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2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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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금의 상황을 대강 정리하자면…
‘래핑 크로우’ 유적단의 잭 단장은 생판 남인 나에게 고장 난 자기 배인 ‘큰까마귀’ 호의 기관 문제를 떠맡겨놓곤 자기는 내 친구인 키에리와 시시덕거리고 있었더란다.
그리고 건방진 꼬마와 함께 어떤 인과인지 친구와 유적단 두목이 어쩐지 야리꾸리하게 얽힌 현장을 덥석 붙잡았다는 것인데….
“윽, 으으응, 아아… 힉. 거기, 아프단 말야.”
“키르, 꽤 단단하게 뭉쳤구만. 허구한 날 키를 잡아대서 그런가?”
“그렇게 키를 잡게 하는 게… 누군, 데에…. 아앙…!”
…뭐, 생각보다는 건전한 상황이었다.
잭 단장은 뼈대가 굵은 손으로 키에리의 어깨와 목께까지 여기저기를 붙들어 힘껏 주물러 안마하고 있을 뿐이었고, 키에리는 투덜거리면서도 그 안마를 받으며 꽤 시원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음, 아무리 그래도 애들 보기에는 어떤 광경일지 모르겠다.
제 머리 아래에서 꿀꺽하고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꼬맹이는 볼따구를 잔뜩 붉힌 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이 나잇대의 꼬맹이들은 낙엽이 굴러다니는 것만 봐도 반응이 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한데.
…그렇다면 제대로 된 어른으로서.
놀리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야, 너 말이야. 이름이 뭐랬지?”
“…토마스.”
흔한 이름이네. 그러고 보니 아까 토미라고 부르던 걸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러냐는 듯 부루퉁한 얼굴로 경계심 가득히 올려다보는 꼬마는 어른으로서 반드시 놀려먹어야 한다. 당한 것이 있으니 철저하게. 음흉한 웃음을 입가에 띠면서 공격 시작.
일단 당연히, 첫 공격은 직구다.
“너, 키에리 좋아하지?”
“무…?!”
순식간에 얼굴이 빨간 파프리카처럼 물들어버린 꼬맹이. 너무 반응이 솔직해서 입가가 들썩거렸다. 녀석이 화를 내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튀어 오를 듯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 재밌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딱 봐도… 조용히 해. 들킬라.”
다행히 키에리가 안마를 받으면서 끙끙거리며 흘리는 소리 탓에 잭 단장과 키에리 쪽은 잠시 자제 없이 튀어 오른 꼬마의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꼬마는 입을 막았지만, 눈을 찌푸리면서 씩씩거렸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마녀… 주제에. 게다가 넌 지금 우리 유적단의 인질이라고. 그러니까 인질답게 행동해. 괜히 건방지게 굴면 큰코다칠 줄 알, 알아.”
당황해서는 이말 저말 아무렇게나 주워섬기면서 오기를 부리는 게 꽤 볼만하다. 이게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위협 삼아 허리에 찬 커틀러스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들기는 게 더더욱.
그렇게 나오면 더 놀려주고 싶다는 걸 알아야지.
한 번 이 꼬마의 속을 떠보기로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역시 저 둘은 보통 사이는 아닌가 봐? 굳이 사람들 눈을 피해서 저렇게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는 걸 보면. 저런 정도는 그냥 당당히…”
어라?
말하고 보니 슬슬 정말로 이쪽의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내 말에 토마스도 조금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면서 발앞꿈치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고. 참… 속을 알기 쉬운 녀석이잖아.
“그런… 거 아닐 거야, 아닐 거라고.”
“뭐야. 꽤 단호하게 말하잖아. 왜?”
“그야 키르 누나는… 아니, 아니. 단장은 누가 봐도 아저씨잖아.”
“오히려 그 점이 플러스가 될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는 아저씨가 취향인 사람도 많이 있단다.
키에리가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잭 단장의 나이는 들은 적이 없지만 뭐, 봐줄만한 얼굴에 댄디함을 갈고닦으면서 내세우고 있고.
뭣보다 저 둘은 제법 그림이 되었다. 그림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샷을 잡아봐도, 꽤 그럴싸하고.
이 꼬마의 의향이야 어떻든 간에.
“그래서. 저 둘은 일단 그렇다 치고. 우린 우리 대로 얘기를 좀 할까, 꼬마 도령.”
“꼬마 도령?!”
어라, 나도 모르게 이상한 호칭이 입에서 나와버렸다.
뭐 하지만 그럭저럭 입에 붙으니 이 녀석에 대한 호칭은 이제 꼬마 도령으로 고정이다.
‘꼬마 도령’은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게 내 알 바냐고.
“자자, 저 둘을 훔쳐보는 것도 슬슬 그만두고. 자리를 좀 옮겨서 이것저것 물을 게 있어, 꼬마 도령.”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난 꼬마가 아니야!”
“꼬마라는 말에 발끈하는 걸 보면 꼬마가 맞는데 뭐.”
문득 자신도 무기점 주인 샨톤이 신출내기라는 말에 발끈하는 걸 보니 신출내기가 맞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걸 뭐라더라… 역사는 반복된다?
아무튼, 자리를 옮겨서 적당한 짐상자에 마주 앉아선 이야기를 빙자한 놀림이 시작되었다.
토마스는 토마스대로 쉽게 먹잇감이 되지 않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그래서. 할 얘기가 대체 뭔데? 마녀.”
“서두르지 마. 꼬마 도령. 애들은 솔직하고 건강한 게 제일이야.”
“그러니까 꼬마가… 하아, 됐어. 난 갈래.”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사악하고, 흉악하고, 영악한 웃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키에리와 단장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거, 말해버려도 되는 걸까나?”
예상대로 반응이 있었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부들부들거리는 꼴이…
참을 수 없이 재밌다.
“치사하다!”
“어른이니까.”
태연스럽게 받아내며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어 넘기고는 지팡이 끝으로 맞은편의 상자를 툭툭 건드리자 불퉁한 얼굴로 토마스가 앉았다.
“그래서, 뭔데 대체.”
“좋아, 꼬마 도령. 슬슬 이야기꽃을 피울 준비가 된 것 같네. 뭐, 친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걸 알고 싶은 법이니까 협조 좀 해 줘. 나도 나름대로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키에리가 왜 이 도적단에 들어왔는지부터 들어볼까.”
“우리는 흔해 빠진 도적단이 아니라고 누누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적이나 산적이나 도적이나. 아니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분류인 유적이나 결국 그게 그거지.
“…나도 몰라! 여기 사람들은 전부 단장이 하나둘씩 데리고 와서 꾸린 식구다 보니 서로 과거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나만 해도… 하아, 아냐. 마녀한테 얘기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꼬마 도령, 입이 꽤 무겁네.”
“아 진짜, 그 꼬마 도령 소리는 집어치워! 나도 올해로 열여섯이란 말야!”
꼬마 맞네 뭐.
이 세계에서는 열다섯만 넘어도 대충 반쯤 어른 취급해주는 모양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아직 새파랗게 어린 꼬마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키에리가 몇 살이더라? 아마 나보다 한두 살쯤 어렸던 것 같은데, 나도 이 세계에 호적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보니 서로 나이 문제는 대충 뭉개고 넘어갔었다.
“뭐, 옛날부터 키에리는 남자다운 상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지.”
레짐에서도 그랬었더라.
예전 기억을 되짚으며 툭, 그렇게 말하자 꼬마가 흠칫거렸다.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와선 툴툴거리고 눈을 옆으로 굴리면서도 녀석은 볼을 조금 불그레하게 붉히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표정은 솔직하면서 뭘.
잠시, 아니 어쩌면 자기 기준으로는 한참을 궁시렁거리다가 결국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주저하던 토마스가 입을 열었다.
“…저기, 난 남자답지 않아?”
“흠…. 꼬마 도령은 아직 남자라고 하기엔 덜 여물었는걸? 좋은 남자가 되려면 역시 더 노력하고 갈고닦아야 하지 않을까?”
“가다듬다니, 뭘?”
슬슬 본심이 슬그머니 나오려는 녀석의 행동이 재밌어서 입가가 바들거렸다.
아, 조금 재밌어지려고 하는데. 가만있자, 뭐라고 답해야 하려나. 잠시 생각하던 끝에 음, 하고 이 답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댄디즘이려나…?”
“…아니, 그거 단장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잖아. 단장 같은 아저씨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꼬마 도령. 남자는 누구나 다 크고 나면 아저씨가 되는 법이야. 포기하고 받아들여.”
“난 아직 멀었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마녀가!”
조교 선배의 말에 따르면 남자가 나이 먹는 건 순식간이랬지.
모쪼록 지금을 즐기도록 하렴.
초조할 법도 할 것이다. 뭐, 본인은 극구 부정하고는 있지만 신경쓰이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 더구나 남자로서 이기기 어렵다는 직감이 드는 상대라면 더더욱.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남자의 길!
사랑하라, 소년이여!
그리고 무참히 깨져라, 내 재미를 위해서!
하지만 무참히 깨지기도 전에, 토마스는 조금 침울해진 눈치였다.
“그런데 대체 키르 누나랑 넌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키에리는 누나고, 그보다 더 나이 먹은 나는 ‘너’냐?
건방진 꼬마한테는 쉽게 답을 줘선 안 되겠지. 뭣보다, ‘네가 좋아하는 여자는 전직 창녀였다’고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아, 그건… 난 말 못 하겠다. 역시 비밀이야.”
“이보세요. 아니, 마녀. 일방적으로 너무 치사하잖아.”
“본인에게 들을 일이거든. 여자의 과거란 원래 비밀이 9할 이상이야.”
“1할 정도는 말해줘도 여신님이 뭐라고 안 할걸.”
끄으응, 하고 머리를 북북 긁은 토마스가 상자에 주저앉은 채 다리를 늘어뜨리곤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에는 초조감과 불안, 그 나이다운 고민이 가득했다.
루시탄도 그런 얼굴 하고 있던가?
왜 이 대목에서 그 왕자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는지는 스스로도 모르겠다.
“그럼 한 가지만 좀 대답해 줘. 이번엔 비밀이니 뭐니 하지 말고.”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야.”
못할 것도 없지. 자기도 모르게 꽤 즐기고 있다는 걸, 그리고 꽤 자신도 S끼가 있다는 걸 슬슬 자각하면서 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토마스는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한번 조금 주저주저하다가 한숨을 토해내듯 말을 밀어냈다.
“어떻게 하면… ‘남자답다’라는 말을 키르 누나에게 들을 수 있을까?”
음, 예상하지 못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단숨에 대답하기에는 약간 난이도가 있는 질문이었다. 아마 이 질문이, 녀석에게 있어서 가장 진심에 근접한 질문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약간 시계를 돌려서… 이 뒤의 나는 이 대답을 조금 후회하게 된다.
조금만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서 대답해줄걸, 하고 말이다.
입 밖에 낸 말을 주워섬길 수 없다는 것은 제법 아픈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다시 배우고, 또다시 잊게 되겠지.
“…강해지면 되지 않을까?”
후회란 언제 해도 늦은 것이고, 후회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없더라.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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