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2 2 / 기억을 잃어버린 갑옷 즈왈트에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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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드래곤이라고? 저게?”
마치 악몽 속 어딘가의 보일러실에서 기어 나온 살인마 같은 몰골의 괴물이 드래곤이라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드래곤을 아예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술라가 드래곤으로 변신했던 것을 봤었고. 우아한 회색빛 비늘에 감싸인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날고, 불을 뿜어 배 한 척을 완전히 불살라버린 것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거랑 저게 같은 종류의 생물이라고? 머릿속으로 잘 매치가 되질 않았다. 그 위엄쩌는 모습과 저 흉측한 모습이 같은 종, 같은 과에 속하는 생물이라니.
[…아무래도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주인.]
즈왈트조차도 둘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나오고서야 혼자 나의 드래곤은 저렇지 않아! 라고 강짜를 부릴 수는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끅… 중요한 건 저게 드래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빨리 어떻게든 잽싸게 쓰러뜨리는 거잖아요?!”
그래, 저 괴물의 원래 모습이 드래곤이었든 아니든 그건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빨리 저 괴물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면, 이번에는 이 숲을 며칠이나 뒤져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가씨 말이 맞아, 카르티, 발을 묶어라!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 다리를 공격해!”
가브롤의 지팡이가 그립다. 참, 이럴 때를 대비해 이후에 어떻게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웬즈데이를 데려올 방법을 모색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 녀석을 빨리 쓰러뜨리는 게 먼저다!
비대하게 부풀어오른 살집에 튕겨나가 바닥에 뿌리를 내린 씨앗들이 늪지의 바닥에 고인 마력을 뭉텅이로 잡아먹으며 싹을 틔웠다. 본래 녀석의 몸에 뿌리를 내리게 해 직접 묶을 생각이겠지만, 저렇게 움직임이 느릿느릿하면… 될 것 같다!
자라나라!
지팡이를 겨누면서 외쳤다. 땅에서 싹을 틔운 씨앗이 확 자라나서… 키메라에게로 뻗쳐갔다. 땅을 기어 다리를 타고올라간 가시덩쿨이 푸욱, 수월하게 살갗을 찢으며 타고올라가 위턱과 아래턱에 감겨붙어 조여들었다. 잠시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금이에요!”
“좋았어!”
키메라의 발이 묶이자 케라우노스가 마무리를 짓겠다는 듯 뛰쳐나갔다. 「장미여왕의 포옹」은 내가 장기로 삼은 주문이라고, 그렇게 쉽게 풀 수 없을걸! 케라우노스가 가슴 앞에 모은 채 커다랗게 벌려낸 손바닥 안에서 파직거리는 전격이 구형으로 뭉쳐져 점차 에너지를 품은 채 응축되었다.
이쪽의 피부에까지 따끔따끔한 느낌이 스칠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의 전격이, 마치 손안에서 먹구름이 낀 것처럼 우르릉, 하고 천둥까지 일었다.
다른 마법사가 사용했다면 적어도 5소절 이상의 영창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케라우노스의 ‘영창가속’은 비약적으로 영창을 단축시켜 주문을 완성했다.
하늘로 한 손을 뻗쳐올라가, 구형의 전격이 움켜쥐려는 듯한 손아귀에서 이번엔 창 모양으로 형상이 일그러져 고착되었다. 마치 번개의 신이 심판을 내린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천둥이 울렁거렸다.
케라우노스의 휘몰아치는 금색 머리와 수염에 푸른 전류가 파직거렸다.
“뒈져…라, 「아스트라페」!”
그리고 내쏘았다.
흡사 신의 심판을 빌려온 것 같은 한 줄기 번개가 날아들어 키메라의 구강을 그대로 불태웠다. 괴물의 입안, 그리고 「장미여왕의 포옹」까지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전격이 어마어마한 빛의 폭발을 일으켜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끓어 넘쳤다.
빛이 걷히고, 온몸이 까맣게 그을린 야수가 이윽고 그 자리에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벌어진 입과 눈마다 괴사한 조직에서 썩은 고름과 피거품이 흘러넘치고 일부는 지금도 퍼억퍼억 부풀었다가 터져오르며 연기를 피우는 놈의 꼴은 참… 속이 시원했다.
“…해치웠…나?”
“그러엄. 당연하지.”
놈의 숨통을 끊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케라우노스가 거드름을 피웠다. …뭐, 지금은 거드름을 피울 정도의 실력을 입증했으니까. 적어도 헤카이트 당주나 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마법사 시험의 시험관을 맡을 자격이 있다는 정도는, 충분히 입증한 셈이다.
“이 정도면 틀림없이 뒈졌어. 내 손에 느낌이 확 왔다고. 내 마법은 거짓말 같은 거 안 하거든? 얼른 분해해서 마차에 싣고 돌아갈 준비나 하자고.”
“아이고 영감. 한동안 또 거들먹거리겠네. 이번엔 자서전에 뭐라고 쓸 거유?”
“뭐라고 쓰긴. 이번엔 번개로 흉악한 드래곤을 물리친 이야기에 관해서 써야지.”
거들먹거리는 케라우노스와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카르티는 키메라가 완전히 죽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미심쩍은 눈으로 축 늘어진 키메라를 바라보고, 즈왈트에게 턱짓으로 한번 확인해달라고 눈치를 줬을 때였다.
[카르티!]
다급하게 즈왈트가 등을 돌리고 앞서 걸어가던 카르티에게 외치자, 카르티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그 표정이 당혹감에 일그러지면서 작달막한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카르티…!”
죽은 체를 했단 말야?! 그 전격을 맞고 살아있을 리 없다고 여겨 잠시 방심한 사이, 꼬리 하나를 늘려서 카르티를 붙들고는,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발광체가 달린 미끼를 흔드는 초롱아귀처럼 놈은 위턱과 아래턱을 딱딱 부딪치면서 각자 주문을 날리려는 나와 케라우노스의 앞에 카르티의 몸을 슬슬 흔들었다.
벌어진 채 칵칵거리는 키메라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전격 마법을 사용하면 카르티까지 심각하게 다칠 상황. 카르티가 칼을 뽑아 젠장, 하는 소리와 함께 초조하게 꼬리를 후려쳤지만, 불안정한 자세에서 휘두른 칼은 꼬리의 질긴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영감, 그냥… 쏴버려, 아스트라페를 한 방 더 갈겨서 이 자식을…! 끄윽, 끄아악!”
“카르티! 이 빌어먹을 새끼가…!”
공중에 거꾸로 데롱데롱 매달린 카르티의 몸을 다른 갈래의 꼬리가 감았다. 우득우득, 카르티가 입고 있는 갑옷을 우그러뜨리면서 조여대자, 입에서 대번에 쌍소리가 튀면서 지팡이를 겨눴다. 캬아악, 하고 놈이 아가리를 벌리고 카르티를 삼켜버릴 듯 허우적거리면서 괴성을 질렀다.
놈의 아가리와, 턱 전체에 무수하게 돋아난 안구들이 일제히 비웃듯이 일그러졌다. 순간 오싹하게 등골에 오한이 스며들었다. 몸을 조였던 꼬리가 스르륵 풀려나가자, 카르티의 몸에 감겨 있던 금속 장비들이 우수수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안 돼! 케르 씨, 저 자식이…!”
“그렇게 둘 것 같냐!”
케라우노스가 다급하게 짜낸 전격 주문을 내쏘았다. 하지만 한 번 이상 당해줄 생각이 없다고 하듯 놈도 대응 방법을 짜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칵, 하는 소리와 함께 쏘아낸 이빨이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하여 전격 주문을 받아내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아래는 질척질척한 진흙이었다.
휙, 꼬리가 휘둘러져 가죽 갑옷 이외에 방어 장비를 잃은 카르티의 몸을 공중으로 집어던졌다. 으아아악! 하고, 카르티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멀리 들려오다가 점점… 중력에 순응하여 떨어져내리는 그 아래로, 놈의 거대한 아가리가 쩌어억 벌어졌다.
“카르티이이이!”
그 사이에 케라우노스가 아까의 아스트라페를 시전하고 있었지만, ‘영창가속’으로도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을 터였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없어!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즈왈트의 갑옷에 손을 얹고 순간적으로 ‘튜닝’한다. 카르티의 체형에 맞춰, 그 몸을 남김없이 감싸도록… 형태를, 재구성한다, 조금 더 빨리, 빨리…!
튜닝 완료ㅡ 즈왈트 또한 내 의도를 눈치채고, 튜닝이 끝나자마자, 시간상으로는 거의 콤마 이하의 시간의 기다림 후 바로 뛰쳐나갔다.
높은 공중에서 자유낙하하는 카르티의 몸에, 뛰쳐오른 즈왈트의 검은 갑주가 철컥,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입혀졌다. 면갑까지 갖춰서 일절 바깥에서 완전히 밀폐된 갑옷의 착용감은 가히 최악이겠지만, 그래도 부식 방지 주문이 걸려 있는 즈왈트라면 놈의 뱃속에서도 얼마간은…!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덥썩, 즈왈트가 ‘입혀진’ 카르티를 키메라가 꿀꺽 집어삼킨 순간 케라우노스가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득, 아득, 아득… 위아래턱이 맞물리고 움직이면서 이빨을 쾅쾅 부딪쳐대고 씹어대는 섬뜩한 소리에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잡아먹혔다. 먹혔다.
거대한 아가리가 여닫히면서…
케라우노스의 얼굴이 분노한 사자처럼 일그러졌다.
“용서 못 한다… 이노오오오옴!”
케라우노스가 분노로 온몸의 모든 근섬유에 전기를 부풀려 파직파직, 하고 스파크를 튀기며 달려들었다. 키메라는 감히 분기탱천한 케라우노스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날개손을 우악스레 바닥에 휘둘러 진흙탕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 기세 그대로 땅을 박차 날아올랐다.
그 덩치가 그렇게 순식간에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키메라의 거구가 늪지 저편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멀어져갔다.
“거기 서라아아아!”
분노한 케라우노스의 포후(??)가 뒤따라 울려퍼지다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큭… 입술을 깨물면서 지팡이로 바닥을 짚은 채 욱신거리는 몸을 의지하며 헉헉거렸다.
카르티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저 키메라의 뱃속에서 즈왈트의 갑주가 얼마나 카르티를 지켜줄 수 있을까. 초조감이 가슴을 끓이는 가운데, 사냥 실패의 패배감이 다리를 무겁게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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