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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비트-42화 (42/57)

42화

유완은 조금 더 고민했다. 어쨌든 그는 방금까지 걷어차였고, 아픈 건 싫었다. 전나비를 뭐라고 불러야 강은찬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가. 누나도 안 되고, 이름도 안 되고. 이 집의 권력 관계를 고려해보아 이건 어떨까.

“주인님?”

“!”

강은찬이 눈에 띄게 동요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건, 그건…… 안, 안 돼.”

“……왜 안 돼?”

“누나가 좋아할 것 같은…….”

은찬은 말을 하다 말고 화를 냈다.

“그냥 안 돼.”

“뭐 어쩌라고. 고슈진사마라고 불러?”

“더 안 돼! 미친 새끼야. 네가 일본인이냐? 신토불이 몰라? 애국해, 썅!”

은찬은 당장이라도 유완에게 김치를 먹일 것처럼 분노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

“…….”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식인 괴물을 돕고 있는 전직 살인 청부업자와 그 괴물에게 붙잡힌 격리팀 팀장이 지하 방공호에서 고민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주제였다.

유완이 나비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어떻게 불러야 나비가 만족하는가에 대해서 은찬은 사실 답을 알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뭐라고 불려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심지어 붙잡힌 식량이 이 세상의 모든 모욕을 합쳐 불러도 나비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가축에게 욕을 먹었다고 화내는 인간은 없다. 심지어 곧 먹을 가축에게, 열악한 환경과 엇나간 배려가 만든 공포와 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축에게 말이다.

문제는 은찬이었다. 그는 차유완이 나비를 뭐라고 부르든 기분이 나빴다. 아니, 그냥 차유완의 존재 자체가 기분이 나쁘다.

왜냐면…… 잘생겨서……. 제 자리를 뺏길 것 같아서…….

멀리 갈 것도 없이, 강은찬 본인이 방공호에서 구르다가 그만 나비에게 인생을 베팅했다. 차유완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은찬은 마음을 정했다.

“그냥 부르지 마, 씨발놈아. 네가 누나 얼굴 볼 일 없을 거니까.”

그리고 은찬이 유치한 질투를 하는 것 또한 열 살짜리 어린애가 봐도 뻔했다. 은찬은 바닥에다 아침 도시락을 던졌다.

“처먹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의아해하는 유완에게 은찬이 답했다.

“너 아픈데 없이 살찌워야 해.”

“…….”

“먹어.”

은찬은 벽에 기대어 팔짱 낀 채 명령했다. 내려다보는 눈길이 싸늘한 것 같으면서도, 자발적으로 먹지 않으면 목구멍에 관을 꽂아서라도 넣을 기세다.

유완은 당장 그가 미워서 어떻게든 괴롭히려 하는 강은찬의 태도보다는, 아픈 데 없이 살찌운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훨씬 무서웠다.

그를 걷어찬 강은찬보다 지금 자리에도 없는 전나비의 존재가 진정으로 두려웠다. 전나비는 인간을 먹기 위해 죽인다. 그는 먹이 사슬 피라미드에서 안전하지 않았다.

유완은 식은땀을 흘리며 은찬을 한 번 올려다보고, 이를 악물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꿀꿀이죽 같은 것이 있었다. 아픈 데 없이 살찌운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이것저것 넣어 영양소를 신경 쓴 것 같은데, 그 상태로 최대한 맛 없게 만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단 먹어야 산다. 유완은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강은찬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은찬이 차가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가, 화들짝 놀라 냉큼 받았다. 기억이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을 걷어차던 인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도록 순수하게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뉴나!”

“!”

‘뉴나’ 이러고 있다. 전화를 건 상대는 전나비였다.

딱히 은찬이 스피커폰으로 돌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소리가 쉽게 울리는 방공호인 데다가, 유완은 원래도 청력이 좋은 편이었다. 험하게 굴러서인지 한쪽 귀는 잘 안 들리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부 잡아냈다. 무엇보다 은찬이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고.

나비의 청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두운 지하 방공호로 흘러나왔다.

-뭐해?

“누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래. 하던 거 마저 해.

그러고 전화가 끊겼다.

“…….”

“…….”

은찬도 그렇지만, 유완도 밥 먹다 말고 상황을 이해하느라 잠시 굳었다. 몇 초 뒤 은찬은 번개 같은 속도로 다시 나비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쳤다.

“무슨 오해를 하신 겁니까?”

-자위하던 거 아니었어?

“뭐라고요? 아니었습니다! 제가 무슨…….”

발정 난 개새끼도 아니고…….

라기에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은찬은 문장을 끝마치지 못하고 헛기침했다.

“큼. 아무튼, 돼지 밥 주고 있었습니다.”

유완이 세모 눈을 하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만은 은찬은 쳐다도 안 봤다. 그는 볼을 붉히며 수줍게 덧붙였다.

“그리고 저 누님 허락 없이는 안 합니다. 아시잖아요.”

-몰랐어…….

“……어제 말했……. 이제부터 아세요.”

무드가 잡히지를 않는다. 은찬은 머쓱해하며 핸드폰을 고쳐잡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네 생각이 났어.

“…….”

유완은 눈을 비볐다. 순간 강은찬의 뒤로 꽃이 피면서 지하 방공호로 아름다운 햇살이 드리우는 듯한 환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순수한 기쁨과 감격만으로 저런 착시 현상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저 새끼 인간이 아니지 않나 싶다.

은찬은 감동해서 한동안 말을 못 하다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네. 저도 사랑해요.”

-근데 네 형 쩔더라.

핸드폰이 박살 났다.

구경하던 유완은 다시 눈을 비볐다. 저게 악력으로 부러질 수 있는 물건이던가? 게다가 어쩐지 타이밍 좋게 낡은 야외 조명이 배터리가 닳아 깜빡거리고 어디선가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은찬은 “누나가 또 바람을…….”, “아니, 누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따위의 혼잣말들을 늘어놓더니, 갑자기 차유완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유완은 조금 뒤로 물러났다.

“뭐, 뭐.”

“야.”

은찬이 물었다.

“누나 정체부터 방공호 설계도까지…… 누가 제보했어?”

물론, 제보자의 정보는 함부로 발설해선 안 된다. 유완은 즉답했다.

“말 못 해.”

은찬은 일단 때렸다. 그렇지만 은찬도 한때는 의뢰인의 신변을 목숨 걸고 지켜야 했던 입장이었기에 이해는 됐다. 아마 차유완은 어지간한 수로는 입을 열지 않을 테지. 쉽지 않은 고문이 될 거다.

하지만 나비가 또 바람피웠다. 그리고 은찬은 화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걸복걸하며, 그녀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일 정도뿐이다. 예를 들어, 전나비의 정체와 방공호 설계도를 국정원에 제보한 자의 신원이라든가.

그런 생각을 하며 차유완을 내려다보니, 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한테 쓸 시간이 있나? 네 누…….”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직 못 정했다. ‘누’ 자만 나왔을 뿐인데 강은찬의 개눈깔에서 살벌한 기운이 뚝뚝 떨어진다. 유완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 얼른 시선을 피했다.

기싸움에서 눌린 유완은 급한 대로, 대충 아까 인상 깊었던 호칭을 꺼냈다.

“……뉴나가 바람피우고 있는, 크헉!”

고간을 걷어차였다.

“나만 누나를 뉴나라고 부를 수 있어.”

딱히 나비가 허락한 적은 없다.

“네가 무슨 훈련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그 새끼 이름 부는 게 좋을 거다.”

은찬은 소매를 걷으며 유완에게 다가갔다.

***

차유완은 제법 버텼다. 그리고 의뢰인의 이름을 똑바로 불지도 않았다. 차유완이 고통에 못 견뎌 조금 흘린 정보만 가지고 은찬은 섬뜩한 직감으로 범인을 추리해냈고, 이연석의 회사 앞까지 소리 없이 찾아갔다.

얇은 안경을 쓴 예민한 인상의 미남은, 어울리지 않게 뿌듯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은찬이 그 모습을 저격수처럼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네! 당연하죠. 뭐 따로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마지막 전화가 되리라. 은찬은 이연석이 전화를 끊고 차에 타기 직전, 불쑥 골목 사이에서 나타나 그대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채 어둠 속으로 귀신처럼 끌어당겼다.

빠르고 신속했다. 목격자도,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은찬은 틈새 속에서 나타나 희생자를 데리고 틈새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복잡한 골목길 속, 그가 몇 번 사용했던 컨테이너형 창고로 이연석을 끌고 들어갔다.

그 창고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했고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은찬은 다짜고짜 사신처럼 물었다.

“누나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겁에 질려 있던 이연석도,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들은 구면이다.

“너야말로 어떻게 나비 씨의 환심을 샀지?”

“뭐?”

“네가 나비 씨 집 지하실에서 알몸으로 나오는 걸 봤어.”

그렇게 말하는 이연석의 표정이 지독하리만치 원망에 차 있어서 은찬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연석의 살기는 은찬의 그것과 맞먹었다. 이 얌전하게 생긴 비서가 오랜 시간 동안 속에 무언가를 품고 칼을 갈아 왔다는 걸, 은찬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비서는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도 불쾌했다. 단순히 질투심 때문이라기엔, 목덜미까지 뻣뻣하게 만드는 위화감과 부자연스러움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이 남자는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직감이 든다.

“사진도 찍어놨지.”

연석이 은찬을 뿌리치며 핸드폰을 꺼냈다. 통신 기기를 꺼내는 데도 은찬은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이연석이 갑자기 도망치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지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연석은 강은찬에게 무언가 원망을 쏟아내려 한다.

핸드폰 화면 안에는, 강은찬이 이전에 박 회장을 죽이던 순간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네가 나비 씨 집 지하실에서 나오지만 않았더라도, 나도 그 정도로 나비 씨를 궁지에 몰 생각은 없었어.”

“무슨…… 말이야.”

당시 강은찬은 박 회장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이 나비의 집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 회장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눈앞의 이 비서가 도어 락 비밀번호까지 눌러가며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고. 그것을 떠올린 강은찬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미처 얼굴을 파악하지 못했던 그 무감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연석이었다.

이연석은 나비의 집 안에 어떤 무뢰한을 들이는 것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했던 거다.

그는 아주 억울한 것을 말하듯이, 살인 청부업자를 상대로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실토했다.

“나비 씨한테 평범하게 접근해봤자 식량밖에 더 돼? 나는 스토커를 핑계로, 나비 씨를 도와주고 나비 씨가 그렇게 원하는 평범한 연인 관계를 구축하려 했다고. 그런데 네가 나비 씨의 침대를 홀랑 차지해서…… 내가 아는 모든 걸 제보할 수밖에…….”

연석은 말을 길게 할수록 점점 자신의 감정에 매몰됐다. 안경테 너머의 눈은 이미 실재하는 은찬을 보고있지 않았고, 그가 마음속으로 만들어낸 허상의 강은찬을 보는 듯했다. 은찬은 오싹한 기분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너 때문에 나비 씨를 궁지에 몰 수밖에 없었어. 국정원 정도는 나서줘야 드디어 내가 나비 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석은 시간이 갈수록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고, 횡설수설하며 진땀을 흘렸다. 연석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불쾌감을 견디지 못한 은찬이 말을 끊었다.

“방공호 설계도는 어떻게 알았어.”

“30년 전에…… 우리 회사를 통해 나비 씨를 묻어버리려 했던 내부 고발자가 있었어.”

전설호 얘기였다.

“그래서 다 알아. 다 알고 있는 내가 나비 씨의 다음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나비 씨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어. 너는 몰랐겠지만, 나비 씨는 사람을 좀 먹을 뿐이지 사실 착하고 순진하고 외로운 여자야. 근데 네가…… 네가 나비 씨를…… 걸레년으로 타락시켰잖아……! 네가 나비 씨를 더럽혔어……! 그래도 난 아직 나비 씨를 용서할 수 있어…… 잘 얘기해보면…….”

여기까지 들었고, 은찬은 더 이상 이 구구절절한 변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석의 말처럼 나비가 어쩌면 정말로 평범한 연인 관계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평범한 사회적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 부분을 제외하면, 이연석의 말은 모조리 틀렸다. 나비를 제 바람대로 해석했을 뿐이었다.

나비를 위하는 듯 모든 가정도 원망도 제 중심으로 떠들어대는 이 스토커는, 명실상부,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나비에게 해악만 끼칠 뿐이다. 그의 육체가 조각조각 찢어져 나비의 입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십중팔구 식중독이나 초래할 해악일 게 확실하다.

강은찬은 지금까지 그가 무수한 전장을 헤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그의 야생 동물 같은 감각에 의지하여, 이연석을 한 번 찔러 치명상을 입히고, 목을 꺾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진짜 전나비가 바깥에서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와,

“뭐하니?”

하고 물을 때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거다.

은찬은 반사적으로 나비를 공격했는데, 그녀는 늘 그랬듯이 그의 과격한 애정 표현도 포근하게 받아주며 정강이를 후려갈겼다.

“…….”

은찬은 그의 주인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비가 팔짱을 끼고, “음…….” 하는 낮은 침음을 흘리며 가자미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비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죽였니?”

“……네.”

“왜?”

“…….”

왜냐면 이 자가 범인이여서……. 그렇지만 살해하던 그 순간 은찬의 뇌리를 지배하던 직감은 무언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또다시 말을 잃었다. 그가 말을 보태기엔 이미 그가 벌인 행동과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동안 은찬을 기다려주던 나비는 버릇처럼 그의 머리를 쓱쓱 헤집고, 시체 옆에 쪼그려 앉아 아직 따듯한 피부를 쿡 찔렀다.

“얘가 범인이었어?”

“……네.”

“왜 그랬대?”

“……자기가 누님의…… 다음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왜……?”

“그, 글쎄요.”

과연 천 년 동안 인간을 수도 없이 죽이고 먹어온 자는 이 공간에 넘실대는 죽음의 기운에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거닐었다. 아니, 그녀가 죽음 그 자체였다. 압도적인 죽음의 기운이 인간 하나쯤의 죽음은 가볍게 짓눌렀다.

나비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아무 접이식 의자나 끌어당겨 털썩 앉았다.

“근데 여기 어디니?”

“……제가…… 다른 사람 명의로 사둔…… 가끔 쓰던 곳입니다.”

“…….”

살인 청부업자들은 나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철저했다.

은찬이 더듬더듬 고백했다.

“저, 제가…… 제가 또…… 질투 난다고 사람을 죽인 것 같습니다.”

추측형이다. 바로 그 당시의 감정이 정말 질투였는지 확신이 안 섰다. 강은찬을 움직였던 건 본능적인 직감과 적개심, 그리고 차가운 분노였고, 머릿속에는 나비의 얼굴밖에 없었다. 질투보다는 나비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살인을 저지른 것에 가까웠지만, 이제껏 스스로를 죽이고 명령만을 수행하며 살도록 키워진 은찬은 혼란스러웠다.

“제가 또다시…… 이런 짓을. 저는 누님께 폐만 끼치는…….”

“뭐…… 그래…….”

“저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죽음 그 자체인 전나비에게 보고하는 것은 굉장히 타당한 일이었다.

“누님. 누님은 저번에 제가 유독 맛있다고 하셨었죠.”

“그…… 랬나?”

“아직 늦지 않으셨습니다. 먹어주세요. 제가 가치 있게 쓰일 길은 이제 그거밖에 없습니다.”

은찬은 다리가 풀렸기에, 네 발로 나비의 발치까지 기어가 간곡히 애원했다. 살아갈 자신감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어서 빨리 나비의 위장 안으로 들어가야지만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애절한 요청을, 나비는 곤란한 표정으로 외면하며 그냥 머리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먹을 거 많아…… 네가 많이 만들었어…….”

“그, 그러면, 먹을 게 다 떨어진다면 저를 꼭. 아니, 제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잊으신 거죠.”

그는 아까 이연석을 찔렀던 그 칼을 검은 후드티 끝자락에 쓱쓱 닦고, 소매를 걷었다. 나비가 제 피를 다시 한번 맛보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이젠 나비도 은찬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발로 툭 차서 칼을 떨구게 했고, 그의 머리를 다시 한번 마구 헤집은 뒤, 곤란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우선 시체부터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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