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2 5 / 늙은 늑대와 젊은 대장장이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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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제 들었는지 모를 잠이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노크하듯이 눈꺼풀을 두드리는 햇살과 귀에 울려오는 쇠 두들기는 소리가 동시에,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듯한 아침이었다.
아, 한 가지 더.
하룻밤 사이에 아물었을 리 없는 칼 맞은 상처가 무겁게 욱신거리면서 되살아났다. 모포 아래 웅크려 잠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을 정도로.
보아하니 센은 밤새도록 칼을 두들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매캐한 탄내에는 오래 묵은 냄새와 막 타기 시작한 나무 냄새가 어지러이 뒤섞인 채였다. 몸을 반쯤 일으킨 뒤에서 가슴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집요하게 찔러와서, 앙다문 이 사이로 한 번 더 길게 앓는 소리를 내보냈다.
“일어났군.”
센 쪽을 향해 돌려놓았던 고개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등을 돌리고 정좌한 남자가 그 등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군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귀공의 벗에게 약을 전했소. 믿지 않는 눈치였소만, 그 뒤의 일까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 대신 전하는 말을 받아왔소.”
…그러고 보면 어젯밤에는 아파 죽을 것 같아 경황이 없어서 그런 당연한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특히 잭 단장의 관점에서라면, 늑대원숭이는 흠집만 나도 몇만 탈랭이 우습게 나가는 비행선을 바다에 곤두박질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고.
하지만 전언을 보내왔다는 것은 뭐, 나름대로 일이 크게 번지지 않고 온건하게 풀렸다는 의미… 려나? 부디 그러길 바란다.
“뭐라고 했는데요?”
“다녀오면 한 대 때릴 거라고 그러더이다.”
“…누가?”
“방패를 든 자였소.”
카르티네.
소거법으로 생각해봐도 카르티 말고 그렇게 말할 사람이 없긴 했다. 잭 단장이나 토마스 꼬마 도령이나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여유 따윈 없을 테니까. 독에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키에리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고.
“…뭐, 한 대쯤 맞아줄 각오는 해야지.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고요.”
“좀 더 정양하지 않아도 되겠소?”
늑대원숭이의 눈이 내 가슴께를 향했다.
…응큼한 의미가 아니라, 바로 어젯밤에 칼 맞은 여자가 가만히 쉬지 못하고 움직이려고 하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견딜 만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숨 한번 쉴 때마다, 특히 왼팔을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게 만드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머릿속을 시큰하게 만들어서 마치 열병에 걸린 것 같았다. 어제는 피가 빠져나갈 때마다 점점 차가워지던 상처가 지금은 주위를 지지는 듯이 뜨거워서 땀이 날 정도로.
물론 늑대원숭이가 이런 어설픈 거짓말에 속아줄 리는 없건만.
늑대원숭이가 알아챘다면, 저 대장장이 센이 알아채지 못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
“하릅강아지 주제에 무리하지 마라. 젊은 녀석들이 왜 그렇게 목숨을 재촉하는지.”
“잔소리는 어젯밤만으로 충분한데요.”
쯧, 하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 차는 소리를 내고는 센이 잠시 일손을 놓고 일어섰다. 젊은 남자의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허리 세우기를 잠시 버거워하던 그가 툴툴거리면서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한쪽의 찬장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휙, 던졌다.
“정 못 참겠으면 그거 하나씩 먹어둬. 먹고 나서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다시 먹으면 안 되는 거니까 알아두고.”
…주머니를 받아서 끌러보기 전 늑대원숭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드물게도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와 나를 번갈아 바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길래. 눈으로 묻자, 그의 목소리에도 질린 기색이 번져있었다.
“긴말하지 않으리다. 그건 부디 먹을 때만 푸시오.”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졌지만 동시에 더더욱 지금 이걸 풀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함께 교차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일단 감사합니다, 하고 받기로 했다. 독한 진통제겠거니, 하고 생각하면서.
아무튼, 그렇게 센의 대장간을 나섰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머리가 웅웅대면서 울려대는 게 미칠 것 같다. 숨도 크게 못 쉴 정도였다. 흑마법사가 된 것까지 후회되는 순간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오?”
“일단… 끅. 조금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요.”
모험가 길드에 가 볼 요량이었다.
물론 이 얼굴 그대로 갔다간 이번엔 등 뒤에서 칼 맞고 저세상에 가기 십상이겠지. 덧붙여 그 수상한 점쟁이에게 다시 한번 얼굴을 들이밀 베짱도 없었다. 또 칼침 맞는 건 정말로 사양이라고.
“…그럼 내가 할 일은?”
“내가 길드에 들어가 있는 동안 주변을 좀 감시해줘요. 내 생각이 맞으면… 아마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사람이 있을 거에요.”
조금 머릿속을 가라앉히고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정리해본 결과… 한 명, 수상한 사람이 있었다. 다짜고짜 칼을 맞았던 것에 너무 놀라서 그 순간에 생각하지 못한 게 이상했을 정도다.
“그럼 먼저 움직여도 되겠소? 같이 움직이면 눈에 띌 터이니.”
“그렇겠네요.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이쪽은 알아서 할 테니까.”
늑대원숭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다른 동작도 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닌자…인가? 주위를 둘러봐도 늑대원숭이의 모습은커녕 나뭇잎 하나,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귀신, 아니 늑대에게 홀린 것 같다.
아무튼, 이제 보는 눈도 없겠다, 질색하던 사람도 없겠다.
“아, 죽겠네 진짜….”
참을성은 가끔은 덕목이라고 할 수 없지.
센에게서 받은 주머니를 끌렀다. 짙은 밤색의 포도알 정도 크기의 둥글둥글한 모양의 환약이 들어있었는데, 풀자마자 왜 늑대원숭이가 질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욱…!”
…이게 대체 뭔 냄새냐고. 우루 늪지에서 질리게 맡았던 썩은 진흙과 두꺼비 젖은 껍데기, 달팽이 진액 같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를 싸매쥐고 그것을 입안에 넣는데에는… 상당한 각오와 비위가 필요했다.
“끄악, 씨발 써…!”
하다못해 맛이라도 먹을만했다면 좋았을 것을 심지어 쓰고 떫기까지 해서는, 이건 사람 먹을 게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약이었다. 겨우겨우 입 안에 넣고 자기도 모르게 씹은 순간 위액이 목구멍으로 올라올 것 같은 구토감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이런 거… 반나절이 아니라 사흘에 한 번 먹으래도 먹기 싫다고.
꿀꺽… 겨우 넘어갔다.
마치 억지로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먹이를 살려고 삼키는 심해어가 된 심정으로.
하지만 센이 넘겨준 이유는 있어서, 미칠 듯이 들끓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음을 깨달았다. …고약한 냄새와 맛으로 신경을 마비시키는 게 분명해. 지금 혀는 분명 아무 맛도 못 느낄 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땀에 젖은 이마를 닦고 여러 가지 의미로 괴로운 숨을 토해내면서 헐떡이다가… 겨우겨우 환약이 가져다준 컬쳐쇼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한가지 고무적인 건 혼란스레 머릿속을 뒤엎어대던 잡생각도 잠시 말끔하게 사라진 것 같다는 거.
뭐 아무튼. 통증도 가라앉았으니 일을 해야지.
로브를 툭툭 털고 지팡이를 움켜쥔 채로 잠시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다. 하나뿐인 눈을 가리고 나자 정적이 찾아들었다. 뭔가를 생각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니까…”
당면한 문제는 지금 내가 맞닥뜨린 두 가지의 문제가 어떻게 서로 이어지느냐이다.
어젯밤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 가지고 있는 단서로는 도무지 서로 맞물리지를 않았다. 우루 늪지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도바츄들의 르누레르 숲 침입, 토착 늑대들과의 마찰. 늑대들의 위기에 나타난다는, 편의상… 늑대 정령?
그리고 걸리버들의 도시 베어링턴의 암흑가. 그 암흑가를 지배한다는 라오후의 두령 셴 타이펑. 그리고 라오후와 나아가 걸리버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모험가. 그리고 모험가 길드에 피신 중인 수상한 점쟁이.
전혀 별개의 건으로 보이는 두 가지의 문제가 사실은 한 가지로 귀결되고 있다. 이건 어떠한 근거도 없는, 현재로서는 말 그대로 감이었다.
거기까지 정리하고서는, 일단 용모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내 얼굴은 이미 진즉에 모험가 길드에 팔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꽤 오랜만에 쓰는 듯한 커스터마이징 스킬을 발동하면서, 웬즈데이가 맞이하지 않는 허전함이 조금 어색했다.
웬즈데이도, 즈왈트도 저번에 그… 자칭 죽음의 여신과 맞닥뜨린 후 쭉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뭐라고 해야 하나, 성불해버리지 않았나 염려했지만 제 의식 한구석에 그들의 의식이 조금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서는 다행히도 그런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고. 하지만 당분간은 녀석들에게 의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자연히 깨어나주면 좋겠는데.
흑갈색의 머리카락은 일단 평범한 갈색 머리카락으로.
그리고 눈 색과 피부색, 이목구비도 조금씩 바꾸고, 키도 약간 줄였다.
‘이간의 마녀’ 라타토스크가 내 눈구멍에 쑤셔 넣었던 의안도 내 소유물로 판정되는 것인지, 기능을 잠시 막아둬서 평범한 눈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봐야 의안은 의안, 보이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안대를 벗는 건 꽤… 어색했다.
체구를 줄이자 내 몸에 꼭 맞았던 로브가 헐렁하게 몸을 덮은 모습이 어색하게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 비춰졌다. 이대로라면 나 수상해요, 하고 대놓고 알리는 꼴.
“…이참에 새 옷 좀 사야겠네.”
새 옷을 입고 싶어서가 아니야.
이건 필요경비다. 그렇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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