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2 5 / 늙은 늑대와 젊은 대장장이에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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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날이 저물었다.
하루 동안의 조사는 이렇다 할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로 결국 돌아온 곳은 센의 대장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쇠를 두드리고 있던 센은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제 할 일로 돌아갔을 따름이다. 뭐, 그편이 나로서도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그래서였을지는 몰라도, 센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의외라면 의외였다.
“오늘 온종일 꽤나 시끄럽던데. 아가씨 짓인가?”
“내 짓이냐니 무슨… 아뇨, 나도 그냥 말려들었을 뿐인 피해자라고요.”
간략히 사정을 설명했다.
길드의 고양이 귀 접수원, 노엘이 처음부터 점쟁이와 내 대화를 엿듣는 걸 들키는 것부터가 수상했다는 것부터 길드에서 칼침을 맞았던 일, 그리고 오늘은 줄리아 다리에서 시작된 대치에서 전사장 돌프의 죽음으로 촉발된 길드와 라오후 간의 소요.
거기에 얽혀있는 듯한 동항로 회사와 루시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 개입된 듯한 비밀스러운 패거리.
…센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오히려 이런 상대이기에 쓸데없는 말까지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두들기고 있는 검의 날이 휘지는 않았는지 눈앞에 들어 살펴보면서 흐응, 하고 긍정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저기요, 듣고는 있는 거예요?”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라서 흘려듣고 있었는데.”
“온종일 시끄러운 이유가 궁금한 거 아니었냐고요.”
그렇게 말하면 입 아프게 말한 난 뭐가 되고. 조금 투덜댔고 센은 무심한 태도를 견지한 채 검을 벼리는 마지막 작업에 착수했다.
“결국,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어요. 헛고생만 했지.”
“아가씨 말 그대로라면 알아낸 게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네?”
센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드러낸 상체에는 단련한 흔적은 없는 근육이 단단히 붙어있었으되, 화상 자국과 칼자국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난 세상사에 별로 연을 쌓아놓는 편은 아니지만, 나한테도 오늘 소식이 들어오더군. 못 보던 녀석이 하나 나타났다면서.”
“네? 아… 그쪽 얘기에요? 시커먼 갑옷을 입은 사람이었어요. 돌프라는 사람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는데.”
너무 빨라서 보지도 못한다는 게 그런 건가 싶었다.
“전사장 돌프… 죽은 놈만 불쌍하게 됐구먼. 언젠가 나한테 망치와 갑옷을 맡겼던 적이 있었는데 지독하게 수련을 한 흔적이 보이더군. 내 생각에 그 친구는 방심 같은 건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걸 정면에서 베어버린 놈이 애당초 격의 차이가 있었던 거라고.”
“그냥… 용병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쪽이 전력에서 열세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걸 뒤집으려고 영입했다든지.”
센이 턱을 짚고는 흐음, 하고 침음성을 내었다.
내 말에 별로 동조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용병은 업계 소문에는 민감하다고. 고용주를 고를 때는 신중하단 뜻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일을 계속 딸 수 없는 건 둘째치고 목숨이 오가는 일이니까. 라오후처럼 소문이 안 좋은 쪽과 계약을 맺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해. 이 경우엔 후자겠군.”
잠시 머리를 굴렸다.
늑대원숭이는 라오후 측에서 약속한 대금을 받지 못해 결국 그쪽에 등을 돌렸다고 했다.
그 검은 갑옷은 늑대원숭이가 이탈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영입되었을 텐데, 보수를 후하게 쳤을 가능성은 작았다. 애초에 그 정도의 보수를 지급할 여력이 있었다면 늑대원숭이를 계속 고용했겠지. 뭔가 다른 이유… 가 있다면 대체 그건 뭘까.
앗, 하고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선후가 바뀐 건 아닐까? 늑대원숭이를 계속 고용하지 못해서 팽한 것이 아니라… 그 검은 갑옷 쪽을 영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진 늑대원숭이를 버린 것이라고.
“아니… 아아,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지 얘기를 해 줘요.”
“그 노엘이라는 여자가 그쪽에 계약을 주선한 게 아닌가 하는 말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 검은 갑옷도 노엘과 같은…
노엘은 ‘일이 진척되질 않았다’라고 했다. 그 일이란 것은 결국 물약을 일단 이 도시에 풀어놓는 일일 것이다. 셴 타이펑이 독점할 심산이었든, 아니면 단순히 겁을 집어먹은 것이든… 지금까지는 라오후 측에서 이 물약을 사용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이 얽혀있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뭘 해야 하지, 뭐부터 해야 여기에서의 일이 전부 풀려서, 키에리를 구해줄 수 있지?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없나? 초조함이 가슴을 찔러댔다.
“어이.”
어지간히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센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모든 것을 전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그러려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넌 그냥 너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그러다 보면 일이 풀리기도 하는 법이지. 칼 벼리는 거랑 똑같아.”
“그렇게 말씀하시는 센 씨도 혼자 일하시는 건 똑같잖아요.”
“난 쓸만한 제자가 없으니 이러는 거고.”
그렇게 말하면 늑대원숭이는 뭐가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조금 머리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어른 말도 듣고 볼 일이지.
“자질구레한 일은 다 치우고. 아가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뭐지?”
“…키에리를 해독할 방법을 찾는 거예요.”
“그러려면 뭘 해야 하고?”
“그 방법을 아는 점쟁이를 베어링턴에서 빼내야죠.”
화로에 불길이 일렁였다.
불빛은 센의 얼굴을 비췄고, 그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나와 마주앉은 그대로였다.
“본래대로라면 길드도 라오후도 오늘 소동으로 정신이 없는 지금이 적기다… 라고 하고 싶은데.”
불길한 예감.
플래그 꽂지 말아 주실래요, 네?
“공교롭게도 오늘 소동으로 엉덩이가 무겁던 영주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된 모양이라. 관문을 봉쇄하고 오가는 이들을 하나하나 검문하기 시작했어. 지금 상황에서 그 점쟁이를 빼내기는 좀 힘들겠지. 독수리를 쫓는 결계를 성벽에 쳐 둬서 성 밖으로 독수리도 보낼 수 없고.”
일이 창자처럼 꼬이면서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늑대원숭이라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는 라오후의 동향을 살펴보겠다고 헤어졌다.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하는 수 없네요… 한번 키에리의 용태도 볼 겸해서 성 밖에 직접 나갔다 올 수밖에.”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다.
키에리의 상태도 궁금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성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도 싶다. 독수리도 보낼 수 없다면 차라리 잘 됐지. 직접 나가서…
“아니.”
센이 단박에 내 말을 잘랐다.
“아가씨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가씨 자신도 환자라는 것을 슬슬 깨달으라고. 오늘 하루 종일 헛걸음했으면 그걸로 됐어. 환자는 아무 생각 말고 거기에서 잠이나 자면서 몸을 쉬이는 게 도리야.”
“네? 전 아직 움직일만 한데요.”
“약으로 통증을 덜어놨을 뿐이야. 좀 더 정양해야 한다고. 소식이라면 내가 전해주지.”
의외의 제안이었다.
그런 일은 엄청나게 귀찮아할 것 같은 사람이 자진해서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보니. 그러고보면 센 씨, 의외로 사람 돌보는 걸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자 들이고 싶다고도 그랬고.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지.
모포를 덮고 누우면서 끄응, 하고 숨을 내쉬었다. 바쁘게 뛰어다니다보니 몰랐을 뿐 꽤나… 상처가 욱신거리고 있었다. 약효가 떨어질 때가 걱정되지만, 자기 전에 그 지독한 맛과 냄새를 가진 약을 또 먹고 싶지도 않았다…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고.
그러니 일단 눈을 꽉 붙이고, 억지로라도 잠을 잘 수밖에.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몸만 멀쩡하면 직접 나가볼 텐데….”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이쪽도 마침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 거니까. 일단 푹 쉬어두도록 해. 내일도 보나마나, 그러지 말라고 해도 바쁘게 움직이겠지?”
“…아마도요.”
내일은 내일 나름의 진척이 뭔가 있어야 할 텐데.
한숨을 한번 얕게 내쉬고 눈을 감았다. 천천히 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일단 잡생각을 벗어두기로 했다.
우루 늪지에서 있었던 일, 왕도에서 있었던 일, 여기 베어링턴에서 있었던 일… 전부 오늘 밤만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조금쯤은 지쳤다고. 아무리 오지랖 넓은 나라고 해도.
“어서 오쇼.”
잠결에 희미하게 누군가가 찾아온 소리가 들렸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고 몸은 더더욱 무거워져서 누군지 알아볼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거의 7할 정도 잠에 의식을 빼앗긴 참이라 더더욱.
“상태를 보러 오셨나?”
“음. 얼마나 진척되었소?”
“하루 이틀이면 끝나겠군. 뭐, 너무 오래 기다리진 않게 할 테니까 그 정도만 기다리쇼.”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찾아온 이는 늙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힘있고 단단한, 잘 벼린 무기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 목소리에 은은하게 배어있는 기백까지도. 저런 목소리, 어디서 들었더라.
“벼린 내가 할 말은 아니오만 제자가 쓸 검을 주문한 것치고는 제법 관심을 기울이는군?”
“그저 제자가 아니기에. 누구요?”
“잠시 내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객.”
잠든 나를 눈치챈 것인지 흠, 하고 한번 숨을 들이마시었다가, 이쪽에의 관심이 조금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이 세계의 검사들 특유의, 상대를 바라볼 때 무의식적으로 싣는 위압감이 옅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돈이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 가장 훌륭한 검을 만들어주시오. 당신의 솜씨는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소.”
“돈을 내면 돈을 낸 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물건을 드릴 테니 너무 염려 마시라고. 마무리 작업이 남았으니 그것만 끝내면 직접 가져다 드리리다.”
“기다리고 있겠소. 감사하오.”
…대체 어디서 들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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