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64화 (64/157)

〈 64화 〉 2 ­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9)

* * *

(9)

현재, 표류 중.

큰까마귀호의 수리와 임시 정비는 마무리되었지만 어쨌든 그… 정체불명, 수수께끼, 신출귀몰한 용병 ‘늑대원숭이’가 무슨 짓을 몰래 했을지 모른다는 게 키에리의 의견이었다.

“…너 말야. 어째 안색이 좀 나아보인다?”

그런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쿡 하고 찔러보니 어쩐지 반응이 있었다.

흠칫 놀라선 동요한 기색이 역력한 게… 아무래도 뭔가 냄새가 난단 말씀이야.

옆에서 꼬마 도령 토마스가 도끼눈을 뜨고 올려다봤지만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다.

“대체 무슨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거람. 아무튼, 제대로 된 거점에서 나사 하나까지 철저하게 점검하고 싶어. 지금 이 배는 날아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다고.”

힌덴부르크 호처럼 말이지…

날아다니는 폭탄이라고 하면 불길한 예감밖에는 들지 않는데.

“나도 키르 누나의 말에 찬성이야, 단장. 뭣보다 그 커다란 덩치가 또 숨어들면 그땐 어쩔거야? 지금 창고가 너무 난장판이라서 숨을 곳 천지라구.”

지당한 의견이긴 하지만, 키에리의 편을 드는 토마스를 히죽히죽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내려다보니 녀석이 도끼눈을 뜨고 째리며 올려다보는 것으로 응수했다.

“흐음…?”

키에리가 갸우뚱하고 고개를 기울였다가 다시 바로 세우고는, 아무튼 토마스의 의견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잭 단장은 어땠냐면 사실 그다지 귀담아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비행선은 사람의 어깨처럼 안마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조차 귀찮아하는 게 보일 정도로.

키에리는 해도를 펼쳐놓고 큰까마귀호가 불시착한 위치에 1탈랭짜리 동전 하나를 놓았다. 그리고는 지도에 표시된 도시 중 한 곳에 똑같은 동전 하나를 두었다… 지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다.

“베어링턴. 그나마 여기가 제일 가깝네.”

“르누레르 숲을 지나야 하는군. …흠.”

잭 단장의 반응이 조금 묘했다.

키에리도 조금 눈썹을 찌푸리고 입가를 씰룩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늑대 무리가 나오거든.”

“…으음….”

잭 단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몬스터가 날뛰는 세계에서 늑대 무리가 무에 그리 대수랴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몬스터가 날뛰는 세계에서조차 번성할 정도의 늑대라는 이야기도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저쪽 세계의 인류도 늑대와의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이 총의 발명 이후였으니까 이해할 수 없을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지. 우리 쪽 넷이든 그쪽 셋이든 그럭저럭 늑대가 나타나도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한 명 더 있었나?

다시 한번 세 보았다. 잭 단장, 키에리, 토마스. 틀림없이 셋이다.

이런 배를 셋이서 움직인다는 게 이상해서 처음에 확인해봤을 때도 셋이었다. 하지만 날카롭게 제 존재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불만스럽게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설마 쟤도 포함이었어요?”

“당연하지.”

이 세계에서 흔하디흔하게 쓰이는 통신, 연락, 사냥용 독수리, 헤르모드 종은 머리가 좋고 귀소본능이 강해서 기르는 사람이 많고, 애착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헥터는 내 파트너라고. 당연히 인원에 포함시켜야지.”

독수리치곤 이름이 제법 거창하군. 독수리, ‘헥터’는 주인이 뻗은 팔에 앉아 날개를 퍼덕이면서 삐익삐익 불만스럽게 울어재끼고 있었다. …알았다고. 세 명과 한 마리, 그리고 네 명으로 구성된… 기묘한 집단은 불시착해서 표류중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여길 지켜야 하지 않아?”

카르티의 말이었고 당연한 말이었다.

척 봐도 수십만 탈랭은 가볍게 나갈 물건인데. 그걸 그냥 버려두고 갈 수 있을 리도 없지 않나. 오며 가며 시간도 상당히 소요될 일인데. 인선을 꾸리는 것도 꽤 골치아플 일이었다.

“일단 난 베어링턴에 가는 쪽에 있어야겠지. 상황을 설명할 사람은 있어야 하니까.”

“단장이 그쪽으로 가면… 누가 갑자기 쳐들어오면 어떡하라구? 토미랑 나는?”

“그거라면, 키르 누나는 내가…!”

기세좋게 외쳤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 키에리와 시선이 마주치자 끝맺음을 맺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꼬마 도령 토마스를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어물쩍거리면 별로 좋은 어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키에리를 봐도 얘가 왜 이러나, 하는 얼굴이 되어버렸잖아.

“그럼 내가 남을게.”

카르티가 손을 들고 자원했다.

케라우노스를 따라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므로, 이런 일에도 나름의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로제에 대해서 들을 말도 있고 말야.”

“부탁인데, 키에리. 이 녀석이 묻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라.”

불안한 예감의 몸값이 갑자기 확 뛰어서 상한가를 치고 올라가는 게 참 거시기한 기분이다.

그럼 일단 여기 남는 건 카르티와 키에리, 그리고… 꼬마 도령 토마스 정도려나.

“좋아. 그럼 무슨 일 있으면 헥터를 통해 연락하지.”

“알았어, 단장.”

최종적으로 인선이 꾸려졌다.

잭 단장과 나, 그리고 즈왈트와 웬즈데이는 숲을 통과해서 베어링턴이라는 도시로 향하고, 카르티와 키에리, 토마스와… 독수리 한 마리는 여기에 남아 배를 지키는 것으로.

그렇게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의 숲에 도착했다.

해안가를 빠져나오니 바로 숲이었고, 빽빽하게 자라난 삼나무 숲은 낮임에도 어둑어둑하여 함부로 발을 들일 베짱이 생기지 않게 하는 풍경을 자랑했다.

“뭐, 늑대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한낮부터 사람을 습격하진 않을 거니까. 늑대는 주로 밤에 여길 지나는 무모한 장사꾼들을 덮치는 편이니 낮에는 비교적 안전해.”

“전문용어로 그런 대사를 ‘플래그’라고 한다고요.”

걸어 다니는 모음집입니까, 댁은.

댄디즘이라는 표지에 플래그를 한가득 실어둔 사전 같은 남자가 표표히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따라 숲에 발을 들였다. 즈왈트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긴 하지만, 역시… 별로 안정되는 풍경은 아니었다.

“꼭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인데….”

한낮이라고 해도 빽빽하게 자라난 삼나무 숲이 햇빛을 거의 가로막아 어두웠고, ‘어쨌든 이것이 길입니다’ 하고 말하듯 적당히 흔적만 남은 길을 따라가려니 숲의 중심부로 가면 갈수록 긴장감이 높아졌다.

“…즈, 즈왈트.”

“왜 그러지?”

“주위에 뭐 이상한 거 있으면 빨리 말해줘야… 아, 아니지. 확실한 것만 말해줘!”

제법… 으스스하다!

흑마법사가 숲에서 겁을 먹었다고 하면 키르케와 헤카이트 당주가 웃을 일이었지만 생리적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누군지도 모르는 시선들이 쏟아지면서 지켜보는 건… 성격적으로 트라우마라서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 과거 회상편을 찾아보라고. 구체적으로는 1­6의 3번째쯤 될 거니까.

“그럼 말하지. 늑대 두어 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벌써?!”

숲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잭 단장은 그 말을 듣고도 태연자약한 모양이었다. 본인 왈, 이 정도로 댄디즘은 흔들리지도 꺾이지도 휘지도 않는단다.

“그야 당연하잖아? 여긴 늑대 무리의 영역이니까, 그 영역에 못 보던 녀석들이 들어오면 정찰 정도는 하겠지. 뭐,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생각해줄지 겁먹은 토끼라고 생각해줄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겁먹은 토끼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몰려와서 사냥할 거라는 뜻이네요.”

지팡이 모습을 취한 웬즈데이를 꽈아악 움켜쥐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루 늪지에서는 케라우노스 덕에 겁먹는 일 없이 마음껏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조금… 잭 단장은 아무래도 도적단 단장이니만큼 대마법사에 비해 그다지 미덥진 않았으니!

“하하, 늑대는 겁쟁이 냄새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나아가면 늑대 쪽에서 피해가지.”

“…그 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데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즈왈트까지 동조하고 나서는 와중에야 그렇다고 생각할 수밖에.

자, 윤장미. 로즈. 로제이아. 어느 쪽이든 늘 그랬듯 악과 깡과 오기로 버티면서 근성으로 나가는 거야. 평정심, 평정심.

숨을 후욱 하고 힘껏 들이마시면서 배에 배짱을 단단히 채우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주어 나아갔다. …너무 힘을 지나치게 줘서 뻣뻣해진 발걸음을 즈왈트가 측은한 듯 등 뒤에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못 본 것으로 하자.

“쉿.”

앞서가면서 손에 커틀러스를 들고 잔가지를 쳐내면서 나아가던 잭 단장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르르,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리고 즉각 즈왈트가 내 뒤에 가까이 붙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위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렇게 조용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들짐승 소리도, 날짐승 소리도 없었다.

“…야단났군. 겁먹은 토끼 무리로 보인 모양이야.”

커틀러스를 쥔 손에 힘을 꾹 넣으면서 잭 단장이 한숨을 가득히 쉬었다.

이게 다 아가씨 때문이야, 하고 농담 한 자락 던질 여유는 있는 모양이지만.

“숲을 나가기까지는 아직 한참 더 가야 해. 이 숲에서 늑대를 따돌리는 건 무리겠지.”

“결국, 한 번 부딪혀야 한다는 얘기네요.”

좋아, 오히려 피부에 닿을 듯 닥쳐오니 배짱이 든든히 생겼다.

천천히 마나맥을 예열하고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숨을 내쉬었다. 늑대 무리, 얼마나 많은지는 몰라도 그리 쉽게 토끼사냥처럼 할 수는 없을걸?!

“아니, 늑대 무리가 아니다. 주인.”

즈왈트가 미간에 주름을 깊게 잡으면서, 주변의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창처럼 손에 쥐면서 중얼거렸다. 늑대가 아니면, 뭔데? 아니, 그렇게 말하니 조금 더… 쫄게 되잖아!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스쳤다. 웃음소리였다. 늑대가 웃을 리가 없으니… 더더욱 묘한 상황에 빠졌다는 예감이 등골이 시큰거렸다.

수풀 사이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 득득득… 바위에 뭔가를 갈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날붙이일지, 발톱일지, 전혀 감도 오지 않는 가운데, 즈왈트가 별안간 팔을 휘둘렀다.

“즈왈트!”

“괜찮다.”

화살 한 대가 그의 팔에 박혔다. 겉모습은 인간일지언정 즈왈트는 골렘. 얕게 파고든 화살을 뽑아내면서 즈왈트는 신중하게 나무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잭 단장은 화살을 바라보고는 이상할 정도로 짧은 화살을 보고 칫, 혀를 찼다.

“‘도바츄(Dobhar­chú)’로군. 이거 야단났네. 사람과 개를 아주 싫어하는 몬스터야. 무리를 짓고 다니지.”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지만, 일단 활을 쏠 줄 아는 걸 보면… 칼이나 창을 들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지팡이에 새겨진 주문으로 주변의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한 그루, 골렘으로 일으켜 세웠다. 뿌리가 다리로, 가지가 팔로 변한 우드 골렘이 쿵, 쿵 다가와서 감싸듯이 세우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도 안 돼?!”

투두두두두두두,

짧게 날아든 불똥들이 우드 골렘에 달라붙었다. 이파리와 껍질에, 잎을 갉아 먹는 벌레들처럼 들러붙는 불똥들은 이내 손도 쓰기 전에 불길로 번져서 우드 골렘을 쓰러뜨리고야 말았다. 아니, 마법까지 쓴다니 대체 뭐냐고!

“이런 녀석들이 나온다는 얘기는 없었잖아요?!”

“아, 이런 녀석들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었거든.”

야단났네, 하고 세 번째 말하면서 잭 단장이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자랑스러운 댄디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챙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지금 생각나는 말은 단 하나.

이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울림.

좆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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