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2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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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퀴즈. 엔진의 갑작스러운 정지로 동력을 상실한 비행선은 어떻게 될까?
정답. 그대로 추락한다. 아래쪽은 망망대해인데, 여기서 물고기밥이 되는 게 내 두 번째 인생의 마지막이냐고!
“엇차, 이거 야단났구만. 키르, 어떻게든 해 봐!”
[나더러 어떻게든 하라고 해도…!]
“기수에서 오른쪽에 해안이 보이니까 그쪽으로 기수를 돌려!”
[정말, 무리한 일만 시켜대고, 원망할 거야, 단장…!]
확성기 너머로도 지금 키에리가 얼마나 낑낑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수면을 향해 떨어지고 있던 기수가 방향을 겨우겨우 틀어, 얕은 물 쪽으로 기울었다. 슬슬 배와 바다라면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그 어떤 조타술이나 조종술로도 동력을 잃고 떨어지는 비행선을 다시 날게 만들 수는 없었다. 푸르게 넘실거리는 물이 코앞이라서, 난간을 붙들고 눈을 꽉 감았다.
처얼써억. 풍덩….
부그르르르…
비행선의 머리부터 물에 처박혔다가, 온몸에 짠 바닷물을 뒤집어쓴 채 천천히 떠올랐다.
이 세계에서도 바닷물은 매우, 그렇게까지 짤 필요가 없다 싶을 정도로 짰다.
“크헥, 짜아…! 케훅, 콜록, 콜록….”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떠오르는 갑판에 겨우 버티고 선 채로 축축하게 젖은 기분나쁜 감촉이 온몸에 달라붙었다. 카르티도 마찬가지로 비, 아니 바닷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고 즈왈트도 마찬가지였다.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 몸에 묻은 물을 툭툭 털어내는 그는 팔에 꼬맹이를 끼고 있었다. 아마 선창에서 그 ‘늑대원숭이’와 마주쳤을 때 기절시켰던 모양이었다. 그걸 즈왈트가 재빨리 회수해왔던 것이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하마터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지만… 하아, 수고했어. 즈왈트. 걘 어때?”
바람 마법을 사용해서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바닥은 여전히 축축했지만 옷이 젖은 채로는 감기에 걸릴 게 뻔하니까. 제 몸에 묻은 물기부터 털어내고, 카르티와 즈왈트의 물기도 털어냈다.
“일단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 보이네. 제대로 숨도 쉬는 것 같고.”
태평스레 즈왈트의 어깨에 축 늘어져 있는 꼬맹이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아, 젠장. 이럴 거면 그냥 순순히 그 포션을 주지나 말 것을 그랬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짜증이 치솟았다.
“그럼 기관을 좀 손을 봐야겠지. 아가씨도 같이 갈 텐가?”
담배라도 한 개비 물고 싶은 표정인 잭 단장이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투덜거렸다. 뭐 이 세계에 담배 같은 건 없어보였지만. 그보다 나도 그런 쪽에는 완전히 문외한인데.
“나는 그런 기계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데요?”
“마법사가 도와주면 좋을 일이거든. 자아, 태워준 값 낸다 생각하고 따라와 주시겠나, 마드모아젤.”
애초에 댁네가 억지로 끌고 온 거잖아.
투덜거리며 갑판 아래로 통하는 계단을 딛고 내려갔다… 다행히 선체 하부가 물로 넘실거리지는 않았다. 비행기인지 배인지 애매모호한 생김새이니만큼 그래도 방수 대책은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거친 불시착 탓인지 짐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어서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게 굉장히… 성가셨다.
“끄응, 읏차. 후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짐상자를 넘고 피해 구불구불하게 가장 안쪽, 기관실로 통하는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훅 달라붙었다.
“좀 덥지? 기관실에 5분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한다더군. 아무래도 이런 걸 날게 하려면 힘을 좀 쓰긴 해야겠지.”
“에….”
커다란… 구조를 잘 모르겠는 동력기관이 열기로 가득한 방 안에서 조용히 그냥 들어앉아 있었다. 실내에 아지랑이처럼 떠도는 열기와 연기로 들이마시는 숨마저 뜨끈한 게 금새 땀이 날 만큼이나 더웠다.
“…뭐에요. 증기기관?”
지나치게 커다란 동력로에서 뿜어낸 것은 비단 증기만이 아니었다.
마법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영적 요소, 에이트(Eitr)가 사방에 자욱하게 깔린 것을 보면 이건… 아무래도 마력과 증기기관을 조합한 동력로인 모양이다.
“섬세한 친구니까 조심조심 만져주도록 하라고.”
잭 단장이 씩 웃으면서 동력로에 다가가서는… 응? 하고 눈을 크게 치떴다.
표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글씨인지 그림인지 모를 붉은 무늬로 채워진 종잇장들. 설마… 하는 생각에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분명 그쪽 계통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젠 도사 흉내까지?
아니아니, 어떤 식으로든 마법을 쓰면 그냥 쓰는 거지. 마법사이면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는 말자고. 자신의 옹졸함을 반성하면서 지팡이를 가까이 대어 마력을 슬며시 흘려넣어 보았다.
구조를 파악하지 않으면… 떼는 순간 시밤쾅 하고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잖아. 다행히 그렇게까지 고도의 술(?)을 부린 건 아니었는지 화륵, 하고 종이는 빠르게 불살라졌다.
문제는 동력기관 여기저기에 붙은 이… 차마 이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부적’이 한두 장이 아니었다는 거지. 남의 집 대문에 붙은 광고 스티커도 아니고 그냥 짝짝 떼버리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아가씨, 무서운 표정 하지 말고 제발 부탁이니 섬세하게 다뤄줬으면 좋겠네. 흠집만 나도 몇만 탈랭이 우습게 나가니 말이야.”
…몇만 탈랭, 그렇게 말하면 성질대로만 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하나하나 부적을 손수 마력을 흘려 넣어 정성 들여 불사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잡담이 오갔다.
“휴. 아가씨가 마법사라서 다행이지 뭐야.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려버릴 것 같으니까.”
“그쪽 분이 마법사였다는 건 꽤 의외였지만요.”
“그런 말 자주 듣곤 하지. 뭐, 정식으로 배운 마법사도 아니고 그냥 주워들은 정도지만 말야. 의외로 어떻게든 되더라고, 그런 거?”
고정관념, 고정관념.
마법사라고 모두 술라처럼 로브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도, 설마 이런 경박해보이는 사람이… 마법사처럼 보인 건 사실 두 번째인가.
[단장. 기관실에 있어?]
“오, 무슨 일이지 키르?”
[기관실이면 가깝지? 화물 좀 점검하려는데 가능하면 빨리 와 줘.]
확성기에서 새어나오는 호출에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곤 잭 단장은 갑자기 내 손을 텁 잡았다. 영업용임에 분명한 댄디한 웃음이 남자다운 얼굴에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아가씨한테 여기를 부탁해도 될까?”
“…난 외부인인데, 괜찮은 거에요? 진짜?”
“뭐, 그 이상한… 스크롤만 떼주면 되니까. 얼마 안 남았고. 그럼 부탁하겠어. 수고비는 잘 셈해줄 테니 말이야.”
잭 단장이 표표히 기관실을 나서고, 잠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는 수 없지. 얼른 끝내버리자. 더우니 로브를 벗어버리고, 안에 입은 셔츠의 소매도 걷어붙이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기를 얼마쯤 지났으려나. 표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적을 하나하나 불태우고 있으려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슬슬 몸 안의 마나가 동나는 것이 느껴졌다…. 으으, 괜히 또 달아오르고 싶지 않은데. 일단 적당히 하고 잠시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땀도 식힐 겸 기관실을 나섰다. 하부 선창으로 통하는 짧은 복도로 나온 것만으로 시원함이 스며드는 것 같다.
“존나 덥네….”
아, 덥…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땀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꽤 성가셔서 손등으로 훔쳐내려니… 어라, 저 녀석. 그 건방진 꼬맹이 아냐.
“야, 너. 거기서 뭐….”
“쉿!”
왜 여기있는지는 모르지만 뭘 하고 있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게다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는 더더욱 모르겠고.
꼬맹이는 어둑어둑한 복도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쉿, 쉿 하고 건방지게 어디로든 가버리라는 듯 손짓했다…
알다시피, 난 그런 대우를 받으면 오히려 더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싶어지는 오기 쩌는 성격이라고. 좆까, 하고 다가가자 녀석의 얼굴에 당혹이 번졌다. 대체 뭘 봤길래.
“잠…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 점검, 이…”
키에리의 목소리였다.
당황스러움이 짙게 깔린 가쁜 숨소리가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항. 왜 꼬마가 그렇게 놀랐는지 알 것 같다.
“뭐 어때, 키르. 잠시 아무도 안 보는 틈에, 이렇게…”
“꺗, 앗…! 싫, 어… 하아, 잭. 그러면 이상한 소리 나와버…”
꽤 능숙한데. 눈을 가늘게 뜨고, 묘하게 에로에로한 분위기에 조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잭 단장의 손이 능수능란하게 키에리의 살결을 꾹 움켜쥐어 주무르고, 파고들 때마다 키에리의 숨결이 점점이 터졌다.
해방감이라고 해야 할지, 고통과 쾌락, 양면이 피부에 점점이 스며들어가는 와중 몸을 부끄러운 듯 한껏 웅크린 키에리가 입술알 달달 떨며 애원했다.
“아응, 이런 거어… 좀 더, 제대로 침대에서. 해 달란 말… 야, 이런 데에서는 싫, 어….”
과연. 분명히 침대에서 누워서 제대로 받고 싶을 것이다.
마사지, 엄청 기분 좋아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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