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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비트-21화 (21/57)

21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어제 박 회장님이 나비 씨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박 회장에 나비의 집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충분히 예상했던 사실이었다.

나비는 대강 놀란 척을 했다.

“어머나.”

비서는 자신의 기다란 손가락만 만지작대며 음울하게 말을 이었다.

“변명이 될까 싶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말렸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어떻게 된 게 나비 씨 집 도어 락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더라고요……. 저는 몸싸움까지 하면서 말렸지만…….”

“어쩜! 너무하시네요!”

나비는 백 년 전 말투를 쓰며 어색하게 벌떡 일어났다. 그런 허접한 연기에도 비서는 죄책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에 나비는 얼른 지갑을 꺼내 명함을 뒤적거렸다.

“그런…… 나쁜…… 짓에 공범이 되면서도…… 어…… 그랬다고요!”

명함을 찾으면서 동시에 말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비는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이연석 씨!”

근 10년 중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면 됐어요.”

나비는 뿌듯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연석 씨도 들어갔어요?”

“아니요. 저는 그대로 그냥 도망쳤습니다. 회장님도 그 후 연락이 없으시더라고요.”

그거야 그렇다. 박 회장은 그대로 집 안에 숨어있던 강은찬에게 죽었으니까. 나비는 머릿속에서 사건 순서를 짜 맞추며 이연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비서 이연석은 살인현장을 목격했는가? 만약 목격했다면, 이연석도 죽여서 냉장고 안에 넣어둬야 한다. 그렇지만 살인을 목격한 낌새는 없었다.

“회장님을 도와서 죄송합니다. 입 다물고 있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라…… 혹시 집에서 마주치셨나요.”

“아니요…….”

“다행이네요. 혹시 이사하실 거라면 제가 몰래 비용이라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동네에는 나비의 백 년짜리 역작인 지하 방공호가 있다. 게다가 스토킹범도 죽었으니, 사건도 끝난 셈이다, 아마. 남은 일이라고는 이제 곧 회장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될 비서 이연석을 영원히 미용실에서 내쫓는 것 정도였다.

나비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손님 접대 메뉴얼을 꺼냈다.

“일단 뭐라도 마실래요?”

“네?”

이연석은 상상도 못 했다는 양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안경 미남의 얼굴이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그 청초한 미모를 보니 나비는 순간 닮지도 않은 강은찬이 떠올랐다. 얼굴은 안 닮았지만, 분위기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뭐. 저보다 더 불안해 보여서요.”

나비는 무성의하게 유자차를 타 건네주고, 그만 그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눈길에 홀려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비싼 기름으로 넘긴 머리카락이 나비의 손가락 밑에서 사정없이 흐트러졌다. 화를 낼 법도 한데 연석은 상황 파악이 채 안 된 듯 멍하니 나비만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뜨거운 눈물을 한줄기 떨어트렸다. 그 후로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그냥 흐느꼈다. 당황스러운 일의 연속이었다.

나비는 안절부절못하고 사과했다.

“왜, 왜 또 울어. 머리 만져서 그래요? 만져서 미안해요, 제가 손버릇이 나빠서…….”

“아, 아닙…… 흐윽…….”

이 남자는 얼마나 유약한 거지. 스토킹을 도왔다고 일단 무릎부터 꿇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하더라니, 헤어스타일 좀 망가트렸다고 울음까지 터트린다.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연석은 흐느낌 속에서 이상한 말을 했다.

“좋아서…….”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비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의무적으로 권했다.

“따듯한 거 마시고 진정해.”

“감사합니다.”

유자차를 권하자, 그는 머그컵을 덥석 잡았다. 다만 나비가 까먹은 게 있었다. 나비는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는 미세한 온도변화를 거의 느낄 줄 몰랐고, 연석은 유자차의 온도를 고려해 조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연석이 비서 일을 하며 박 회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생긴 버릇이 있다. 그는 유자차를 술처럼 원 샷 했다.

“으악!”

당연히 뜨거워서 다 흘렸다.

유자차가 그의 가슴과 배를 적시고 고간과 허벅지까지 흘렀다. 급박한 와중에도 연석은 고지식하게 셔츠를 벗기 위해 단추를 하나하나 풀려고 했다. 급한 상황이라 나비가 그냥 셔츠를 뜯었다. 가벼운 화상을 입어 붉어진 살이 드러났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비는 그의 허리띠도 풀고 바지도 불쑥 내려버렸다. 속옷과 함께, 허벅지 위쪽을 가로지르며 조이는 가터벨트가 나타났다. 셔츠가 빠지지 않게 잡아주는 용도다.

순식간에 거의 반라가 됐음에도 연석은 조금 몸을 뒤틀었을 뿐 반항 하나 하지 않았다. 화상을 입었을 때의 응급조치임을 감안해도 기묘한 수준이었다.

“있어 봐요.”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는 미용실이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수건이 넘쳐났다. 나비는 새 수건 하나를 꺼내 찬물에 적셔 그걸로 이연석의 가슴부터 닦았다.

“읏.”

“아파?”

“조금 쓸리는데…… 괜찮, 흑.”

수건이 유두를 스치고 지나갔다. 연석은 조금 느껴서 몸을 움츠렸지만, 손길을 마다하진 않았다. 수건이 스치는 자리마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예쁘게 부어올랐다. 다른 사람이 몸을 닦아준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둘 다 미처 하지 못했다.

되려 그걸 먼저 깨달은 거 나비였다.

……이거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가 직접 닦겠다고 거절하지 않나. 은찬이처럼.

뭐 은찬이라면 싫다 싫다 하면서도 화상 입은 피부를 억지로 자극당하는 데에서 아랫도리가 솔직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싶지만, 하여간 이 눈앞의 이 남자는 몸도 마음도 얌전한 듯하다. 저항하는 기색도 없다. 이쪽은 개라고 하기보다는 역시 인형 같다…….

연석은 몸으로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비를 지켜보는 표정이 점점 가라앉더니, 갑자기 차갑게 물었다.

“남자 몸 만지는 게 익숙해요?”

대뜸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대방 측에서는 할 말도 없다. 나비는 얼빵하게 되물었다.

“네?”

“이런 일 많이 해 보신 것 같네요.”

나비조차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확연하게 원망하는 투였다. 미안해하더니 울다가 차를 쏟고 이제는 화를 낸다. 이 새끼 뭐 하는 새끼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뭔지 모르겠는데 가터벨트를 한 안경 미남을 닦아주는 일이라면 지금 처음 해봤다.

연석은 새침하게 수건을 뺏고 직접 몸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비는 그걸 또 뺏겨줬다.

“지금까지 남자가 몇이나 있었길래…… 아니, 나비 씨에게는 남자가 아니라 가축이죠?”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

그때 미용실 뒷문이 폭발하듯이 열리고, 강은찬이 피 냄새와 살기를 뚝뚝 흘리며 나타났다.

“누님. 그 새끼 뭡니까.”

***

집 지키고 있어야 할 강은찬이 왜 미용실에 갑자기 난입하게 됐는지 얘기하자면,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비와 은찬 모두 거의 잠을 자지 못했으나 둘 다 해가 뜨자마자 동물처럼 눈을 떴다.

강은찬의 경우엔, 남아있던 옷도 결국 전부 찢어져 버렸으니 입을 옷이 없었다. 역시 남은 건 앞치마뿐이다. 은찬은 은근슬쩍 흰 레이스 앞치마를 다시 챙겨 몸에 둘렀다.

피부 위에 바로 부드러운 천이 스치는 감각이 아직 좀 낯설었다. 특히 남자의 신체구조 상 자세를 바로 하면 성기가 허벅지 위에서 덜렁이게 되므로 거기에 바로 천이 닿는다. 의식하면 흥분할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은찬은 얼굴로 열이 오르려는 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괜히 앞치마 밑단을 만지작댔다.

‘슬슬 나도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들떴다. 그는 아예 대놓고 히죽거렸다. 그래봤자 어차피 나비는 눈치채지도 못한다는 걸 이미 다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실로 용의주도한 킬러다운 자세였다.

실상 나비는 아직까지 넋을 놓고 있었다.

긴 세월을 살아온 전나비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당연히 보통 인간들과 다르다. 나비는 천천히 산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면 정리가 안 됐다.

종족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비는 지금 고장 났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조그마한 강은찬이 들어온 것 같았다. 어젯밤 일을 순서대로 되짚어보려 할 때마다 그 작은 강은찬이 나타나 뭔가 귀여운 짓을 하면서 생각을 방해했다.

그래서 나비는 아침부터 내내, 실물 강은찬이 그녀에게서 5m 이상 떨어질 때마다 불러대고 있었다. 앞치마 가지러 온 지금도.

“은찬아.”

나비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은찬이 헤실거리며 네발로 기어 나비의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평범한 인간 여성이었다면 갈비뼈가 다칠 수도 있을 만큼 힘껏 뛰어든 건데 나비는 미동도 없이 그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쓱쓱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허공에 가 있었다.

은찬은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금지당해, 나비가 그를 쳐다보지 않으면 수화로 뭔가를 말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제정신도 아닌 듯했다. 그래서 이참에 은찬은 아예 대화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솜사탕 강아지처럼 굴었다. 이참에 하고 싶던 거 다 해 보는 것이다.

은찬은 고양이처럼 두 손을 말아쥔 채 혀를 빼물고 헥헥거렸다. 너무 행복했다.

‘배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

강은찬에게 너무 많은 평화를 주면 이렇게 된다.

“멍.”

“으응. 출근해야지…….”

출근하라고 짖은 게 아니었지만, 나비는 대충 아무렇게나 알아들었다. 나비는 그를 밀어 바닥에 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세월에 걸친 습관이 그녀를 움직였다.

은찬은 아주 대놓고 “끼잉…….” 따위의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나비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문득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아침 안 드시고 출근하시나?’

예전에 파악해뒀던 나비의 스케쥴로 미루어보면 아직 시간이 있다.

‘앞치마까지 입은 주제에 아침도 안 차리고 굴러다니고 있었다니.’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은찬은 사족보행 하다가 갑자기 두 발로 서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인간―강아지로서의 의무를 다해 보리라. 그런데 시작부터 큰 난관이 그를 가로막았다.

‘……사람 고기…….’

표정도 느슨하게 풀린 수퇘지의 그것이었다가 갑자기 냉정한 킬러가 됐다. 그는 여전히 나비의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 다만 그녀가 인간의 살점을 뜯으며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 뿐이다.

아침밥에 인간의 일부를 넣어야 하나. 넣는다면, 얼마나 넣어야 하나. 넣을 수 있기는 할까?

은찬은 정신이 아득해져서, 싱크대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나비와 같이 살아가려면 직면해야 하는 문제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힘든데 그걸 요리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는 잠시 인생을 되짚어봤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에게 건넸던 조언이 있었다.

‘나 좋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은찬이 젊은 혈기를 못 이기고 사랑에 빠져 삽질할 때마다, 그가 늘 되새기던 생각도 있다.

‘원래 사랑에는 시련이 있는 법이야.’

지금까지는 은찬이 살인 청부업자이기에 그 시련을 못 넘었다마는, 여기 인간을 대량 살육하는 전나비의 곁이라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람 고기를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은찬아. 또 어디 갔어.”

강은찬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비가 또 나직이 그를 불렀다. 은찬은 생각을 포기하고 다시 쪼르르 나비에게 달려갔다.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건 개로서 누리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도 은찬은 나비의 주의를 끌고 걱정스레 손짓했다.

‘아침 안 드시고 가십니까?’

“응? 어. 뭐. 배고파?”

‘누나가 드신다면 저도 먹을게요.’

나비가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뭐 먹지……. 너나 먹을까…….”

은찬이 뒤집어졌다.

그는 뛰어난 살인 청부업자답게 날렵한 솜씨로 바닥을 멋지게 구르고, 가볍게 착지하여 무릎부터 꿇었다. 은찬도 저 말이 성희롱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그냥 반응했다. 앞치마 가운데가 수상하게 움찔거렸다.

은찬은 두 손을 모으고 진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프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헉. 너무 늦었네.”

나비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나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벌써요?”

“심심하면 뭐…… 아무거나 하고…….”

“저는 안 드십니까?”

“갔다 와서 먹을게.”

개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나비는 은찬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리며 현관으로 나섰다. 행복한 시간은 왜 늘 짧을까. 은찬은 울면서 떼쓰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잘 다녀오세요. 집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덧붙였다.

“갔다 오면 꼭 드셔야 해요.”

“응.”

나비는 성의 없이 대답하고 매장하게 집을 나섰다.

이렇게 은찬은 혼자 남았다.

“…….”

나비가 없는 집은 공허하고 조금 쓸쓸했지만, 그녀의 체취가 남아있어 그리 춥지도 않았다. 시간이 빈 김에 부족한 잠을 자면 좋을 것이다. 좋았겠지만, 은찬은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일단 본업이 본업이었으니만큼 여유롭게 잔다는 일이 잘 와닿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지금은 잘 때가 아니었다.

심심하면 아무거나 하라고 허락받았다.

나비의 개인 공간을 마구 돌아다녀도 된다. 그렇다고 물건을 막 뒤적이거나 하지는 않을 거지만, 나비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대부분의 일은 용서해 줄 거다. 예를 들어 책장에서 뭘 뽑아 본다거나, 티비를 틀어 본다던가, 나비의 이불에 코를 묻고 스스로의 몸을 만진다거나…….

‘내가 뭐 짐승도 아니고.’

은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짐승이 아니고 솜사탕 강아지다.’

짐승이 아닌 솜사탕 강아지의 자세로 은찬은 나비의 이불에 코를 묻었다. 집 전체에 묻어난 생활의 흔적도 궁금하긴 하다. 하지만 누나의 냄새를 맡는 일이 제일 급했다. 은찬은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나비의 체취부터 비강 깊숙이 빨아들였다. 페로몬이 틀림없다. 몸 안쪽부터 자극당하는 기분이다.

“하…….”

몽롱하게 열기 오른 숨을 토해냈다.

자위하지 말라는 명령은 없었다. 없었다만은, 은찬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번에 하다가 걸렸던 이후로 반성을 많이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의 몸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나비에게 넘겨주고 즐기고 싶었다.

‘자위해도 될 때는…… 제대로 허락을 받고…… 누나가 보는 앞에서…….’

은찬은 이것저것 당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다가, 앞치마를 끌어올려 가슴과 성기를 드러낸 채 입에 물었다. 맹세컨대 삿된 이유는 아니었다. 더워서 그랬을 뿐이었다. 그리고 허벅지에 난 새파란 멍을 손끝으로 살살 더듬다가, 힘을 줘 꾹 눌렀다.

“아.”

이것 또한 결코 음란한 목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파악하는 것은 킬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흐으…….”

그냥 쥐고 흔들 때보다 더 짜릿했다. 은찬은 침대 가에 무릎 꿇고 앉은 채 고개만 얼굴만 이불 위로 처박았다. 아직, 뭔가가 아쉽다. 꼭 필요한 자극이 하나 빠진 것 같다.

그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개목걸이…….’

매주면 좋을 텐데.

물론 개가 아니라 비상식량이라고 못 박히기야 했지만, 은찬은 꿋꿋하게 소형견의 위치를 고집했다. 유기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청소기라도 돌려서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편이 낫겠으나 당장 이 자리를 떠나기도 싫었다.

목을 감싸는 구속구가 필요하다. 저번에 목을 졸렸을 때처럼…….

‘아. 자위하면 안 돼.’

건드리지도 않은 성기가 벌써 한계까지 딱딱해졌다. 만지고 싶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한 발 뽑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은찬은 나른하게 뒹굴며 중얼거렸다.

“하면 안 돼…….”

그는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면서 극락세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비의 근무 시간은 몇 시간이 안 된다. 그 정도면 묶여 있을 만하다. 함부로 야한 짓 못 하게 팔다리 다 묶어두고 침대에 눕혀두고 가지. 아니, 침대가 아니더라도, 그냥 지하의 비밀 부엌에 가둬두고 가지. 왜 그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단 말인가.

상상 속 누나가 은찬을 학대한다. 그는 혀를 빼물며 바닥을 기었다.

“!”

그러다, 시선을 눈치채고 퍼뜩 고개를 들다.

나비의 집은 침실 문을 열어두면 거실의 커다란 창문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그 창문의 위쪽에 어떤 두꺼운 안경을 쓴 곱슬머리 미남자가 거꾸로 매달려서, 못 볼 거 봤다는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강은찬의 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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