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2 4 / 걸리버들의 도시, 베어링턴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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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레짐에서? 꽤 멀리서 오셨네요. 베어링턴에 어떤 볼일이 있으시길래요, 손님은?”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다고 들어서요.”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50탈랭짜리 은화 한 닢을 뽑아 손에 얹어주자 말상대해주던 여자가 슬그머니 웃고는 구불구불한 금발을 목 뒤로 쓸어넘겼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여긴 뒷골목이다. 그것도 사창가였다.
아직 한낮이라 손님을 받는 시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서, 근처에서 적당히 쉬고 있는 눈치인 여자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어떻게 알아봤냐고? 경험자의 감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상인, 모험가, 매춘부. 이 세 부류의 직종에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대략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레짐에서의 일은 아무튼 경험이 되긴 해서… 저 여자는 이쪽에서 일하는 여자겠구나, 하는 정도는 알 수 있었던지라 은근슬쩍 돈을 찔러넣으며 말을 건네보니 일단 빙고인 모양이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신걸까요, 귀여운 마녀 손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길이 어딘지 조금 불온했다.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섬주섬 서두를 꺼내기로 했다.
“이 도시에는 걸리버들이 많이 사나요?”
“으음. 많이, 라고 해도 저야 다른 도시에 가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을 하기 어렵네요…? 걸리버 분들이 나는 걸리버요, 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에요. 다만, 음… 모험가나 행상인들이 조금 놀라는 걸 보면 다른 도시보다는 흔한 게 맞긴 한 것 같아요.”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녀의 입에서 쓸만한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돈이 부족해서는 아닐 터인데. 뭐, 조금 더 캐 보기로 할까. 어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이상한 소문을 들은 건 없나요? …묘한 약이 돌아다니고 있다든지.”
일전에 큰까마귀호를 습격했던 용병, ‘늑대원숭이’가 말한 바로는 걸리버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포션이라고 했었지. 베어링턴이 걸리버들의 도시라면 무엇인가 모종의 관계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으음, 하고 여자는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슬쩍 웃음지었다.
“마녀님, 뭔가 사고라도 쳤어요? 이상한 약을 만들었는데 제자가 훔쳐가 버렸다던가?”
“…제자를 둘 만큼 대단한 마법사도 아니고, 그런 약을 만들지도 않았어요.”
이상한 오해를 한 것 같다.
뭐, 흑마법사는 아예 양지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경원시되는 학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음습한 마법을 부린다는 이미지만큼은 어쩔 수 없으니.
어째 변명을 하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재밌다는 듯이 키득거릴 뿐 여자는 그다지 문제삼는 기색은 아니다. 다행이다.
“글쎄, 글쎄글쎄… 행상인들이 이상한 약을 슬쩍 팔려고 하는 거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마녀님 입으로 ‘묘한 약’이라고 부를 만한 게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은 것 같네?”
“그런가요….”
조금 아쉬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젠 오히려 여자 쪽에서 궁금증이 슥 올라온 모양이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내 손을 꾹 쥐고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얼굴, 가까워!
“어떤 약인데요? 좋은 약이야? 피부나 머릿결에 좋은 약이면 구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 약 아니에요!”
자세하게 말했다간 위험할테니 말은 못 하겠지만!
마치 강아지처럼 흥미진진해하면서 부담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여자의 손을 겨우 놓고는, 일단 이 화제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한 가지만 더… 혹시 말이에요.”
목이 까끌거렸다. 이 말을 내뱉는 것에 몇 번째인지도 모를 저항감이 스멀거렸다.
마치 가시나무가 목에 걸려서 말을 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1년 전의 기억은 여전히 머리 한구석에 달라붙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어 남아있었다.
이건 애정이 아니다. 증오도 아니다. 미련도 아니다.
이건 그저… 내가 그녀에게 진 빚을 갚는 것 뿐이다. 잠시 감은 눈동자 아래에서 떠오르는 죽음의 기억을 떨쳐내면서 눈꺼풀이, 깨문 입술이 바들거렸다.
마음을 정리하자, 겨우겨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트라우마라도 된 것 같이, 이 이름을 꺼낼 때만은 심장이 거칠게 두방망이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캐스’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으세요?”
“꽤 흔한 이름이네요….”
“왕도에서 온 사람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어요. 아마 저와 같은 마법사일 것 같은데.”
…캐스. 로젤라이와 지금은 죽은 마담 윕… 카테르네와 얽힌 어떤 인물.
1년 동안 수행하면서 그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카테르네와 각별한 관계였을 그녀의 흔적을 찾는 것이 내 목숨을 살리고 죽은 카테르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니까.
후우, 후우… 조금 거칠어진 숨을 정돈하자, 여자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이 스쳤다.
“…미안. 모르겠어요, 그런 이름… 너무 흔한데다가 이런 데까지 올 정도면 과거는 숨기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렇… 겠죠.”
대개 이런 반응이었고, 개중에 뭔가 단서가 될까 싶었던 정보도 결국 모두 허탕이었다.
카테르네에게 진 목숨 빚 갚기는 요 1년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키르케도, 헤카이트 당주도 대답해주길 거부했었고.
“고마워요. 묻고 싶은 건 그게 다에요.”
정보료로 50탈랭짜리 은화를 한닢 더 건네려 하자 여자는 다시 장난기 곰살궂은 얼굴이 되어선 그 얼굴을 바싹 밀어붙였다.
“돈은 됐고. 마녀 손님. 나랑 어때요? 잠깐 한잔 하고 그 뒤로 마음 맞으면 재미…”
“아하하, 사양할게요. 다음 기회에.”
“칫, 아쉬워라.”
…에휴. 한숨을 내쉬곤 조금 찜찜함과 당혹스러움이 열기로 남은 볼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여기서도 보이는 광장의 큰 시계탑에 시선을 주었다.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지금쯤 출발해야 시간이 늦지는 않겠지.
손을 흔드는 여자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면서, 집합 장소인 광장으로 향했다.
웬즈데이와 즈왈트는 진즉에 도착해서는 기다리고 있었다. 잭 단장은 아직인가보다.
모인 정보를 조금 교환하도록 할까. 즈왈트를 바라보자, 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길드의 모험가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술 한 잔 사면서 들은 것치곤 신경 쓰이는 정보가 좀 있더군.”
흠, 하고 머릿속에서 잠시 정보를 정리하는 듯 즈왈트가 뜸을 들였다.
“도바츄라는 몬스터는 본래 그렇게까지 흉포한 몬스터는 아니라는 것 같다. 분명 사람과 개를 매우 싫어하지만 보통은 오히려 피하는 쪽이라고 하더군. 늪지나 습지에서 자기들만의 영역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던데.”
“…그런 것 치곤 꽤 호전적이었지, 그 녀석들.”
평화롭게 길을 가는데 습격해오고 말야.
그 늑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베어링턴에 도착하지도 못했을지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위험하긴 했었다.
“거기다가 그 도바츄들은… 단장도 말했었지만 본래 그 숲에 살던 녀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불과 일주일쯤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더군. 그래서 그런지, 토벌 의뢰도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때아닌 대목이라며 좋아헸지.”
“일주일쯤 전, 일주일쯤 전… 신경 쓰이네.”
일주일 전이면 우루 늪지에서 돌아와 쉬면서 알브레히트 여행을 준비할 때려나.
우루 늪지… 그 산처럼 쌓였던 해골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먹은 게 올라오려고 한다.
“그럼, 다음은 웬즈데이. 뭔가 알아낸 게 있어?”
“네. 저는 상점가의 상인들에게서 얘기를 좀 들었는데요.”
엣헴, 하고 가슴을 펴는 웬즈데이는 대단한 정보를 들은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원래 르누레르 숲에 살던 늑대들은 눈처럼 흰 아름다운 가죽을 가진 종이라고 해요. 북쪽의 스톰클리프에 살던 스노우 울프 종이라고요. 아주 영리해서 영물 취급을 받아 사냥이 금기시되었다고 해요.”
“흰 가죽이라고?”
…조금 위화감이 든다.
분명 자신들을 도와줬던 늑대는 흰 털색을 갖진 않았다. 눈이 내리는 찌푸린 하늘 같은 짙은 잿빛이었지.
“그 잿빛 늑대… 울포그라고 했던가? 뭔가 들은 건 있어?”
“그건 내가 대답하지.”
즈왈트가 손을 들고 발언을 요구했다.
어흠, 하고 숨을 내쉰 뒤… 골렘도 숨을 쉬나?
“울포그라는 건 단순한 늑대나 종의 이름이 아니라더군. 말하자면… 늑대 무리의 장로, 주술사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오래 산 늑대가 반쯤 정령이 되어서, 무리의 위기가 닥치면 나타나는 수호신 같은 존재라는 것 같다.”
“그렇다는 건 역시…”
르누레르 숲의 늑대 무리에 무엇인가 위기가 닥쳐서, 그 수호신인 늑대 정령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아마 도바츄가 본디 살던 서식지를 떠나 숲에 들이닥친 것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바츄도 원래부터가 흉포한 몬스터는 아니라고 하니, 어쩐지 뭔가 이변의 냄새가 느껴졌다. 우루 늪지에서 있었던 일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 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음모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대체 자신이 가는 곳마다 이런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 세계를 관장한다는 여신과 만날 수 있다면 꼭 한번 따져묻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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