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1 2 / 안경을 사랑하는 마법사 페리링에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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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후가 조금 지나서야,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나와 페리링은 창관을 나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이제부터 자유시간을 보낸다는 설렘과는 거리가 먼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난 비번을 바쳐 겨우 얻은 비번날 지명이 들어올 게 뭐냐고. 그것도 마담이 어떻게 둘러댈 여지조차 없는 높은 분의 지명이었다나.
보통 마담의 인맥으로 어찌할 도리조차 없는 높으신 분의 밤시중을 들 때는 외출은커녕 종일 목욕을 시킨다, 드레스를 맞춘다, 말씨를 미리 훈련한다는 둥 손님 방에 들기도 전에 진이 쭉 빠지게 했지만 그 전에 행차 구경이나마 잠깐 다녀오라고 한 것은 마담 윕의 얼마 안 되는 온정이었다.
“재수 한번 드럽게 없네….”
“그러게 말이에요….”
페리링은 페리링대로, 월초의 성가신 업무를 마친 뒤의 후련함과는 거리가 좀 많이 멀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왕도 사람들은 거북해서요.”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페리링에게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
드러내놓고 침울해하며 한숨을 내쉰 페리링은 그래도 오늘 새 안경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침울함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쩌겠어, 가능한 지금을 즐겨야지.
“메이 씨와는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죠?”
“그러니까… 케무이 숍에서 만나기로 했어. 점심 먹고 나오기로 했으니까 대충 시간 맞겠네.”
페리링은 늘 쓰고 다니는 커다란 마법사다운 모자와 로브를 벗고 그 나잇대 소녀다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산뜻한 흰 블라우스 위에 감색 블레이저를 걸쳤고, 빨간 구두를 신은 발, 하얗게 도드라진 발목 위에서 드레이프가 하늘거리는 호박 치마를 입었다.
그래도 마법사라는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버릴 순 없다는 듯 챙이 좁은 모자에 별과 달 모양의 장식이 붙었다.
이쪽도 모처럼 평소의 음란하고 야릇한 옷이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입어보는 평범한 옷차림으로 외출 기분을 냈다…
목폴라에 청바지, 그리고 내 안경. 오랜만에 저쪽에서 편하게 입던 생활복을 입으니 아, 눈물 날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이곳의 옷에 대해서 약간 의외였던 건, 페리링이나 마담 윕, 미카 씨, 키에리, 시즈닝 아줌마, 메이…
이런저런 사람들을 이 세계에 와서 만나게 되었지만, 그들은 내 옷차림에 대해서 그다지 낯설어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데 있었다.
기회 삼아 그것을 페리링에게 물었었는데,
“로즈 씨 말고도 많은 걸리버들이 있었으니까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 않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보면 재질은 다를지언정 원래 세계에서 입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옷들이 제법 보이곤 했었는데, 그 또한 자신과 같은… ‘걸리버’ 가운데 의상 디자이너라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으며 거리를 따라 걸어 케무이의 잡화점, 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진 간판이 매달린 상점 앞에 도착했다.
나올 때야 우울해했지만 이제 새 안경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페리링의 얼굴에 가득했다.
“어머, 어~서 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긋나긋하게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리링과 자신은 천장 가까이에 위치한 얼굴을 목이 뻣뻣해지도록 보았다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상점 주인인 케무이 씨는 겉보기에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근육으로 꽉 채운 훌륭한 사나이였다.
다만, 본인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취향과 섬세한 감각을 가졌고, 그것을 꼭 한 마디마다 쭉 늘리는 말투로 과장하길 즐기는 과시욕 많은 성격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케무이 씨.”
“어머. 이게 누구람. 귀여운 마법사 페리링~ 아가씨와… 흐응. 누구시더라? 초면?”
이쪽은 케무이와 일방적으로 몇 번 안면이 있긴 했지만, 아마 케무이는 내 얼굴을 잘 모를 테지. 생긋, 하고 웃으면서 페리링의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적당히 얼버무리라는 뜻이었다.
목폴라를 입고 온 것도 괜히 목줄 때문에 창녀라는 게 들키면 귀찮아지니까. 페리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케무이 씨를 향해 이쪽의 주문대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친구에요.”
“페리링 양은 걸리버 친구분이 많은 모양이네~?”
“마법사니까요.”
그게 이유가 되는 건가 싶긴 했지만, 적어도 케무이를 이해시키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음~? 하고 이쪽의 얼굴을 유심하게 바라보는 그 가느다란 시선에 몸이 잠시 움찔, 하고 떨었다.
설마 눈치챘나? 그는 입가에 히죽 하고 의미 모를 웃음을 흘리고는 몸을 돌렸다.
“케무이 씨. 그나저나 크라수스 공방의 신작 안경이 나왔다고 들었는데요.”
“어~머. 그러고보니 페리링 아가씨, 안경 모으는 취미가 있었지! 나왔고말고. 보여줄까?”
“네!”
안경 얘기가 나오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페리링.
케무이는 천천히 계산대 아래에서… 마치 게임 속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나올 법한 나무상자를 계산대에 놓고는 자물쇠를 풀었다.
천천히 열리는 뚜껑 안쪽에서 붉은 비단에 감싸인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쩐지 이런 거, 귀금속점에서 본 것 같은데.
“요정옥의 원석을 깎아 만든 보~디에 5대 원소식을 세공해두었어. 원래는 연금술사용으로 만들었다나봐.”
“렌즈는요?”
“자수정. 시각 보조 주문이 걸려 있어서, 아무리 눈이 나쁜 사람이라도 쓰기만 하면 까마귀가 날갯짓할 때 그 깃털이 몇 장인지까지 셀 수 있지.”
그거, 오히려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말은 일단 입안으로 삼켰다. 응응응, 하고 격렬하게 지름신의 가호에 힘입어 고개를 끄덕이는 페리링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
“거기 언~니는 뭔가 필요한 거 없어?”
“아하하. 전 이 녀석의 쇼핑에 따라온 것뿐이라서요.”
“그러지말고 뭔가 하나 골라보지 그러니? 돈을 써야 또 돈이 벌리는 법이고, 물건을 사야 물건의 사용처가 생기는 법이란다.”
확실히 그 말에도 일리가 있… 긴 하다. 조금만 둘러볼까.
조금 귀가 얇은 것도 문제다. 주머니 사정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긴 한데.
“아무튼, 그럼 얼마인가요?”
“이번엔 조~금 비싸. 1,200 탈랭이야, 페리링 아가씨.”
“동항로 회사의 어음으로 괜찮죠?”
“물론이지.”
1,200 탈랭… 저 안경 두세 개면 그게 내 몸값인데….
한 공간에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금전 감각의 거래가 오가는 것에 조금 부아가 치밀었지만, 마법사와 일개 창녀가 같은 씀씀이일 순 없는 것이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으니까. 씨발,나는 하찮은 뱁새…
한숨 한번 푹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뭐, 적당한 옷 정도면 그렇게 비싸진 않으려나…. 50탈랭 정도로 살 수 있는 게 있으려나 싶긴 한데.
그때, 벌컥 하고 상점 문이 열렸다. 밖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순진해보이는 얼굴의 소녀… 메이가 부리나케 들어왔다.
“행차가 오고 있어!”
“어머, 벌써 왔다고? 아가씨들, 자자. 더 살 게 없으면 얼른 나가줘. 슬슬 가게문 닫고 구경하고 싶으니까 말야.”
페리링의 손에서 어음을 받아든 케무이가 그것을 아주 대충, 눈짐작으로 확인하는 둥 마는 둥 금고에 말 그대로 처넣고 가게에 들어온… 순식간에 불청객 취급인 우리들을 가게 밖으로 내몰았다. 아니, 손님은 왕이라는데 손님을 상대로 이렇게 장사해도 되는 거야?!
케무이의 두꺼운 근육투성이 팔에 내몰린 우리 셋은, 이미 거리를 꽉 채운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에 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주일에 한두대 드나들까 싶은 호화로운 대형 마차가 줄지었고, 행렬은 큰길을 점령한 채 기사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행렬의 맨 앞에는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기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라?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톡톡 하고 어깨를 짚는 페리링의 손짓에 놀라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행렬의 중간께를 바라보았다.
“‘미하도르 라이산더 알트슈타인 팔케’ 왕세자님이에요. 그 옆에는 둘째 왕자이신 ‘루시탄 알브레히트 알트슈타인 팔케’ 왕자님이고요.”
뭔 이름이 그렇게 길어?!
흰 말에 탄 훤칠하게 큰 키를 하늘 아래 자랑하듯 선 청년과 그 옆에서 갈색 말머리를 나란히 하는 소년은 둘 다 금실로 넣은 호사스러운 자수로 장식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왕태자는 흰 예복, 왕자라는 소년은 붉은 예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구별하는 것 같았다.
선두는 단단히 온몸을 갑옷으로 감싼 기사들이, 그 좌우를 브리건딘(Brigandine)과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따라붙었다.
기사들의 뒤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 아마… 미리 섭외했을 사람들이 색색의 꽃잎을 던져 환영의 뜻을 표한다.
그 뒤로는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준마가 끄는 사두마차가 지나갔다.
가끔 창문이 열리면 안에서 온갖 사치스러운 모습으로 온몸을 꾸민 귀부인들이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마차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곤 했다.
따르는 하인들은 사방팔방에서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의 답례라는 듯 손에 든 바구니에서 사탕이나 쿠키를 높이 흩뿌리듯이 던졌고,
늘 맛난 간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것을 향해 위로 손을 뻗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것을 줍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경거리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겠지.
“동화 속 나라에서 온 것 같아….”
한창 그런 꿈을 꿀 나이인 메이가 양손으로 발그레해진 뺨을 감싼 채 그렇게 말하자, 페리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케무이도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댁은 왜 여기 있는 거유. 이럴 때 장사해야 하는 거 아냐?
미하도르… 뭐시기 왕자는 살짝 웃음을 띤 채 백마 위에서 이리저리 몸과 고개를 돌려 사람들에게 답례의 손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웃음 탓일까, 살짝 패인 볼. 조금 안색이 하얗게 보이는 것은 오늘 날씨가 화창한 탓이려나?
정반대로, 소년티를 아직 다 벗지 않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인 채 조금 지루해하는 듯한, 형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왕자는 적당히 손을 흔들며 주변에 대충대충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딴생각이 있어 보이는 눈동자였다.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서의 시선은 제 형이 독차지할 테니, 들러리 노릇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하겠지.
형제라고 했지만 뭐, 그다지 닮지는 않았다. 금발머리인 점을 빼고 말이다.
“…그리고 저 많은 사람 중 하필 오늘 비번인 날 굳~이 지명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지.”
하아, 하고 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북북, 긁어대었다. 페리링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고, 그게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떠올랐는지 자신도 꽤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일터에 높으신 분이 들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 높으신 분에게 돈을 받는 사람 외에는 아마 없을 테니까.
행차는 슬슬 마무리였다.
후미의 행렬에는 마찬가지로 호위로 붙은 기사들이 따랐고, 하인들이 마지막으로 바구니 그 자체를 던져 안에 담겨있던 쿠키와 사탕을 마저 흩뿌린 뒤 행렬이 저만치 마을을 벗어나 외곽으로 멀어져갔다. 아마 교외에 있는 영주의 성으로 향하는 것이겠지.
행차가 지나간 뒤에는, 오히려 모여들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한 장사가 재개되었다.
구경꾼이었던 이들 중 제 가게를 갖고 있는 이들, 그리고 팔 물건을 갖고 있는 이들은 사람들이 드물게 모여든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너나할 것 없이 행차가 지나간 다음의 정적을 목청껏 호객하는 소리, 나팔 등을 불어대는 소리로 채워갔다.
그리고 그것 또한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페리링과 메이와 함께 거리의 활기찬 광경을 구경하면서 가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맛보기도 하고, 값싼 장신구를 구경하기도 하는 사이 시간이 자못 빠르게 흘러갔다.
점심이 지나고. 광장의 마법 시계가 찰칵 하고 맞물리며 나팔 소리를 길게 울렸다. 아직 해는 많이 남았지만 슬슬 자신은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메이,우리는 슬슬 돌아가야 돼…. 히아, 미안. 모처럼인데.”
“어? 벌써?”
메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러고 보니 메이에게는 오늘 비번이라는 말을 한 다음에 갑자기 지명이 들어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지.
그녀에게 사정을 말해주고 나니,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해는 해 준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메이와 헤어졌다.
페리링도 조금 더 상점을 둘러봐야 한다고 하여 도중에 헤어져서, 자신만 터덜터덜 창관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독 달갑지 않게 짧고도, 길었다.
허름한 뒷골목,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창관의 문을 열어 들어간다…
“에?!”
슥, 하고 칼끝이 제 목을 겨누고 있었다. 뭐, 뭐야?! 강도?! 아니, 요즘 강도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다니나?!
헬멧을 뒤집어쓴 기사에게 갑자기 목을 노려질 정도로 나쁜 짓은 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돈이 많지도 않고!
“무, 무, 무…”
“조용히 해라.”
헬멧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였다. 누구였…더라?
필사적으로 기억을 뒤지려는데, 건틀렛에 감싸인 손이 윽, 하는 사이 내 손목을 잡아채었다.
그리고 뒤로 손목을 돌리게 해 붙들고는, 손에 쥔 검의 폼멜로 등을 툭툭, 두드렸다. 뭐냐고, 씨발대체!
“포주. 이 창녀가 맞나?”
“……네. 맞습니다. 그 창녀가 말씀드린 걸리버입니다.”
그제야 한구석의 마담 윕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칼자루에 손을 얹은 기사 두엇에게 둘러싸인 채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잠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과 마담 윕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겠다!
“마담, 대체 무슨…!”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로즈. 너한테 해가 되는 일 아니니까.”
퍽, 하고 등을 가격하는 단단한 주먹에 몸이 휘청거렸다.
이 상황에 머리가 제대로 돌고 있었더라면 생각 외로 그다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게 그럴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걸어라.”
헬멧에 감싸인 익숙한 목소리가 그렇게 명령했다. 정중하지만 단단하고, 높낮이가 부족한 그런 울림을 가진 목소리였다. 씁, 어디서 듣긴 들은 목소리인데.
등 뒤로 돌려진 양손목을 한 손에 붙잡히고 뒷목을 다른 손에 억눌린 채 후들거리는 다리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로즈….”
마담 윕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는 미카 씨와 키에리, 그리고 얼굴이 낯익은 창녀들의 불안한 표정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갔다.
기사가 등을 누르고 걷게 하여, 계단을 오른다. 뭐라고 할 수 없는 긴장감에 땀이 뺨을 타고 턱으로 흘렀다.
…걸음이 3층으로 이어졌다. 3층에는 정말 귀하게 접대해야 하는 손님들이 머무르는 큰방이 있었고, 이 가게에서 가장 능숙하고 아름다운 베테랑들만 가끔 올라가는 곳이었다.
큰방의 앞에 서서, 목을 붙들고 있던 손아귀가 드디어 풀렸다. 막혔던 숨이 터져나와 기침을 콜록콜록 내뱉는 동안, 기사가 문을 자못 정중하게 똑똑… 두드렸다.
“왕자 전하. 말씀하신 걸리버를 데리고 왔습니다.”
“들여보내.”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 맡아본 적 없었던 한껏 낭비를 부린 요리 냄새가 코를 찔러, 이 와중에 배가 살짝 고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와중에 너무나 솔직한 욕구가 부끄러워, 볼이 발그레 타들어갔다. 아니, 하필 이럴 때 뭐냐고.
방 안, 창문가에 서서 등을 돌리고 있던 금발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푸른 시선이, 이쪽의 시선에 맞닿았다.
어쩐지,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등골을 타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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