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2 5 / 늙은 늑대와 젊은 대장장이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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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우…. 청년의 입에서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새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조금 멍한 표정으로 그 연기를 올려다보던 청년이 손에 멍하니 쥐고 있던 장죽을 물고 한 번 더 들이마셨다.
…저런 긴 담뱃대를 실제로 쓰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은 둘째치고, 담배는 어딜 가든 있구나 하는 생각과 아직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아울러 떠올랐다. 목숨을 건져준 상대에게 불만이 많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원래 좀 그렇게… 간사한 법.
“나는 ‘센’으로 통한다. 보다시피 대장장이지.”
“로제이아에요. 편하게 로즈라고 부르면 돼요.”
“어이, 불 꺼졌다.”
장죽 끄트머리, 연통(??)의 불이 식었는지 센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늑대원숭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 꿇어앉은 거한이 불씨를 연통에 옮겨주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물부리를 물고 깊이 연기를 들이마신 뒤 세상 시름을 실어 내뱉어내는 듯한 얼굴로 연기를 허무히 토해낸 센은 마침내 끽연(??)을 멈추고 담뱃대를 내려놓았다. 담배는 허파만이 아니라 머릿속에도 감돌아 멍하게 만들어버린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녁은 셴 타이펑 놈의 도당인 라오후의 끄나풀이라고 오해를 받았고, 그 때문에 질 나쁜 하릅강아지 모험가들한테 칼을 맞았더라, 이 말인가?”
“네. 이쪽도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해서 그 타이펑인지 태풍인지한테 볼일이 있고요.”
늑대원숭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늑대 같은 인상의 마른 얼굴에 가타부타 감정을 표정에 실어 비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센은 한쪽 눈을 조금 찡그리다가 대신 운을 띄웠다.
“네 생각은 어떠냐?”
“귀공의 사정은 대강 알겠소만. 허나….”
그가 할 말은 대강 예상이 갔다.
잭 단장이나 카르티에게서 그가 어떤 행동원리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들을 만큼 들어둔 후였고, 그… 수수께끼의 점쟁이가 내놓았던 물건 또한 자신의 추측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무한 주머니에서 그 무게추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제 앞에 쩔그럭하고 놓인 커다란 돈주머니를 보고도 의외로 늑대원숭이는 용병을 업으로 삼은 이라고 하기엔 꽤 담백한 반응을 보였다.
“나를 고용하겠단 뜻이오?”
하지만 동시에 늑대원숭이라고 자칭하는 것답게 사냥 냄새를 맡는 데는 꽤 비상한 재주를 지닌 모양이다.
무릎을 꿇고 그 무릎에 손을 단정히 얹은 채, 앉은키만으로도 내 선키만큼이나 몸집이 커다란 거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그 자세 그대로 내 눈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는 듯 서늘한 시선은 아주 얇게 살갗을 미끄러지는 면도날 같았다.
“댁은 떼인 돈을 받아야 하고. 나도 그쪽에 갚아줘야 할 빚이 있고. 서로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늑대원숭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커다란 손을 뻗어 돈주머니를 조심스레 끌렀다. 내용물을 확인한 그는 이유 모를 침묵을 잠시 더 이어가다가, 그것을 조심스레 뒤쪽의 함에 넣었다.
“승낙하겠소.”
이렇게 간단히?
오히려 이쪽이 좀 얼이 빠져서 잠시 할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내가 본디 하려던 일에 봉록까지 주어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소?”
고독한 늑대 타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외로 늑대원숭이는 제법 수지타산을 따지는 면이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저번에 만났을 때도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서 이런저런 말을 수다스럽게 하곤 했었지. …계약서는 역시 신중하게 써야만 한다.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이봐, 그쪽 아가씨.”
그다지 탐탁하지 않은 목소리는 늑대원숭이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죽을 문 그대로 가타부타 말을 보태지 않고 끼지도 않던 대장장이 센이, 이제야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화제에 끼어들었다.
아마 그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충, 이 기묘한 사제의 연이 어떤 식으로 이어져가는지 보이는 듯도 하고.
“요즘 젊은 녀석들은 죄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단 말야. 그 호연지기는 좋지만 거기가 어디라고 덥석 가려고 하나? 셴 타이펑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이 도시의 암흑가를 주름잡는 나름의 거물이라고. 명예욕이냐? 아니면 재물욕? 어느 쪽이든 괜히 다치지 말라고.”
생긴 것은 새파랗게 젊으면서.
요즘 젊은것들 운운하는 걸 보면 나이답지않은 동안이라는 설정이라도 되나? 하지만 귀담아 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나도 좋아서 호랑이굴에 뛰어들려는 게 아니라서요.”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길드에서 겪었던 일을 대강 간추려서 이야기했다. 그 수상쩍은 점쟁이를 도피시키려면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까지.
센은,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한쪽 눈썹을 과하게 찌푸린 채로 별로 마뜩찮아하는 모양이었다.
“도바츄의 독이라…. 어이, 넌 뭐 아는 거 없냐?”
센은 자기 제자를 별로 정감 없는 호칭으로 부르는구만, 하고 속없이 생각했다.
물론 ‘너’라고 호칭하는 제자 쪽도 별달리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루 늪지에 사는 도바츄에게는 몸을 저리게 하는 독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건 특별히 해독할 필요도 없이 한나절이면 사라지는 약한 독입니다. 갑자기 강한 독을 갖게 된데다가, 천적이 사는 숲에 무리하게 나타났다면… 필경,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그 다른 요인이 대체 뭐냐고.
마지막 피스 하나가 들어맞지를 않는 기분은 꽤 짜증스러웠다. 루시탄과 얽혔을 때도 적잖이 맛보았는데. 하아.
“…그럼 일단 그 독은 어떻게 하려고 했소?”
“그 점쟁이가 약을 줬어요. 잠시 돌아가서 전해주려고 했는데.”
“이리 주시오. 내가 가져다주겠소.”
그 말에 약을 건네면서도, 순순히 넘겼다는 사실에 자신이 더 놀라고 말았다.
평소라면 세 번은 의심했을 텐데, 어째서인지 이 사제(??)에게는 무엇인가를 의심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이 세계에서 뒤통수를 한두 번 맞은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늑대원숭이는 약을 받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대장간을 나섰다. 그 빈자리를 채우듯 고요는 빠르게 찾아왔다.
…친구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어색함이 감돌았다.
생각해보면 늑대원숭이와는 친구는커녕 지인조차도 아니건만.
“그러고 보면 역시 처자도 걸리버인 모양이지?”
입을 먼저 열려던 찰나, 장죽을 내려놓고 일어선 센이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말을 던졌다.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그가 입가 한쪽을 비틀어 웃었다.
“냄새가 다르다고, 냄새가. 걸리버들은 뭐라고 해야 하나, 특유의 냄새가 있어.”
이 대화에 조금의 재미라도 느꼈는지 그는 자기 코를 톡톡 두들겨보이고는 허리를 짚고 나지막히 기지개를 켰다.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외견에 비해서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어떤 냄새가 나는데요?”
“송장 냄새.”
자칫하면 실례가 될 말을 그는 무심히도 뇌까렸다.
세상사에 그다지 욕심이 없어보이는 무던한 눈이 내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조금 흠칫하고 말았지만, 그 냄새까지는 맡았을는지 어떨는지.
흥, 하고 한 번 더 한쪽 입가만을 일그러뜨리는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이곤 그는 풀무로 화로의 불씨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화르륵… 귀신의 웃음처럼, 불길이 되살아났다.
“걸리버들은 거의 죽은 다음에 여기에 오거든. 여기가 극락이나 지옥으로 보이진 않는데 부처님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난 쇠만 만질 수 있으면 어디라도 상관없어. 좋은 불을 구하려면 지옥이 나았으려나?”
화로에 불이 이글거렸다. 만족스럽게 불길을 잠시 응시하다가 그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갔다. 양날검의 모양을 세운 두꺼운 쇠를 집게로 붙들고, 망치로 두들기는 일이었다.
“아가씨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나?”
“2년 정도요.”
2년이라. 말로는 쉬워도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잠깐 눈을 감고 회상하다가, 휴… 한숨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죽을 뻔한 일도 많이 있었고, 죽을 자리에도 멋모르고 많이 기어들어갔었지. 고작이라고 표현해도 좋은 2년 사이에.
“그러는 센 씨는 여기에 오신지 얼마나 되었는데요?”
흠, 하고 센이 잠시 망치를 휘두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위로 올린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가는 것처럼.
“어디 보자. 이러구러 25년인가 30년인가 된 것 같은데. 아니, 더 오래됐던가, 더 짧았던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쇠만 두들기고 살다 보면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고.”
“여기저기라니….”
센이 피식 웃었다.
“그럼 한 군데에서만 터박고 살 줄 알았나? 별천지에 왔는데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산천 구경도 하고 좋은 쇠나 흙, 불이 눈에 띄면 거기에 자리 잡고 얼마간 지내는 거지. 지겨워지면 다시 좋은 곳 찾아가고….”
슬그머니 불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는 것처럼 보였다. 젊디젊은 그 얼굴에 오래 그을린 대장장이의 회한, 그 비슷한 것이 잿불처럼 식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처음 왔을 무렵에 웬 하릅강아지가 끝내주는 칼을 한 자루 만들어달라고 이상한 재료를 바리바리 들고 온 적이 있었지. 쇠도 아닌 걸 벼려달라니 어이가 없었는데 그게 참 화가 날 만큼 제대로 벼려져서, 황당했던 기억이 나는구만.”
술 한잔 보태면 딱 좋겠다고 읊조리면서 그는 재차 망치를 두들겼다.
어쩐지 조금씩 망치질 소리가 멀어져가는 듯한 기분과, 눈꺼풀이 참을 수 없이 무거워지는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덧붙여 고개도 더없이 무거워져서… 까놓고 말해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을 참는 게, 무척이나 힘에 들더라.
서서히 머릿속을 채워가는 잠기운의 끝자락에서, 센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귀에 스며들었다.
“드래곤이라… 한 번쯤 더 만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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