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례뇨
1. 프롤로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것.
소리도 없이 부글부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밖을 향해서 나가려 요동친다. 만약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들어갈 작은 틈이라도 발견한다면 곧 바깥으로 분출 할 것이다.
그것은 [어둠]. 내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
오래된 학교 건물이 싫은 건 아니지만 저녁 무렵의 이 시간은 나에게 묘한 이질감을 준다.
붉으스레 약해지 햇살이 만드는 그늘 뒤에 무언가가 숨어서 남 몰래 누군가가 날 지켜 보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느끼게 된다.
미스터리나 유령, 괴담 같은 하찮은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던 좋은 느낌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색한 불쾌감이 날 감쌀 뿐이다.
아이들이 빠져 나간 학교는 어두운 침묵만이 맴 돌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애들이 도서관에서 뭔가 나왔다고 했지.....”
내 중얼거림이 텅 빈 학교 복도를 울리자 등살이 서늘해진다.
.....낮에 몇몇 여자애들이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유령이 나온다는 그 도서관에 지난 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난 조금 발걸음을 빨리 했다.
타닥타닥
아무도 없는 복도에 내 발소리만 메아리쳤다.
숙제에 너무 시간을 들인게 후회된다. 아직 2일 남아으니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써도 괜찮았는데.... 성적에 반영이 되는 이상. 이런 하찮은 숙제도 간과 할순 없었다.
가람 고등학교는 주위의 다른 학교보다 역사와 전통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SKY 라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명문이였다. 부모님을 어렸을 적부터 성적이 좋았던 날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셨다.
집에서 멀기 때문에 빌린 맨션의 방세나 다른 학교 보다 비싼 등록금, 그리고 매달의 생활비.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닌 평범한 가정인 우리집엔 힘겨운 부담이였다. 그만큼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도 크다는 이야기이다.......
휴우~
나도 모른게 내뱉은 한숨이였다.
“...기대라...”
부모님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서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기대만을 위해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그런 기대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젠장!!!!”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갈라질 듯한 아픔이 지금 느끼는 마음의 고통인양 뇌리 속을 찾아 들었다.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그 무언가를 억누르는 아픔.
스스로를 둘러싼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충동.
지표의 깊숙한 지하에서 끓어오르며 꿈틀거리는 마그마처럼, 우리들 눈으로 보이지 않은 그 깊숙한 그 곳에서 그것은 언제나 출구가 되는 빈 틈을 찾고 있다.
나라는 껍질 속에 감춰진 검은 욕망.... 힘을 얻고 싶다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말을 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힘을 가지고 싶다고.....
“!!. 안돼!!!!!! 무-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바보같이!!!!”
난 끓어오르는 그 무언가를 떨쳐버리려는 듯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댔다.
지금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였다.
난 지금에 생활에 만족한다. 오래되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자유스러운 학교, 언제나 밝은 친구들, 그리고 날 지켜봐주는 가족.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까 떠올린 것은 착각 아니 환상이였다. 분명히!!!.....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가로저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폐문시간 다 되어가서인지 도서관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 2,3명. 카운터에서 접수를 하고 있는 여학생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을 반납하고 싶은데....”
난 그 애 앞에 가서 책을 내밀며 말을 했다.
조금 짜증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여학생으로부터 다시 책을 받아든 난 책이 꼿혀 있던 책장으로 걸어갔다.
학교에 있는 도서관 치고는 보유한 책이 많아 난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 설비 자체는 잘되 있어 꽤 마음에 드는 곳이다.
형광등이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반 여자애들의 말이 떠오른다. 학교가 오래된 만큼이나 괴담도 많지만 도서관에서 무언가가 나왔다는 말은 아마 헛소문일 것이다. 이렇게 밝고 깨끗하게 정리된 곳에 나오는 유령이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적이 없다. 책장 뒤쪽에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를 잘못 보고 놀란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는 흔한 것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빌린 책의 번호를 보고 책 넣을 곳을 찾는다. 빌릴 때 대충의 위치를 기억해 두었기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으응?”
눈높이의 빈장소에 책을 꽂아 넣은 난 문득 그 옆에 있는 책에 눈길이 갔다.
붉은 가죽 표지에 이상한 도형이 그려져 있는 책이였다. 뒷표지에도 금박을 입힌 글씨가 쓰여 있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였다.
표지의 도형과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슨 책이지?”
가볍게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생각보단 중량감이 있었다.
꽤 오래된 책인듯 싶다. 제본도 닳아서 책장이 떨어져 나가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뒷 표지와 마찬가지로 금박을 입힌 도형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그래서 더욱더 책의 내용에 궁금증을 더해 갔다.
“뭐지 이책은?”
나는 조심스레 책의 표지를 넘겼다. 누렇게 빛바랜 종이, 군데 군데 나있는 벌레 먹은 자국이 책이 오랜 세월을 견뎌 낸 것임을 알려주었다.
종이엔 퇴색되기 시작한 잉크로 글씨가 가득 젹혀 있었다.
아무래도 인쇄한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 한 글자씩 손으로 직접 쓴 듯, 문지른 자국이나 실수를 수정한 곳이 검게 칠해져 있기도 하였다.
“인쇄 기술이 발달한 지가 언젠데, 이런 책이 여기 도서관에 있을까?”
난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하였지만 더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이 책에 쓰여져 있는 글자. 표지의 글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읽을 수가 없는 것이였다.
“어느 나라 글자야 이거!”
분명히 책에 적힌 글은 한글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영어의 알파벳도 아니였다.
어렴풋이 세계사 교과서에서 본 갑골 문자나 인더스 문자 같은 고대문자임에 틀림없다.
“나 참! 고등 학생 수준으로 읽지도 못하는 책은 놔두지 말라고!”
읽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이해도 안 되는 책만큼 가치 없는 것이 없다. 호기심이 들었지만 포기하고 책을 제자리에 놓으려고 했다.
그 순간!!!!!
“윽!!!!”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은 음청난 고통이 뇌리를 자극했다.
흡사 머리위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충격에 난 신음 소리를 냈다.
뇌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과 동시에 무언가가 눈 앞에 보였다.
아니 보였을 리 없다. 난생 처음 느끼는 고통으로 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분명 위아래의 눈꺼풀이 닿혀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보이고 있다. 내 두뇌에, 시신경에 직접 영상을 보내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혼란스런 뇌리 속에선 흐릿하던 영상들이 점점 선명해져 왔다.
“뭐야 이건!!!!”
칠흑 같이 어두운 하늘.
우뚝 솟아 오른 삼각형의 지붕. 그 위에 장식된 십자가.
거대한 문이 열렸다.
하늘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실내 그리고 제단....
움직일리 없는 그것이 서서히 움직였다.
“큭!!!!!”
다시 한번 강렬한 통증과 함께 사라져 갔다.
헉. 헉. 헉
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체 가쁜 숨만 반복하고 있었다.
내 손에는 그 책이 들려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책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법, 저주.
만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말들이 생각났다.
물론 그런 것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방금 일어난 현상은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책에 손대는 것은 안된다. 난 그것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질 않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난 책을 든 채로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뭐야! 어떻게 된거지?’
아니 움직이지 못하는 거은 손가락만이 아니였다.
발도 몸도 머리도.... 마치 신경이 끊어진 듯 움직이지 않는다.
겨우 눈만이 내 의지대로 좌우로 움직일 뿐이였다.
급속하게 팽창되는 공포에 지배당했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니....
‘난 이대로 여기 주저앉은 체 언제까지 있어야 된지?..... 누가 날 도와줘!!!!’
목청껏 외치고 싶었지만 입마저 움직여지질 않았다.
난 공포에 휩싸인체 무작정 팔과 다리를 움직이려 애를 썼다. 그러자 갑자기 내 몸이 일어서는 것이였다.
‘움직인다. 내 몸이!!!! 휴 살았다!!!!’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 내 몸이 왜이래!!!’
난 일어서서 무언가에 조종당한 인형처럼 멋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 책을 손에 들고서 책장을 빠져나와 도서관을 나왔다.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뒤죽박죽 된 의식을 담은 내 몸은 목적지도 모르는 버스와 같이 날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기 위해 인적이 없는 복도를 걸어갔다
마침내 학교의 한 구석으로 난. 아니 내 몸은 왔다. 내 몸이 있는 곳은 기독교 학교 특유의 교회가 있는 장소였다.
기독교 동아리 애들이라면 클럽 활동시간이나 예배 시간에 찾겠지만, 나 같은 비기독교 학생에겐 아무 연관도 없어서 입학 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그런 곳이였다.
내 몸은 무언가에 끌리듯 교회로 향하였다.
올려 보자 하늘로 향한 첨탑이 솟아 있고, 그 위의 십자가는 석양의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 책은 나한테 무엇을 바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