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1 5 / 그리고 그 노래를 사랑한 남자 미하도르에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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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그리고 그 노래를 사랑한 남자 미하도르에게
1
“마법이란 뭐냐고요? 흠….”
그것은 마담 윕의 창관에서 일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창관의 치유마법사, 페리링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페리링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마법이 뭐냐’라고 묻는 것은 마치 이전 세상의 나에게, 이 세계의 누군가가 와서 ‘전기가 뭐냐’라고 묻는 것과 대체로 비슷한 감각인 모양이었다.
때문에 얼른 대답을 떠올리지 못하던 페리링은 잠시 제 손으로 턱을 감싸고 끙끙거리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침묵 끝에 답을 내줬었지.
“마법이란 ‘중재’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의 원리, 존재하는 법칙 사이에 하나의 불확정 요소, ‘마법사’를 끼워 넣고 틈새를 짜맞추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때는 그 말의 뜻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로젤라이의 일기에 덧붙여진 다른 기록에도 비슷한 말이 풀어져 있었다.
[마법이란 조율(Tuning)이다.
마법사는 연주자로서, ‘에이트(Eitr)’라고 불리는 요소와 세계를 조율하여 마법이라는 음률을 자아내는 것이다. 마치 악보와 악기, 음정을 맞추듯이.
때문에, 같은 유파와 같은 스승을 모신 사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마법을 다루는 방법에는 차이가 난다.
같은 장인이 만들었다 하여 악기의 음색이 완전히 같지 않듯 서로 세계를 인식하는 시선에 따라, 마법의 스타일에도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몰랐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말이 어렴풋이 손에 와 잡혔다.
요컨대 내가 꼴리는 대로 땡겨와서 쓰면 장땡이라는 거잖아.
페리링이 들었으면 아니 그건 아니에요. 라고 반박했을 법하지만, 여기에 없는 페리링의 의견은 나중에 듣기로 하자고.
“…해볼까, 그럼.”
커스터마이징, 개시.
완전한 정신집중에 빠져든다.
내 몸뚱이에 족쇄처럼 달라붙어 있는 아픔, 짜증, 우울, 무력감…
그 모든 상념까지 한데 엮어 완전한 집중상태에 몸을 내던졌다. ‘코마(Coma)’라고도 하던가, 이런 상태.
로젤라이의 일기장에 남겨진 기억들이 파라락,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튕기며 주위에 떠돌았다.
여기까지는 딱 예상한 그대로. 이 상태에서… 마치 ‘누군가’가 나와 같은 스킬을 가진 자가 이 일기를 볼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겨둔 ‘마법’을 시전했다.
이 세계의 마법사 중에서 특히나 뛰어난 자는 사고를 분할하여 두 개, 아니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하려는 것은 그런… ‘다중영창(Multi casting)’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걸리버이기에 가능한 비책.
그녀, 로젤라이는 명명하기를… ‘합주영창(Ensemb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말로 노래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었다.
시전하는 마법은… ‘강령(Necromancy)’.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도, 뜻대로 부리는 것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연결하여, 일시적으로 불러내는 가장 초보적인 강령술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보다 더 필요한 주문은 없었다.
와줘, 로젤라이.
당신의 힘이 필요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등 뒤에 노래하는 듯한 기척이 다가왔다.
피부에, 피부 안의 근육에, 그 너머 혈관, 신경, 두뇌에… ‘그녀’가 스며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이를 악물고 의식적으로 ‘그녀’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욱, 하고 강하게 등골에 미쳐오는 이물감에 속이 메슥거렸다. 울컥울컥 입에서 고인 것에서 피의 맛이 났다.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는 금발로 물들고, 흑갈색의 눈도 푸르게 바뀌어 갔다.
내 몸과 내 스킬이, 무의식 속에서 다시 짜맞춰져가는 느낌. 내 몸에 내려온 ‘그녀’에게 맞게 최적화되어간다.
커스터마이징이라, 정말이지 그 말 그대로잖아.
“카학…!”
그 왜곡감, 그 거부감은 생존본능에 가까웠다. 외마디 한숨을 토하고 손으로 짚은 바닥이 유난히 멀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속이 메슥거렸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감각이 조금 멀었다.
멀고, 옅고, 어슴푸레한 감각으로, 유난히 무겁게… 혹은 느리게 느껴지는 머리를 들었다.
낯선 곳이었다.
자신이 갇혀있던 감옥도, 커스텀 룸도, 그렇다고 로젤라이의 기억에서 봤었던 별궁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대체 어디지? 라는 생각은 기묘하게 들지 않았다. 그래, 난 이 장소를 알고 있다. 알고 있어. 여기는…
홀리듯이, 좁은 세계의 한구석으로 향한 눈이 뜨였다.
여자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좁은 세계에, 마치 투명한 의자에 앉은 것 같은 여자가 있었다.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 검정과 하양으로 나뉜 드레스를 입었다.
등을 덮는 머리카락도 정확히 반은 희었고, 끝으로 갈수록 검어졌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 두 눈의 흰자위와 검은자위마저도, 정확하게 반반이었다.
나는 저 여자를 알고 있다.
‘저쪽’ 세상에서 죽어서, ‘이쪽’ 세상에 올 때 만났었던 그 여자이다.
나에게 스킬을 부여하여 이쪽에 보낸, 그 여자이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높지도 낮지도, 얇지도 굵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정확하게 1년 만인걸?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자는 입꼬리만을 살짝 말아올려 웃었고, 어쩐지 그 웃음과 목소리를 듣자마자,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넌…”
“하아…. 여기까지 오는 데 1년씩이나 걸리다니. 다른 내방자들에 비해서는 조금 늦었습니다. 기다리느라 얼마나 심심했는데. 다시 만나서 기쁘군요.”
심지어 말투마저도 반반이었다.
한 마디를 오만하게 쏘아붙이면, 이어지는 다음 말은 침착하고 정중하게 갈무리하는 기묘한 말투마저도, 지독한 기시감이 들어 속이 울렁거렸다.
머릿속에, 그녀를 부르는 명칭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찬연히 빛나지도, 어둠에 숨지도 않으며
결코 이타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은 존재.
낮과 밤, 하늘과 땅, 삶과 죽음, 흑과 백.
서로 대치하는 양쪽이 있다면, 그 가운데에 서서 비웃는 오랜 회색.
이 세상에 오는 걸리버가 살아갈 수 있는 스킬을 주고
그 스킬을 사용해야만 헤쳐나갈 수 있는 시련을 주는 존재.
“…이간(??)의 마녀, ‘라타토스크’.”
겨우 그녀의 이름을 떠올려 말할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만족스레 웃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표할 수 있는 감정의 전부라고 토로하듯이.
슬프면 웃는다. 분노하면 웃는다.
기쁘면 웃는 것이 당연하다.
“로젤라이도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뭐, 이미 뒈졌지만!”
로젤라이를 알아차렸어? 흠칫, 하고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깨가 움찔거렸다.
깔깔깔, 하고 이 좁은 세계에 메아리치는 그 여자의 웃음소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나와 지금 내 몸에 깃들어있는 로젤라이, 둘의 의견이 일치한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당신도 저런 말투 가끔 쓰잖아요, 라는 잔소리는… 냅두셔.
“새로운 스킬을 개방한 것을 축하합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생일 축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려나?”
보이지 않는 의자 위에서 그녀가 다리를 꼬며 키득거렸다.
여전히 마음에 전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여자는 보이지 않는 의자 위에서 조금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이 세계의 규칙입니다. 나는 ‘여기’에 다시 온 내방자의 질문 하나를 답해줘야만 하거든. 어떠한 질문이라도 한 가지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뭐 로젤라이는 이미 죽었으니 해당 없지만.”
질문 한 가지….묻고 싶은 것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로젤라이는 이쪽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듯 침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도 살아있었을 적 그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기 비록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릇된 존재라고 잘라 말할 수도 없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하면 지금의 곤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로젤라이가 그렇게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스킬을 어떻게 하면 더 쓰기 좋은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가 눈을 덮은 눈꺼풀 아래로 눈썹을 스치며 미련을 가득 남겨둔 채 빠르게 지나갔다.
“좋아. 한 가지 물어보겠어.”
“무엇이든지.”
후우, 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지금 꼬랑지랑 수염이 밥은 누가 챙겨주고 있어?”
…?
그 여자의 얼굴에서 잠시 표정이 무너졌다.
로젤라이도,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어, 어… 그게 질문이야?”
“질문인데.”
“…제대로 된 다른 질문을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만.”
“필요 없어. 그게 제일 궁금해.”
그 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입을 가렸다가, 끅끅거리면서 웃어대다가, 못참겠다는 듯 푸하핫! 커다랗게 배를 잡고 웃어 재끼기 시작했다.
제 안에서 로젤라이가 노래하듯 한숨을 짓는 것이 느껴졌다. 그거 남의 몸 안에서 한숨쉬지 마. 재수없게.
“수많은 내방자를 봐왔지만 너 같은 멍청이는 처음이야!”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매달린 물기를 걷어내며 하아, 하아… 숨까지 고르고 백지장처럼 하얀 볼에 불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더 끅끅거리기 웃다가, 체온이 올라왔는지 그 여자는 손부채질까지 한다. 뭐냐고, 그 반응.
“알겠습니다. 하아, 하아… 이런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질문에 답해줘야 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흥, 어쩌라고.
난 저 여자의 힘 같은 건 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즐겜하는 셈 치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내 감이라고밖에 답할 말이 더는 없다. 저 여자에게 무엇인가 빚을 지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감.
“아, 크흠… 애완견 ‘꼬랑지’와 애완묘 ‘수염이’는 현재 조교라는 직책에 있는 자가 편의를 봐 주고 있습니다. 이걸로 만족해?”
“어.”
그러니까 내가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도발적인 태도로 검지를 까딱거리자 그 여자는 한쪽 입술을 웃음짓듯 말아올리곤 가느다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마치 커스터마이징을 마칠 때처럼, 주변이 빨려들어가듯 소용돌이쳤다.
“부디 다음에 여기에 올 때는 좀 더 그럴듯한 질문을 생각해두시길 바랍니다. 아마 앞으로 두 번 정도는 더 만날 것 같으니 말이야.”
좆 까 잡숫고 엿이나 쳐드셔.
가운뎃손가락을 쳐들면서 그 의사를 함축해 전달하는 게 그 여자에게 보였을지 어땠을지.
어쩐지 지독하게도 저 여자가 싫었다. 두 번은커녕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나무로 된 바닥의 딱딱하고 차가운 감각이 여전히 조금 옅게 느껴졌다.
자신의 몸 안에 여전히 노래하듯한 기척이 느껴지는 것이, 로젤라이는 여전히 제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 이걸로 되었어.
자, 그럼.
호랑이 굴에서 정신 바짝 차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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