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2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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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밖으로 스쳐 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이전 세계에서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빗자루를 타고 비행했을 때보다도 더 높은 고도로 날고 있다. 조금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지.
“좋아. 이대로 앞질러가서 짐마차의 진로를 막아버리면 만사 오케이란 말씀이야.”
잭 단장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작은 술병을 선장석에 앉아 홀짝거리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거드름을 피웠다. 키를 잡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아무래도 키에리의 업무인 모양이다.
“자아, 자아. 손님 여러분. 잠시 갑판으로 나가서 경치를 구경하는 걸 추천해. 바다로 나갈 거거든. 조금 고도를 낮출 테니까. 키르?”
“Aye, sir~”
댄디즘을 한껏 뿜어내면서 친절한 아저씨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잭 단장의 말에 키에리가 키를 조작했다. 바로 눈앞을 스쳐가던 구름이 천천히 머리 위로 솟구쳐올랐다. 더 정확하게는 이 비행선이 점점 하강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바다라고 해도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 세계에 온지 대략 2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처음 1년을 머물렀던 레짐도, 그 다음 1년을 머물렀던 왕도도 전부 바다에 맞닿은 항구도시여서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잭 단장이 자신만만해하는 걸 보면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지 싶었다.
“가 보자, 카르티.”
“엉? 어, 어.”
키에리를 묘하게 흘끔거리고 있던 카르티의 손을 붙잡고 선실을 나가 갑판으로 나갔다. 어느 정도의 고도를 유지한 채 하늘을 가르고 있는 ‘큰까마귀호’의 그림자가, 푸르게 펼쳐진 물결 위에 드리웠다. 확실히… 장관이었다.
이따금씩 날치 같은 물고기가 튀고, 푸르게 넘실거리는 파도가 몸을 뒤틀었다가, 넘어졌다가… 그대로 거대한 물보라에 섞여들어 가라앉는 광경이 되풀이되었다.
비슷한 광경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때는 페리링과 함께였고, 용으로 변신했던 대마법사 술라의 등이었다.
불타오르는 배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어서, 밤바다의 경치고 뭐고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여기에 페리링이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텐데.
웃음을 띤 채로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쩐지 바로 옆에서 시선이 뺨에 닿고 있는 게 느껴진다. 왜 이래, 얘는.
“…바다를 보라고 나온 거 아니었어? 왜 날 보고 계시나요, 카르티 씨.”
“어? 어, 어. 미안.”
사과까지 할 일이었나? 이 녀석 요즘 묘하게 이상스럽게도 군단 말이지.
그렇게 잠시, 눈 아래로 펼쳐진 바다의 맨살 그대로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갈매기처럼 매끄럽게 나아가는 큰까마귀호의 비행도 크게 나쁘지 않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아, 그럼 토미, 내려가서 식량을 좀 확인해줘. 쥐가 먹었으면 조금 골치가 아플 테니까.]
[키르 누나, 쥐고기 육포는 이제 싫어…. 고양이 한 마리 기르자, 좀.]
[오, 그건 곤란해. 난 뭣이냐,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말야.]
다만 선실에서의 대화에 투덜거리면서 선창으로 내려가는 발소리까지 들린다는 건 NG려나.
평소에도 저런 분위기로 논다고 생각하면… 꽤나 느긋한 도적단도 다 있다고 생각한다.
도적단인지 유적단인지.
[우와아악?! 서, 선창에 엄청나게 커다란 사람이… 읍…!]
다급함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졌다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순간 등에 오한이 스쳐지나가, 바로 옆에 있는 카르티의 어깨를 붙들고 옆으로 몸을 굴려 쓰러뜨렸다.
까앙, 하고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둔중하게 후려치는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등 뒤로 시선을 옮겼을 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2m를 훌쩍 넘기는 건장한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면 놀랄 수밖에 없지 않나.
“…실수했군.”
나지막하게 뇌까리는 그자는,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의 형태는 이제껏 이 세상에서 보아왔던 것들과는 달랐다. 우아한 곡선이 칼날을 따라 휘어졌고, 파도가 치는 듯한 무늬가 겉면에서 일렁였다.
손에 든 짧은 칼. 그리고 그보다는 긴 칼 한 자루가 더 허리가 매달려 있었다. 칼이 들어있는 칼집과 빈 칼집이 한데 묶였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키만큼이나 길고 두꺼운 칼이 한 자루, 등에 매여 있었다.
그는 검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솜씨가 서투르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
아마… 나나 카르티를 죽일 생각이 없어서였겠지. 유감스럽다는 듯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며, 코를 한번 킁 울렸다.
“…당신, 누구야.”
꽈악… 이 상황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를 쥐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카르티도 표정을 굳히면서 조심스럽게 검을 뽑아 손에 쥐었다. 방패를 두고 온 나머지 손이 초조하게 꼼지락거리다가 그저 양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남자는 천천히 짧은 칼을 칼집에 되돌리고 그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느릿하고 우아하게, 그리고 물 흐르듯이 정갈한 움직임으로 서두르지 않고 두 번째 칼의 자루에 손끝만을 대고, 뽑지 않은 그대로.
칼자루에 손가락만을 얹고,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추고.
그것이 이 사내의 전투태세라는 것을 검술에 문외한인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봉록에 받고 움직이는 병졸일 따름이오. 내세울 이름도, 지위도 없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늑대 같은 인상의 사내는 격정과는 거리가 먼, 그러나 날것의 야성을 품은 고요한 눈동자로 주위를 빈틈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롱소드를 쥔 카르티와, 지팡이를 겨눈 나를 동시에 경계하면서 묵직하게 자세를 굳혔다.
공기가 다리를, 손을, 목을 붙잡은 것처럼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카르티도 표정에 답답함을 띤 채 어찌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무겁다. 그리고 무섭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싸움은 사내의 바로 뒤쪽에서부터 발화(?火)했다.
끓는점에 다다른 물처럼, 사내의 손이 움켜쥔 칼자루를 쥐고 뽑아, 그대로 발을 축으로 한 바퀴 춤추듯 휘돌았다.
챙,
칼끝이 부딪히고, 떨어진 뒤, 다시 한번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카르티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호오.”
칼끝과 칼끝이 서로 부딪히고, 튕겨내고, 밀어내면서 점 하나를, 그리고 선 한 줄기를 다투는 공방이 이어졌다. 사내의 양손이 긴 칼자루를 움켜쥐고 검을 가로로 눕혀 겨눴다. 화살 같은 찌르기를, 끼어든 자가 커다랗게 손에 든 커틀러스의 날을 부딪혀 튕겨냈다.
“이거이거, 토미의 말마따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는데? 이렇게 큰 쥐가 돌아다니면 선창의 식량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
후우, 후우, 후우…
몇 초만의 공방으로 잭 단장의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굵게 구슬을 이룬 땀방울이 턱에서 뚝 떨어졌다. 입가로 흐르는 땀방울을 핥아내는 혀에 걸린 입가는 댄디즘한 스마일을 유지하고 있는 게 참, 그다웠다.
“아니, 아니. 실례했어. 쥐가 아니라 맹수 부류지, 댁은. 안 그래? ‘늑대원숭이’ 형씨.”
“‘늑대원숭이’라고?!”
카르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뭐야, 유명한 사람이야?
“난 그냥 모험가들 겁주려고 만들어낸 얘기인 줄 알았는데….”
카르티가 망연하게 중얼거리는 와중 사내, ‘늑대원숭이’는 여전히 검을 쥔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후우우…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좋소. 귀공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상관하지 않소. 나는 그저 봉록을 받는 만큼 칼을 휘두르는 병졸에 지나지 않소.”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말투를 구사하는 그는 이 세계에서의 모험가나 기사, 라기보다는… 무사에 가까운 풍모를 띠었다.
잭 단장이 히죽거렸다.
“우리 단원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기절시킨 것도 형씨의 솜씨인가?”
“봉록이 따르지 않는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을 방침으로 삼고 있소.”
…대충 어떤 인물인지는 알 것 같았다.
대가를 주면 사람을 태연히 죽이지만, 대가가 따르지 않는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을 프라이드로 삼는 그런 인종. 보통 그런 직종의 인간을 이 세계에서는 용병이라고 불렀지.
“그 행상인은 그럼….”
“고용주의 물건에 손을 대려고 했던지라. 그 입을 막는 것이 내 계약의 내용이었소.”
…물건?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설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포션 한 병을 말하는 건가…? 스르륵, 하고 늑대원숭이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윽, 하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돌려주시겠소?”
“…윽.”
“뭐야, 로제. 너 뭔가 알고 있…”
“그냥 줏었을 뿐이야! 어, 얼른 이거 가져가요. 이거 가져가고 나면 얘기는 끝인거지? 이게 대체 뭐길래!”
…솔직히 말해 조금 그 기백에 압도되었다. 어디 가서 쫄지 않고 사는 게 내 신조인데, 이건 내가 슬쩍하려고 했던 게 있는지라 마음이 심하게 켕겼으니까.
얼른 케라우노스가 준 무한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내밀자 그 약병이 내 손을 떠나 둥실 떠올랐다. 사내가 그 약병을 입으로 받은 뒤 천천히 품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사내의 입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셨소? 이건… 나로서는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내방자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약이라고 들었소이다.”
에?
…그러니까, 걸리버가 쓰는 스킬을 사용하게 해 주는 약이라고? 그게?
잠시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은 채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잭 단장이 겨우겨우, 그 침묵을 깼다.
“하, 하하… 말해줘서 고맙긴 한데, 형씨는… 용병치곤 꽤 입이 싸시군?”
“비밀 엄수의 계약은 맺은 바 없소.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니 말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음. 그러니까 입막음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지 않아서 말해줘도 아무 문제 없음, 이란 거네.
조금 저 사내를 고용한 사람이 불쌍해졌다. 나름대로 엄청난 비밀… 일지도 모르는데.
그럼 기왕 듣는 것 조금 더 물어두도록 할까.
“…이 약은 어떻게 만들죠? 어디에서 만들었고, 이 약으로 무엇을 하려는 거에요?”
“모르오.”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대답이 바로 튀어나오는 것에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늑대원숭이의 눈이 힐끔, 비행선의 날개 너머로 펼쳐진 물길에 향했다. 잭 단장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는지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이 장소와 고도라면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나겠군.”
“저 자식을 막아!”
그답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 하지만 카르티와 나, 그리고 잭 단장이 달려드는 것보다 늑대원숭이가 한 마디 진언을 읊는 게 빨랐다.
“옴!”
그리고 발을 크게 구른 순간, 선체가 갑자기 한쪽으로 쿠당탕 기울었다. 확성기에서 키에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구 튀어올랐다.
[엔진이 갑자기 멈췄어…!]
“뭐라고오오오오?!”
쿠당탕, 아무렇게나 휘둘리려는 몸을 간신히 선체를 붙들어 지탱한 잭 단장이 그 와중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당혹한 소리를 높이는 사이, 그 선체를 붙든 늑대원숭이는 사죄하듯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그저 반나절 정도 잠시 날지 못하게 했소. 실례하겠소이다.”
“기, 기다려! 엔진을 망가뜨린 건 아니겠지?! 이번 달도 적자일 수는 없다고!”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훌쩍, 바다를 향해 몸을 날리는 늑대원숭이의 등 뒤에 비통한 잭 단장의 비명이 따라붙었다.
[다들, 뭐든 꽉 붙잡아! 불시착할 거니까…!]
자아, 이제 사소한 문제라면.
‘떨어지는 데에는 날개가 없다’는 체험을 이제부터 하게 될 것이란 건데.
이래서 비행기에 타고 싶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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