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그러니까 이 사태는 나비의 낮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불러온 참사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 은찬은 맞자마자 쓰러졌고, 나비는 쓰러지지 않았다. 나비가 쓰러지지 않을 것을 예상한 팀원들은 연달아서 그녀에게 추가 탄을 쏘았고, 그러고도 모자라 실탄이 장전된 총까지 꺼내 들었다.
끝까지 나비는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이 기술의 발전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선 것인지, 나비의 표정은 천 년 동안 겪어본 적 없는 고통과 당황에 전에 없이 일그러졌다.
“너…… 희…….”
씹어내듯 뱉는 그 글자 하나하나에 날카로운 수천 개의 칼날이 박혀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팀원들 모두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물론 그들은 이것만 준비한 게 아니다. 부대장이 소리쳤다.
“지금!”
그러자 바닥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격리팀 직원들이 분주히 숨겨두었던 전선이 나비의 신발 밑창과 함께 강렬히 타올랐다. 테이저건을 한 발 맞고도 기절하지 않은 강은찬이 소리쳤다.
“누나!!”
나비의 육신이, 강은찬의 눈앞에서 환하고도 새까맣게 타올랐다.
그리고 끝이었다.
불쾌한 냄새를 풍기며 한때 전나비였던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허름한 창고 바닥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누…….”
그러니까 이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늙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기존의 생물과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무언가였다. 인간들의 무기로 말미암아 죽어버린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강은찬의 몸이 주체할 수 없게 떨렸다. 믿을 수 없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고 파괴하는 형상에 공포마저 일었다. 대체 그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되…… 된 건가.”
부대장이 확신 없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비의 육신 바로 옆에 있던 차유완도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벌벌 떨었다.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까맣게 탄 듯한 무언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찬아…….”
평소에 듣던 전나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전나비의, 본질에 보다 가까워진, ‘진짜’ 목소리 같은 것이 창고 안 공기를 타고 느리게 울렸다.
같은 영장류의 목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강은찬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눈 감아라…….”
강은찬은 얼른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단순히 눈꺼풀이 안구 위로 덮는 수준의 어둠이 아닌, 지하 방공호에서 자주 봤던 그 진짜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다. 은찬의 주변으로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피부를 오싹하게 만드는 근원적 공포가 피어올랐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눈을 감아도 발밑의 아찔한 낭떠러지와 날카로운 바람 소리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 은찬은 그런 기분이었다. 발밑에 지옥에 부는 바람처럼 날카로운, 살 가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나비가 무언가 기괴한 일을,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차유완의 겁먹은 목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들렸다.
“뭐, 뭐야……. 뭐야……. 너, 너…… 너, 뭐야.”
인지 능력의 바깥에 존재하는 생물을 마주한 것 같은, 그런 반응이었다. 강은찬은 소리와 피부로만 판단해야 했다. 눈을 떴다간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 같은 꼴이 되고 만다.
“뭐야…….”
아마도 저게 유언일 거다.
생물도 아닌 무언가가 강은찬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넌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말라니. 턱이 떨린다. 손끝이 제어가 안 된다. 은찬은 눈을 뜨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고 싶었다. 나비의 명령이 절대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녀의 카리스마라는 것이 신화적 폭력에 근본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은찬은 안 그래도 오감과 직감이 한계까지 발달한 인간이었다. 시각 정보를 차단한 것만으로는 안전할 수 없었다. 그는 토기가 몰려와 입을 틀어막았다.
‘누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물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기분을, 직감을 느끼며 그 자리에 떨었다.
곧 사방이 잠잠해지고, 나비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
그 한숨 소리조차 기이했다. 은찬은 눈을 뜨지 못하고 물었다.
“이, 이제 눈 떠도…….”
“아직 안 돼.”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가 강은찬의 이마와 눈을 크게 덮었다. 확실히 인간의 손은 아니었다. 은찬은 정말 아플 때는 비명을 삼켰듯이, 정말 무서울 때도 비명을 삼켰다.
나비가 평소처럼 머쓱하게 말했다.
“내가 왜 신화 생물로 분류된다고 생각해…….”
“모,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도 몰라…… 아무튼 눈은 뜨지 말아봐. 금방 치울게.”
여전히 말재주 없는 상대는 분명 그 전나비였으나, 강은찬의 마음은 조금도 안정되지 못했다. 은찬은 차마 제 눈을 가리고 있는, 손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치울 생각도 못 하고 다시 물었다.
“죽이신…… 겁니까.”
“아, 아니. 죽이진 않았어…… 죽이지는…….”
그냥 죽이는 게 인도적인 일이었으리라 말하고 싶은 걸, 은찬은 꾹 참았다. 나비가 계속 이어 말했다.
“근데 아마 이대로 놔두면…… 계속 날 쫓아오겠지?”
“…….”
“내가 죽을까…….”
“뭐라고요?”
이 말에 은찬이 그녀의 손을 퍽 치우고 눈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보고 말았다. 뜻밖에도 평소의 전나비가 평소 같은 모습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닌가?’
아니었나?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진실인가? 강은찬은 머리가 핑 돌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나비가 얼른 다시 그의 눈을 가려주었다.
“눈 뜨지 말라고 했잖아.”
“그, 그렇지만…… 누나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내 시체가 있으면 더 이상 날 안 쫓을 거라는 말이지.”
“그럼 누나가 죽잖아요!”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비가 느릿하게 말했다.
“은찬아. 나는…… 죽지 않아…….”
***
몇 달이 지났다. 성간시 송원면의 지하 방공호는 폐쇄되었다.
차유완은 무사히 깨어났다. 기절했던 팀원들 대부분도 무사히 눈을 뜨고 제정신을 차렸다. 비록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한 자들도 있었으나, 그는 전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전원이 먹힐 수도 있었으니.
고압 전류로 전나비를 지진 결과는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창고 전체에 커다란 살덩어리가, 말 그대로 어느 부위도 아닌 그저 ‘살’ 그 자체가 크게 퍼져있었다. 그 이후로 전나비의 행적이 끊어졌으니, 차유완은 이것을 전나비의 시신으로 보고 수습했다.
다만 그 당시의 기억이 희미했다. 전나비가 죽는 순간 그녀가 무슨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고, 발악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비명을 지르고 발악했던 건 그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수집했던 그 어떤 인외(人外) 생명체들의 데이터와도 맞지 않는, 과연 신화 생물다운 괴이하고도 허무한 최후였을 거라고, 차유완은 보고서를 올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나비는 실종되었다.
그녀를 개처럼 따르던 강은찬도 그녀를 따라 행적을 감췄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도 서류상으로는 신분조차 없는 살인 청부업자였으니 말이다.
차유완은 추가 보고서를 완성하기 위해, 전설호를 찾았다. 병상에서 회복해 집으로 돌아간 전설호는 이렇게 말했다.
“그 괴물 죽어서 속이 다 시원하다.”
그뿐이었다.
동생이 실종된 신준은 한동안 강은찬을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킬러로서의 그의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했으나, 강은찬은 정말로 나비를 따라 자살이라도 해버린 것인지,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준은 강은찬이 남기고 간 유품을 정리하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계약금만 홀랑 먹고 죽어버린 전나비에게 부탁했었던 의뢰가 이뤄진 거다. 두 달이 안 되어 신준의 아버지가 실종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또한 언제 죽거나 실종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준은 그의 동생과 맞먹는 수준의 직감으로 이것은 전나비의 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동네 이웃을 소중히 여기며 약속도 어기지 않는 나비가 돌아와, 의뢰를 마치고 간 것이라고.
‘그럼 의뢰비 잔금을 받으러 오는 건가?’
듣기로는 전나비는 기이한 형태의 시신이 되었다고 했는데, 차라리 그가 알던 그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찾아오면 모를까, 크툴루 같은 모습이라면 사양이다. 절대 안 된다. 준은 그 이후로 전나비가 제발 그냥 죽었길 바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또 가끔은, 옷장을 보며, 말도 못 하게 쓸쓸해질 때도 있었다. 쓸쓸하기는 그 동네 경찰도 만만치 않았다. 박도하는 깊은 관계자로서 차유완에게 상당한 정보를 건네받았다. 실은 절반 이상이 도하가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다. 나비 앞에선 모르는 척 한 거지만.
그냥 평생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다. 도하는 금연에 실패했다. 담배를 뻑뻑 피우며 꽤 많이 울었다. 가끔씩 그들이 차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냈었던, 그 절벽에 가서 상념에 젖어 있기도 했다.
그녀는 무엇이었나.
죽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디에서 뭘 하며 살아있는 걸까.
***
방공호가 폐쇄되고 2년이 지났다.
나비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강은찬의 바보 같은 자는 얼굴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은 자는 것도 잘생긴 데다 사랑스럽다. 짙은 눈썹 아래 속눈썹이 아름답게 자라있고, 날카로운 눈매와 콧날에는 수컷의 강인한 느낌이 배어났다. 이렇게 생겨 놓고 그녀의 옆에서 무방비하게 잠들어있는 거다.
아무도 모르는 어느 바닷가에서, 나비는 그의 짙은 검은색 앞머리를 쓸어넘겨 줬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할 수 있다.
오늘은 된다. 오늘은 가능하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맹렬한 기색으로 서랍을 열었다. 2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감각이 날카로운 은찬이, 알몸으로 부스스 깨서 눈을 비볐다.
“누나…… 뭐 하세요.”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가 말입니까?”
“삽입 섹스.”
“…….”
은찬도 벌떡 일어났다.
“누, 누, 누, 누나. 누나.”
“할 수 있어.”
나비는 서랍에서 콘돔을 찾아 하늘을 향해 번쩍 치켜 올렸다. 자신감과 용기가 하늘을 찔렀다. 나비는 스스로에게 감격한 듯 그걸 들고 후다닥 침대로 돌아와 은찬의 위에 올라탔다.
은찬은 이미 벗고 있었지만, 나비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나비는 콘돔을 입에 문 채 시원하게 잠옷 바지를 훌렁 벗었다.
“하자.”
남색 팬티가 드러나자, 은찬이 당황해서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누, 누나. 아침부터! 갑자기 뭘 합니까. 오늘 이사하잖아요. 저희 세 시간 있다가 출발해야 합니다.”
“세 시간이나 남았잖아.”
“그, 그래도 그렇지…….”
나비가 저돌적으로 몸을 낮추고 은찬의 예리한 턱선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평범한 연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은찬은 차마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부드럽고 작은 여체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냥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끙끙대기만 하며 곤란해했다.
“다, 다른 데도 아니고, 송원면으로 돌아가는 건데……!”
그들은 원래 있던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응. 방공호는 내 거니까.”
나비가 단 한 번도 그녀의 역작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보통 사람과도 같은 감정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비는 2년 내내 끝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연구하고 개발했다. 맞이하는 매일이 그 결과였다.
“너도 내 거고. 자지 내놔.”
“누나아!”
나비의 손이 거침없이 은찬의 아랫배로 향했다. 앙큼하게도 이미 바짝 서 있다. 나비가 콘돔을 물고 저돌적으로 달려들 때부터 은찬은 한계까지 발기했다.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몸은 이미 넣을 준비가 끝났다. 덧붙여 음경과 고환 사이의 피어싱도, 여전히 제자리에서 빛났다.
나비는 뜨거운 살 기둥에 콘돔을 씌우며 키득댔다.
“준비됐잖아.”
“이, 이건, 누나 안에 들어가는 물건이 아닙니다.”
“뭐라는 거야. 내 마음대로 쓸 거야.”
“그, 그렇지만, 누나. 저번에도 했다가…….”
그의 음경이 완전히 망가질 뻔했다.
그러나 나비는 그런 일로 좌절하지 않았다. 은찬이 좌절한 건 알 바가 아니었고 하여간에 도전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나비는 콘돔을 뜯어 마음대로 그의 성기에 씌웠고, 은찬은 그걸 또 반항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
나비는 천 년 동안 삽입 섹스를 안 한 게 아니었다. 못했다.
질 안에 음경을 삽입하는 행위는 벽에다 못을 박는 그런 짓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협조를 해야 한다. 질은 음경에 맞춰 벌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억지로 들이밀면 보통 음경은 몰라도 질에는 상처가 난다. 그런데 나비의 질은 결코 상처가 안 난다. 상처가 나는 건 음경 쪽이었다.
그러니까, 나비의 그 물리 법칙을 초월한 회복력과 육체 능력 때문에, 도무지 질이 벌어지지 않았다. 넣을 수 없었다. 나비는 거의 신경질을 내며 2년 동안 몇 번인가 은찬의 물건을 넣어보려 했는데 2cm도 들어가지 않았다. 은찬만 아파했다. 물론 은찬은 아파하면서 좋아했다.
하여간에 나비가 성적으로 흥분해서, 준비되어야지만, 삽입이 가능하다. 촉각도 둔하고 감정에도 둔한 데다가, 애초에 유성 생식으로 태어났는지부터 의심스러운 나비에게는 불가능처럼 느껴지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비는,
“난 준비됐어. 천 년 동안 끝없는 노력을 통해 이제 삽입도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해졌단 말이야.”
이 정도의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다.
은찬이 꾸물대며 일어나려는 것을 나비는 그냥 때려서 저지하고, 속옷을 벗었다. 윗도리는 맨가슴이 살짝 비쳐 보이는 얇은 잠옷에다 하의는 없다. 은찬의 음경이 거세게 꺼떡거렸다. 그 끄트머리 위로, 나비는 자신의 성기를 맞춰 다리를 벌렸다. 표정에서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가만히 있어.”
“누나! 굳이 도전하지 않으셔도!”
그러나 나비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윽…….”
아프지도 않은 주제에 나비는 묘한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허리를 낮췄다.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금은 벌어지는 듯싶다. 질구를 짓누르는 음경이 안쪽으로 꾸역꾸역 침입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나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거 지금 들어가는 거니?”
“…….”
은찬이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가, 갑자기 나비를 껴안고 확 덮쳤다.
“어머.”
그리고는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여체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그녀 안으로 침입했다. 들어간다. 버거울 정도로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그 뜨거운 안쪽이 분명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나비는 힘 조절을 할 필요가 없는 상대다.
그녀의 개로 살며 수컷으로서의 본능을 참고 있던 은찬이, 이제서야 짐승이 되어 으르렁댔다. 거대한 살 기둥이 좁은 배 안으로 꾸역꾸역 한참을 들어오고 나서야, 나비가 자신의 아랫배를 만지며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머나. 들어왔구나.”
자신의 몸을 두고 하는 말 치고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은찬이 격정을 견디느라 그녀의 어깨를 깨물었는데, 그의 잇몸만 아팠다. 그래도 은찬은 계속 그녀의 목덜미와 어깨를 깨물며 허리를 움찔댔다.
“……네. 전부……. 들어갔, 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비의 안을 채운 것은 강은찬의 음경이 아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성취감이었다.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물론 강은찬의 음경도 그녀의 안을 채우고 있긴 했다. 나비는 천사처럼 웃으며 은찬의 등을 어루만졌다.
“내가 해냈어. 난 대단해…….”
“축, 축하드립…… 니다.”
“이제 움직여 봐.”
“그게…….”
나비의 귓가에 맹수 같은 숨을 쌕쌕이던 은찬이 헐떡이며, 끊어지는 숨 사이로 간신히 보고한다.
“못, 못하겠…… 습니다.”
나비는 이해했다. 그녀의 질은 받기만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딱히 막 들어온 물건을 부드럽게 감싸준다거나, 앞뒤로 왕복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꾸물거리거나 하는 일은 아직 무리였다. 그녀는 이제 막 첫발을 뗀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기쁘다. 나비는 무려 삽입을 해냈다. 그녀 인생의 큰 성과다.
나비는 은찬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알았어. 이제 빼도 돼.”
“그, 흑…… 때, 때리시…… 면.”
그런데 은찬이 기묘할 정도로 몸을 떨었다.
함께한 시간이 있다. 나비는 은찬의 상태를 단박에 눈치챘다.
“……쌌어?”
“누나 안에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파서 싼 거야……?”
“좋아서 쌌어요.”
“너 아직도 아프지……?”
나비는 반항하는 은찬을 눕히고 몸을 일으켰다. 은찬의 성기가 아픔 속에서 해방되자마자 힘을 잃고 털썩 쓰러졌다…… 적어도 나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침부터 하드하고 기묘한 플레이를 한 은찬이 할딱대며 이불에 몸을 비볐다.
“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 하면 이거 망가질 것 같은데.”
“저는 누나 손에 망가지고 싶습니다!”
나비가 그의 성기를 찰싹 후려쳤다. 은찬이 허리를 휘며 신음했다.
“하윽…….”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다음에는 좀 더 길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서랍 안에서, 평소 은찬의 안을 드나드는 온갖 실리콘 막대기들을 꺼내 침대 위에 와르르 쏟아냈다.
“하던 거나 하자.”
잠깐이지만 행복한 플레이를 했던 은찬이 새삼 겁을 먹었다.
“누, 누나. 저희 그렇지만…… 세 시간 있다가 짐 싸서 나가야 하고…….”
“세 시간이나 있잖아.”
“세 시간으로 안 끝날 것 같은, 흑, 아읏, 응…… 아앗…… 앗, 누나……!”
***
그래서…… 그녀는 정말 무엇이었나.
이 질문은 전나비 본인조차도 결론 내리지 못 했다. 그녀는 돌연변이였고, 생물의 법칙을 어기는 무언가 다른 존재였고, 악마이기도 했다. 아마도 국가 기관에 순순히 몸을 바친다면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조만간도 아니다.
국가 기관이 그녀가 죽었다고 확신한 틈을 타, 그녀는 방공호를 되찾고자 한다. 옆에 개 한 마리를 끼고 그 동네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국가 기관이 그녀의 생존을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그 팀장이 살아있는 한 다시 덤비는 일은 없겠지. 그녀의 전남편도, 동네 경찰도, 강은찬의 형제 강아지도, 아직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그 동네는 그녀의 영역이다. 나비는 본래 그녀의 것이었던 땅으로 향한다.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나비가 그녀의 둥지로 돌아간 뒤의 일은, 아무래도 너무 뻔하니까 생략하도록 하겠다.
<본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