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1 2 / 안경을 사랑하는 마법사 페리링에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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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안경을 사랑하는 마법사 페리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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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과의 실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오후였다.
죽을 것 같이 너덜너덜해진 몸을 겨우겨우 이끌어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노라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그마한 소녀가 코를 거의 덮다시피 얹고 있는 커다랗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곤 읽고 있던 두꺼운 책을 덮었다.
색소가 옅은 푸른 머리카락에 연보랏빛 눈동자. 고급 인형처럼 예쁜 상아색 피부.
마찬가지로 조금 색이 옅다 싶은 분홍색 입술에 미소를 띠곤 세워두었던 스태프를 손에 쥐었다.
끄트머리가 나선형으로 구불구불하게 구부러진, 오래된 영험한 옹이나무를 깎아만들었다고 자랑했었지. 가슴을 펴고.
그녀의 이름은 페리링. 본명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이 창관에서 일하고 있는 치유마법사로,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돌 같은 소녀이다. 물론 자신까지 포함해서.
저 햄스터처럼 통통한 뺨을 만져대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얼굴로 모두의 아픈 곳을 부드럽게 치유해주는…말하자면 우리의 천사!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오래 걸렸네요. 로즈.”
“안녕, 페리링. 오늘도 잘 좀 부탁할게.”
조금 오래 걸린 건… 어느 정도는 이쪽의 탓도 있지.
겸연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이니 창관의 회복마법사 페리링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터뜨린 뒤 자기 실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비록 연구비 문제로 이 창관에서 일하고 있긴 했지만, 자신과는 달리 창부로 일하는 게 아닌 어엿한 치유마법사로서 고용된 위치에 있었다.
이것도 기술직의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마법, 마법이라. 배울 수 있다면 차암 좋겠는데.
정체 모를 약초와 광석, 그리고 소형 몬스터를 바싹 말린 박제가 방 전체를 가득 채운 나머지
퀴퀴한 냄새가 1년 365일(여기에서도 1년이 365일이라면) 떠나지 않는 페리링의 연구실은
늘 깔끔하게 치장하고 다니는 연구실 주인 페리링 본인과는 그다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페리링 본인의 이미지를 떠나서 바라보면 참… 스테레오타입의 마법사의 연구실답다고 하면 꼭 그런 곳이기도 했다.
수염을 나무뿌리처럼 달고 있는 늙은 마법사에게는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한다. 음침하고, 음험하고, 뭐 그런.
페리링은 위태롭게 쌓여있는 마도서나 연구재료들을 자못 느긋하게, 산책이라도 하듯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쪽도 뭐, 처음엔 넘어뜨리거나 했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어찌어찌 그녀의 뒤를 쫓아갈 수 있었다.
방정리를 해 주는 편리한 마법 같은 건 없는 모양인가.
그래도 미카 씨라든지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가끔씩 방정리를 도와주곤 했는데,
페리링 왈, 사물의 배치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둔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진짜일까, 아니면 단순히 방정리가 귀찮아서 일반인이 반론하기 힘든 핑계를 내세우는 걸까.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도 그런 페리링의 단호한 방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랬었지. 이래서 마법사란. 이라고.
그러고보니 그 여자 나한테도 곧잘 그랬었잖아. 이래서 걸리버란, 이라고.
잠깐의 모험 끝에 연구실 안쪽에 마련된 침대방에 도착한 페리링은 끄트머리가 나선형으로 구부러진 나무 스태프로 톡톡, 침대를 가리켰고
그 지시에 따라 나도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놓았다.
아직 커스터마이징을 해제하지 않았기에 비현실적인 I컵 거유가 벗은 옷 아래에서 출렁거리다가 내려앉았다.
…얘, 페리링. 그렇게 부럽다는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내 입장에서는 마법사인 네가 훨씬 더 부러우니까.
아무튼 사지를 편안하게 쭉 펴고 누우니 페리링은 가장 먼저 찬장에서 플라스크를 하나 꺼내더니
안에 들어있던 거무튀튀한 정체불명의 가루를 톡톡톡, 내 몸 여기저기에 전체적으로 골고루 뿌렸다.
처음에는 그 가루가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모르시는 게 나을걸요.”
…기묘한 침묵 끝에 시선을 피하며 보탠 한 마디에 그 뒤로는 절대 그 가루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지.
아니, 지금도 솔직히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알게 되면 큰일날 것 같은 예감이 더 강해서, 호기심을 억지로 눌러참고 있다.
이봐, 함부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안 된다고.
아무튼, 까슬까슬하면서도 희미한 열기를 느끼게 하는… 묘하게 파슬리 같은 가루를 온몸에 뿌려지고 나니
제 꼴이 마치 후추가 뿌려진 고깃덩어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게 재채기를 하면서 올려다보자, 페리링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스태프로 내 몸 위를 겨누곤 안경알 너머의 눈을 감았다.
페리링의 조그마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 치유될지어다 / 그대여 / 보호받으리 / 성스러운 / 눈과 / 아르얀로드의 / 이름으로 ]
[ Leigheas / thu / Sàbhailteachd / Comraich / Sùil / Ainm / Arianrhod ]
마치 자장가를 노래하는 것 같았다.
듣기 좋은 페리링의 목소리가 동시에 두 갈래로 갈라져 울렸다가, 다시 한 줄기로 겹쳐들며 화음을 이루는 것을 듣고 있으니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부유감과 더딘 졸음이 동시에 몸에 스며들었다.
실제로도 몸이 낫는 동안 유체이탈을 잠시 체험할 거라고도 했었지.
“으, 응. 아응….”
이건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페리링의 입에서 나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고.
아니,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반만 맞는 소리였다…. 지금의 나는 유체가 몸에서 잠시 빠져나와 위에서 제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대신 몸은 페리링의 주문으로 천천히 치유되고 있었고 즉, 저 소리는 내 의사는 아니지만 내 몸이 내는 소리는 맞았다.
…왜 치료받는데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참 미스테리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에 페리링 본인에게 화들짝 놀라 물었을 때는 참 쿨하게도 그렇게 말했었지.
“……감각이 활성화돼서 그래요.”
그 말을 하면서 잠시 내 눈을 피했던 이유는 대체 뭘까?
아무튼, 발가벗겨진 채 묘한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하게 숨을 내쉬는…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은 언제 겪어도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 치료할 때도 매번 이렇게 하나 싶었지만… 이 세계의 마법사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으니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꼭지 세우지 마라, 내 바디.
우왓, 하고 허공에 떠 있던 의식이 다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 역시 몇 번이나 겪었지만,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해녀들은 무거운 납덩어리를 달고 바닷속에 잠수해서 해산물을 채취한다던데, 그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으… 어질어질해.”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잠시 눈을 깜빡거리면서 아직 몸에 거스러미처럼 남은 부유감과 비현실감을 떨쳐내려 손을 쥐었다가 폈다.
가위눌렸다가 깨어난 직후 같은 희미한 불쾌감이 몸에 스멀스멀 번지는 것을 조금 으스스하게 느끼며 일어나니 페리링이 한쪽에 벗어두었던 내 옷을 건네며 웃었다.
어쩐지 흡족해하는 얼굴인데, 저거.
“슬슬 익숙해지실 때도 된 것 같은데요.”
“내 말이. 그래도 진짜 신기하게 몸이 한결 가뿐해졌단 말이지. 고마워, 페리링.”
“별말씀을. 이게 제 일인걸요. 제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요.”
생글생글, 이런 타입의 캐릭터들은 표정이나 감정표현이 부족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페리링은 잘 웃고 할 말도 잘 하고 달콤한 것도 참 좋아했다.
특히 시즈닝 아줌마의 쿠키를 좋아했다.
그 마담이 제대로 나눠주기나 했을지 모르겠는데. 근데 연구라니, 무슨 연구?
“‘걸리버’에 대한 연구를 좀.”
그렇게 말하면 날 연구재료 취급하는 것 같아 조금 으스스한 기분인데. 날 저기 있는 도마뱀처럼 박제로 만들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데목에서 눈 반짝이면서 날 바라보지 말아줄래. 귀엽긴 한데 역시 좀 무서워.
인정하지. 난 가끔 페리링이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보다 무섭다.
‘걸리버’란 이 세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이… 저쪽에서부터 여기로 넘어온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이라고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넘어온 사람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인지. 일단 그 걸리버가 맞긴 맞겠지?
옷을 마저 입고 나자, 슬슬 아까부터 참고 있던 졸음을 그 이상 참아내기가 힘에 부쳤다…. 조금 전의 유체이탈로 어설프게 졸았다가 오히려 더 죽을 것 같은 느낌.
이젠 진짜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지. 하품을 한번 늘어지게 하면서 그럼 안녕, 하고 몸을 돌리니 페리링이 잡아 세웠다.
“로즈, 잠시만요.”
“응…? 뭐가 더 있어?”
“마담한테 들었는데요. 왕자 행차 구경하러 그 날 비번으로 빼달라고 그러셨다면서요?”
…아직 구경을 나갈지 어떨지는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닌데. 그 변덕투성이, 존경해 마지않는 마담 윕이 확답을 해 준 것도 아니고.
머리를 탈탈 털며 아마도, 하고 애매모호하게 답하자 페리링은 스태프를 한쪽에 세우고는 날 올려다보았다.
“구경하러 가실 거면, 그 날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페리링도 그런 데 흥미가 있었어?”
“에이, 그야 당연하죠! 그런데 혼자 가기는 좀 뭣해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러자고 했더니 페리링은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닝 아줌마네 메이랑도 얘기하면 세 명이 같이 다니게 되겠는데. 떠들썩한 것도 나름대로 즐거우니 괜찮겠지. 자, 그럼…
이젠 진짜 돌아가서 잠 좀 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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