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킬러비트-12화 (12/57)

12화

이번엔 떡하니 놓인 현금 함정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위화감을 눈치챈 것이겠지. 은찬은 형에게 공감했다.

‘솔직히 집이 좀 이상해.’

정확히 어느 부분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려웠지만 그랬다. 노골적인 함정을 배제하더라도 집에 사람 냄새가 안 났다. 그러나 그런 위화감은, 일부 감 좋은 인간들이나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비가 집을 꽤 그럴듯하게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은찬이 물었다.

“누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비가 곤란한 듯 “으음.”하고 침음을 흘렸다.

“혼자 왔으니까 납치해야겠지?”

“…….”

은찬은 입을 다물었다. 납치당하면 죽는다. 그는 아무래도 자신과 가까운 이를 죽음으로 몰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죽기도 싫었다.

나비가 소곤거렸다.

“안쪽 방까지는 들어와야 잡기가 쉬운데, 네 형이 들어와 줄까?”

“…….”

그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난처해졌다. 본래라면 그냥 소리쳐 그의 형에게 도움을 청했겠지만, 상대는 그녀다. 도움을 요청을 해봤자 그냥 희생자를 두 명으로 늘리는 꼴밖에 안 됐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어느 쪽도 싫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만 있기도 어렵다. 은찬은 턱을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자는 아닐 겁니다. 탐색은 조를 짜서 다니는 게 기본이니까요.”

그는 슬쩍 형의 편을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나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겠다. 한 명 정도는 밖에서 기다리는 거지?”

“아마도요.”

“근데 누가 보고 있더라도, 벽 안으로 사람이 끌려 들어가면 당장은 대처를 못 하거든. 많이 해봐서 알아.”

“…….”

“놀라서 달려오면 그건 그것대로 좋고. 나야 많을수록 좋거든.”

나비의 웃음소리가 악마의 그것처럼 들렸다. 은찬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근데 네 형은 안쪽 방까지 들어올 생각이 없나 봐.”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은찬은 이를 아드득 악물며 머리를 굴렸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형님을 안전하게 보내고, 자신도 살고 싶다. 은찬은 속으로 빌었다.

‘형, 그냥, 제발, 그대로 나가.’

나비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찬아. 네 형 불러.”

“!”

“네 형이 대신 죽으면 너는 살려줄게. 괜찮지?”

전혀, 전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눈앞이 핑 돌았다. 자연재해에 가까운 나비의 존재를 떠올리면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일단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팔면 살 수 있다.

그것이 연쇄 살인마의 지하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그와 같이 죄를 저지른 또 다른 살인 청부업자였으니 죄책감도 덜하리라.

‘이것도 또 다른 속죄의 길이 아닐까.’

유혹의 손길이 그의 앞에서 손짓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 앞에선 가족의 의리도 인정도 쉽게 무너진다.

은찬은 결심했다.

“누님.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응.”

나비가 마주 보고 웃어줬다.

은찬은 1cm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틈에 대고 소리쳤다.

“형, 도망가! 누나는 내 거야! 크헉.”

계획이 틀어지자 나비가 황급히 은찬의 목을 틀어쥐었다. 호흡이 끊기며, 의식이 멀어진다. 은찬은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음을 직감하며 의식을 잃었다. 뭐, 그래도 소신은 지켰다.

***

「나: 아버지. 소녀이옵니다. 소식이 통 없으시네요. 수술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소녀 걱정되어 밤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나: 아버지. 내 말 씹지 마세요. 소녀 상처받습니다.」

「나: 아버지」

「나: 실시간으로 1이 없어지고 있잖아 아버지」

「나: 내 말은 무시하기로 작정한 거야?」

「나: 저 상처받아요」

「나: 설호야」

「아버지: 왜」

「나: 아버지 뭐해」

「나: 아버지 대답 좀」

성간시 송원면은 재개발 논의가 나오고 있는 작은 동네인데, 이곳에는 ‘금화조 미용실’이란 촌스러운 간판을 둔 동네 미용실이 하나 있다. 가게 주인은 상경한다더니 서울에서 자리 잡는 데 실패하고 돌아온 전 씨네 큰딸이다. 싹싹한 성격은 못되지만 참하고 솜씨가 좋아 선 자리를 주선하려는 동네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간의 평판은 이렇다. 물론 그 참한 미용사 아가씨는 연쇄 살인마다.

전나비는 그 흔한 라디오나 음원 TOP100도 틀어두지 않은 미용실에서 그날도 어김없이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작은 미용실은 손님도 별로 없어서 직원도 없었다. 지금도 손님이라고는 친분이 있는 단골 세 명뿐이었고, 그중 한 명은 엄밀히 따지면 손님이 아니라 그냥 다른 한 명을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중에서 지금 샴푸 서비스를 받고 있는 손님은 건설업체 회장, 박용식이다. 박용식이 기름진 얼굴로 히죽이며 말을 건넸다.

“아가씨는 언제까지 촌 동네에서 이럴 거야. 내가 진짜 아까워서 그래.”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나비는 무심하게 머리를 감겨주며 대답했다.

“이사 안 해요.”

“아가씨한테만 보상금 더 얹어준다니까.”

박용식은 눈에 수건이 덮여있음에도 굳이 팔을 뻗어 더듬더듬 나비의 손목을 잡았다. 박용식의 엄지손가락이 나비의 손목 안 여린 살결을 몇 차례 쓰다듬었다.

“응?”

“하지만 이사를 안 하는 건…… 안 하는 거예요…….”

전나비는 침울하게 대답하며 마저 샴푸를 헹궜다. 박용식은 촌 동네 미용실 아가씨를 희롱하겠답시고 힘을 줘 나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어째 맨손으로 거목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전혀 통하지 않아, 당황스러워진 그는 나비를 야단쳤다.

“아가씨는 다 좋은데 버릇이 없어.”

그러자 기다리던 손님이 어색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어르신. 보기 흉합니다. 체통을 지키시죠.”

그는 송원면 파출소에서 경사 계급을 달고 있는 박도하였다. 평소에는 주변 눈치를 보느라 불의에 끼어드는 일이 잘 없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보기 흉해 그만 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역시나 불똥이 튀었다. 박용식은 평소에 박도하를 좋게 보고 있었지만, 이번엔 실망했다는 골자의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박도하 경사는 망했다 싶은 심정이 되어 겉으로는 싹싹하게 웃으면서 어떻게든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나비는 박용식의 머리를 말리고 돈도 제대로 받았다.

약 15분 후, 박용식은 나비에게 “자꾸 그러면 내가 아가씨 집에 찾아갈 거야.”라고 엄포를 놓고는, 시종일관 말없이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던 수행비서가 모는 세단을 타고 떠났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끝까지 지켜본 박도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재수 없는 새끼. 언젠가 칼 맞아 죽을 거다.”

그에게 미용 가운을 입혀주고 있던 나비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내가 칼 맞아 죽어요?”

“아니? 당연히 박 회장 말하는 거지요!”

“두 분 친한 거 아니었어?”

“나비 씨는 뭘 보고 그런 말을 해?”

“얘기할 때 웃길래…….”

“그건 사회생활이고!”

“아하.”

박도하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전나비가 이러던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란 걸 기억해내고는 그냥 관뒀다. 그는 귀찮은 일에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비의 저 성격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일이었다. 그는 2년째 단골이었다.

“됐다, 말을 말지. 평소처럼 다듬어 주세요.”

“네.”

나비는 그의 머릿결을 따라 클립을 꽂았다. 박도하가 맞은편의 거울을 통해 그런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예쁜 얼굴은 오늘도 한없이 평화로웠다.

박도하는 불쑥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나비 씨는 저런 인간이 추근대도 기분 안 상해요?”

전나비는 대답은 하지 않고,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근대는 거였구나…….”

“…….”

박도하는 미용실에 올 때마다 이 순진한 아가씨가 너무 걱정됐다.

“나비 씨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요. 나비 씨는 걱정도 없지?”

“경사님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거고.”

“아니야. 나비 씨가 걱정을 안 하고 살아.”

“나도 먹고사는 걱정은 하거든요?”

‘먹고’사는 문제로 발끈하는 전나비를 무시하며, 박도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걱정 얘기가 나오니, 최근 그를 괴롭히고 있는 골치 아픈 걱정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쉽게 발설해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일이었지만 또 동시에 경찰이 말 못 할 일은 아니기도 했다.

그는 한동안 가위질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앉아있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강은찬이라는 사람 알아요?”

“음.”

전나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평화롭게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누군데요?”

“그으러니까아…….”

박도하는 망설이며 말을 토해냈다. 너무 이상한 케이스라 동네 미용사에게는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그는 그냥 한탄했다.

“왠지 나비 씨는 알 것 같았는데.”

전나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평화롭게 자른 머리카락들을 털어냈다.

“모르겠어요.”

“가명을 썼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해……. 잘생겼어요.”

전나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하고 평화롭게 빗질을 했다.

“그렇구나.”

“아, 씨. 이게 아닌데. 나이는 20대 초반에……. 아이, 모르겠다. 제가 사진 보여준 건 비밀로 해요. 이거 극비니까. 근데 좀 놀랄 수 있어.”

박도하는 가위질에 방해되지 않게 미용 가운 안에서 요령껏 꼼지락거리다 가운 사이로 사진을 쑥 내밀었다. 나비는 빗과 가위를 든 채 몸만 기울여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에서는 검은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온통 까맣게 차려입은 어떤 미남자가, 피 묻은 칼을 든 채 카메라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이 반쯤 그림자로 덮여있었음에도 외모가 상당했다. 구도 상 몰래 찍은 사진도 아닐 텐데 사진이 무척 어둡고 흐렸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선명하고 형형하다. 사진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원한에 찬 살기가 과연 그의 말대로 놀랄 만했다.

나비는 상상 이상의 사진이 나오자 얼떨떨해졌다.

“……뭐람.”

“그치.”

박도하는 공감하며 사진을 다시 챙겼다.

“본 적 있어요?”

전나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람 몰라요.”

이어 동네 미용사로서의 추측을 말했다.

“왜, 머리만 발견되고 그랬어요?”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냥 실종됐어요.”

“경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 샴푸 할게요.”

한 번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박도하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샴푸대에 누웠다. 곧 따듯하게 적신 수건이 눈을 덮고 기분 좋은 샴푸질이 시작됐다.

전나비는 수건으로 가려진 그의 시야 너머에서 무방비한 경동맥을 빤히 쳐다보며 평소보다 조금 더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두피를 문지르는 손길도 평소보다 조금 더 부드러웠다. 섬세하면서도 거침없는 손놀림에 붕 뜨는 기분이 든다. 박도하는 나비에게서 샴푸질만 받으면 정신까지 아득해지곤 했다. 이 미용실만 고집하는 이유의 절반 이상이 이것 때문이었다.

박도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느슨해져, 속에 담아두고 있던 고민을 내뱉고 말았다.

“그게 좀 귀찮고 이상해요. 강은찬이라는 걔가, 그, 어느…… 거물급 조폭의 양아들인데 지금 실종된 거야. 증발한 것처럼.”

“어머.”

“그래서 그 거물급 조폭은 다른 조직에서 애를 죽인 줄 알고 난리가 났는데, 다른 조직들도 모르는 얘기인 거지.”

“그러면 싸움 나서 자기들끼리 죽여요?”

전나비의 말투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제야 박도하는 이상함을 느끼고 수마처럼 몰려오는 아득함에서 벗어났다. 자기들끼리 죽이는 게 아쉽다니? 역시 사람이 참 엉뚱하다.

하여간에 그는 자신이 너무 많이 떠들었음을 깨달았다.

“아무튼, 그래. 내가 사진 보여줬다는 건 다른 경찰들한텐 비밀로 해주세요.”

“그건 또 왜 비밀이야.”

“그런 게 있어.”

전나비는 머리를 손질해주다 말고 새로운 화두를 꺼냈다.

“도하 씨 얘기 들으니까 생각났는데 저도 고민이 하나 있어요.”

“나비 씨가 무슨 고민이 있어요.”

“나도 고민은 있거든요.”

나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개를……. 아니.”

“개 주웠어?”

강아지를 좋아하는 박도하가 반색했다. 전나비는 재빨리 부인했다.

“아니. 안 주웠어. 그건 아닌데.”

박도하의 경찰로서의 감이 번뜩였다. 이건 주웠다. 밥도 줬다. 아마 씻기기도 한 것 같다.

“밥 주고 씻기고 재워줬어?”

“…….”

“그건 주웠다고 하는 거지. 사진 보여줘.”

“아니라니까. 근데 개가 나를 너무 따라. 집에서 안 나가려 그래. 그리고 사진 없어.”

“주웠네. 책임져야죠.”

“아니라고.”

둘은 이렇게 모 조폭의 양아들이 실종되었네, 뭐네 하는 동네 정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실없는 동물 얘기로 티격태격했다. 잠시 후 박도하는 커트 비용을 계산하고 경찰 모자를 눌러쓰며 미용실을 나섰다.

“다음에 봐요.”

“또 봐요.”

전나비는 근무 시간 도중에 태연히 미용실을 방문한 박도하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두 시간 후 퇴근 시각이 될 때까지 손님은 없었다. 나비는 한가롭게 앉아있다가 오후 3시에 미용실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고, 역시 어느 킬러가 실종됐다니 하는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박도하가 조용히 미행하고 있었다.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강은찬의 마지막 행선지가 나비 씨 집이었지.’

전나비는 서류상으로 깨끗했고 실제 행실도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전나비가 미용실을 개업한 이래 미해결 실종사건이 아주 미미하고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아무리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여도 시체조차 못 찾는 경우는 드물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무슨 관련이라도 있으면.’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나비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강은찬의 양아버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네, 어르신.”

-찾았나? 우리 애 대체 어딨는 거야?

수화기 너머 상대의 목소리는 초조하고 급박했다. 자식이 실종되어 미치기 일보 직전인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다. 박도하는 이 불쌍한 아버지가 실종자로 만든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며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거나 귀찮은 일도, 강은찬의 목에 걸린 현상금 액수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돈이 최고다. 박도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양심을 돈에 팔아넘겼다.

그는 짧게 마무리하고 통화를 끊었다.

“짚이는 게 있으면 연락드리죠.”

그리고 반지하 집으로 들어가는 나비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역시 별거 없는 것 같다. 그냥 별거 없는 허름한 집일 뿐이다.

‘아버지가 최근에 입원했다고 했었나.’

그는 팔짱을 끼우고 생각에 빠졌다.

‘설마 숨겨진 문을 열면 방공호 같은 게 나오고 그 안에 강은찬이 갇혀 있고, 그런 건 아니겠지?’

박도하는 황당무계한 가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

그러다 그는 수상한 인물을 발견했다.

모델 같은 체격의 남자가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전나비의 집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강은찬은 아니었다. 모자 밑으로 두꺼운 안경과 섬세해 보이는 턱선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도하는 숨을 삼켰다.

‘강은찬의 이복형제잖아. 저쪽이 형이던가.’

박도하는 심각해졌다.

‘나만 나비 씨를 의심한 게 아니었군. 침입해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못 본 척하기 힘든데. 나도 나름대로 경찰이라.’

경찰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수상한 자는 꺼림칙한 태도로 전나비의 집 근처를 얼쩡거리다가, 이내 반대쪽 길목으로 사라졌다. 눈썰미와 감이 좋은 박도하는 이상하리만치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태도가 너무 수상한데.’

이상하게도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던가. 마치 저 집에 한 번 들어가 봤다가 끔찍한 일을 겪고 도망쳤지만, 아직 신경이 쓰이는 사람처럼…….

‘……진짜 지하실이라도 있나?’

그렇지만 숨겨진 문을 열면 나오는 방공호에 강은찬이 갇혀 있을 거라는 박도하의 추측은 틀렸다. 강은찬은 이제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은찬은 그 시각, 식탁 위에 누워있었다.

정확히는 식탁 위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벽 틈으로 형님을 목격하고, 형도 살리며 동시에 나비도 독차지하고 그의 죄도 속죄할 만한 선택을 했다거나, 그 결과가 자신의 죽음이라거나, 결국 나비에게 먹힌다거나…… 따위의,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은 까맣게 잊은 은찬은 침을 흘리며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

태어나서 이 정도로 깊이 잠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잠들었다. 갓난아기도 이 정도는 아니리라.

그의 숙면엔 비결이 있었다. 나비가 그를 무척 깔끔하게 기절시키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그의 마음가짐부터 숙면에 빠지기에 최적이었다. 은찬은 자기가 죽을 줄 알고 모든 미련과 고민을 내려놓았고, 항시 전신에 두르고 있던 긴장감을 온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거기에 주변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피부에 닿는 보드랍고 깨끗한 이불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베개도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좋은 물건이다. 온도는 따듯하고 습도도 알맞으며, 공기까지 방공호 따위보다 훨씬 신선했다. 숙면에 들 수밖에 없었다.

은찬은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행복해했다. 항생제도 하나 먹고 푹 자니까 감기마저 나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이불 속에서 게으름 피우고 있는 것을 자각했을 때, 은찬은 소리를 지르며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지 마세요!!”

일어나 보니 자기가 아직 살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