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그 꼴을 보고 옆 가게 미용 재료 도매 업체 주인이 놀랐다.
“개 키우세요?”
애완 용품 가게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나비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 호구인가 봐요…….”
“네?”
미용 재료 도매 업체 사장은 나비와 친분이 있었다. 나비는 “개는 안 키우지만 좀 관심이 생겨서”라는 그럴싸한 말로 적당히 방금의 상황을 묘사했다. 이것으로 물꼬가 트여 둘은 일상적인 수준의 잡담을 했다.
물론 ‘일상적인 수준의 잡담’이라는 것은 나비에게 아주 중요하고 힘든 과제였다. 나비는 이번에는 집중하고 조심하여,
“오늘 무슨 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사람은 안 다쳤대요.”
라는 말에는 “큰일 날 뻔했네요.”라고 대답했고,
“요즘 다들 장사가 안돼서 저기 뒤에 집도 가게 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라는 말에는 “저희 가게도 오늘 이상한 잡상인만 오고 손님 하나도 없었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주제에 벗어나지 않는 아주 적절한 대답이었다. 크게 보면 거짓말도 아니다. 나비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강은찬을 지지고 볶았더니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오늘따라 잡담이 길어지자, 평소 나비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던 가게 주인은 조금 더 심도 있는 대화를 시도했다. 여자끼리 떠들 만한 주제였다.
“저는 근데 그 가게 나가서 잘된 것 같아요.”
“왜요?”
“기분 나쁘잖아요. 더러울 것 같고. 남자 손님만 다녀가고.”
그제야 나비는 내놓았다는 그 가게가 성인 용품 가게임을 깨달았다.
이미지가 별로 안 좋구나. 성범죄와 연관되어 보이는 걸까. 나비는 대충 납득하면서 떠오르는 걸 바로 말해버렸다.
“저희 집에도 도청기가 하나 있었어요.”
“뭐라고요?”
가게 주인이 큰 소리를 내며 놀랐다.
성공적인 잡담을 이어가고 있다고 방심했다가 생긴 실수였다. 나비는 그게 저렇게까지 놀랄만한 일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가게 주인이 놀랐다는 점에 훨씬 놀랐다. 이런…… 평온하게 말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나비가 뒤늦게 수습하기 위해 “별거 아닌”까지만 말했는데 가게 주인은 “그게 왜 별거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안 했어요? 이런 거 놔두면 큰일 나요.”, “정 안되면 제가 같이 가줄까요?”라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 했다. 가게 주인은 착하고 용감하며 공감 능력도 뛰어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나비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담스러웠다.
어떡하지.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고. 성공적인 잡담을 이어가다가 그만 지뢰를 밟은 셈이었다.
“겨, 경찰에 신고해볼게요.”
나비는 그렇게 약속하고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부터 쉬었다. 치안의 기준이 영 달라 힘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서로를 돕는구나.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도 없고 버거운 일이다.
“…….”
하지만 가게를 나서서 조금 생각해보니, 가게 주인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은찬이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아는 경찰이 있으니까 조금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번에는 도청기가 있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말고, 돌려서…… 어떻게든 도움 되는 말이라도 알아내는 방향으로…….
“…….”
내가 안전불감증인가? 나비는 심각해졌다.
역시 경찰을 찾았어야 했나? 대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그냥 아는 경찰이 있으니까 넌지시 화제를 던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동네 주민이 될 것 같다.
도청기 문제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마을 주민으로 섞여드는 건 나비에게 아주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역시 그 경찰에게 상담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귀찮을 것도 없었다. 마침 그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는 그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를 따라 건들건들 걸어갔다. 하나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게 걸음걸이에서 티가 났지만, 다행히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외진 곳에 주차된 차 뒷문을 노크했다.
“도하 씨.”
그러자 1초 만에 차 뒷문이 벌컥 열렸다.
도하는 자기가 열어놓고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도 못 한 멍한 얼굴이었다. 입에는 담배, 뒷좌석에는 아까 그 나비와 미용 재료 가게 주인의 대화에 등장했던 성인 용품 가게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파렴치한 물건이 흩어져있었고, 바지는 반쯤 내려가 있었다.
도하는 혼자 차 안에서 자위하고 있었다.
***
그딴 일이 생긴 이유가 있었다.
도하의 입장에서 반추해보면 거의 사고나 다름이 없었다. 열어주려고 연 게 아니었다. 타이밍이 끔찍하게 나빴을 뿐이다.
대략 도하가 미용실에서 수갑을 되찾아 오고,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계속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이 좁고 작은 마을에서 도하의 위치는 특이한 편이었다. 그는 일을 안 하는 게 더 도움이 됐다. 예전에 조직폭력배를 줄줄이 잡으려다가 경찰 윗선과 연관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불편한 인간으로 낙인찍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친구도 별로 없는데 경찰서 내에서 거의 왕따나 다름없는 위치가 됐다.
그래서 도하는 타고난 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납작 엎드리기로 했다. 상사들도 동료들도 게으르고 부패한 자를 편안해하니, 그도 최대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편하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그렇게 한다. 아직도 불편하게 여겨지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이젠 가끔 직장 동료랑 담배도 피운다.
어쨌든 전보단 낫다. 가끔 뒷배 없는 범죄자만 잡아다 바치면 그의 위치는 안전하다. 파트너가 뭘 하러 사라지건 신경 끄고 자기 인생이나 걱정하면 되는 일이다.
자기 인생 걱정하기.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나비랑 결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던가…….
나비의 충격적인 취향과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을 목격하고도 마음이 하나도 안 식었다는 점에서 역시 그는 ‘남들 사는 대로’에서 조금 어긋나있었다.
‘아니면 내가 원래 좀…… 지배당하고 싶은 성향이 있었나.’
파트너가 ‘난 이제부터 추잡한 짓 하러 사라질 건데 일러바칠까 봐 불안하니까 너도 비슷한 짓을 해서 공범이 되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사라진 후, 도하는 혼자 남아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다.
‘체포하는 것보단 체포당하는 쪽이 더 적성에 맞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니,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아닌 게 아닌 게 아닌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어느 쪽도 아니다.
하지만 새벽 내내 했던 망상의 종착역은 나비에게 약점을 잡혀서 경찰복을 입은 채로 묶여 성고문 당하는 거였는데, 그건 죄책감에서 비롯된 피학적인 욕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도하는 혼란스러웠다.
‘안 해본 거라 괜히 환상 생긴 거 아니야? 실제로 해보면 별로일 수도 있잖아.’
그러나 실제로 나비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다. 나비 앞에서야 그가 가장 잘 어울리는 파트너라고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이렇게 혼자 남고 보니 걱정이 됐다. 아무리 봐도 그쪽이 더 어리고 잘생겼기 때문에…….
“……에이씨.”
그는 괜히 길가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심란하니 담배가 말렸다.
‘담배 피우면 더 늙는 거 아니야?’
더 늙는 거 맞다. 아침에도 두 개비나 피웠다.
도하는 라이터를 초조하게 만지작대며 발을 굴렀다. 몸을 가만히 놔두려니 걱정만 느는 기분이다. 역시 뭔가 행동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일단, 2년이나 옆에서 알짱거리는 잘생긴 경찰을 가만 놔둔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나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를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혹은 법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게 아닌 이상에야 날 계속 찼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나비에겐 뭔가 자신만의 특이한 기준이 있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한 매력의 소유자라 그런 것도 어울린다. 틀림없다. 도하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렇다면 나비를 그 신분도 불분명한 조폭한테서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뭘 해야 하지……?’
뭔가 자신은 그…… 노예남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으며 자기도 잘할 수 있다는 어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애초에 그 새끼는 어떻게 나비와 친해졌는가? 잡아먹어달라고 부탁이라도 한 거 아닐까?
‘재수 없게.’
그게 뭔지 몰라도 그 새끼가 했으면 도하도 할 수 있다.
도하는 경찰차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 자가용으로 갈아타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다 망해가는 성인 용품 가게로 향했다. 일단 경찰이니 어디 골목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도하가 경찰이 된 이유가 여기 있었다. 더럽게 집요하다.
경찰복을 가릴 외투도 차 안에 있었다. 그는 수상한 범죄자 같은 행색을 하고 재빨리 가게로 들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이 가게도 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간판부터 불법의 냄새가 풍겼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부터 불법 같았다. 가게 주인은 수염도 안 밀고 컴퓨터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불법처럼 보였다. 도하는 잘은 모르겠지만 체포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손님이다. 그것도 외투 안에 경찰복을 입은 손님이다. 그냥 아예 옷을 통째로 갈아입고 올 걸 그랬다. 너무 조급했다.
숨만 쉬고 있어도 좌불안석이라, 도하는 대충 가격도 안 보고 이것저것 마구 골랐다. 가게 주인마저 그를 불법적으로 비웃는 것 같다. 도하는 이런 데에서 카드를 썼다가 내역이 걸릴까 봐 값도 현금으로 지불했다. 수상한 외투를 입고 수상하게 현금 뭉텅이를 내미는 꼴이 딱 범죄자였다.
도하는 가게에서 도망쳐 안전한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주차도 심상치 않은 곳에 했다. 진정한 동네 주민, 그것도 경찰 정도나 알 수 있을 법한, 사람이 절대 오지 않을 만한 장소에 차를 대놨다.
그리고 불법적인 봉투를 뒤집어 사 온 것들을 뒷좌석에 마구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먼지가 쌓여있고 상태가 불법적으로 수상했다. 그랬더니 문제가 생겼다.
“시발…….”
회의감이 너무 진하게 찾아들었다. 진지하게 멍청이짓 한 것 같다.
‘그냥 다 때려치울까.’
자기보다 어리고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낚겠다고 이런 짓까지 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세상에 여자가 그렇게 없나? 역시 마음을 접고 다른 사람 찾아보는 게 낫다. 나비도 생각이 있으니까 강은찬 같은 놈을 고른 것일 터다.
‘아니, 근데 그 새끼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역시 나비가 남자 보는 눈이 좀 이상하다. 아직 자신의 매력을 몰라서 그런 게 틀림없다. 이런……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는 자신을 말이다. ……역시 한 번 정도는 써봐야겠다.
그래도 이 괴상망측한 물건을 똑바로 바라보기에는 용기가 필요해서, 도하는 창문을 열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이쯤 되니 사랑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지의 난제를 풀고자 하는 그의 천성적 집요함. 쓸데없는 일에만 열중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 그리고 솔직히…….
‘구, 궁금……. 아니, 이런 걸 궁금해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두려운 물건들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봤던 영상에서는 프로들이 나와서 도구가 신체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사용했지만, 초보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도하는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우선 포장을 하나씩 까보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댔다. 성인용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그는 탄식했다.
“하, 시발.”
하나같이 너무 굵고 이상하게 생겼다. 괜찮아 보이는 것들로만 산 줄 알았는데 대실패다. 이런 건 못 넣는다.
“…….”
못 넣는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좀 야한 것 같다.
“아씨, 나 진짜 변태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도하가 못 넣는다고 우는소리 해도 나비가 억지로 들이민다면 그게 야할 것 같다. 나비가 이 징그러운 것을 그에게 넣을 거라 협박한다고 상상해보니까 이건 확실히 흥분된다. 회의감과 흥분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런 자신을 쉬이 받아들이기엔 평범하게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도하는 담배를 꼬나문 채로 뒷좌석에 푹 기대어 그것을 만지작대며 공상에 빠졌다. 이 차에도 몇 번 나비가 탄 적이 있다…….
상상 속 나비가 이런 거에 관심 있었냐면서 웃고는 그를 눕혔다.
“…….”
일단 바지를 내렸다.
공상만으로 자위한 적이 별로 없는데 이건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다. 왜 지금까지는 나비를 눕히는 것만 상상해왔을까. 좁은 세계 속에서만 살아온 게 이런 데서 티가 난다. 이런 세상을 진작 알았더라면…….
“…….”
아니, 이런 세상은 최대한 모르는 게 낫겠다.
어찌 됐든, 그는 힘들고 아프다고 나비에게 칭얼대고 싶다. 그래도 봐주지 않았으면 한다. 힘들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더 해줬으면 하는 사인이다. 그것을 잘 아는 나비가 웃으면서 더 크고 징그러운 것들을 그의 몸 안에 넣으려고 하고……. 차까지 찾아와서는 뒷문을 노크하고, 경찰이 이래도 되냐, 누구 생각하면서 자위하고 있었냐고 그를 추궁하더니 대로변에서 벗겨 수치와 굴욕을 주는 것이다.
“아, 흐…….”
불법적인 물건들 사느라 뼈아픈 지출을 했으면서 막상 도하는 도구 없이 손으로만 그의 음경을 쥐고 흔들었다. 눈은 초점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그는 차 안이되 차 안이 아닌 곳에 있었다. 공상 속 차 안에서 공상 속 나비에게 성적인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졌다.
“도하 씨.”
그래서, 실제 전나비가 애완 용품과 미용 용품들을 한 아름 들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 없이 뒷문을 두드렸더니, 박도하도 생각 없이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어.”
도하는 도로 뒷문을 쾅 닫았다.
이렇게 된 일이다.
상상 속 나비가 커피색 스타킹에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과 달리, 실제 나비는 그냥 칠부바지에 샌들을 신고 쇼핑백도 두세 개 들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표정이 멍했다. 그래서 퍼뜩 깨달았다. 진짜 전나비다.
도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비 씨가 왜 여기 있어!?’
뒷문이 다시 열렸다.
“도하 씨?”
도하는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옷을 추켜올렸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하필 정확히 도하의 귀두에 떨어졌다. 게다가 벌떡 일어난 탓에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가, 그가 만지작대던 파렴치한 도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을 도하는 비명으로 덮었다.
나비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대신 주워다 손가락으로 비벼 끄며 게슴츠레하게 눈을 찡그렸다.
“……뭐해요?”
“자, 자, 자, 잠깐만. 잠깐만. 지금 손가락으로 끈 거야? 나비 씨가 조폭이야?”
“도하 씨는 그러면 변태야?”
“잘 받아치시네요!”
도하가 주차를 시켜놓은 곳은 적당히 외진 수준이 아니다. 끊긴 도로와 무너진 터널을 넘어 시체도 묻을 수 있는 곳이다. 숨겨진 던전이나 다름없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거리상으로 가까워서요?”
나비는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고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직선으로 재는 버릇이 있다.
“뭔데? 뭔데? 뭔데?”
도하는 옷을 추스르며 마구 뒤로 물러났다. 지나치게 당황스러운 상황에 압도된 나머지 방금 입은 가벼운 화상은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차 안이라서 도망칠 곳도 없었다.
나비가 볼을 긁적였다.
“어……. 당황스럽네요.”
“제가 더 당황스럽거든요!? 뭐, 뭐,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요?”
“뭐 하러 왔더라. 할 말이 있어가지고.”
도하가 궁지에 몰린 작은 동물처럼 반대쪽 차 문에 딱 붙어서 숨만 헐떡이며 나비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뭐하러 왔는지 생각이 안 난다. 티는 잘 안 나지만, 그리고 도하만큼 당황한 것도 아니지만, 나비도 충분히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시민 대 시민으로서 은밀한 취미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어떻게 해야 방해를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할 일 다 하고 빨리 꺼지기?
할 일이 뭐더라? 경찰로서의 그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러 왔냐면…….
“경찰이 이래도 돼요?”
“우와아아악!!”
도하가 차 문을 열고 바닥을 굴러 도망쳤다.
공황 상태의 인간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나비는 공황에 빠진 인간을 아주 많이 봤지만, 아직도 그 답을 몰랐다. 인간들이 공황에 빠지는 주원인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앞뒤 분간 못하고 절벽 방향으로 도망칠 만큼 사리분간 능력이 마비된 인간을 혼자 놔두면 안 된다.
사고가 나기 전에 나비는 그를 얼른 잡아다 다시 차 안에 던져놓고, 그녀도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