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 (1/17)

카오리

1부

나와 내 아내는 그를 ‘카오리’라고 불렀다. 카오리는 그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었다.

“여자 이름이 아닌가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는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여자의 이름입니다” 하고 그는 메마른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의 표정이 너무나 굳어 있었기 때문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당신을 ‘카오리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여자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는 농담을 하고 싶었으나, 상대는 그런 농담을 받아줄 만한 여유가 없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은 어색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리고 이 자리를 불편해하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자세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방의 싱크대에서 삐익 삐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끓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내는 나와 카오리를 거실에 남겨둔 채 차를 타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와 카오리는 아무 말 없는 정적 속에서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아내분께서 무척 아름다우십니다.” 하고 카오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고맙다고 대답을 했다.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하고 카오리는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했다.

아내는 발목까지 오는 기다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부드러운 면소재의 스커트였다. 그러나 골반과 허벅지에 딱 달라붙어서 몸매의 굴곡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옷이었기에 그 길이에 비해서 그다지 정숙하다고는 할 수 없는 옷이었다. 아내는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걷기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골반 부분을 확 조여주기 때문에 다리가 마음껏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오늘의 손님 이 카오리라는 남자에 대해 꽤나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저 불편한 옷을 구태여 입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초대남을 부르신 적이 있다고 하셨죠?” 하고 카오리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두 번 있습니다. 카오리님이 세 번째인 셈입니다.”

“전의 두 번은 괜찮으셨나요?”

“비교적 괜찮았던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해서, 초대남과 함께 했던 지난 두 번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었다. 첫 번째 초대남을 불렀을 때는, 아내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아서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못하겠어요.” 라는 말을 아내는 계속 반복했었다. 느긋하게 관전을 하려는 것이 나의 바램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나까지 합세하여 아내의 긴장을 풀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아내는 도무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나 이외의 남자와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남자는 그때의 그 초대남이 두 번째였던 것이다. “미안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 라는 말을 끝으로 아내는 화장실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초대남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했고 그는 괜찮다고 말을 하며, 그러나 석연치 않은 얼굴로 주섬주섬 옷을 주어 입었다.

그 일 이후 초대남을 부를 생각은 하질 않았지만, 한 번 더 불러보자는 얘길 한 것은 의외로 아내 쪽이었다. 한 번 더 해보고 싶다고, 다시 한다면 전처럼 긴장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아내는 정말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르게 된 사람이 두 번째 초대남이었는데, 그와는 비교적 괜찮게 섹스를 끝마쳤지만 그가 돌아간 뒤 아내가 말하길, 생각 보다 짜릿하진 않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초대남과 관계를 가졌을 때, 그의 페니스가 자신의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그 쾌감은, 짜릿하면서도 불쾌하기 그지 없었는데 두 번째 초대남과의 관계에선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 했던 사람이 당신과 잘 맞았나 봐?” 하고 내가 물어봤지만 아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아내 역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정확히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카오리라는 이 남자가 보낸 메일을 봤을 때, 나는 아내를 불러서 이 사람 어떻겠냐고 다급하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창 외출 준비 중이었던 아내는, 나중에 보면 안 되냐고 하였지만 나는 당장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있던 아내는 나에게 끌려오다시피 이끌려서 모니터 앞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크네.” 하고 아내는 말했다.

“잘 봐. 정말 큰 사람이야. 불쾌할 정도로 큰 게 아니라 딱 적당하게 커. 이런 남자랑 해보고 싶지 않아?”

“글쎄.”

나와 아내는, 카오리가 보낸 메일의 첨부파일, 자신의 페니스를 찍어놓은 사진을 한동안 지긋이 바라보았다. 분명히 굵고 길었다. 두툼한 핏줄과 적당한 굴곡은 충분히 탐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정확한 길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보아 그 길이는 20 cm 정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대물이지만 그렇다고 여자 쪽에서 부담스럽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는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가서 화장을 마저 하며 “그렇게 괜찮아 보이면 한 번 불러보던가.” 하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이 만남이 성사된 것이었다.

아내는 녹차 두 잔을 가지고 왔다. 그 잔을 나와 카오리 앞에 내어놓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이라고 물었지만 아내는 별로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눈을 보며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이 남자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랜 세월 함께 산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직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하고 나는 카오리에게 물어보았다. 아내 역시 내가 그렇게 묻자 이 대답은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오리를 바라보았다.

아내와 나는, 아까부터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우리는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나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그가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스물세 살입니다.” 하고 카오리는 대답했다.

그러나 어쩐지 불편해 보였다. 그 대답을 하는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던 것이다. 물론 훗날 알게 된 것이지만, 카오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의 나이는, 실은 열아홉이었다. 나와 내 아내가 그의 나이를 그토록 궁금해 한 까닭도, 왠지 그가 미성년자 같아서였다. 여드름이 듬성듬성한 피부와 미숙하게 멋을 부린 그의 머리는 분명 여느 십 대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가 아니면 됐지? 그렇지?” 하고 나는 아내에게 물었고, 그러나 아내 역시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은 듯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카오리는 어색하게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녹차인가요?” 하고 물으면서 카오리는 그것을 홀짝홀짝 마셔댔다. 아무래도 너무 어린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도 나는 그와의 관계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오리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처음 방문하는 집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기색은 감추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눈은 또렷했고 그의 어깨는 당당하게 벌어져 있었다.

만약 그가 나에게 기죽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나는 그때 즈음, 죄송하지만 당신과는 조금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을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은 너무 어리다고, 그런 말을 할까 말까 나는 망설였던 것이다.

190은 족히 될 듯한 커다란 신장, 그리고 그에 걸맞게 활짝 벌어진 어깨, 살집이 적당히 잡혀 있는 건장한 몸매, 그렇게 멋진 체격을 하고 있는 그가 나에게 기죽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나는 나이를 떠나 그에게 실망을 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였다.

“어떻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며 그는 나를 쳐다보았고 “어때요? 저랑 한 번 즐겨보셔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말하며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의 말에는 분명 당당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고 어딘가 어린 사람 특유의 익살스러움이 묻어 있기도 했다. 나는 아내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아내는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아내분께서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애써 참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이 만남은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카오리는 거실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