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51화 (51/157)

〈 51화 〉 2 ­ 2 / 기억을 잃어버린 갑옷 즈왈트에게(8)

* * *

(8)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분명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견디지 못하고 뱃속의 내용물을 모조리 쏟아내고 있었을 테니까.

발에 차이는 것도 해골, 눈을 채우는 것도 해골, 텅 빈 눈구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같은 머리뼈들이 자갈처럼 사방을 채우고 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케라우노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으햣!”

조금 찌릿하다 싶은 정전기를 일으키는 강수까지 두더란다.

흐갹, 하고 갑자기 머릿속까지 빠직 흘러오는 정전기에 부르르 몸을 한번 떨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눈앞에는 여전히 해골로 된 자갈밭이 쫙 깔려있다는 사실도 구역질나도록 변하지 않았고. 머리뼈만으로 이 정도라니, 줄잡아 백 명은 훨씬 넘겠는데…

“대체, 무슨 일이냐고 이거….”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흑마법사이고, 또 강령술을 익혔다보니 구체적이지 않아도 이 해골들이 죽음의 직전에 느꼈던 공포와 공황이 스멀스멀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아 무척이나… 어질어질했다.

조금 비틀거리는 몸을 케라우노스가 붙들었고, 학학 숨을 내쉬다가 겨우겨우 제 발로 버티어 설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이딴 짓을 한 건데….”

말할 것도 없었다.

이 해골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그 키메라에게 던져진 먹이였고, 키메라는 주어진 먹이를 마구 집어삼켜, 씹고, 물어뜯은 다음 ‘불필요한’ 부분만 게워내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욕지기가 뱃속에서 마구 부글거렸다.

저 중에 카르티가 있고, 로젤리아가 있고, 카테르네, 페리링, 루시탄이… 우욱, 헛구역질이 또 올라와서 입을 손으로 황급히 막아야 했다.

“진정해, 아가씨.”

“하아, 하아… 용케, 케르 씨는 멀쩡해보이시네요.”

“난 익숙하니까.”

이런 광경이 익숙하다는 것인지, 아까의 격정과는 달리 지금은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나 결코 분노를 식혔다는 것이 아니었다.

한껏 타올랐던 분노를 지금은 차갑게 식히고 두들겨서… 단번에 찔러넣을 예리한 분노로 그렇게 벼려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괜찮, 아요.”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속이 뒤집힐 것 같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나맥이 징징 울려대고 있다. 죽음과 한탄으로부터 스멀스멀 벌레처럼 몸을 기어오르는 삿된 마력에 마나맥이 기뻐하면서 마력이 쌓여가는 게 전혀, 달갑지가 않았다.

죽은 이들의 기억, 단말마,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눌어붙어서, 아까부터 이상하게 빨리 뛰는 심박이 어지러웠다. 괜찮을 리가 없지. 핼쓱해진 안색을 케라우노스에게 들켰는지, 그가 등을 팍, 하고 한 대 세게 후렸다. 아파!

“정신 차려!”

“꺗…!”

허리가 확 휘면서 얼얼해진 등. 분명 등에 손자국 났을 것 같다… 끅, 하고 등을 문지르다보니 찔끔 눈꼬리에 눈물도 맺혔다.

“아가씨, 이쪽 일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심심찮게 맞닥뜨리는 일이야. 각오는 단단히 해 두라고. 해골 좀 굴러다니는 정도로 일일이 패닉에 빠지거나 하면 이 일은 못 해.”

…변명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휴우, 숨을 내쉬고는 일단 마음부터 가라앉혔다. 마법의 기본. 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라. 평정심을 유지하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아가씨.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나와 카르티는 아가씨에게 고용되어서 여기에 왔다고. 작전을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조언해줄 거고, 터무니없다면 반대도 하겠어. 하지만 작전을 세우는 건.”

케라우노스의 두꺼운 손가락이 내 이마를 꾹 눌렀다.

윽, 하고 그 이마를 다시금 만지작거리면서 조금 부루퉁한 표정이 되었다.

“아가씨 몫이야. 그러니까 내가 묻겠어. 이제 다음은 어떻게 할 거지?”

…끙. 여기에서도 시험관 모드에요?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그 말에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래, 내가 권해서 데려온 일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의지해서만은 안 돼. 나도 내 할 일을 똑바로 해야지. 조금 눈을 감고, 이제껏 이 키메라를 쫓으면서 모인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추측 하나. 이 키메라는 다른 짐승을 잡아먹으면서 그 장점을 취하여 몸을 변형시킬 수 있는 짐승이다.

추측 둘. 그리고 그 변형 형질… 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은 아마도 생물체의 뇌나 심장을 섭취함으로서 형질을 획득할 수 있다.

추측 셋. 키메라가 자연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고, 누군가가 이 우루 늪지의 키메라와 접촉하는 듯한 낌새가 있다.

추측 넷. 그 키메라에게 대량의 사람을 먹게 했고… 그 키메라는 유독 카르티에게 반응했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마지막에 끈질기게 습격한 것도 카르티였다.

…설마, 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단서를 모아놓고 보니 하나로 귀결되는 키워드가 있었다.

그 결론을 떠올리고 나면 카르티에게 닥쳤던 불행이…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닥칠 수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몸이 바들거렸다.

“…정말정말, 아직 추측의 영역이지만요.”

그리고 욕지기도 다시 솟구쳤다.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씹어뱉듯이 생각이 미친 결론을 입 밖으로 내었다.

“이건 누군가가… 걸리버를 노리고 만들어낸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케라우노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해한다. 그 말한 한 자신도 논리가 파탄되었고,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걸리버 사냥을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깔린 대량의 해골이 ‘머리뼈’만 있는 것도, 키메라가 카르티만을 집요하게 노린 것도 설명이 된다.

자신은 우루 정글에 들어온 이래 커스터마이징을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튜닝 한 번을 그것도 카르티가 먹히기 직전에 썼을 뿐이니 그전까지 키메라는 내가 걸리버였던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르티는… 야영하는 밤마다 스킬을 써서 무기와 장비를 수리해줬다.

만약 녀석이 걸리버를 노리는 사냥개 역할이라면, 카르티를 가장 먼저 노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와이더닛(Whydunit), 왜 걸리버를 노리는지는 아직 단서가 없다.

걸리버가 이 세계에 올 때 갖고 온다는 스킬에 관련해서일까? …하지만 그건 역시 나중의 문제다.

아무튼, 자신은 결국 마지막에 키메라의 바로 눈앞에서 튜닝을 썼다.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면 녀석의 다음 표정은 나… 일 수도 있고.

“방법이 하나 떠오를 것도 같아요.”

생각을 정리한 끝에 약간의 실마리 같은 게 잡힐 것도 같았다.

물론 몇 가지, 내가 추측한 사항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작전이다.

첫째. 놈이 가장 먼저 노리는 게 케라우노스가 아니라 나여야 했고.

둘째. 앞으로 하루. 하루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셋째. 그때까지 놈의 뱃속에서 버티고 있는 카르티와 즈왈트가 버텨줘야 한다.

이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어쩌면… 녀석을 잡아내고, 카르티와 즈왈트를 무사히 구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될까. 저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이 작전을 성사시킬 수가 없다.

케라우노스에게 일단 작전의 개요를 설명한 결과, 케라우노스도 다소 미심쩍어했지만 그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무리한 작전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무리한 작전 정도가 아냐. 내 생각엔 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도와주시겠죠.”

무리한 작전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그런 작전으로 카르티를 구할 수 있다면 어쨌든 케라우노스는 협조해줄 것이었다.

그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카르티의 아버지였으니까.

일단 하루가 지나야 가능한 작전이고 보면, 카르티와 즈왈트는 저 괴물의 뱃속에서 하룻밤 더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말이 된다….

자신이 그 상황이었다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겠지. 미안한 일이고, 사과도 해야겠지만 그래도 섣부르게 행동하면 오히려 그들이 위험했다. 하루, 하루만 더 참아줘.

“결국 내일이 되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일단 아가씨도 쉬어둬. 여차했을 때 몸이 버텨주지 못하면 결국 전부 다 끝이니까.”

“…그렇죠. 케르 씨, 잘 좀 부탁드릴게요.”

녀석의 은신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바늘로 된 침낭에서 누워 잠을 자야 하는 옥죄는 기분으로 보내는 하룻밤. 눈을 뜨고 나면 그야말로 결전의 시간일 터이다. 시간이 일 초 일 초 지나는 것이 초조하게만 느껴지는 하룻밤이었다.

그렇게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작전과, 절대로 성공시켜야한다는 결의, 그리고 일말의 불안감.

그 모든 것이 어지럽게 뒤엉킨 채, 키메라의 둥지 앞에 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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