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65화 (65/157)

〈 65화 〉 2 ­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10)

* * *

(10)

도바츄.

물가, 늪지, 강가에 모여 사는 몬스터의 한 종류로, 인간과 개를 극도로 싫어하는 습성을 가졌다. 개과 짐승과 영역이 부딪히거나 하면 어느 한쪽이 완전히 축출될 때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단다. 잭 단장의 설명은 대충 그러했다.

“징그러워… 뭐 저렇게 생겨먹었대, 진짜로.”

비쥬얼적으로 보면 그다지 귀엽다고 할 수 없는 생김새였다.

꿈에 나오면 그날 잠은 다 잤다 싶을 정도로 기괴했다.

갈색 털이 온몸을 길게 덮었고, 커다란 앞니만 털 사이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가운데 털덩어리 사이에서 시커먼 눈이 번들거리는… 톡 까놓고 말해, 징그럽기까지 하다. 넓적하고 시커먼 꼬리를 질질 끌며, 녀석들은 천천히 이쪽을 포위하여 거리를 좁혀왔다.

“수는 대략 스무 마리 정도로군.”

“이쪽은 셋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동물 가운데에서 가장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라면… 비버려나.

비버는 나름대로 귀염성이 있는 동물이지만, 지금 사방을 에워싼 몬스터, 도바츄는 비버의 귀여움을 가능한 죽이고, 흉측하게 일그러뜨려 직립보행이 가능한 다리와 팔을 달아놓은 것처럼 흉물스러웠다.

잭 단장은 긴장한 얼굴로 커틀러스를 앞으로 겨누었고, 나는 지팡이에 마력을 돌리면서 표정을 굳힌 채 주문을 준비했다. 즈왈트도 눈을 찌푸린 채 셋이서 등을 맞대고 언제든 들어와도 대응할 수 있도록 포진을 짰다. 아, 좀 쫄리는데.

“대충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강행돌파, 가능할까요?”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도바츄들은 손에 조악하지만 무기를 들고 있었다.

대개는 모험가들이 쓸데가 없어져서 버린 무기를 주워서 그 손에 맞게 수선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으로도 사람을 찌르면 다치거나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온다!”

잭 단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주의를 곧추서게 했다.

가장 앞선 도바츄 하나가 장작용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마 어느 운 나쁜 나무꾼이 여기에서 나무를 하다가 당하기라도 한 것이겠지!

지팡이를 들고, 미리 준비해둔 주문을 풀어놓았다!

“크햐아악!”

땅딸막한 몸을 잽싸게 뛰쳐올라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려치려는 자세 그대로, 도바츄는 급속하게 자라난 넝쿨에 칭칭 감겼다. 그대로 지팡이를 꽈악 움켜쥐어서, 넝쿨에 붙잡힌 도바츄를…

“우욱….”

넝쿨에 붙잡힌 도바츄가 버둥거렸다. 마치 손바닥 안에 가둔 모기를 꽉 눌러 죽이듯 이제 자신은 너무나도 손쉽게… 몬스터라고는 해도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다. 목숨을 빼앗긴 도바츄의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마법의 양식으로 삼는… 흑마법사였다.

돌연 치밀어오른 역겨움에 속이 더부룩해졌다.

숨이 덧씌워져 기침이 되어 게워졌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뭐야, 이 더러운 기분… 이런 짓을 하려고, 나는 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주인!”

나무 몽둥이로 도바츄 한 마리의 머리를 즈왈트가 후려쳐서 깨뜨렸다. 사방에 번들거리는 진녹색의 체액이 튀었다. 꾸물거리는 뭔가가 체액 속에 섞여서 함께 바닥을 기다가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야, 저건…

“주인, 정신을 바짝 차려라!”

“어이 아가씨, 왜 그래?!”

흑마법사라고 해도, 마녀라고 해도,

이 세계에 온 지 2년 남짓, 제 손으로 목숨 하나를 끊어낸 것이 딱히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쉬이 익숙해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괜… 찮아, 난!”

동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녀석들은 지금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 적이다. 적의 목숨을 빼앗았다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약한 녀석이 아니라고, 나는…!

반쯤은 오기로, 넝쿨에 붙잡혀있는 도바츄의 생명력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털이 생기를 잃고 거죽과 뼈만 남은 것처럼 앙상해졌다. 기억의 단편이 머릿속에 쿡쿡 박혀왔다. 뭐냐고, 이 기억은…

“이 녀석들… 여기서 살던 녀석들이 아니야. 어딘가에서… 쫓겨서… 우루 늪지에서….”

뭔가가 뱃속에서 넘쳐날 것 같았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대서 제대로 주문을 영창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설프게 납땜하느라 쇼트를 일으킨 전기회로처럼 파직파직 스파크를 내는 통에, 지팡이에 겨우 체중을 싣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보다 우루 늪지라고…?

“주인!”

즈왈트가 다급하게 외쳤다. 잭 단장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둘은 모두 세 마리씩 도바츄와 대치하느라 이쪽을 도울 여력 같은 건 없었다. 짧은 창을 쥔 도바츄가 달려오고 있었다. 세 걸음, 딱 세 걸음만 앞으로 달리면 창날이 내게…

큰일이다, 주문, 주문, 주문을…!

무슨 주문, 어떤 주문을 써야 하지?!

“갸우우…!”

수풀에서부터 갑작스럽게 뛰쳐 오른 그림자가 나에게 딱 한 발짝 남은 도바츄를 덮쳤다.

네 발 달린 그림자는 기다란 주둥이로 순식간에 도바츄의 어디인지 애매한 목을 덥썩 물고는 그대로 머리를 휘둘러 동맥을 끊어냈다.

진녹색의 체액이 흩뿌려져서, 그것에 닿지 않으려는 양 습격자는 물러섰다. 부르르 떨리는 잿빛 모피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르릉, 하고 목울음을 울리며 이를 드러낸 짐승은…

“늑대…?”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렸다.

잔뜩 부풀린 털 탓인지, 자신이 알던 늑대라는 짐승이 이렇게 컸나 생각될 정도다. 뭐야, 이 늑대. 날 도와준 건…가?

“…우리를 지켜보던 녀석 중 하나로군.”

즈왈트가 조금 안도한 얼굴로 늑대를 바라보면서 숨을 내쉬었다. 잭 단장은 어땠냐면, 갑작스럽게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이 늑대에게 상당한 감격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건 단순한 늑대가 아니군. ‘울포그(Wolfog)’라고 불리는 꽤 드문 종이야.”

…도바츄도 그렇고, 이 늑대에 대해서도 그렇고, 잭 단장은 꽤 아는 게 많은 모양이다.

울포그인지 늑대인지 모르겠지만, 유령 같은 으스스함이 감도는 늑대가 나타나자 계속 덤벼들던 도바츄들도 경계의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워욱!”

성난 듯 늑대가 한 번 울었다.

각자, 손에 든 무기를 그대로 움켜쥔 채로 천천히 도바츄들이 숲으로 사라지고 나자 맥이 풀려서 주저앉은 그대로 푹 한숨을 쉬었다.

“일단 살았, 나…?”

일단 도바츄들이 물러가고 나자 조금 긴장이 풀린 채로 비슬비슬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지. 내 앞에는, 내 머리와 거의 같은 곳에 머리가 있는 커다란 늑대가 있다고.

이 녀석이 갑자기 달려들기라도 하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가 아플 것이다. 나 같은 건 한 입에 상체까지 꿀꺽해버릴 것 같은 괴물급 늑대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자… 즈왈트가 나를 감싸듯 한 걸음 앞서서 내 앞에 섰다.

늑대는 눈동자를 굴려서 나와 즈왈트, 잭 단장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 발을 굳건히 세운 채 목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목울대가 부풀어오르면서 숨을 깊이, 그리고 크게 들이마셨다.

아아우우우우우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늑대의 울음소리에는 처연한 기색이 묻어났다. 어쩐지, 뭔가를 전하려 하는 듯한 울림이 고막뿐만 아니라 가슴에 꽂혔다.

아아우우우우우…

그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옆쪽 고개 위에서 긴 울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마치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잭 단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뒤이어 울린 늑대의 울음소리는 암컷의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헤엑, 헤엑, 헤엑.

한번 길게 울음소리를 낸 뒤 마치 한바탕 뜀박질을 마친 개처럼 혀를 내밀고 숨을 할딱거린 늑대는 푸른 눈동자를 서서히 돌린 채 풍성한 꼬리를 흔들면서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뭔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냥… 여자의 감.”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게 참 미묘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한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빨리 숲을 통과하는 편이 좋을 텐데….

“긴장이 풀렸더니 배고파….”

그러고 보면 캠프에서 햄을 몇 개 먹은 뒤로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았었지.

긴장 탓에 느끼질 못하고 있었을 뿐 한번 자각하고 나니 배고픔이 뱃속에서 스멀거렸다.

도바츄 한 마리의 생명력을 흡수한 탓에… 마력 쪽은 어느 정도 채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니,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싶지도 않아!

“그러고 보니 슬슬 식사 시간이 되긴 했군. 가능하면… 하하, 베어링턴의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와 반주를 하고 싶었지만.”

“얼른 이 숲을 빠져나간 다음에 제대로 밥을 차려먹자고요. 간단히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육포라면 있네만. 어떤가?”

“지긋지긋하지만 할 수 없죠… 조금 주세요.”

물론, 여기에서 먹을 수 있는 버섯이나 토끼라도 좀 잡아서 먹는다는 선택지도 있을 수 있겠으나… 도바츄 무리가 또 언제 덮쳐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피크닉처럼 식사를 하느라 뭉기적거릴 순 없었다.

늑대가 도와주긴 했지만 그런 행운이 또 따를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고.

지금은 일단 얼른 이 숲을 빠져나가기로 결정. 정말이지, 이제 숲이나 늪지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신물이 올라올 만큼 지긋지긋하다고요.

육포를 증오스러운 양 물어뜯으면서, 걸음을 서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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