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48화 (48/157)

〈 48화 〉 2 ­ 2 / 기억을 잃어버린 갑옷 즈왈트에게(5)

* * *

(5)

케라우노스의 작전을 듣고 난 뒤의 반응은 각양 각색이었다.

먼저 알기 쉬운 무인 타입인 즈왈트의 경우에는 반응이 굉장히 심플했다.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지. 빨리 실행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근질거릴 몸도 없는 갑옷이면서. 다음은 케라우노스의 전위를 맡고 있는 카르티인데, 조금 긴가민가한 반응이다.

“…잘 될까, 그게?”

양부에 대해 그다지 믿음이 없는 건가…? 카르티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며 미심쩍어하는 반응을 보여 케라우노스가 슬픔을 액션을 취하게 만들었다. 즉 머리에 꿀밤 한 방을 먹여줬단 얘기다.

나는 조금 비관적인 견해였다.

“글쎄요… 잘 되려나?”

어니스트 시튼이 지은 동물기에 등장하는, 우두머리 늑대 로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간이 만든 함정을 유유히 피하고 농락하는 교활함과 노련함을 갖춘 늑대였는데, 지금 제 꼴이 딱 그쪽이 아닌가 말이야.

나나 즈왈트는 몰라도, 카르티나 케라우노스는 나름대로 그쪽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을 텐데. …일단 이렇다 할 대안도 없고, 그의 작전대로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가능한 냄새를 지워줄 수 있는 위장을 준비하는 것.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진흙과 나무, 이름 모를 덩굴이라 그것을 한데 모아 엮어 일종의 길리 슈트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즈왈트가 쓸 만한 커다란 것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작전은 이러했다.

이쪽이 찾아낼 수 없다면 저쪽이 찾아오게 한다. 이게 작전의 핵심이다.

먼저 녀석과 드잡이를 벌일 수 있을 만한 널찍한 공터에 케라우노스가 서서 녀석을 유인한다. 미끼는 누구라도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누가 나오든 대처가 가능할 정도의 노련함을 갖춘 건 케라우노스일 테니까.

나와 즈왈트, 카르티는 사방에 거리를 두고 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최대한 흔적과 냄새를 죽인 채 대기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연락용 호루라기를 지참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부를 수 있게끔.

“…마법사면서 그 뭐냐. 더 편리한 거 없어? 그 뭐야.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거라든지.”

기지국이 없어서 핸드폰은 못 쓴다, 이 자식아.

카르티가 볼멘소리를 김샌다는 듯 투덜거리자 한번 째려보고는 위장복을 든 채로 일단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쪽으로 먼저 덮쳐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교활하다니까, 정말로.

“그럼 시작해볼까!”

척 봐도 주목받는 역할이라 기세가 한껏 달아오른 케라우노스가 두꺼운 근육투성이 팔을 의기양양하게 팔짱끼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온몸에서 한 번 전극을 내뿜었다. 마른 하늘에 꽈릉, 하고 한줄기 벼락이 케라우노스에게서 하늘로 솟구쳐오르자, 늪지의 새들이나 작은 동물들이 겁먹고 도망쳤다.

“저래도 되는 거야…?”

유인이 아니라 내쫓는 게 목적인 것처럼 강렬하게 낙뢰… 아니 이 경우에는 승뢰라고 하는 게 맞나…? 아무튼 그렇게 번개를 내뿜고 나니 이제 남은 건 기다림 뿐.

…그래, 그렇게 금방 나타날 리는 일단 없지. 하품을 한 번 늘어지게 깨물고 약간의 기다림이 지난 나흘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 졸리면 안 돼. 눈꺼풀이 서서히 축 처져 눈을 덮으려는 것을 민트 같은 식감의 말린 이파리를 씹어서 깨웠다. 정신 차리자고. 봐, 케르 씨는 얼마나 저렇게 의연하게…

“…서 있질 못하네, 저 아저씨.”

케라우노스도 초조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발끝을 까딱까딱거리고 있고, 팔짱을 낀 두터운 상완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아저씨는 이런 거 해 볼만큼 해 봤을 텐데 왜 저렇게 초조해하고 있는 거람.

“하아… 다른 곳은 안 봐도 알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나 케라우노스가 그럴 정도니 카르티나 즈왈트가 얼마나 근질근질해하고 있는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위장복을 입고 있어서 이쪽에서도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품이 났다. 길게 하품한 뒤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가능한 티가 나지 않게 손등으로 훔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5분이었을지 30분이었을지 모르겠다. 케르 씨의 인내심이 슬슬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삐이익, 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 뭐야, 어느 쪽이야?!”

삐익, 삐익, 삐익… 다급한 기색이 묻어나는 소리가 울려퍼진 쪽은 카르티가 숨어있는 곳이다! 아니, 나타나도 왜 카르티 쪽에 나타난 거래?! 문득 돌아보니 이미 케라우노스도 카르티의 위치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뒤였다. 위치상 제일 가까운 건 즈왈트였으니까… 내가 제일 뒤처지게 생겼다!

“진짜 나타난 것 맞긴 해?!”

씁, 일단 뛸 수밖에!

위장복을 벗어버리고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 쪽으로 뛰었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지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달려가보니, 이미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다.

“카르티! 무사해?!”

“아직은… 그럭저럭!”

카르티의 안위는 확인했다. 즈왈트와 케라우노스도 도착한 가운데 수색 나흘 만에 겨우 얼굴이라도 보게 된 우루 늪지를 휘젓어대고 있는 ‘생태교란종’의 모습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저렇게….”

막돼먹은 대로 아무렇게나 생겨먹었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몸통이라는 개념을 어디에 바꿔먹었는지, 몸이 아니라 그냥 커다란 머리통이잖아.

수많은 위턱과 아래턱이 한데 모여 엉켜서 거대한 아가리를 이루고 있었고, 날개와 엉겨 붙은 앞발과 몇몇 종의 특징이 어지럽게 뒤섞인 거대한 뒷발 사이에 미성숙한 팔다리들이 아래턱에 아무렇게나 돋아나 한껏 너울거렸다.

위턱에는 수많은 짐승의 두상이 있었는데, 그 중 코… 쯤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원숭이인지 고릴라인지 오랑우탄인지… 혹은 인간일지도 모르는 영장류의 얼굴도 도드라져있었다.

윗턱에 녹아내린 것처럼 붙은 두상들에는 각각 눈이 달려있는데 그 눈알 하나하나도 제대로 시각을 지닌 것처럼 저마다 꿈틀대는 게 퍽…

“아, 개징그럽네 진짜….”

아침에 먹은 게 별달리 없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지금쯤 속이 메슥거려서 한바탕 토가 쏠렸을 것 같다고.

우둑우둑, 손가락뼈를 풀면서 케라우노스가 너 잘 만났다는 눈으로 키메라를 노려보았다.

“이놈 말고 다른 놈일 리가 없겠구만.”

[그렇겠지. 나타난 이상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여기서 놓치면 다음 전망은 없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다르게 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왜 보란 듯이 도발하면서 유인해내려는 미끼인 케라우노스는 그대로 두고, 하필이면 카르티가 있는 장소에 나타난 거지, 이… 키메라는?

케라우노스가 먼저 주먹에 번개를 끌며 달려붙었다.

“일단 짓이겨놓고 생각해도 되겠지!”

키메라가 입을 벌렸다. 위턱과 아래턱이 벌어지면서 턱뼈를 따라 우악스럽게 돋아난 이빨조차 그간 집어삼켜온 종들의 이빨이 치열이라든지 치악력이라든지 전부 무시하고 제멋대로 뒤엉켜서 돋아나 있었다. 가시같은 이빨 사이사이에 낀 썩은 살점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꾸물럭거리는 혓바닥이 케라우노스에게 먼저 덮쳐들었다.

“으랴아아아!”

빠직빠직빠직… 케라우노스가 손에 낀 장갑이 푸른 전극을 끌면서 곧바로 그 번들거리는 혓바닥에 전격을 때려부었다. 한 사람의 손에서 방출된 전력량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막대한 전격이 플라즈마를 일으키며 끈적한 침에 젖은 혓바닥을 강타했고, 순간 놈의 온… 몸? 머리에서 바들거리는 경련이 일었다.

“먹혔어! 보기와는 다르게 그렇게까지 강한 놈은 아닌데?! 자세히 보면 몸 구조도 엉망진창이라 생각보다 힘이 센 것 같지도 않아!”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날개손 끄트머리의 발톱을 방패로 막아내면서 카르티가 외쳤다. 좋아, 나도 한 방 먹여주겠어…!

가브롤의 지팡이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Shooting!”

급속 성장하는 종자를 심어넣은 마술탄을 키메라에게 연거푸 쏘아냈다. 다소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그 엉망진창은 얼굴에 뿌리내리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조심해라, 주인!]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낙관하지 않는 것은 즈왈트였다. 즈왈트는 나와 키메라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쪽으로 달려와서는 확, 들어올리며 몸을 날렸다!

몇 갈래나 되어 꽁무니에서 너울거리던 꼬리 하나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덮쳐들었었다. 즈왈트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그 꼬리에 보기좋게 넉다운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크아아앙, 녀석이 울부짖었다.

분명히 공격은 먹혀들고 있는데… 울룩불룩하게 부풀어오르는 살점이 탄화되거나 찔린 부위의 살을 밀어내고 새로 차오르는 게 악몽에서 기어나온 살인마처럼 끔찍하게도 생겨먹었다.

“어이어이, 영감. 이놈 설마….”

“나도, 혹시나 하고 있는 참이다.”

키메라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면서 지독한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찔렀다. 뭔데, 뭐냐고? 즈왈트가 어깨에 걸쳤던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미늘창을 쥐었고, 별안간 케라우노스와 카르티가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는 반경에서 몸을 빼냈다.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쳤다.

즉각 마력을 끌어내어 방벽을 치고는 현재 몸에 고인 마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반경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지만,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니까… 아, 버틸 수 있으려나, 진짜!

“난 뭐 이렇게 하는 일마다 평범하게 되는 게 없어?!”

[투덜거리는 건 나중 일이다, 주인!]

즈왈트가 나와 방어벽 사이에 서서는 몸으로라도 내 앞을 막겠다고 버티며 미늘창을 움켜쥔 것이 보였다. 저쪽에 시선을 주니 케라우노스도 파직거리는 전격 방어벽 안에 카르티와 함께 대피한 상황.

어느 때보다도 키메라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졌다.

푸화아아악!

그것을 과연… 숨결이라고 할 수 있긴 한가?

숨결이라기엔 구토에 가까웠고, 실제로 진한 녹색의 점액질을 뿜어대는 체액에는 썩은 피와 고름, 그리고 채 소화시키지 못한 포식물의 찌꺼기 따위가 섞여있었다. 아, 냄새 한번 지독하네 진짜!

치이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놈의… 뭐라 할 수 없는 더러운 공격에 적중당한 바위와 나무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면… 등골에 오싹하게 오한이 일었다.

케라우노스가 전격 방어벽을 거둬들이며 투덜거렸다.

“이건 참…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건수였어.”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비록 흉측하게 일그러졌고, 짐작하건대 본래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났고, 짐작대로라면 지금의 저 모습은 오히려 엄청나게 쇠약해진 것임이 틀림없지만…

“설마 드래곤이냐고, 진짜로.”

카르티가 중얼거린 말은, 이 자리의 그 누구에게도 그다지 반가운 말은 아니었다.

아, 진짜. 재수도 한번 드럽게 없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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