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커스텀 로즈-6화 (6/157)

〈 6화 〉 1 ­ 2 / 안경을 사랑하는 마법사 페리링에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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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의 창관의 치유마법사 페리링에게는 실로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취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안경 수집.

여기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인데, 이 세계에서 안경이란 굉장한 고가품이었다.

아니, 사치품이라는 인식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내가 이 창관에 와서 처음 페리링을 만났을 때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보고 말했었지.

“로즈 씨의 안경 좀 봐도 될까요!”

그리고 한참을 심각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내 안경을 요리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살펴보더라.

한번 써보고는 찬탄을 금치 못하다가, 아쉬운 듯이 돌려줬었다.

…뭔가 강하게 말 못 할 무언의 요구를 눈빛으로 어필하는 페리링이었고, 사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커스터마이징 스킬로 시력도 정상치까지 보정할 수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내 안경은… 뭐라고 할까.

내가 저쪽에 있었던 증거라고 생각했기에 가끔 보여주겠다는 약속만 겨우 했고, 그것만으로도 페리링은 대만족하며 보호 주문을 답례로 걸어주었었다.

그래도 페리링의 주문 덕분에 아직도 내 안경은 튼튼했고, 페리링과도 비교적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

“크라수스 공방에서 나온 신작이 케무이 씨 상점에 들어왔대요. 내일이 월초니까 사러 갈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페리링의 연구실에 마주 앉아 같이 차 한잔하고 있었다.

어젯밤의 손님이 비교적 점잖아 셈을 마치고도 한숨 잘 수 있었고,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도 드물게 제 발로 영업을 뛰러 가 자리를 비운 덕에 오늘 그녀가 말하는 소위 ‘교육’도 패스.

매우 드물게 기운도 시간도 남는 상태로 페리링의 가벼운 치유를 받은 뒤 그녀의 차 대접까지 잘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

손님한테 팁도 받았겠다, 이 일도 딱 오늘만큼만 운이 따라준다면 할 만한데.

페리링은 제 앞에 마주 앉아서는 천으로 자신의 컬렉션 중 하나인 안경알을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닦고 있었다.

마법사가 정성껏 안경알 닦는 모습은 꽤 신선했지만, 저 렌즈만도 고르고 고른 자수정을 장인의 손으로 깎고 갈아 마법으로 마감해 만든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만했다.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는 내 안경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쓰이는 안경은 단단한 나무를 깎아 다듬었거나, 쇠로 되어있거나, 더 비싼 것은 보석의 원석을 통째로 깎아 만들기도 했다니까.

실제로도 페리링의 컬렉션… 문 달린 선반에 잠금 주문이 몇 겹이나 걸린 그 안쪽에는 온갖 디자인과 재료로 만들어진 안경들이 즐비해 있기도 했고.

…참고로 저 안경 몇 개가 내가 팔려온 몸값과 거의 비슷하다던가.

“마법사에게 눈은 아주 중요해요.”

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일단 듣고 있자.

페리링은 닦은 안경을 안경집에 조심스럽게, 어디 긁힌 자국이라도 남을까 노심초사하며 접어 넣은 뒤 식어가는 허브 티를 한 모금 마셨다.

피로 해소와 불면증, 피부미용에 좋은 허브를 손수 길러 우렸다는 게 페리링의 설명이었다.

“마법사는 몸의 거의 모든 부위를 주문의 촉매로 활용할 수 있어요.

눈은 그중에서도 주문의 증폭에 특히 중요하고요. 두뇌와 직접 연결된 부위이니만큼, 더요. 제 눈에도 이런저런 주문을 새겨놓았어요.”

우왓, 그건 좀 징그러운데.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서둘러 덧붙이지 않았다면 나는 조금 페리링을… 나아가 마법사들을 마조히스트를 보는 눈으로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바꿔말하면 그만큼 눈을 혹사한단 소리죠. 그 때문에 시력을 보조하는 ‘천리안’ 주문을 걸어놓거나 아니면… 이걸 써야 하고요.”

톡톡, 페리링의 인형처럼 섬세한 가느다란 손가락이 안경집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렇게 안경을 하나둘 바꿔가다가 결국 안경 그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단 말인가?

이해합니다. 덕통사고란 가끔 그런 사소한 계기로도 일어나는 법이죠.

“눈 두 개에 담아놓을 수 있는 주문 개수라고 해 봐야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한데 결국 한계가 있어요.

그중 하나를 천리안으로 소비하는 것보단 돈이 좀 들더라도 전용 안경을 맞추는 게 낫죠. 옵션 좀 추가하면 안경 그 자체도 마법 도구로 쓸 수 있고요.”

그럼 눈에서 빔, 같은 것도 쏠 수 있나?

어디 영화에 나오는 돌연변이 누구 씨가 생각나 물어보자 페리링은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인 페리링다운 답변이 나왔다.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각오를 하면 가능은 하겠네요.”

내 몸값보다 조금 싼 정도의 안경을 말이지.

물론 마법사라고 해도 그런 낭비까지 상식적인 것은 아니라지만,필요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게 페리링의 설명이었다. 에휴. 부럽고 귀여운 것.

지금 페리링이 뚫어져라 눈을 부릅뜬 채 활자 하나하나까지 검토해가며 읽고 있는 것도 안경 공방의 신작 광고용 카탈로그였다.

「마법사 손님께는 우대 할인합니다!」 라고 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쓰여있을 만큼, 이 세계에서 안경과 마법사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보다.

“로즈 씨의 안경테 같은 재질을 만들 수 있으면 안경에 들어가는 돈도 좀 절약할 수 있을 텐데요.”

“…난 페리링이 그 돈 절약 못 한다는 것에 50탈랭까진 걸 수 있어.”

안경 하나가 900탈랭쯤 한다니 내게는 나름대로 50탈랭도 다리가 후들후들하게 되는 거금이다…. 어제 팁으로 받은 돈이긴 했어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로즈 씨의 안경 엄청나게 멋졌지만요… 그래도 재료에 돈이 들이는 만큼 물건도 쓸만한 게 나오기 마련이죠.”

“뭐. 버는 만큼 쓰는 건 어디에서나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마담은 어딜 갔대? 이런 시골에서 영업해봐야 뻔한데.”

오는 손님이라고 해 봐야 술 취한 아저씨나 가끔 이 마을에 들르는 모험가나 여행객.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다리 벌리는 게 자기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차피 이런 시골에서 창관 주인 마담이 이제 와서 발바닥에 땀 나게 저 스스로 뛰어다닐 필요는 없지 않나?

“저도 잘 몰라요. 자기가 꼭 직접 교섭해야 할 상대가 있다고만 하고 나가서.”

기본적으로 페리링은 흥미가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자신에게 공포의 대상인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도 그녀에게는 단순한 고용주 그 이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둥글게 말린 꼬리가 손잡이인 용 모양의 찻잔을 들고 그 안에 담긴 자기 몫의 허브티를 한 모금 마시며 페리링은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제 손님은 어땠어요?”

“음… 점잖았어.”

지난밤의 손님은 호리호리하면서도 탄탄하게 잘 단련된 몸을 가진 중년의 기사였다. 이 근처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지.

맵시 있게 잘 정돈된 콧수염을 기르고 옷차림도 말씨도 퍽 점잖아서 지난번의 성기사 같은 험한 말은 하지 않았었지…

게다가, 어흠. 테크닉도 절륜했고 팁도 적잖게 쥐여줘서 오히려 이쪽이 모처럼 즐겨버렸다는 느낌.

볼을 조금 붉힌 채 헛기침을 하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페리링은 흐응 하고 호기심 어린 눈을 했다. 그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얘도 그런 데 흥미가 있…지 않으면 구태여 다른 일자리도 많은데 하필 창관에서 일하진 않겠지. 마법사라도. 게다가…

“컸어요?”

“컸지.”

“쓰던가요?”

“안 쓰더라.”

자연산이란 참… 대단한 것이었다.

약발을 빌지 않은 자연산이라서 말못할 자격지심이 없어 그리 능숙하고 여유로웠던가 싶었을 정도.

지난밤이 생각나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술술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 나 자신에게도 조금 성장감을 느꼈다.그런데 이거, 성장이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은 대목인가?

호오, 하고 감탄하는 페리링의 반응 쪽이 더 신기하긴 했지만. 참고로 썼냐고 물은 것은 비밀스러운 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흠. 뭐 아무튼. 가끔은 그런 손님도 있어야 이 노릇도 해서 먹고 사는 거 아니겠어?”

“빨개졌어요, 로즈.”

“안 빨개졌거든.”

손을 뻗어서 페리링의 볼을 가볍게 쥐고 흔들어주자, 무표정하게 아파요, 하고 말한다. 귀엽긴 한데 정말 아픈 게 맞긴 맞나, 얘는.

볼을 놔주자 페리링은 이번엔 다른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어 헝겊으로 정성껏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안경 컬렉션의 개수로 봐선 아마 하루 온종일 이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휴일에는 온종일 안경만 닦고 있는 거 아닌가, 얘?

게다가 새 컬렉션도 계속 모으고 있는 눈치고.

뭐, 누구에게나 취미는 있는 법이니까. 남은 허브차를 마저 입 안에 털어넣고 잔을 내려놓았다. 힐끔, 페리링의 눈이 내 얼굴을 향했다.

“내일이 월초네요. 아시죠? ‘그거’ 하는 날이라는 거.”

“‘그거’ 말이지, 아, 싫다. 잊고 있었는데. 까맣게.”

일부러인지 감정을 싹 뺀 페리링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그거’인가아.

이런 데서 일하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그것이 생각나자 자기도 모르게 표정에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비어져나와,목소리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사실 자기보다 더 싫은 것은 페리링일테지. 이 창관에 속한 창부들의 숫자만큼 페리링의 일도 늘어날 테니까. 자신은 그냥 한 번 창피한 걸 참으면 그뿐이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라고. 뺨을 테이블에 얹고는 죽을 것 같은 앓는 소리로 끙끙대노라니 페리링이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착하다, 착해. 로즈는 착해요.”

“애 다루듯 하지 말아줄래….”

뚱한 표정이었다가 머리를 들어 이번엔 턱을 테이블에 얹고는 올려다보자 어깨를 으쓱이는 페리링과 시선이 마주쳤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페리링은 한번 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들 내 머릴 만지는 걸 좋아들 하는지 몰라.

“그럼 전 먼저 준비하러 이만. 내일 기대하고 있을게요.”

내일이라, 메이와 점심에 시즈닝 아줌마네 여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페리링의 ‘그것’이 끝나는대로 같이 가면 되겠지.

멍하니 잠시 내일 일정을 떠올리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페리링의 연구실 밖에서 미카 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슬슬 오늘 일을 시작할 시간인 모양이다.

“일하자, 일…. 아, 존나 일하기 싫다.”

오늘도 이렇게,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의 창관 밤 영업이 어김없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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