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1 4 / 푸른 장미를 노래하던 성녀 로젤라이에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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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트롤(Troll).
둔중한 이를 조롱하는 말로 쓰이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강인한 육체를 가졌고
아둔한 이를 조롱하는 말로 쓰이지만 실은 녹록지 않은 교활한 지능을 지녔다.
칼날에 살가죽이 찢긴 상처는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아물고, 혹 사지가 떨어져 나가도 한나절이면 다시 잘려나간 사지가 원래대로 돋아나는 괴물 같은 재생력.
맨손으로 날뛰는 멧돼지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몸통에서 뜯어버릴 수 있는 상식 외의 무지막지한 완력까지.
제아무리 이름 있는 노련한 전사라도 정면에서 마주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트롤과 정면으로 겨뤄 살아남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는다.
시작부터 왜 이런 몬스터 도감에서나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시작하는가 하면…
이 세계에 오고 나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 중 가히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련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흐읍, 으… 크흥, 하아… 아아, 앗.”
가라사대,
트롤 두 마리…의 욕정을 몸 하나로 받아내야 한다는 것.
마담 윕은 참 꼼꼼히도 준비를 가했다.
손목에는 행여나 도망치지 못하도록 두꺼운 족쇄를 달아 트롤의 손에 그 사슬을 쥐여주었다.
엄지가 두 개 달린 트롤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 사슬을 쥔 한, 팔과 몸을 마음대로 떼어놓았다가 도로 붙일 수 있는 게 아니고서야 도망칠 방법 같은 건 없겠지.
몸 여기저기에는 찐득찐득한 질감에 오래 묵은 치즈 같은 냄새가 풍기는 트롤 기름이 발라졌다.
이전에 페리링이 트롤을 욕정하게 만드는 것은 암컷 트롤 특유의 그 냄새라고, 그렇게 말했던 듯한 기억이 났다.
분명 코가 얼얼해질 정도로 지독한 냄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트롤의 반응은 생각보다 격렬하지 않았다.
“읏, 크흥… 후으, 아… 흐우.”
벌어진 다리 사이 커다란 매부리코에서 진득하고 미지근한 콧김이 슬슬 배어나와 고간을 덥혔다.
우둘투둘하고 혓바닥에는 기묘할 정도로 찐득한 침이 배어나와 아직 다물려있는 살두덩에 묻어났다. 싫은데, 어쩐지 점점 더워지면서 반응하는 몸이 야속했다.
남은 트롤 한 마리는 어쨌냐면… 등 뒤에서 주저앉아 커다란 손을 뻗어서 내 가슴을 주물러대고 있다.
…그리 크지 않게 조정해 놓은 가슴은 트롤의 두껍고 커다란 엄지와 검지, 중지만으로도 충분히 꽉 붙들 수 있을 정도였고, 가슴에 펴바른 트롤 기름의 탓인지 미끌미끌한 촉감과 꾹꾹 눌러지는 촉감이 더해져서 어쩐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끓었다.
“으, 우… 싫, 어….”
조금 칭얼거리는 소리에 살살 콧소리까지 섞여들 정도로 이 상황이 초조했다.
츄릅, 츄릅, 츄릅… 트롤 두 마리에게 몸을 완전히 붙잡혀서 탐욕스레 음부를 핥아지고 가슴을 주물러진다.
마담 윕의 의중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해서 그녀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바들거리는 눈을 겨우 옮겨,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를 한번 노려보았다.
비웃음도 경멸도 아닌 감정을 품고 그저 이 상황을 관망하는 눈.
미세하게 안면근육을 씰룩거리는 그 표정에 배덕감과 가학심이 일그러져 한데 뭉친 채 뱀처럼 꿈틀거렸다.
집요하리만치 가슴을 주물러오고, 묵직하고 뭉툭한 손끝으로 살덩어리가 우묵하게 눌릴 정도로 파고든 탓에 어깨가 바들거렸다.
찐득한 기름에 번들거리는 유두가 봉긋이 서올라 간질간질한 느낌이 살결을 타고 전해져왔다.
“후으, 아앗, 앙….”
나, 트롤 상대로… 느끼고 있어.
물론 이제껏 받았던 손님 중에는 미남도 있었고 추남도 있었고, 인간 사회에 융화된 오크나 때때로 엘프도 있었다.
심지어 제 키의 반밖에 되지 않은 하플링도 있었는데.
그런데도 생리적인 거부감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배덕감이 거의 길항한 채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트롤의 양손이 붙든 허벅지가 바들거리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 그저 거북해서일 뿐일까, 스스로 물어도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도, 바싹 말라붙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입 대신 아래쪽의 입이 주륵, 하고 군침을 내어 대답을 대신했다.
트롤의 기름과 침으로 젖어든 보짓살에서 시큼한 맛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챠릅, 챠릅…
게걸스럽게 혓바닥을 놀리던 트롤이 크학, 하고 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술을 떼어갔다.
“학, 학… 이제 그, 만…”
눈앞이 조금 멍한 채 머릿속이 온통 끓고 있었다.
푸르죽죽한 살집이 눈앞에서 출렁거려서 제정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 푸르죽죽한 피부에서 굵은 땀이 배어나오는 게 보였다.
보이기보다 먼저 한층 더 가열차게 끓어오르는 트롤 냄새에 숨이 저절로 헐떡거리도록 거칠어졌다.
“그만.”
짜악, 휘둘러진 채찍 끄트머리가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 트롤이 불만스럽게 굵직한 울음소리를 내면서도 마구 매만져대던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지지대를 잃은 둑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안도와 의혹,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
순간적으로 흠칫하고 몸을 떨었지만 적어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 거스러미처럼 남지 않게 하고자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물러서는 트롤 두 마리의 샅에 남근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것이 보였다. 저런 것으로 범해졌다면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었을까, 그 본능적인 공포가 마치 트롤에서부터 자신에게로 옮겨붙은 배덕적인 욕정을 조금 물러서게 했다. 하지만 정신은 그랬을지언정 한창 달궈진 몸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여전히 관능이 들끓은 그대로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마담이 엉거주춤 선 트롤의 등에 한 번 채찍질을 가하자 트롤의 발이 끌리듯이 움직였다.
그 손에 쥔 사슬… 손목을 단단히 구속한 족쇄에 붙은 사슬을 천장의 대들보에 감은 채 꽉 당기자 자연스럽게 팔이, 몸이 딸려 올라갔다.
반들반들한 겨드랑이를 훤히 보인 채 발끝에 의지하여 자신의 몸을 겨우 지탱한 상황.
다른 의미로 숨이 학, 학… 거칠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래도 오기를 부려 마담을 노려보았다. 마담은…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지… 열받는다. 얼굴 바로 옆까지 다가와 트롤의 손자국이 여실히 남은 젖가슴을 주물러내는 손길이 소름 끼치도록, 추잡했다.
“…넌 내 보물이야, 로즈.”
뭐야, 그 말은. 인제 와서 날 회유하기라도 하려고?
오히려 수상쩍게 귓가에 소곤거리는 마담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입술을 깨물고 답을 하지 않자, 마담은 대번에 미간에 주름을 깊게 잡았다.
얼굴을 돌려서, 덮치듯이 키스를 감행했고… 어차피 대항할 방법 같은 건 없었기에 입술을 꾹 닫고는 눈을 꽈악 감아버리는 것으로나마 저항했다.
츄릇, 츄읍… 쮸읍…
일방적인 탐심이 가득한 입맞춤. 바르르 뺨이 떨리면서 그 초조해하는 듯한 숨소리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만… 하아. 너만 내 손 안에 쥐고 있으면… 나는 어디에 가든 잘 해나갈 수 있다고. 그러니까… 누구한테도 못 줘. 눈 뻔히 뜨고…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
견디지 못하고 몸을 버둥거렸다. 발끝으로만 섰던 터라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오히려 그 저항이 마담을 더 흥분시키기라도 한 양, 턱을 콱 붙들었다.
끅, 읍… 그 와중에도 억지로 이어가는 키스. 입을 다물고 버티는 데도 숨이 차서 발끝까지 바들바들 떨려왔다.
“트롤 따위한테도… 기쁘게 다리 벌려주는 너 같은 암캐 년을… 나 말고, 후아. 누가 받아줄 거로 생각하는데? 그 왕자? 푸흐. 오늘 있었던 일을 알고 나면, 과연 어떤 얼굴을 하려나?”
“왕자 전하, 와는 아무 관계가 없…”
오기처럼 내뱉은 말이었지만 본심이었다.
왜 다들 날 그 녀석의 짐짝처럼 엮지 못해 안달인 거냐고! 짜증이 치밀어올라서 위로 끌어올려진 팔을 부들거렸다. 묶인 사슬이 철렁거리는 쇳소리를 냈다.
그러던 와중, 문득 생각이 미친 다른 곳이 있었다.
“미카 씨나 키에리… 다른 사람들… 은, 어떻게 한 거고요? 끅, 학…!”
자신과 페리링은 먼저 배를 타고 이쪽에 도착했다.
그리고 발스턴의 부하들은 창관을 정리하여 다른 배를 통해 바이체슈테른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담 윕이 그 계약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휴우, 한숨짓는 마담의 얼굴에 지긋하게 피로감이 떠올랐다. 아마 이 판국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마담은 주물러대던 가슴에도, 빨아대던 입술도 마치 더럽다는 양 떨쳐내듯 몸을 떼어냈다.
“어설프게 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것도. 거기에 남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것도 병적일 정도네. 너희 걸리버들은 말야. 일단 머릿속에서 그 잡생각부터 지워내도록 할까?”
허리에 차고 있던, 돌돌 말려있는 채찍이 풀려 바닥에 뱀처럼 늘어졌다. 마담은 또각, 또각… 뒤로 걸어, 내 등 뒤에서 발소리를 멈췄다.
꼴깍…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몸이 마른 침을 삼키는 것과 동시, 채찍 자루를 휘두르는 마담의 손목이 날카롭게 움직였다.
“끄아악!”
짜악. 날카롭게 후벼파는 소리와 아픔이 살갗에 파고들었다.
비명을 공기째 내지르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후끈거리는 감촉이 등에 스며드는 것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마도 등에는 채찍 자국이 질펀하게 새겨졌을 것이다.
“아까, 말했…지! 네 걱정이나, 하라고!”
짜아악,
짜아악,
짜아악…
채찍이 연달아 휘둘러져 세 번, 등을 긁었다.
제 의사와는 무관계하게 차오르는 울음이 눈두덩에 매달리고, 입가에 침이 새어 턱까지 적셨다.
더는 숨이 아니라 공기덩어리를 그대로 내뱉는 호흡이 시시각각 체온을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는 내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두어 번쯤 더 채찍질을 가하고 나서, 마담은 채찍을 바닥에 내던진 뒤 사슬을 느슨하게 풀도록 지켜보던 트롤에게 지시했고이윽고 대들보에 둘러졌던 사슬이 풀리자 겨우, 뻐근해진 팔과 다리를 바닥에 엎어져 쉬게 할 수 있었다.
“하룻밤 잘 생각해봐, 로즈. 어느 쪽이 네가 더 편한 길일지. 어차피 이미 넌 내 것인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네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든간에.”
하, 짧은 웃음을 남기고 마담은 몸을 돌렸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 한구석의 철창 안에 처넣어졌고, 어슬렁어슬렁 트롤의 등이 제 몸을 감옥에 던져넣은 뒤 멀어져가는 것을 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온몸은 뻐근하고, 트롤 냄새가 배었고, 등은 채찍 맞은 자국이 시큰거렸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다른 곳에 이 상황을 알릴 방법도 없다.
상황으로서는 최악. 상대는 최저.
…그렇다고,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알고?
괜시리 제 감옥 구석에서 찍찍거리는 쥐에게 화풀이하듯 눈을 마주치며 함께 던져진 흑빵을 아득,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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