇게 읽혔다. 아무래도 가게 이름인 모양이지.

차양을 젖히고 들어갔다.

오래 묵은 나무 냄새와 정체 모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둑어둑한 가게 안에는 코르크 마개로 막아놓은 병들이 들어찬 선반들이 즐비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말라 비틀어진 수상쩍은 동식물이 보관된 것이, 척 봐도 합법적인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걸음을 옮기며 지나가는 병 하나에 반쯤 부화한 새끼 새가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작고 얇은 눈꺼풀을 감고 있는 새는 미동도 없었지만 숨을 쉬는 듯 거품을 부르르 뱉는 것이 살아있는 것 같아, 오싹한 기분이 스쳐 지나갔다.

버섯이 자라난 도마뱀, 등껍질의 갈라진 부분마다 눈동자가 따개비처럼 붙은 거북이, 아주 자그마한… 생각하기도 싫지만, 태아 같은 것이 봉우리에 담긴 꽃.

표현할 말은 많지만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진짜 개 악취미네.”

“컷컷컷. 남의 가게에 와서 품평을 심하게 주는 처자가 아닌가.”

…수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그러지고, 비틀리고, 뒤틀리고, 썩어지고, 문드러지고, 녹아내리고, 질척거리고,

비뚤어지고, 틀어지고, 뭉개지고, 어긋나고, 곪아터지고, 곯아버리고, 으깨져버린,

흉측스러운 벌레를 한데 모아 쥐어짜면 이런 소리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목소리였다.

뒤돌아서서 얼굴을 바라본 순간, 그 목소리에 딱 어울리는 노인이 그 자리에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늑대원숭이의 무릎에도 미치지 않는 작은 몸뚱이는 그나마 허리가 굽었다. 뭉그러진 문어 같은 주름살이 생기라고는 미진도 없는 쥐색 피부에 온통 자글자글했다. 깡마른 몸에는 기분 나쁜 진녹색 포(?)를 입었다.

알이 검은 둥그런 안경으로 눈을 가렸지만, 험악하다거나 사악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딘지 이질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인상을 중화하는 데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 부자유하다고 어필이라도 하는 양 지팡이로 바닥을 툭, 툭 더듬어대는 것이 한층 작위적이었다.

흉터 하나 없음에도 마치 화상 자국에 나타나는 켈로이드가 뭉쳐진 듯한 인상을 주는 노인은, 얇은 입술 사이에서 기묘하리만치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웃은 것처럼 보였다.

“신 쉬푸일세. 컷컷…. 제 건너 주점에서 날 찾는다는 이야기를 속닥이던 모의가 여기까지 들리더군.”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요.”

가능하면 이 노인과 오래 대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의심도 아니고, 의혹도 아니고, 다만 강한 확신만이 뇌리에 깊숙하게 틀어박혔다.

“그다지 예의가 반듯한 처자는 아니로군. 허나 좋네. 패기란 젊은이들의 특권이지. 셴 타이펑과 만나고 싶다고 했나? 만나서 뭘 할 텐가?”

“그건 가능하면 본인과 직접 교섭하고 싶은데요.”

“하지만 교섭에 그리 능하지는 않군. 거래를 주도할 수 없는 위치라면 조금쯤은 신중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인데. 컷컷.”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신 쉬푸는 지팡이를 톡톡 두들겨 의자를 찾은 뒤 그 의자에 앉았다. …눈 둘 곳을 곤란하게 하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여자가 다가와 그 앞에 차…라기보다는 녹즙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내놓았다.

신 쉬푸는 살결을 지나치게 드러낸 여자의 아랫배에 깡마른 손을 얹고는 후우우… 숨을 내뱉은 뒤, 기분 탓인지 한층 수척해진 여자를 밀어내고는 그 정체불명의… 차인지 뭔지 모를 것을 한 모금 마셨다.

“물러가거라.”

“…네, 에… 주인, 님….”

귀찮다는 듯이 던진 한마디에 여자가 비틀거리며 물러간 뒤 찻잔을 내려놓고는, 신 쉬푸는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이쪽이 있을 법한 곳에 어설픈 시선을 던졌다.

“처음부터 다시. 거래를 하지. 자네는 내게 무엇을 팔아서 셴 타이펑과의 자리를 받을 텐가?”

“이쪽이 내놓을 건 없어요. 그럴 만한 돈도 없고. 다만….”

신 쉬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 대단히 미묘한 것이어서, 이쪽이 허세를 부리려는 것을 진즉에 알아챈 것처럼 보였다. 이제 어쩐다.

이렇게 되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조금 흘리는 것밖에는 수단이 없다.

“노엘이라는 이름의 수인을 아시죠?”

“호옴. 그야 물론 알고 있네만. 그 묘족(?) 계집이 무엇을 어찌했기에?”

…아무 근거도 없지만, 이 늙은이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다.

다만 들어나 보자는 투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제안을 하든… 이 노인은 이미 그것을 이미 읽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마치 고양이가 쥐의 숨통을 끊기 전 갖고 놀 듯이, 나와의 대화를 그저 한때의 무료함을 달랠 유흥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노라고, 그런 태도가 풀풀 풍겨져 왔다.

기분이, 더럽다.

놀아나는 건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다.

“그 여자는 당신들 말고 다른 거래 상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미끼라는 건 이미 진즉에 들켰다.

물어줄 것인가, 아니면 비웃고 지나갈 것인가.

잠시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던 신 쉬푸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래로 끌어내린 입꼬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럼 그 묘족 계집이 바꾼다는 거래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준비가 되어있겠군?”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노엘이 새로 거래한다는 자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인 동시에,

내가 준비한 거짓말의 신빙성을 보탤 다른 거짓말이 준비되어있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즉, 이 노인은 조금도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조금 진땀이 났다. 여기에서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해야만 한다.

“그거야말로 셴 타이펑 본인하고 밖에는 얘기를 할 수 없는 일인데요.”

이런 요괴 노인네를 상대하면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회의감이 훅 닥쳐왔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미 물러서는 것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그 어떤 장소에서도… 심지어 추락하는 비행선에서조차 태연자약했던 늑대원숭이는 아까부터 말 한마디 보태지 않고, 허리에 찬 칼집을 굳게 움켜쥐고 있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꽤… 부족한 이야기로세.”

신 쉬푸가 한탄하듯이 읊조렸다. 숨은 달팽이처럼 느릿했고, 말은 뱀처럼 스멀거렸다.

“허나 허언을 들고 와서라도 셴 타이펑을 만나고자 함이 처자의 뜻이라면 내 한번 변덕을 부릴 수도 있지.”

변덕? 그럴 리가.

철저하게 제 손익을 저울질해서 내린 결론일 것이다.

아마 손익과 흥미, 양쪽을 세밀하게 저울질했겠지. 이 노인은 분명히 지금의 사태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것을 고발할 재료가 부족했다.

지금은 흘러가는 상황에 떠밀릴 수밖에 없다.

한번 뒤집어엎을 기회를 어떻게든 노리자면, 엎드린 채로 물살에 휩쓸릴 수밖에.

생각보다 그 휩쓸리는 기분은 더러웠지만.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겠군. 내일 아침 찾아오게. 자리를 주선해보지. 컷컷.”

그렇게 진흙탕에 한 발자국 더 발을 들였다.

빠져나올 기약이 없는 늪일지, 아니면 단단한 바닥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여신만이 알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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