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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약 (2/12)

2. 계약

내 몸은 교회 안으로 날 이끌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햇살도 들어오지 않는 실내는 한 발 앞서서 밤이 된듯 싶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위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지금은 저녁 무렵 석양의 붉은 햇살을 받아 오히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형이 되어버린 내 몸은 늘어선 의자 사이의 통로를 지나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이 학교는 낡은 건물로 인해 많은 괴담이 일판 만파 학생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항상 그 괴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교회였다.

여자의 곡소리라든지, 흰 가운을 뒤집어 쓴 유령이라든지, 밤 12시에 흑마술 의식을 위해 고양이 목을 바친다든지 (커스텀 레뇨의 초반은 거의 바이블 블랙이라는 헨타이 에니를 토대로 만든 것 같아요) 하는 이야기들을 난 무심코 웃어 넘겨 버렸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이야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무대라고 느껴졌다.

‘아 돌아가고 싶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내 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면에 설치된 제단 앞에 가서야 내 발걸음은 드디어 멈췄다.

아까 본 영상에서는 제단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움직였지만 그것이 무리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학교에 딸릴 것 치곤 제대로 된 이 제단은 교회에 어울리지 않게 호화스러웠다. 이것은 그렇게 부드럽게 움직일 만한 물건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듯 내 팔은 제단 안쪽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제단 안쪽에 나 있는 작은 돌기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제단이 옆으로 이동했다.

제단이 움직인 그 자리에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었다.

나는 놀랐다.

비밀 지하실. 

학교 안을 떠도는 수많은 괴담들.

흑마술. 그리고 낡고 수상한 이 책....

인정할 수 없는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녀 날 혼란스럽게 했다.

아직까지 내 의지를 거부하는 육체는 한 발씩 한 발씩 계단을 밟고서 내려갔다.

깊은 어둠이 깔려 있는 지하로....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리는 없다. 하지만 지하실 안에 있는 공기는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탁했다. 햇살에 쪼인 적도 없이 바람에 흔들린 적도 없이 한 자리에 정체되었던 공기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풍겨내고 있었다.

한줄기의 빛도 들어올 여지를 남겨주지 않은 지하실은 사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래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으로 꽤 넓은 공간인 듯 싶었다.

‘무얼 위해 교회에 이런 지하실이 있는 거지? 혹시 정말로 흑마술 집회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어리둥절 하는 사이 팔목에 있던 시계가 파란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 시선안으로 빛나고 있는 책이 들어왔다. 내가 들고 온 책이 반딧불인양 부드러운 빛을 내뿜으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이 책을 책장에서 뽑은 후 일어난 놀라운 일에 지친 내 눈 앞에서 책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책 자체가 살아있는 것 처럼 내 품에서 벗어나 허공을 나비처럼 춤을 추며 돌아다녔다.

“으아악”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리곤 뒤쪽으로 엉덩방아를 찍으며 앉아 버렸다.

‘살.. 살려줘... 저주에 걸릴 만큼 나쁜 일을 한 적은 없어!!!!!’

몸의 자유가 돌아왔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체 공포에 떨며 빌고 있었다.

책은 내가 멀 하던지는 상관않고 지하실 중앙쯤 되는 곳에서 멈춰섰다.

점점 더 책에서 발산 되는 빛이 강해졌다. 푸른 빛이 넓은 지하실을 비췄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강렬한 빛. 순간 짐승의 포효와 닮은 낮은 소리가 어딘선가 들려왔다

순간 폭탄이 떨어진 듯한 충격에 내 몸이 날아올랐다.

쿵. 흑

벽에 부딪치며 엄습하는 고통에 난 소리를 질렀다.

계속되는 괴현상이 제발 꿈이길 빌며 눈을 떴다. 하지만  지하실 안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 혼자 판토마임을 한 것 처럼 방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조금전에 그토록 빛을 내던 책도 지금은 잠잠해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현상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을 못 하는 나였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였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였다.

난 몸을 일으켜 내 몸이 들어온 곳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네가 내 새 주인인가?]

내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드려왔다.

‘나말고 이 곳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건가?’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돌린 난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였다.

그 소린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등에 나 있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언뜻보면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엉덩이에 나 있는 긴 꼬리가 그것을 부정했다.

‘뭐.. 뭐지 이 녀석은’

너무나 커다란 공포에 난 도망가는 것도 잊은 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뭘 그렇게 두려워 하며 떨고 있지? 네가 날 불러냈잖아!]

그 괴물은 내 앞까지 내려와서 낮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널 불러냈다니.... 난 그런적 없어”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유황과도 같은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입김이 내 얼굴에 와 닿는다.

역한 냄새가 싫었지만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었다.

[넌 나와 이 책의 은인이니 잡아먹거나 죽이진 않을테니 안심해!!]

이런 상황에서 안심한다면 그 사람은 슈퍼맨이나 신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괴물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난 잠시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 넌 도대체 뭐지?”

조금 진정하고서야 나온 말에 그녀석은 그제서야 가늘게 눈을 떴다.

[난 신의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지. 이 세계에서는 날 악마라 부르더군.]

악마.

그렇군 지금까지 일은 모두 이녀석이 한 짓이군.

그렇게나 비현실적인 현상을 그녀석의 한마디에 모두 인정을 했다.

[4백년이나 이 책과 함께 봉인 되어 있었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 오랜 시간을 갇혀 있었어. 이 굴욕은 잊지 않고 갚아 주겠어.]

자신을 악마라고 나에게 소개한 그녀석은 분통해 하는 것 같았다.

“봉인?”

난 그녀석에게 되물었다. 

[우리들 같은 존재를 탐탐치 않게 생각하는 놈들이 있었지. 이 교회를 세운 놈들처럼..]

악마의 분노가 비린내 나는 입김을 통해 느껴졌다. 불타는 듯한 충혈된 눈이 더욱 무서웠다.

[우리들은 살아가기 위한 필요한 일밖에 하지 않아. 단지 너희 인간들의 어두운 감정이 필요할 뿐이지.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 공기나 의식주가 필요한 것처럼 나 같은 악마가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선 인간들의 욕망이나 증오, 질투 같은 어두움 감정을 필요로 하지.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은 인간을 유혹하거나 인간에게 우리들의 힘을 빌려 주곤 했지. 하지만 녀석들은 이런 우리의 행동을 싫어했어. 단지 존재하기 위한 일인데도 말이야 내 동료들 대부분이 녀석들에게 봉인 당했어. 나도 물론이지만...]

오래 동안 봉인 되었던 탓인지 악마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날 바라보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인가-

[날 꺼내준 너한텐 감사하고 있다. 넌 어두운 감정이 너무 강해. 하기 그 덕분에 나와 이책에 의해 선택되었지만...]

어두운 감정-욕망, 증오, 질투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것들.

난 절규했다. 인간으로서 결함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지만 악마는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 듯하다.

[ 뭘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가? 인간이 발전할 수 있던 원동력이 바로 그런 욕망에서 시작된 것인데.....]

악마따위 한테 위로 받다니 참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봉인을 풀어준 답례다. 이 힘의 사용법을 조금 알려주지.]

바닥에 떨어진 조금 전의 그 책을 악마는 날카로운 손톱이 나 있는 손으로 주워 들었다.

“그 책은...”

[이거? 이건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 중에 하나지]

악마는 다시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욕망은 강력한 에너지다. 그것을 나와 같은 악마와 계약하는 것으로 직접적인 힘으로 변환 시키는 방법이 연구되어 왔다. 인간들이 말하는 마법이란 것이지. 몇 백년 전에는 마법이 성행했어. 그리고 여러 가지 이용법이 고안되었다. 이 책은 그 당시 귀족이 백여명의 마도사에게 마법을 집대성 하라고 한 결과물이다.]

악마의 말에 난 점점 끌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거지?”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공격 마법일까? 아님 부자가 되게 해주는 마법?

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 이 책은 수많은 인간의 욕망 중 한 개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무서운 물건이야.]

“욕망?”

[그래. 욕망. 그 중에서 인간이 생물에 가장 본질적으로 가까운 것. 바로 성욕이지]

나는 자신있게 말하는 악마의 말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해놓고선 기껏 성욕이라니... ’

난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악마의 말은 내 생각을 뿌리 체 흔드는 것 이였다. 

내 실망스런 표정이 맘에 안 든 것인가? 악마는 내 곁으로 다가와 혐오스런 얼굴을 들이 밀었다. 

[ 너에게도 이상의 여자 정도는 있겠지? 그런 여자를 네 뜻대로 따르게 한다면?]

그제서야 악마의 말에 수긍이 갔다

뭐 남자들이야 모두 마찬 가지지만

악마는 내 생각을 읽은 듯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그렇지만 그런 여자를 쉽게 찾을 순 없지. 만약 찾았다 할지라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나는 악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현듯 내 첫사랑이 떠올랐다.

[그럴 때 이 책을 사용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악마는 흉한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여기 이곳에 여자에 대한 것을 자세히 써 넣어라. 그러면 그 조건을 충족하는 여자가 네 앞에 나타나게 될테니]

난 멍하게 악마를 봐라 보았다. 아무리 마법이라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꽤나 매력적인 책이지? 하지만 봉인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야. 봉인을 완전히 푸는 방법이 있을꺼야. 그걸 찾아 내면 넌 다른 힘도 사용할 수 있어]

그 말에 난 계속 책을 쳐다 보았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수고 싶다. 내 모든 욕망을 발산하고 싶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어둠.

그것이 금이 간 틈새를 찾아내고는 더욱더 꿈틀거리고 있다.

“이 책이 있으면 여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난 악마를 향해 물었다.

[그렇지는 않아. 그 책은 단지 여자를 출현시켜 줄 뿐이야. 그 후엔 네가 하기 나름이지.]

“그렇다면 의미가 없잖아!!!!”

녀석은 나의 속마음은 이미 알고 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 그럼 내 힘을 빌려주지. 난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을 컨트롤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나와 계약을 한다면 그 능력을 너에게 조금 나눠 주도록 하지.]

계약이라는 말에 위화감이 들었다. 

“계약이란 내 혼을 가져 가는 건가?”

난 강한 경계심을 세우며 말했다.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이랄까 대가가 있음 그에 따른 조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건 필요 없다. 네 욕망이 시키는 대로 이 책을 사용하기만 하면 돼. 그렇게 해서 증폭된 욕망이 바로 내 힘이 되니까. 네가 가진 욕망의 덩어리가 바로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지.]

악마는 말을 하면서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악마와의 계약이라....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그것만으로 되는 거지?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기다.”

난 다시 확인 하듯 물었다. 

[물론이지. 악마는 계약을 어기는 일따윈 하지 않아]

비록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뿌리치기엔 너무나도 마음에 끌리는 계약이였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어움의 욕망이 그것을 반겼다.

“좋아. 계약하지”

[그렇다면 손을 내밀어라. 젊은 마도사여]

난 오른손을 악마에게 내밀었다. 악마는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은 다음 나직히 주문을 외었다.

[ 난 밤을 움직이는 자. 인간의 음몽을 먹고 살아가는 자. 나는 여기 김 철수을 주인으로 삼는다. 밤의 왕. 어둠의 주인. 내 힘을 내 주인에게 나누어 주노라]

주문을 마치자 전류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내 앞엔 변함없이 흉측한 악마가 서있었다.

“정말 내가 여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긴거야?”

난 악마에게 미심쩍은 말투로 물었다. 

[물론이지. 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디자이어’라고 외치면 여자는 내 말에 따를 것이다]

새로 생긴 힘이 사실인지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때가 되면 천천히 시험해 보거라. 너의 새 힘을...]

그런 말을 남기곤 악마는 눈 앞에서 사라져 갔다.

악마가 사라진 지하실에 나 혼자 외로이 서 있었다. 마치 꿈을 꾼 것 처럼...

난 서둘러 지하실을 빠져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맨션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붉을 가죽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악마와 이야기 한 것이...

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손에 들려진 책을 넘겨 보았다. 

난 지금까지 사실이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도서관에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글들이 지금은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특별히 글자가 한글로 바뀐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마력이 개방된 덕인가?‘

책의 서론은 이 책의 목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봉인이 완전히 해제가 된 것이 아닌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이 있었다.

책을 읽어 내려갈 수록 내 검은 욕망은 더욱더 고동쳤다.

난 내 이상형을 출현 시키기 위하여 책의 마지막에 꼿혀 있는 날개 펜으로 글씨를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느 새 날은 저물어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난 기대감에 부풀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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