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간 카오리가 처음으로 겪는 여름방학이었다.
카오리의 가정은 여전히 카오리의 어머니가 ‘아저씨들’에게 몸을 팔아 버는 돈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카오리의 어머니는 20대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고, 그러나 물론 지금 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매력으로 온 몸을 포장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카오리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실제로는 카오리의 아버지가 되는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밖에 나가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고, 말하자면 포주 역할을 하며 집안에 눌러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지금 카오리가 살고 있는 바로 그 집, 그러니까 바로 그 원룸이었다. 그 작은 방에 세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면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럴 때면 카오리가 화장실에 기어들어가 문을 잠그고 잠자코 있어야 했다. 정말로 지옥 같은 삶이었다고, 카오리는 그때를 회상했다.
카오리의 할아버지는 환갑을 넘긴 나이였기 때문에 기력이 쇠해 있었고, 게다가 젊은 시절 너무 무리해서 여자와 즐겼기 때문에 몸 여기 저기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간이 안 좋아졌는데, 자신의 건강 악화가 자신의 딸, 그러니까 카오리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양 그는 카오리의 어머니에게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카오리는 이 처참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몸종처럼 존재할 뿐이었고, 밤이 되면 창녀가 되어 남자들에게 다리를 벌렸다. 카오리에게 있어서 단 한 번도 어머니로서 있어본 적이 없었다. 낮이면, 행여나 또 얻어맞을까 봐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어야 했다. 카오리가 기억하는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은,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카오리를 뒤로 하고 걸레로 바닥과 벽을 닦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병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왜 나를 돌보지 않는지, 카오리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카오리의 할아버지, 그 사람은 자신의 딸, 카오리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카오리에게도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죽이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살려는 두지만, 그러나 키우지는 않겠다, 라는 것이 바로 카오리 할아버지의 입장이었다. 딸이 태어났다면 잘 키워서 창녀로 만들 수 있겠지만, 남자새끼를 어디에 써먹을 수 있겠냐고, 그는 늘 불평하였다.
소질이 좀 보인다면 도둑놈으로 키워서 돈이나 훔쳐오게 해야겠다는 것이 카오리 할아버지의 생각이었는데, 그것에도 그다지 적극적인 것은 아니어서 그는 괜히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고 있는 카오리가 언제나 못마땅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네 씨 아닌가? 계집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내 새끼라면 자네 씨를 잇고 있는 것이니 그래도 잘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나?” 하고 그의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바람에 차마 버릴 수는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된 카오리의 체격이 커지고, 때로는 자신에게 반항을 일삼는 모습을 가끔 보이자, 카오리의 할아버지는 괜히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자기가 외출 중이면, 저 어린 노무 새끼가 벌써부터 지 애미와 떡을 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기회를 봐서 내쫓을 생각 또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카오리가 자기 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대든 적이 있었다. 여름방학이라서 집에 계속 있어야 했던 카오리는 어지러진 집안 상황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카오리의 페니스를 열심히 빨아주며 그 화를 다스려보려고도 했지만, 카오리의 갑갑함을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로인해 둘은 마찰을 빚었고, 카오리의 할아버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카오리를 두들겨 팼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노쇠한 몸은 카오리를 이겨내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몸이라지만, 유난히 몸집이 큰 카오리를, 그는 힘으로 당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주먹으로 한 대 갈기려고 하면 카오리가 그의 손목을 붙잡고 그걸 저지하는 통에, 카오리의 할아버지는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나가! 이 새끼야!” 카오리의 할아버지는 악에 받쳐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나갈 겁니다. 이딴 좆 같은 집에서 더는 못 살겠습니다.” 카오리 역시 자신의 할아버지는 밀쳐내며 그렇게 소리질렀다.
“오냐 잘 됐다. 당장 썩 꺼져버려라,”
그 길로 카오리는 집을 나와버렸다. 물론 그의 가출은 하루도 되지 않아 끝이 났고, 그날 밤 돌아온 그에게 할아버지는 발길질 몇 번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한 그런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 하루 가출을 했을 때 만난 사람이, 바로 N이었다.
N은 그들이 살고 있는 바로 위층에 살고 있는 여자였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보낸 학생이었고, 그녀가 다니던 학교는 그곳에서 가까웠기에 이 원룸을 구해서 자취를 하고 있던 터였다. 방학이라 시골에 있다는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모두 이곳에 있고 게다가 학교 동아리 활동도 방학 중에 있다는 핑계로 고향에 내려갈 날을 미루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실은, 그녀가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같은 과의 선배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선배와 얼마 전 헤어진 것이었다. 두 달 남짓한, 무척 짧은 연애기간이었지만, 그 상처는 제법 깊었다. 실연에 대한 아픔은 그녀를 무너뜨리고 있었고, 그리고 그 선배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까 싶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때로는 그 선배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렸고, 어떨 때는 그리움이 분노로 바뀌어, 그 선배를 향한 저주로 인해 그녀는 불타올랐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도무지 고향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해결해야 할 무언가가 남았다는 기분 때문에 그녀의 발이 절대로 이곳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N이 그렇게 실연의 아픔으로 자취방에 머물러 있을 때, 그리고 카오리가 집안에 대한 염증으로 그곳을 뛰쳐나왔을 때, 둘은 서로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카오리는, 그 다세대건물 복도에 주저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다툰 것이 분했고, 갑갑한 이 집안의 생활이 지긋지긋했고, 그리고 무엇 보다 큰 소리 치고 나왔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
N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훌쩍거리는 소리에 그는 아래층 복도로 시선을 돌린 것이었다.
남자가 울고 있었다. 눈물을 애써 삼키려는 듯 그는 소리를 죽여 훌쩍이고 있었다. 아직 14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던 카오리는 그 분함을 삼키지 못하고 서러워하고 있었다.
남의 일에 굳이 상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N은 그를 외면하고 지나쳐버렸다. 그러나 그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농락하고 가버린 선배 때문에 슬피 울던 자신의 모습이 그에게 오버랩되면서, 카오리의 모습이 좀처럼 그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먹거리를 사가지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을 멈추고 N은 문득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울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숙여 눈물을 훔치고 있던 카오리는, 먼발치에 있는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그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카오리와 눈이 마주치자, 몰래 염탐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랬다. 다시 모른척하고 빨리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뻘건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소년의 모습에선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전히, 얼마 전 실연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카오리와 겹쳐 보였다.
“왜 그러세요?” 하고 N이 카오리에게 물어봤다. 카오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도와드려요?” 하고 N이 다시 카오리에게 물었다. 뭘 도와줄 수 있는지, 대체 저 소년이 도움을 요청할만한 처지에 있는 것인지, N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카오리는 그때를 회상하길,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서 서러웠던 그때, 젊은 여자가 자기한테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이 괜히 반가웠다고 한다. 착한 사람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현관문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그를 지나친 사람은 그녀 외에도 몇 명 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지나쳐버릴 뿐이었다. 무슨 물건이 하나 놓인 양, 힐끗 한 번 쳐다보고 난 뒤 다들 각자가 갈 길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법 한 것이, 그 다세대건물에 오래 살았던 사람은 그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런 집에서 성장하고 있는 카오리라는 소년을 곱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또 무슨 일인가 벌어졌구나, 하긴 그 집에서 사는 애가 제 정신일 리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를 가볍게 동정하는 것에 그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었던 카오리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어떤 성인이, 그러니까 마치 보호자와 같은 그런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를 구해주지는 않으려나 하고 괜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그가 갈 곳은 없었고, 구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두려움 마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N이 말을 걸어준 것이다. N 역시 평소 오지랖이 넓은 성격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방학 이후 혼자 자취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그 누구와도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난히 외로움을 타고 있기도 했다. 저렇게 울고 있는 카오리가, 괜히 자기와 같은 처지에 놓은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그를 향해 뭐라고 몇 마디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대화에서, 카오리가 가장 처음 꺼낸 말은 오히려 이상하고도 엉뚱한 말이었다. 도와드려요? 하고 묻는 N에게 카오리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하고 울먹이며 말을 한 것이었다.
“데려가 달라고요?”
“예.”
“어디로요?”
“아무데나요.”
“아무데나요? 그런데 학생, 집 나왔어요?”
“예.”
N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카오리를 향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위층에 사시는 분이죠?” 하고 카오리가 물었다.
“맞아요. 저를 봤어요?”
“예. 몇 번.”
그 순간 N은 오히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N을 만나보지 못한 나로서는 N이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카오리는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저는 그 여자가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갈지 말지 그걸 고민하는 줄 알았어요. 혼자 골똘히 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서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저와 친해진 후 그 여자가 말해주길, 그때 저를 데려갈지 말지 고민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 여자가 그때 고민을 한 것은, 떡볶이와 순대를 각각 1인분씩 싸왔는데, 그걸 이 아이와 나눠먹기엔 조금 적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에는 아무래도 과정이 섞여 있을 테지만, 그래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N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먹을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올라올래요?” 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는 것이다.
몇 시간이나 앉아 있었던 카오리는 무릎을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렇게 N을 따라서 N의 방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