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2 3 /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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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왁, 그로테스크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죽어있는, 위턱부터 통째로 사라진 크라수스의 사체를 본 카르티가 보자마자 속이 더부룩한 반응을 했다. 나부터도 속이 메스꺼운데 오죽할까.
“이거 참. 좋지 않아. 좋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단순히 인질 협상을 핑계로 밀수품 조사나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으나, 실제로 죽은 사람이 나와버려서야 앞으로의 일이 꼬일 수도 있었다.
“은근슬쩍 부수입도 챙길 수 있을 일이라고 기대했건만.”
“그럼 이번 달도 적자인 거야? 토마토 수프는 이제 슬슬 지겨워지려고 하는데.”
“배부른 소리 말라구, 키르. 아줌마의 토마토 수프는 끝내주잖아.”
키에리는 별로 동의할 수 없다는 얼굴이지만, 이쪽은 당분간 토마토 수프 같은 건 입에도 대기 싫어졌다. 사방에 난자한 ‘토마토 수프’가 머릿속을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탓에.
“단장! 단장! 단장!”
“오, 토미. 지금은 이쪽으로 오지 않는 게 좋아.”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누군가 생각했다가, 겨우겨우 그 길을 막았던 꼬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지? 토미. 자, 거기 서서 얘기하도록.”
“아래로 내려갔던 조가!”
뭐 이해는 한다. 이 광경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한테 보여줄 게 아니긴 하지. 마치 흥정에 실패한 장사꾼처럼 유감스러운 얼굴을 한 잭 단장이 한 걸음 물러서서 꼬마의 앞을 후리후리한 몸으로 가로막자, 그 앞에 서서 꼬맹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전부 당했어! 짐마차는 전부 내빼버렸고!”
“…단원들은? 죽었나?”
“아니, 그냥 기절만… 에?”
기절만 했다고?
보초도, 매복조도 전부 기절한 채로 발견되었다. 뭔가 께름칙한 예감이 뒷목을 근질거리게 했다… 내 얼굴을 보곤, 카르티가 한숨을 쉬었다.
“또, 또 오지랖 부리려는 얼굴 하고 있네.”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얼굴 하면 남의 일에 끼어들 생각을 하는 거라고, 너, 명색이 마녀면서 표정 읽히는 게 너무 쉬워.”
즈왈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팡이인 채로, 잡은 내게 동의의 의사를 표해오는 웬즈데이까지. 너흰 누구 편이야, 대체.
키에리가 팔짱을 끼고 동조한다, 해골 복잡한데 너까지 그러지 말아줘, 진짜.
“로즈는 옛~날부터 그랬지. 그래봐야 1년 전 일이지만.”
“옛날이야기로 들어가면 너나 나나 좋을 거 하나 없으니 입 닥치자.”
이마에 실핏줄을 띄운 채 웃으면서 우아하게 협박하니 못 본 척 딴청을 피우는 키에리. 일단 저 입은 이렇게 막았겠다 싶고. 아무튼 지금은 농담 따먹기나 한가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온리 마이 웨이를 당당히 고수하는 너희 단장을 좀 본받으라고.
“뭐 아무튼… 뭔가 이상하군.”
“뭐가요?”
“우리 단원들은 그저 기절시키는 정도로 끝냈으면서 왜 이 남자는 여기에 죽어있는 거지?”
…듣고 보니 이상했다. 토미인지 하는 꼬맹이의 말로는 ‘죽었다’고는 하지 않았었지. 그냥 기절만 했다고. 오히려 그 인원을 전부 빠짐없이 기절만 시켰다는 게 이상한데.
“흠. 그만큼 철저하게 입막음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겠나. 상당한 실력자라고 예상되는군.”
전투광 기질이 있는 즈왈트는 드물게 의견을 피력하며 흥미를 보였다.
“어지간히 그 짐에 수상한 게 있었던 모양이네. 대체 뭐길래…?”
“뭔가 아는 것이 있어요?”
카르티가 중얼거렸고, 내가 잭 단장에게 물었지만 그는 팔짱을 낀 채 입을 무겁게 닫아 침묵을 지켰다. 침묵하는 남자는 댄디하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 짜증난다.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야, 레이디. 다만 알브레히트로 간다고 했던가? 거기에 풀리면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물건이긴 하지.”
“무슨 마약 같은 거라도….”
무심코 내뱉은 말이지만 꽤 그 말에 신빙성이 느껴져서 어깨가 흠칫 떨렸다.
댄디하게 턱을 쓰다듬은 잭 단장은 한번 더 크라수스의 시체를 살피곤 허리에 찬 커틀러스의 폼멜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야 원.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것도 나름의 인연인데 일단 시체를 수습해주는 게 좋지 않겠어?”
“잠시… 좀 살필게요.”
혹시 가짜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뺨을 짝, 때리곤 각오를 단단히 한 뒤 크라수스의 시체로 다가갔다. 조금 긴장한 손끝으로 꾹 눌러보자 굳기 시작한 피부의 감촉이 꽤 차가웠다. 으으, 기분 나빠.
나도 나름의 골렘 사용자로서… 뭐 골렘을 다루기 시작한 건 지극히 최근 일인 데다 템빨이었지만. 아무튼 골렘 사용자로서, 이 사체는 일단 골렘은 아니었다. 끔찍한 사체의 모습이 꿈에 나올 것처럼 끔찍해서 욕지기를 참고 얼른 살핀 뒤 물러섰다.
내가 물러서자, 뒤따라 도착한 유적단원 두엇이 속이 메슥거린다는 얼굴을 한 채 얼른 자루에 크라수스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이 보였다. 축 늘어진 팔이 자루에 들어가면서 늘어져, 뭔가가 소매 아래에서 떨어졌다… 뭐지?
“…포션?”
아주 조그마한 약병이었다. 빛이 닿는 면에 따라 이리저리 색이 바뀌는 포션을 조금 살피다가 품에 집어넣었다.
“어이, 레이디. 얼른 오지 않으면 곰 나올지도 모른다고? 이 산중에는 배고픈 곰이 꽤 많으니까.”
“가요, 가.”
…곰이라니. 본능적인 두려움이 엄습해, 얼른 잭 단장과 조금 앞서간 다른 일행의 뒤를 쫓아 걸었다. 대처를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산짐승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제일이지.
“뭐 아무튼. 이걸로 심증은 굳어진 셈인데. 이 친구는 적당히 양지바른 곳에 우리가 묻어주기로 하고… 이거, 일단 우리도 발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군. 키르.”
“OK. 단원들 준비시킬게.”
“나머지 단원들은 짐 싸서 이동하라고 전하고.”
뭔 얘기들을 하는 거야?
아무튼, 캠프가 있던 구릉지대에 도착하고 나니, 단원들은 벌써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확 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거 분명, 아까 천으로 덮여있던 그 덩치…인데?”
“후후. 보고 놀라시라. 래핑 크로우 유적단의 자랑이지.”
의기양양하는 키에리.
눈을 비비고 봐도… 뭐라고 할까.
지금까지의 여기 생활상과는 약 200년 정도의 문명 격차를 웃도는 물건이었다.
“비행기…? 아니, 비행선… 아니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얼핏 보기에는 비행기와 선박의 혼혈쯤 되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대형 요트 정도의 길쭉하고 시커먼 몸체의 양쪽에 날개가 달렸다. 두툼한 몸체를 랜딩 기어가 지지하고 있는 게… 왜 이런 게 시대상 무시하고 이런 데 있는 거야?
“자세한 건 나중에. 일단 ‘큰까마귀’ 호에 오른 것을 환영해.”
“이봐, 키르. 그건 단장인 내가 해야 할 대사가 아닌가?”
“밥도 돈도 먼저 먹는 쪽이 주인이라는 게 단장의 방침 아니었어?”
의기양양해하는 잭 단장과 키에리를 보면서, 조금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카르티에게 잽싸게 귀엣말로 속삭였다.
“넌 나보다 여기에 대해 잘 알잖아. 이런 거 본 적 있어?”
“율령교회 케루빔에서 비슷한 걸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 정도야. 실제로 보는 건 나도 처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선실로 통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잭 단장과 키에리를 바라보며 나는… 그냥 편하게 지팡이를 타고 날아서 올라탔다. 왜, 치마 입었단 말야.
“이거, 정말 날 수는 있는 거야…?”
“레이디는 의심이 꽤 많은 성품이군? 마법을 좀 믿게나. 마법사잖나.”
조금 못 미더운 눈으로 선실로 들어갔다… 브릿지라고 해야 하나. 중앙에 커다란 의자가 있고, 잭 단장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앉았다. 키에리가 키를 잡은 가운데 승무원 몇 명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아, 그럼 큰까마귀호, 이륙!”
“Aye, Aye, Sir!”
럼주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은 일동의 구령과 함께 선체가 부르르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우와아아악?!”
진짜로 날았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카르티가 비명인지 탄성인지 애매모호한 소리를 질렀다.
…난 오히려 겁이 나서 조금 위축된 채 웅크리면서 한쪽 벽면에 달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딱 그거다, 마치 운전 서투른 운전수가 모는 차에 올라탄 것 같은 그 기분.
“이거, 갑자기 확 떨어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비관적인 아가씨. 비행 중인 브릿지에서 불길한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안심시키는 듯 껄껄, 호기롭게 웃는 잭 단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해체 중인 캠프의 풍경이 멀어지는 가운데, 서서히 가속하는 비행선… ‘큰까마귀호’에 몸을 실은 기분은 불안감뿐이었다.
떨어질 것 같으면 가장 의지가 되는 건 이 녀석뿐.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낙하산 대신 지팡이, 웬즈데이를 양손으로 꾹 움켜쥐면서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아무튼, 현실감도 낭만도 눈곱만큼도 없는, 불안함밖에 없는 비행이 시작되었다.
부디 도착하는 곳이 여신의 곁만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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