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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비트-36화 (36/57)

36화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역시 제 몸에 실습해 볼 수가 없어서…….”

“예?”

“아픈 게 뭔지 알아야 치료를 하든 말든 하죠. 기본부터가 힘들어서요. 아쉽네요.”

설호는 군인이다. 불합리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도 그냥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어있다.

“……잘 어울리셨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건축도 여자가 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설호는 아차 싶어 재빨리 덧붙였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우습게 보는 일이 많지 않았냐는, 그런…….”

“그건 괜찮아요. 무당의 딸은 아무도 못 건드리거든요.”

“…….”

그거 좀…… 편법 아닌가?

심지어 아무리 봐도 샤머니즘에 대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본인은 영적인 일을 전혀 믿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설호는 이 추측에 뭐라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생존 전략이 있는 법이다. 그녀가 괜찮았다면 그렇다고 친다.

“그나저나, 풍수지리적으로 좋지도 않은데 거기다 건축폐기물을……. 그러면 호랑이 기운에 눌려서 인명사고가 나고 천지신명님이 진노하신다고요.”

“…….”

아니…… 믿는 거야, 마는 거야.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저녁 식사 후, 둘은 사적으로도 조금씩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군인은 민간인과 달리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일반적인 직업 군인들은 상대에 대한 사랑과 별개로, 만약 성사되었을 때 상대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설호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쟁취하는 엘리트의 길만을 걸었기 때문이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직진뿐이었고, 과연 그가 반한 여자답게 나비는 도저히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거 무당의 딸이라서 못 건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나비라서 누구도 못 건드렸던 거 아닌가 싶다.

이런 타입은 처음 본다. 대하기 어려운 듯 편한 듯 묘하게 매달리게 한다. 설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끔 그 매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매달리는 이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꽤 되는 것 같다.

승리자가 되어 보이겠다. 설호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런데 승리자가 될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공사가 시작되고, 그놈의 풍수지리가 좋지 않아 호랑이 기운이 어쨌다는 곳으로 건축 폐기물을 버리러 갈 때였다. 사실 이런 일에 굳이 대위가 감독할 필요는 없었지만, 설호는 도대체 왜 거기가 안 된다는 건지 궁금해 직접 가겠다고 자원했다.

눈으로 확인한 건축 폐기물 처리장은……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는데, 설호가 눈을 돌린 순간, 병사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동시에, 반대쪽에서도 누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도 고개를 돌린 순간 병사들이 사라졌다. 다른 근거 없이 오로지 본능만으로 설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사냥이다.

순식간에 5명이 증발하고 그 혼자 남았다. 설호는 공포 속에서도 산 위로 올라가는 어떤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는 총 한 자루 없이 산 위로 곧바로 뛰어 올라갔다.

코끝에 피 냄새가 스친다. 불안감이 증폭된다. 짐승이다. 근거는 없지만 어떤 야생 동물이 그들을 잡아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호랑이 기운 운운하던 소리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때 발밑에 물컹한 게 밟혔다. 시체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병사 한 명의 다리 한 짝이었다. 그는 재빨리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본능적으로 무전기부터 챙겨 들었다. 그러자 작은 돌조각이 총알처럼 날아와 무전기를 박살 냈다.

“!”

동체 시력이 좋은 설호는 돌조각이 날아온 위치를 잡아내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나무 위에 나비가 걸터앉아, 목덜미를 긁적이고 있었다.

“대위님이 여길 왜 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나비의 모습이, 커피잔을 들고 회의실을 어슬렁거릴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설호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압도되어 얼이 빠졌다. 그녀는 놀라거나 당황했다기보다는, 그냥 아주 약간 곤혹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건축사님……?”

“제가 여기 터가 안 좋다고 했잖아요.”

나비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뒤로 한 걸음만 더 가보세요.”

“네……?”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믿지 않았다. 설호는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했다.

멀리에 다른 병사의 시체가 하나, 그리고 바로 뒤에는 짐승을 잡을 때 쓰는 옛날식 덫이 떡하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설호가 놀라서 움직이기도 전에, 어느새 가까이 온 나비가 한숨을 쉬며 그를 뒤로 밀고, 허리 아래를 쳤다. 맞은 부위가 절묘하여 그는 발을 헛디뎠다. 덫이 굉음을 내며 작동했다. 오른쪽 종아리에 녹슨 철의 이빨이 박혔다.

“헉…….”

목이 졸리고 입까지 틀어막혀, 비명은 지를 수 없었다.

“조용히…….”

인간 하나를 가볍게 다루는 나비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격렬한 고통에 입에는 거품이 끓고 시야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의식이 끊긴다…….

아니, 여기서 기절하면 안 된다. 그에게는 병사 5명의 명예를 지킬 책임과,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의 존재를 세간에 밝힐 의무가 있었다. 재앙이 인간의 형태를 한 채 우리 주변에 숨어있다. 그걸 안 이상, 여기서 기절할 순 없다.

설호는 남은 힘을 모두 쥐어 짜내 군화로 나비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나비는 도무지 걷어차인 것으로 타격을 받은 것 같지가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눈을 반짝이며, “어머?” 하고는 뭔가……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거기까지였다. 설호는 의식을 잃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 그는 방공호 안에 있었다.

***

그는 피 냄새를 맡고 정신을 차렸다.

어둡게 깜빡이는 조명 아래서, 나비가 흥얼거리며 군복을 입은 고기의 내장을 손질하고 있었다. 설호는 소리를 질렀으나 갈라진 쇳소리만 나왔다. 나비가 설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깼어? 물 마셔. 목마를 것 같아서.”

바로 옆에 작은 생수병이 있었다. 설호는 물은 마시지 않고, 커다래진 눈으로 나비가 손질하는 그것만 쳐다봤다. 도무지 눈앞의 광경이며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입안으로 나비가 손질하는 병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나비는 빠르게 손질을 마무리하고, 녹슨 수도꼭지에서 손을 씻은 후 앞치마를 벗었다. 그리고 낡은 의자를 끌어다가 그의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나는 너를 살려서 보내고 싶어.”

“…….”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빨리 기절했거든.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내가 뭐…… 너를 감금하거나…… 그러려는 생각은 없어. 지금도 안 묶여있잖아.”

일종의 말장난이자 기만이었다. 나비는 인간이 묶여 있든 그렇지 않든 얼마든지 제압하고 감금할 수 있다. 설호가 제정신이었더라면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전설호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는 벌벌 떨며 자신의 오른쪽 발목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없다.

그는 얼이 빠져 오른쪽 발목이 있어야 할 자리를 더듬었다. 나비가 머쓱하게 설명해줬다.

“파상풍 걸릴까 봐 잘랐어.”

“어…… 아, 어…….”

“깨끗한 칼로 잘랐어. 그냥 자른 거 아니야. 내가 몇 번 해봐서 아는데 십여 년도 넘은 덫에 걸리면 무조건 파상풍 걸리거든. 이번엔 정말 감염 안 될걸. 외과 수술은 나도 좀 한다?”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목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군인으로서의 그의 인생도 끝난다. 전설호 대위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잘린 부위를 만져 봤고, 곧 생수병을 그녀에게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나비는 생수병을 가볍게 받았다. 사실 나비는 벌써부터 그를 살려둔 것이 후회됐다. 그냥 의식 없을 때 죽일걸. 이렇게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커뮤니케이션은 역시 너무 어렵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손질한 고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 자. 머리에서 피 빠지면 다시 올게.”

그러고 그를 어둠 속에 남겨둔 채 떠났다.

***

당연한 말이지만, 설호는 한숨도 안 잤다. 설호는 나비가 돌아오는 순간 방 안에서 찾아낸 쇳조각을 가지고 나비에게 반격했다. 어둠 속이라 그는 볼 수 없었지만, 나비는 설호의 이런 저항을 무척 기꺼워했다. 이 성격 때문에 나비가 그를 살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비는 다 죽어가는 조명을 켰다.

“좀 진정했어?”

“씨발년아. 너 뭐야.”

그렇게 말하는 설호의 눈동자에 분명한 공포심이 깃들어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취향이 아니다. 두렵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도 맞서는 전사들의 눈빛이야말로 나비의 심금을 울린다. 나비는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쇳조각을 맨손으로 구겨 던졌다.

“나는…… 날 뭐라고 해야 할까.”

“여기 방공호가 있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 그런 짓을 한 거냐?”

나비는 크게 감동했다.

“응……!”

그리고 몸을 낮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당장 병원 안 가면 여기서 죽을걸.”

“원하는 게 뭐야. 왜 나를 살리지?”

“네가 취향이야…….”

나비가 보기에도 설호가 황당해했다. 믿는 것 같지도 않다. 나비는 조금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대위 죽이면 일이 복잡해져.”

“……나더러 나가서 이게 다 사고였다고 증언하라고?”

“너 눈치가 빠르다……. 조금만 공범자가 돼 주면 돼. 시나리오도 준비해놨어. 멧돼지를 봤다고 해줘.”

나비는 아예 메모장에 사인펜으로 쓱쓱 그린 상황 배치도까지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설호는 그걸 뺏어다, 죽죽 찍은 후 멀리 던졌다.

“차라리 여기서 죽여.”

“…….”

나비는 정말로 안타까워했다.

“알았어.”

그리고 사고의 리얼리티를 위해, 그의 몸에 멧돼지에게 산채로 뜯어먹힌 자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호는 무려 20분이나 버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려달라고 외쳤다.

***

결국 군 간부들은 멧돼지의 소행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호랑이라고 생각했다.

설호는 호랑이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다가 살아남은 영웅이 되어 긴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호랑이 기운이 사람을 짓눌러 인명 사고가 나는 그곳은 출입 금지 처리되었고, 건축 폐기물은 다른 데다 처분하기로 했다.

군 간부 중 하나는 설호에게 이름에 ‘호’가 들어가서 네가 살 수 있었던 것이니 천지신명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라고 했다. 그래서 설호는 그냥…… 그렇게 했다. 그리고 왠지 엄청난 신임도 얻었다.

설호는 거의 한 달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기에,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태와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어떤 괴짜 건축 설계사 여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나비가 설호의 병간호를 해주는 모습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특히 어르신들이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둘 다 출셋길을 초고속으로 밟은 엘리트에다 선남선녀다. 중매쟁이의 영혼을 가진 이들이 리얼 퍼슨 슬래시를 불태웠다.

당사자는 죽을 맛이었다. 병간호가 아니라 감시라고 생각했는데, 나비가 진짜로 어설프게 병간호를 해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럽게 못 해서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러니까…… 간호인지 아니면 육체를 욕보여서 주종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건지 모르는 짓들을 잔뜩 당했다……. 속이 터진다. 스트레스 때문에 치료가 무척 더뎠다.

그래도 건강이 회복된 후 그는 무사히 복직하여 내무반에 배정되었다.

그 후 ‘건축 설계사 이윤비’와 결혼했다. 신혼여행 가는 날에도 둘은 웃으며 주변 사람들과 인사했다. 설호는 행복한 척 웃다가 비행기에 타자마자 표정을 싹 지웠고, 그 첫날 밤, 발리 호텔에서 나비는 씩씩대며 화를 냈다.

“너무한 거 아니야.”

“말 걸지 말라고 했지.”

신혼여행에까지 가져온 일거리를 살피며 설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외투만 벗고, 끝이었다. 그는 아직도 얼굴과 손 외에는 노출 하나 없이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류만 검토했다.

일종의 항의였다. 그는 오는 길 내내 나비의 시중을 들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나비의 짐까지 다 풀어뒀다. 의무를 끝내자마자 그 외 사적인 모든 것에는 너랑 엮이기 싫다고 온몸으로 시위 중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비가 새삼 그의 퉁명스러운 침묵을 문제 삼는 건 아니었다. 설호는 덤덤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왜…… 화났지.

짐작 가는 거야 있긴 하다. 사실 결혼식 자리에서 샹들리에를 떨어트려서 나비를 암살하려고, 아니면 적어도 그녀의 비상식적인 면을 만천하에 공개하려고 시도하기는 했다. 실패한 거야 맨날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친다. 사고 경위야 어쨌든 신랑과 신랑 측 하객들의 직급이 직급이다. 신혼여행은 일정대로 올 수 있었다. 진짜 왜 화내지……?

그 이유를 나비가 직접 일러주었다.

“왜 여보라고 안 불러줘.”

나비는 ‘여보’ 소리 못 들어서 엄청나게 삐졌다.

“미쳤어!?”

“결혼했잖아.”

나비는 설호 근처를 기웃거리며 툴툴거렸다. 그는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만, 역시 글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자기 주변을 살벌하게 알짱거리는 ‘아내’가 이럴 땐 좀 귀엽…….

설호는 황급히 서류 내용을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사실, 이 서류도 군에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그건 보안 때문에 해외에 못 가져가고, 이건 부실 공사를 이용해 나비를 묻어버리려는 계획에 관련된 일이었다. 모 건설 회사의 회장은 완고한데, 박용식이라는 덜떨어진 아들은 조금만 바람을 불어도 자기 뜻대로 잘 움직인다. 잘 이용한다면…….

그러다 설호는 한숨을 쉬었다. 여기나 저기나 저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심지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가끔 설레는 자기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동안 나비는 호텔에서 서비스로 준 초콜릿을 먹으며 투덜거렸다.

“사회의 정중앙에 들어왔는데 기쁘지도 않아? 이제 아무도 우리를 의심 못 할 거 아냐.”

“엮지 마. ‘우리’ 아니다.”

“그래도 여보라고 불러줄 순 있잖아.”

등 뒤에서 무언가 보드라운 향기가 나고 곧 설호는 뒤통수에 닿는 나비의 부드러운 가슴을 느꼈다. 사실 뒤에서 껴안기는 정도의 애정 표현은 그도 싫어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인데 너무 속상하다.”

그런데 목이 졸렸다.

방심하고 있던 차에 훅 들어왔다. 설호는 눈을 까뒤집으며 생각했다. 아, 아, 또다. 또 이렇게…….

오른쪽 발목이 잘린 지 꽤 됐음에도, 그의 육체는 여전히 타고난 장정의 몸이었다. 버둥거리는 팔다리에 테이블과 의자가 쓰러지고 서류가 흩날렸다. 그러나 나비의 손에 쥐어진 목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붉게 질려갔다.

숨통이 막히고 산소가 끊기며 의식이 희미해진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과한 고통이었지만 통제권은 이미 넘어갔다. 그가 주인에게 도를 넘게 이빨을 세울 때마다, 이렇게 체벌이 내려진다. 늘 방심하고 있을 때, 그가 오만방자하게 굴며 나비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족쇄가 채워진다.

목젖이 두드러진 굵은 목이 가녀린 손에 잡혀 사정없이 졸린다. 설호는 나비의 손목에 짧은 손톱을 세우며 게거품을 물었다. 눈을 까뒤집는 설호의 얼굴에 나비가 볼을 비볐다.

“샹들리에 네가 떨어트렸지.”

정신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나긋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주인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컥, 크…… 허억.”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우리가 건전한 관계는 아니잖아. 네가 날 죽이려 할 때마다 나도 이럴 수밖에 없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전설호는 죽는다.

나비는 슬프게 한숨을 쉬며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기도를 조였다. 평등한 관계도 어렵고, 상하 관계도 어렵다. 그냥 관계가 어렵다. 이 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죽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살인 미수를 저질렀으면, 본인도 죽음 직전까지는 가야 수지타산이 맞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비는 애매한 원칙에 맞추어 딱 그가 사경에서 잠시 헤맬 정도로만 힘을 조절했다.

그의 허벅지 안쪽에서 면바지를 뚫고 뭔가 하얀 거품이 올라오고 있는 것은……. 원래 수컷들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손을 퍼트리려는 본능인지 사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험으로 얻은 지식이다.

특히 전설호는 강한 수컷이니까 그런 본능이 더 강한 거 아닐까 싶다. 사정도 길다. 허리를 잘게 떨며, 힘이 빠진 손끝으로 나비의 손등을 간지럽히듯이 긁으며 허벅지 근육을 뻣뻣하게 굳힌다. 잘못 보면 반쯤 극락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비는 본인이 무척 둔감한 것을 알았으므로 그런 것은 함부로 속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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