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41화 (41/157)

〈 41화 〉 2 ­ 1 /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에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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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보통 기절한 사람을 깨우는 따귀는 찰싹, 정도의 레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볼이 얼얼하다 했더니 내 볼에서 마구 튀는 소리는 짜악, 의 레벨이었다.

그것도 아주 신이 나서 리듬을 타고는 짜악, 짜악, 짜악… 연거푸 볼이 얼얼해질 정도로 때리는 게 누구일지는 눈을 굳이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입회인이 이러려고 있는 건 아닐텐데?!

“그마아아안! 그만 때려! 정신 차렸으니까! 그만 때리라고 이 씨발년아…!”

눈을 확 치뜨고 벌떡 일어나려니, 마치 한쪽 눈에 칼을 맞았을 때처럼 찢기는 듯한 고통이 왼쪽 눈에서부터 스며들었다. 끄으윽, 하는 신음만을 입 밖으로 내면서 몸을 웅크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숨을 내쉬는 것을, 손이 빨갛게 부어오른 키르케가 식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아주 조그마한 바늘을 눈알에 푹 찌른 다음 안구를 마구해집은 뒤, 눈꺼풀과 눈구멍의 틈바구니를 따라 천천히 긋는 듯한 아픔이 실지렁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철저하게도 비집고들어가 꾸물거려서, 자기도 모르게 쌍소리가 나온다. 성격 버리기 딱 좋은, 그런 아픔이었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아픔은 아니란 것만이 다행이다. 10초 정도 지난 뒤 멎는 이 고통은 10초가 얼마나 인생에서 긴 시간인지 새삼 깨닫게 했다.

“하아, 하아, 하아… 익숙해지지 않네, 진짜 이거 개 좆같… 끅, 하아….”

얌전히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멎어가는 통에 괜찮다 싶다가도 툭 하고 오줌 갈기듯 뒷마무리까지 하는 아픔에 왼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되어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서 좋을 꼴도 아니라, 오른쪽 눈은 꽉 감고 왼쪽 눈은 손으로 지그시 누른 채 바닥에 떨어졌을 안대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서둘러 고통을 덜어주는 주문이 걸린 안대를 매고 나자 조금 견딜만해졌다. 이것만으로 턱에서부터 땀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야야…”

하지만 고통은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는 바람에 뇌진탕이 걸렸었는지 두통이 지그시 관자놀이와 정수리를 찌릿하게 짓눌렀고, 덧붙여 무리하게 헤이스트로 움직여대는 바람에 온몸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지분거렸다.

아, 이거… 내일 아침 근육통 확정에다가… 마나맥도 간만에 무리하게 썼더니 저녁에는 ‘그거’ 확정이라고 여겨졌다.

“로제, 일어날 수 있겠어요?”

“일어나야죠, 으… 시험은 어떻게 됐어요?”

흑마법사는 가능한 회복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통과 부(?)의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는마법을 다루는 탓에 회복 마법과 상성이 별로이기도 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헤카이트 당주에게 겨우 웃어보이곤 키르케의 부축에 힘입어 가늘게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시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당주님?”

“합격이에요. 세 명 모두. 케라우노스도 당신의 일격이 꽤 잘 먹혔다고 흡족해했어요.”

“…마조에요, 그 사람?”

“농담할 기운이 있는 거 보니 놔줘도 되겠네.”

윽, 하고 키르케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파르르 몸을 떨면서 그녀를 홱 노려보았다.

메롱, 하고 혀를 내밀고 눈을 까뒤집는 키르케의 대응은 한층 열을 끓게 한다.

“두 사람 다 지금은 일단 조금 자중해요.”

“네.”

“네….”

흥, 하고 우리 둘 다 서로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토라진 소리를 내자 헤카이트 당주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지었다. …왜 말 안 듣는 딸 둘 키우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 말 그대로라서 자기 처지를 딱해하는 얼굴 하지도 말라고요.

“그만 키르케는 입회인석으로.”

헤카이트 당주의 말에 키르케가 순순히 응해 물러났다… 예고도 없이 부축하고 있던 팔을 놓는 바람에 조금 넘어질 뻔했지만, 아무튼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섰다. 약오르지.

칫, 하고 아쉬워하는 키르케에게 당주가 보지 못할 정도의 방향으로 혀를 쏙 내밀었다가 감췄다. …당주가 정말로 못 봤을지는 솔직히 확신이 안 서지만.

“그럼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긴장된다. 침을 꼴깍 삼키고 시험장 한가운데에 그려진 원 안에 서자, 세 명의 시험관이 그 원에 덧대어 그린 삼각형의 꼭짓점마다 섰다. 내 정면에는 헤카이트 당주가, 좌측 후면에 술라 씨가, 우측 후면에 케라우노스가 당당히 섰다.

나에게 마법을 직접 지도한 헤카이트 당주가 목소리를 엄숙하게 내려깔고, 천천히 의식의 영창 첫머리를 선창(??)했다.

“마법과 기만의 신 ‘말로키르’에게 고하나이다.”

“고하나이다.”

“고하나이다.”

헤카이트 당주가 선창하고, 두 마법사가 그 선창을 받아 후렴을 넣는다. 원을 따라서 붉은색과 푸른색을 오가는 빛이, 삼각형을 따라서는 녹색과 백색을 오가는 빛이 깃들었다. 헤카이트 당주의 목소리가, 푸르게 어우러졌다.

“당신의 지식을 받들기로 새롭게 맹약한 자매가 당신의 앞에 섰나이다.”

“섰나이다.”

“섰나이다.”

영창을 거듭해서 겹칠수록 빛은 점점 강해지고, 겹쳐진 삼각형과 원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이번엔 그 가운데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즉, 그 지점에 선 내게로 모여서, 거의 텅 빈 채 활성화되어있던 마나맥에 천천히 새 마력이 차오르면서… 온몸의 피부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볼이 살짝 달아오르고 몸이 바들바들 떨려서 쥐고 있는 지팡이에까지…

내 반응에 헤카이트 당주가 엄한 얼굴을 했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정말로. 야한 상상 같은 거 하지도 않았다고요, 진짜.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면 온화한 헤카이트 당주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등 뒤의 두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 싶다.

어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뒤 헤카이트 당주가 한 소절의 영창을 더했다.

입회 의식의 영창은 총 4소절. 이제 2소절만 더하면 입회 의식은 끝난다. 조금만 더 버티자. 침을 꼴깍 삼켰다. 몸이 살짝 덥지만 이제 2소절만 참으면 돼.

“…새롭게 당신의 자식이 되고자 하는 자매에게 당신의 기만을 탐구할 지식과 그 지식을 품을 교활함을, 그것을 지배할 만한 교만함을 내리소서.”

“내리소서.”

“내리소서.”

윽…! 순간 뱃속이 뀨륵, 하고 진득하게 떨리며 시큰거렸다.

눈앞이 조금 일그러지고 마나맥에 차오르는 마력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그, 그렇게 좁은 곳에. 억지로… 들어오면 안, 돼…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아 소리를 내지 않으려 버텼지만 바들거리는 입꼬리에서 침이 한 줄기 새어 턱을 적셨다.

나중에 혼날 줄 알아요. 헤카이트 당주가 입 모양만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 억울하다.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닌데. 아무튼, 빨리 의식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헤카이트 당주도 묘하게 볼을 불그레하게 붉힌 채 영창의 마지막 소절을 입에 우러렀다.

“새로이 말로키르의 슬하에 들려 하는 자매여. 그대는 말로키르의 가르침에 반역하고, 거스르고, 의심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는가?”

“매… 맹세합니다…. 여신의… 가르침조차, 의심하고, 거스르고, 반역하는… 탐구자의 길을 걸을 것을… 맹세합, 니다….”

…내 목소리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겠지?

제발 그렇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하지만 이미 틀린 것 같다. 헤카이트 당주가 한숨을 짓는 걸 보면. …하드디스크에 야동 지우지 못한 게 생각났다. 그걸 걸린 것 같은 기분이 이러려나. 얼굴이 뜨거웠다.

천천히 끝에서부터 빛이 저물어가는 원형과 삼각형. 그 빛이 스멀스멀, 제 마나맥에 흘러들어오자 머릿속이 바글거리는 목소리와 숨소리로 가득찼다. 다른 마법사들에 의하면 이게 바로 자신의 마법사로서 진정한 새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파직, 하고 마지막으로 제 앞에 이 세계의 언어로 무엇인가 글자가 나타났다. 글자가 새까맣게 탄 자국으로 나타난 이유는 마법과 기만을 관장하는 마신 말로키르가 동시에 불의 신이어서이기도 해서랬지.

“…수고했네.”

“핫하. 설마 적성이 그 쪽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숨소리와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진즉에 다 알아챘으면서도 헤카이트 당주의 체면을 봐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준 모양이다. 아, 쪽팔리네 진짜….

“아무튼… 어흠. 1년간의 수행과 시험을 훌…륭히 극복한 것을 축하합니다.”

왜 훌륭히라는 대목에서 가시가 느껴지냐고요.

헤카이트 당주는 그 문자를 찬찬히 눈에 새기듯 읽고, 순간 진심으로 다행스럽게 여기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런 꼴을 보였는데, 제대로 된 이름이 주어졌다는 건 그래도 말로키르가 어지간히 참아줬다는 의미일 테니까… 아니면 그걸 좋게 보아주셨다거나. 비틀리고 꼬인 성격의 신이라니 그럼직하지만.

“…로제이아. 이제부터 당신은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로 불리게 됩니다. 부디… 부디, 정말로. 정말로. 말로키르와 마법사, 그리고 흑마법 학회의 명예에 어긋나는 짓은 부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짜로요. 아시겠지요?”

헤카이트 당주, 뺨에 그 핏줄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이걸로, 이제 이 세계에서 정말로 마법사로서 첫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 첫 발걸음이 이 모양이라는 게 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기묘한 스타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선물은 이미 줬네만. 자네가 들고 있는 지팡이…. 가브롤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골렘 마스터였네. 가시의 마녀여, 자네에게 그 선물이 부디 유용하기를 바라네.”

“감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술라 님.”

술라의 눈이 부드러웠다.

술라에 대해서는… 참 여러 가지로 빚을 진 것도 많았고, 결국 술라의 밑에서 마법을 배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페리링을 맡아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고. 그 이상 좋은 사람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럼 나는 이걸 선물로 주지. 보아하니… 어흠, 초짜 마법사에겐 이거만큼 도움이 되는 건 없지.”

케라우노스가 내민 것은 몸 어디에 차도 별로 부담이 가지 않는 조그마한 주머니였다. 일견 볼품없어 보이는 그 주머니에 순간 눈이 탐욕으로 반짝였다. 이거 혹시…

끈을 풀어 열어보니 시커멓게 벌어진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아.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팔까지 쑤욱 들어갔다. 아니, 어깨까지 밀어넣어도 주머니의 바닥이 닿지 않는다… 와, 씀씀이 크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케라우노스 님.”

이건 기본적으로 뒤에 0이 여섯 개는 붙는 가격인 물건일 텐데. 아무튼 이런 걸 뭐라더라… 득템이라고 하던가. 좋은 기분으로 허리에 차면서 일단 내 턱을 날렸던 건 이걸로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위험한데. 내 입가 조금 힘이 풀릴 것 같아.

“내 선물은 이거에요. 로제.”

헤카이트 당주의 손에서 보따리에 싸인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풀어보니 바구니 안에는 신발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귀여운 디자인에, 좋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헤카이트 당주가 주는 선물이라면 평범한 물건은 아닐텐데. 조금 의미를 담아 빤히 올려다보니 헤카이트 당주는 생긋 웃음지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방금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그쵸?

하는 수 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죽신을 받았다. 무슨 마법 아이템인지는 신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겠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스승님.”

“로제이아도 이제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수행의 여행을 떠나야 할 테니, 그런 당신에게 필요할 것 같아 만들었답니다.”

한쪽 눈을 찡긋하고 웃는 헤카이트 당주의 모습에 더 묻지도 못하고,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자, 이걸로 대략적인 의식은 끝이 나고, 내 이름이 새겨진 임명장과 신분증명용 로켓(Locket)을 받아 목에 메고 나면 이제 정말로 수행의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어엿한 마법사다. 가슴을 펴고 자랑해도 좋다고.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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