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2 1 / 가시의 마녀, 로제이아에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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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그만큼 머리카락이 자랐다.
커스터마이징을 하지 않아도 등을 덮을 정도로 자라난 머리카락에도 슬슬 익숙해졌을 즈음 그 날은 조용히 찾아왔다.
“금일의 승격심사 신청자는 흑마법 수습생 로제이아. 입회인은 ‘발톱의 마녀’ 키르케. 준비는 되었습니까?”
오늘은 시험일이다.
한 사람몫의 술사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날이니만큼 꼼꼼하게 남색 로브를 정성껏 다렸더랬지.
“네.”
세 명의 시험관이 내는 퀘스트를 주어진 시간 안에 통과하는 방식으로, 2명의 합격 판정을 받아내면 일단 합격이고 3명 모두에게서 합격 판정을 받아내면 그에 더하여 시험관으로부터 각각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물론 노리는 건 추가 보상이다. 목표는 높을수록 좋다.
세 명의 시험관은 각각 흑마법 학회의 학회장인 ‘횃불의 마녀’ 헤카이트 당주와 궁정 대마법사 술라 씨, 그리고 베테랑 용병 마법사 케라우노스였다.
헤카이트는 마법을 사사(??)한 스승이고 술라 씨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던 대마법사로 구면이었지만 마지막… 수염이라기보단 갈기 같은 터럭을 기른 장년의 남자는 초면이었다.
“오호, ‘어여쁜 마녀’ 헤카이트께서 애지중지 훈육하고 계시다는 소문 자자한 제자가 바로 저 처자인가 보구만.”
“그런 이름을 받은 적 없습니다, 케라우노스. 자랑하는 수염부터 노릇노릇하게 구워드려요?”
“하여간 한 번을 받아주질 않는다니까. 딱딱하기는.”
재미없다는 듯 남자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노곤하게 몸을 풀었고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한 번 케라우노스를 바라본 헤카이트는 한숨을 지으며 단상 아래의 시험장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부드러운 웃음이 눈에 머물렀다.
“로제이아. 늘 내주던 과제보다 조금 어려운 정도입니다. 긴장할 것 없어요. 당신이라면 잘 해낼 테니까요.”
“그렇게 말해도 늘 엄청나게 빡센 과제만 골라 내주잖아요, 당주는.”
입회인석에 서 있던 키르케가 볼멘소리를 투덜거리자 헤카이트가 키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키르케가 레드와인 같은 자주색 섞인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다면 헤카이트는 그녀가 가진 이명, ‘횃불’에 어울리는 홍련색 머리카락을 일렁이고 있었다.
특히 저 웃음.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웃음을 띤 채 터무니없는 과제를 툭툭 던져주는 것에 수행 시절 진이 빠지곤 했지.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묵직하게 바닥을 짓밟는 발소리가 저편에서부터 울려왔다.
공중에 떠 있는 구체를 중심으로 마력을 띤 돌덩어리가 맴돌고 있었다. 조악하긴 하지만… 일단 머리와 팔다리로 구성된 골렘이다.
바위 골렘이 두 기. 그 중심에는 이리저리 구부러진 지팡이가 있었다.
아직 초짜 마법사의 눈으로도 한 눈에 골렘의 중추인 핵에 전달되는 마력은 저 지팡이에서부터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탐나는데.
혀를 조금 내밀어 입술을 핥아낸 뒤 일단 정신을 집중했다. 시험 내용은 대강 예상이 간다. 낸 사람은 아마도…
“내 시험 내용은 골렘의 제압이다. 통제권을 장악하든 혹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파괴하든 방식은 자유다. 시간은 10분 정도면 충분하겠지.”
술라 씨였다. 여전히 건강해보이니 다행이네요.
10분이라… 그런 걸 너무 쉽다는 듯이 말하지 말아달라고요. 페리링은 데리고 오지 않은 건가,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건 역시 아쉽다.
페리링의 근황에 대해서는 나중에 술라 씨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지금은… 내 앞가림부터가 먼자니까. 두기의 바위 골렘이 천천히 다가왔다. 움직임은 크고 둔하고 위협적이지 않다. 분명 수습생인 내게 맞춰준 거겠지, 대마법사께서.
로브 안쪽에서 짧은 지팡이를 꺼냈다. 재료는 떡갈나무와 두꺼비의 눈알. 1년간 수행에 사용해서 나름대로 손에 익은 녀석이다.
손가락에 단단히 착 감겨붙는 느낌을 확인한 뒤, 골렘의 중추로 보이는 핵을 향해 마력탄을 쏘았다.
“…역시.”
그렇게 쉽게 되진 않을 모양이다.
날아오는 마력탄을 바위로 된 팔이 막아냈다. 핵을 노린 공격은 자동으로 막아내게끔 설정된 모양이다.생각보다 반응속도는 잽쌌다. 움직임은 느릿느릿한 주제에.
조금 더 시험해볼까. 바늘처럼 한 점에 응집시킨 마력탄 열 발을 세팅하고… 쏘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포화, 먹힐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자.
“우와, 그런 식이냐고.”
두 팔과 관절을 이루고 있는 바위 조각으로는 열 군데서 동시에 날아드는 마력탄을 동시에 막아내는 것은 버거울 거라, 한 발쯤은 적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골렘은 사람의 형상을 무너뜨리고 마치 고대의 팔랑크스처럼 바위를 세워 방진을 짜는 것으로, 열 발의 마력탄을 모조리 막아냈다.
사람이 조종하는 거 아냐?
시험관 쪽을 올려다보았지만 술라가 무엇인가 조치를 취하는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저 지팡이 쪽이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의미인데.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꽤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3분 지났네.”
잠깐 노는 사이 3분이나 지났다니, 남은 시간 7분으로는 역시 무리다. 다른 시험 2개에 합격해서 일단 시험을 통과…
“…같은 멍청한 소릴 할 리가 없잖아!”
목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7분 있으면 충분하다고!
골렘을 향해 내달렸다. 골렘은 특별히 공격 태세를 취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방어 행동을 취했다.
한쪽 팔을 들었다가, 부웅 하고 무겁게 바닥을 내리찍은 것이다!
콰아앙!
말이 좋아 방어 행동이지, 평범한 사람이 정통으로 얻어맞았으면 그 날로 납작하게 으깨졌을 일격이다. 바닥에 커다랗게 으깨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고작 1년 마법을 배운 초짜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아슬아슬하게 자기가 서 있던 자리를 내리찍은 골렘을 지나쳤다. 다음 골렘을 향해, 마력탄을 세팅하고… 발사!
투, 투, 투, 툿….
마력탄이 노린 곳은 핵이 아니라 사지 역할을 하는 커다란 바위 부분. 핵을 노리지 않는 공격에는 반응하지 않는 모양인지, 마력탄은 손쉽게 골렘의 몸에 탄흔을 내며 박혔다.
남은 시간은… 5분. 넉넉하게, 끝냈다.
“체크메이트.”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두 기의 골렘의 움직임이 멎었다. 자신의 마력탄 11발을 맞은 골렘과, 4발을 맞은 골렘의 몸이 휘청거리고 부들거리면서도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헤카이트에게 배운 마법 중 가장 상성이 잘 맞는 주문, '장미여왕의 포옹'이었다.
“호오….”
금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초면의 남자가 감탄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골렘은 이제 제압되었다. 마력탄의 착탄 지점에서부터 억센 가시덩쿨이 자라나 사지와 구동부를 꽉꽉 조여대어서야 둔하고 느린 골렘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가시덩쿨은 골렘에게로 전달되는 마력을 잡아먹고 기생충처럼 폭발적으로 생장을 거듭해, 이윽고 골렘의 핵에까지 뿌리를 박았다.
두 기의 골렘이 정지했다.
일단 술라의 시험은 이것으로 일단 합격… 일 것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지.
“좋아. 골렘의 통제장치가 이거라면, 이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시험 방식의 일부겠지?”
골렘을 지나쳐 가운데에서 넝쿨에 꽁꽁 묶인 골렘을 움직이려고 마력을 보내는 지팡이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대단한지 일단 한번 볼까. 손을 뻗어 지팡이 자루를 콱 붙잡은 순간…
“…끅…?!”
뒤통수를 크게 강타당한 두통에 순간 걸음이 비틀거렸다. 속이 메스꺼운 걸 넘어 내장을 게워낼 것 같은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이 지팡이의 옛 주인의 기억이 마구잡이로 비집고들어와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놓았다.
요 1년간 갈고닦은 마력맥에, 지팡이에 새겨진 주문이 억지로 득득득 밀고들어왔다.
윽, 으… 아응, 이건 너무, 커어.
골렘 두 기를 자율조종하는 장난감 수준이 아니야. 그 정도는 이 지팡이의 기능의 백분의 일도 활용하지 않은 거야! 아무래도 내게는 벅차…
“…겠냐, 이 빌어처먹을 머저리야아아아!”
탐나니까, 가져주겠어!
이건 내 거야! 내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커스터마이징’을 열어젖혔다. 1년간의 수행 성과로, 정신집중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완료!
지팡이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기억을 토대로 이 지팡이의 옛 주인 중 조건에 맞는 사람으로 육체를 가능한 신속하게, 필요한 만큼만 변모시킨다.
육체의 변질이 정신을 좀먹는 게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더한 것도 할 생각이었으니까.
지팡이에 깃든 잔류사념을 변질시킨 몸에 강제로 강령시키는 것으로… 지배권을 강탈했다!
“하아, 하아, 하아…”
처리과정에 혼선을 일으킨 지팡이의 저항이 점점 잠잠해진다.
이제 이 녀석은 나를 등록된 옛 주인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한 번 내 소유물이 된 순간, 이제는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좋았어! 이제 이건 내 거야!”
술라 씨가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은 잠시 못 본척 하고.
커스터마이징 스킬의 2단계 개화를 거쳐, 내 몸에 그치지 않고 소유물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능력을 ‘튜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튜닝 스킬을 사용해 다소 손에 두껍고 컸던 골렘 조종 지팡이를 제 손에 맞게 줄이자, 마치 십 년쯤 쓴 지팡이처럼 편안하게 손에 감겨붙는 게 흡족하다.
시험 삼아 지팡이를 통해 마력을 경유시키자 자연스럽게 두 기의 골렘의 시야와 감각이 제 머릿속에 오롯이 느껴졌다.이동하라고 명령하니, 무겁고 느릿한 몸뚱이를 지시한 정소로 향하는 게 제법 만족스러웠다.
이것으로 시험 1단계 통과.남은 2개 시험이 뭐든, 기합으로 클리어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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