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1 5 / 그리고 그 노래를 사랑한 남자 미하도르에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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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할 정도로 쉽게 감옥문이 열렸다.
제 몸에 깃든 성녀의 기억에 따라 나지막하게 날카로운 음조의 노래를 부르자 순간적으로 음파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자물쇠의 쇠울을 잘라낸 덕이었다…
마법사라는 건 참 편리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감옥방, 그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쪽도 슬슬 본모습을 보이는 게 어때?”
말을 던졌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정정해둘까. 거기에 아무도 없었다는 말은 오로지 사람만을 카운트한 것이다.
내려다보는 눈은 자신이 흑빵을 나눠준 불그스레한 털을 가진 쥐를 바라보았다.
짧은 앞발로 수염을 문지르던 쥐는 코를 움찔움찔하며 몸과 붙어있는 머리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더니 분명히,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새가 개로 변할 수 있다면 개가 쥐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잖아?”
[제법 눈치도 있고, 시치미도 뗄 줄 아네. 마음에 드는데? 너.]
쥐가 둥글게 몸을 웅크렸다. 털을 부풀리고 한바탕 부르르 떨더니 폭발하듯이 거대하게 몸을 부풀렸다.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역시 놀랄 수밖에 없다.
온몸에 북슬북슬하게 돋았던 털이 머리카락이 되고, 나머지는 짧아져서는 몸에 드레스가 되어 둘렀다.
짤막했던 사지도 길게 펼쳐지면서 발은 바닥을, 한 손은 허리를 짚었다. 다른 손은 석장을 쥐었다.
곧,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 회오리치듯 풍성한 와인색 머리카락 아래에서 웃음짓고 대담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은 채 시선이 마주 보는 위치에까지 높아졌다…
정말 마법사란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루시탄이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대마법사 술라는 용으로 변신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그때는 도와줘서 고마웠어.”
“뭐얼. 또 다른 내가 있는데 내가 도와줘야지, 누가 도와주겠어?”
자신의 모습을 빌린 것이 흥미를 끌었던 탓인가.
키르케라고 불렸던 여자는 피식 웃고는 석장을 바닥에 톡, 하고 두드렸다.
“이걸 빼놓은 게 단숨에 그 기사놈에게 들켰던 원인이지. 지팡이는 마녀에게 필수품이야. 스태프든, 완드든, 빗자루든, 일단 없는 마녀는 마녀라고 할 수 없거든.”
“헤에… 참고해둬야겠네.”
작은 의문이 풀렸다.
발스턴이 어떻게, 키르케로 변장했던 자신을 그렇게 단번에 알아봤는가에 대하여.
“자아, 내 모습을 멋대로 도용한 값은 어떻게 받아야 하나?”
“첫 만남에서 뺨 맞은 걸로 미리 치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
키르케가 동그랗게 눈을 뜨면서 감옥문을 빠져나왔다. 황당한 표정이었다가, 이내 아하, 하고 유쾌한 듯 히죽였다. 매를 닮은 사나운 눈매가 흥미로 일그러졌다.
“그때 그 메이드. 그게 너였구나?”
“네. 나였습니다. 보자마자 너한테 뺨 맞았던 그 메이드.”
“앗차아. 그거라면 할 말 없네…. 이거 참, 한 방 먹었는걸. 카멜레온 여자.”
훗날 루시탄이 말했었다.
마법사란 부채(??)의식에 매우 민감한 족속이라고.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빚을 지는 것에도 주는 것에도 아주 민감하게 굴며,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에 대해 빚은 갚아야 한다.
그것이 마법사의 철칙이라나.
“통성명이나 할까? 나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마녀 키르케야. 주문명은 ‘발톱’. 발톱의 마녀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냥 키르케라고 부르는 쪽이 좋지.”
“난 로즈. 주문명이 뭔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없어.”
“그렇겠지. 마법을 부리고는 있지만, 마법사는 아닌 것 같고.”
한쪽 팔로 다른 팔의 팔꿈치를 받치고, 그 팔을 턱을 받치면서 눈을 가늘게 뜬 키르케가 입술을 한쪽만 말아올려 웃었다.
“마법사, 해 볼 생각 없어?”
“한가한 소리는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 다음에 하자고. 그 뭐야. 옷이나 한 벌 만들어 줘.”
언제까지 여기서 늦장 부릴 순 없는 노릇이지.
누군가가 와서 들키기 전에 가능하면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게 좋다. 조금 초조해하면서 키르케가 내어준 옷을 대충 걸쳤다.
뭐야 이 옷은 그냥 넝마나 다름없잖아. 항의하니 키르케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사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다구. 좀 더 그럴듯한 옷을 갖고 싶으면 그럴듯한 재료라도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럼 이 누더기는?”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감옥 한 곳에 대충 널부러져있던 더러운 모포랜다.
…만지기도 싫어서 그냥 있었는데, 어쩐지 열받았다. 제 안에 깃들어 있는 성녀조차도 기겁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다. 쥐로 변해서 보고 있었으면서.
“돌아가면 일단 샤워부터 하고 말 거야….”
몸이 저릴 정도로 뜨거운 물에 가능하면 거품을 잔뜩 내서.
일단 이 구획의 문을 덜커덕 하고 열어젖혔다.
아… 이런. 눈이 마주쳤다. 전신갑옷을 걸친 병사. 척 봐도 평범한 병사라기보단, 기사였다.
“여자가 감옥을 빠져나왔다!”
“발스턴 경께 알려!”
앗차, 그렇게는 안 되지. 잠시 주무셔주셔야겠어!
성녀의 기억에서 대충 쓸만한 노래 마법을 몇 가지 추려두었다.
로젤라이만큼 능숙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면 혼수상태에 잡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장가(Lullaby)’를 불렀는데…
“안 되잖아?!”
“아니, 되고 있어. 하지만 네 주문 실력이 너무너무 보잘것없고 형편없어서 저 갑옷의 주문 저항에 모조리 막히고 있을 뿐이지. 당연한 귀결이야.”
거 참, 사람 열 받게 하는 말투네!
키르케가 한마디 한심하다는 듯이 보태더니 입으로 주문을 외면서 석장을 겨누었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전신갑옷 하나가 덜컥, 고장 난 로봇마냥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이 쓰러지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마법사, 진지하게 진로 고민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헬멧과 목가리개 사이로 조그마한 쥐가 빠져나와선 당혹스럽게 주변을 떠돌았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려 하던 병사도, 곧 같은 운명을 맞이했고.
“어?”
위층으로 통하는 나무계단을 딛었다.
그 천장이 나무로 된 바닥… 이라기보단, 어쩐지 배의 갑판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올라갔는데…
아, 정말. 어째 늘 좋지 않은 예감은 늘 현실이 되는지.
올라오자마자 밤바람에 커다랗게 돛이 펄럭거리는 높다란 돛대가 보였고, 도시의 불빛은 저 멀리에서 이미 점이 되어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만 보일 정도였다.
바다였다. 자신은 지금, 바이체슈테른 항구를 떠나는 배에 탄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고 있다!
좆된 거, 맞지?!
“정말 아쉬운 일이네, 로즈. 너만 하룻밤 푹 자고 있었으면 모든 게 매끄럽게 잘 풀렸을텐데 말야.”
등 뒤에서 서늘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거의 본능적으로 옆쪽으로 몸을 굴렸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 정확하게 자신의 몸을 노리고 채찍이 날아들었다. 그 채찍은 바닥을 촤악, 하고 때리면서 자국을 남겼다.
“마담…. 그건 나한테 별로 매끄럽게 풀리는 게 아니거든. 당신 같은 변태랑 SM 놀이 라이프라니, 영꼴리질 않아서 말이야.”
“유감인걸.”
한심하다는 듯 마담은 손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쥐어 당기는 동작을 취했다. 순간 목이 홱 조여들며 당겨지는 느낌에 컥, 하고 숨통이 죄여 들었다. 숨, 이…
“끅…!”
“이렇게 내 손짓 한 번에 아무 저항도 못하는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마는. 뭐, 반항기 많은 노예를 조교하는 것도 나름의 재ㅁ…”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목을 움켜쥐고 당겨대는 갑갑함이 잠시 풀렸다.
콜록, 콜록…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고르노라니, 제 옆에서 키르케가 마담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 것이 보였다.
“남의 연애사업에 말참견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마담… 누구랬더라. 잘 들으셔. 이 애는 왕실을 위한 일을 하고 있고 마법사 학회는 왕실이 하는 일에 협조해야 하는 게 이 나라 법이거든. 그래서 데려가려고 하는데, 반론이라도?”
“흐응. 왕실이라니 세게 나왔네, 마녀. 하지만 그 배후는 둘째 왕자지? 국왕 폐하의 의중은 조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픈 곳을 찔렸다. 키르케는 저 말에 정면으로 반론할 수 없다… 만약 이 일이 왕의 귀에 들어가서 진실공방이 되기라도 한다면.
로젤라이의 기억에서 본 국왕은, 마녀나 창녀 하나쯤은 쉽게 없앨 수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으니까.
입이 열렸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쭉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자신이 아닌 그녀의…
“…물러나세요, 카테르네!”
마담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늘 나태와 권태, 나른함만이 떠 있던 얼굴에 그렇게 경악의 기색이 드리우는 것을자신은 처음 보았다. 로젤라이, 당신이 왜 마담을 알고 있는 거야?!
“뭐…야. 모습만 빌린 줄 알았는데…. 그 여자 흉내를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내고 싶은 모양이네? 하, 하, 하나도 재미 없… 어, 로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저는 당신이 아는 제가 맞습니다, 카테르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낯선 이름으로 불리면서 심각하게 동요하는 마담이 채찍을 휘둘러 내, 아니… 로젤라이의 바로 옆을 때렸다.
로젤라이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담을 슬픈 듯이, 그러면서도 엄격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내 몸이란 말야! 살살 다뤄주지 않을래?!
“…키르케. 오랜만이에요.”
“로제… 님. 응. 오랜만이네.”
로젤라이가 고개를 조금 돌려 마녀를 바라보곤 생긋 웃었다.
키르케도 조금 쓰게 웃음짓고는 마주 인사하는 가운데…
뭐라고 할까, 이 자리에서 부외자는 나뿐인 거야?! 내 몸인데?!
부아가 치밀었지만, 지금 로젤라이를 끌어내리면 눈치 없다는 소리만 듣겠지!
“왜… 나온 거야, 이 판국에 왜 당신이.”
마담의 얼굴은 이쪽이 당혹할 정도로 일그러져서,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처럼 보였다.
슬픈 얼굴인 채 로젤라이가 입술을 꾹 물고 달싹거리다가, 겨우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카테르네…. 저는 당신이 그때 얼마나 상심했는지는 저는 알고 있어요. ‘캐스’의 일은… 유감이에요. 그래서 왕도를 떠난 것이고, 왕가와 이 나라를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을요.”
‘캐시’.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카테르네는 핏발이 선 눈을 치떴다.
정말로 죽일 각오로 휘두른 채찍이 날아들었을 때, 로젤라이는 바들거리면서도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만약 키르케의 방어 주문이 늦었다면, 정말로 카테르네는 로젤라이를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 몸이라니까! 좀 살살 다루라고, 좀!
“어떻게 너희들이 뻔뻔하게 그 이름을 입에 올려! 캐스… 캐스는 내 동생 같은 애였어! 그런 애를 흑마법에 끌어들여서 눈을 멀게 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도 못하게 한 너희들이!”
“…카테르네, 캐스는…”
핫, 하고 등에 소름이 돋았다. 로젤라이가 뭔가 말하느라, 카테르네와 키르케가 그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느라 모두의 시선이 로젤라이의 입술에만 집중되었을 바로 그 때, 오로지 자신만이 ‘그자’의 기척을 거의 반사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젠장,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어!
그대로 로젤라이의 의식을 붙들어 끌어내리고 몸을 빼앗아 옆으로 쓰러뜨렸다!
소름이 돋았던 그대로,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양손검의 거대한 칼날이 긋고 있었다. 만약 콤마 이하의 시간이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반토막날 뻔했다….
나, 아직 살아있지?!
“…성가시게 구는군, 성녀님. 죽었으면 그대로 여신께 돌아가는 것이 죽은 자의 할 일이지 않나.”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안 뒈졌, 거든…. 엿이나, 처먹어. 씨발.”
“하, 이번에는 입 험한 창녀 계집인가. 정말이지 진절머리나게 구는군.”
몸을 억지로 뺏어버린 탓인가, 온몸이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저릿거려서 쓰러진 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키르케가 뭐라 외치며 지팡이를 겨눴지만, 그 자리에 선 채 허리만 움직인 발스탄의 검이 섬광처럼 횡으로, 그 자리를 그었다.
툭, 하고 지팡이가 반으로 잘려 윗토막이 날아갔다. 키르케의 팔에서는 핏자국이 튀었고, 그녀는 고통과 분기를 얼굴에 품은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키르케 님. 부디 이 자리에서는 얌전히 계셔주었으면 하는군. 알고 계시겠으나 구태여 말하리다.
루시탄 왕자 전하를 왕위에 세우고자 하시는 것은 국왕 폐하의 어의(??)시오.
이 이상 개입은 마녀 학회의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소. 그럼 나는 입장상 키르케 님을 벨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념해주시기 바라오.”
“빌어먹을, 이 씨발스턴…!”
악에 받친 입이 열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마디 해주지 않을 수 없어!
“로젤라이를 죽여버린 게 바로 씨발 너잖아! 나불나불 개소리는 집어쳐!”
카테르네와, 키르케와, 발스탄의 움직임이 모두 잠시 멎었다.
카테르네는 당혹해했고, 키르케는 분개했고,
발스탄은, 증오스럽다는 듯 이쪽을 노려보았다.
“더 말해줘? 그 날… 블라우로제 별궁, 2층, 응접실! 당신이 그 칼로 로젤라이를 쑤셔서…!”
“천박한 목소리는 그만 닥쳐라, 계집.”
퍼억, 하고 처음으로 증오가 담긴 발길질이 가슴을 걷어찼다.
컥, 하고 피가 섞인 기침이 튀어 점점이 앞섶을 적셨고, 발스탄은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내 어깨를 한쪽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끄아아아악…!”
푸걱, 그그극…!
한쪽 팔이 툭 하고 늘어졌다.
어깨를, 어깨뼈를 파고드는 두꺼운 칼날이 뽑혀나가는 순간 유혈이 피보라치며 튀어 올랐다.
찢기고, 헤집고, 베어서… 칼날이 빠져나간 자리는 아프다기보다는, 지독하게 타는 듯이 뜨거웠다.
피가 아니라 열기가 그 구멍을 통해 흘러나가는 것 같아서, 억지로 상처를 막은손가락 사이로 핏덩어리가 부글거리며 새어 나왔다.
“슬슬 끝내기로 하지. 계집.”
달을 등지고, 증오에 일그러진 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일이다, 씨발 지른 건 좋았는데… 진짜 죽게 생겼다.
한쪽 팔은 전혀 안 움직이고, 몸도 잘 안 움직여. 다른 어깨를 짓밟은 발을 주먹으로 때려봐도 미동도 없어.
정확하게 머리를 겨누고 칼이 찍어내려오는 것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겠다…
아, 이렇게 뒈지는 건가, 이세계 라이프, 즐거운 기억은 단 하나도 없었… 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더 이것저것 만끽하고 싶었는데.
메이, 미카 씨, 키에리, 페리링, 루시탄…. 그래도 아는 얼굴은 좀 만들어두고 죽네.
눈을 꽈악 감았다. 푸걱, 하고 내려오는 칼날이 살갗에 닿는 감촉에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예리한 칼끝이 한쪽 눈을 스치고, 눈가를, 뺨을 긋는 느낌이 그다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죽이려면 씨발 빨리나 죽일 것이지 고문이라도 할 셈이냐고… 숨을 거칠게 내쉬며 그나마 뜨이는 한쪽 눈을 살짝 떴다.
누군가의 등이 가로막고 있었고,
칼날은 그 등에서부터 다시 자신에게로 찔러들었다.
“…?! 마, 담?!”
“카테르네, 야… 이름 들었잖, 아…”
크고 두꺼운 칼날은 가슴을 찔렀고, 작고 예리한 칼날은 배를 되찔렀다.
정확하게 왼쪽 흉부를 짓이기며 심장을 찢어버린 대검과 그 대검 쥔 살해자의 배를 찌른 단검 한 자루.
살인자의 배를 찌르고, 대신하여 심장이 찢겨진 자는… 마담, 아니 카테르네였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까닭 모를 울음이, 한쪽에서 넘쳤다.
“에…?”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질, 못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신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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