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105화 (105/112)



〈 105화 〉105화

소연의 목소리에는 굉장히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혜정은 그런 소연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음 잘잘못 따지자면, 약속 못 지킨 것도  남자고, 여자친구 감성 하나 제대로 못 지켜준 그 남자가 잘한 건 없거든?”

혜정은 약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연애는 그냥 아쉬운 쪽이 지는 수 밖에 없어. 원래 그래.”


“...뭔가 슬프네요.”

“대신 질 때  져야해.”

“잘 진다구요?”

“보통 연인간에 잘잘못 따지는  의미가 없는게, 상대방도 아주 약간이지만 잘못한 게 있잖아? 그럼 자연스럽게 사과도 어설프게 하게 돼. 아마 네 친구도 그럴거야. 속으로 그래도 나만 잘못한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걸?”

정곡을 찔린 소연의 대답이 순간 늦어졌다.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너도 사과 받아봤으면 알겠지만 어설프게 사과받으면 기분 안 풀리잖아. 사과를  거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대신. 그 이후에 네가 생각한 부분들도 말할  있는 기회가 꼭 올거야. 네가 서운한 점들은 그때 말하면 돼.”


소연은 혜정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소연의 표정은 무언가 결심이라도   진지했다.


혜정은 그런 소연에게 미소 띈 얼굴로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잘 될 거야. 힘내.”

“고마워요 언니. 저 다음 수업 곧 시작이라 먼저 가볼게요!”

“응.”

소연은 혜정에게 인사하고서 곧바로 가방을 챙겨 이동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대답을 들었음에도 소연의 머리를 여전히 복잡했다.


‘그래도  수 있는 건 다 해봐야해.’

소연은 적어도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현수 끝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선명해졌다.


소연이 떠난 후.


“누굴까.”

혜정은 웃으면서 소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쟤면 괜찮겠지.’


흔히 새내기 시절에는 함부로 연애하다가 데이는 경우가 숱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혜정은 소연만큼은 그 케이스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신중한 타입이었고, 그 탓에 지금까지 숱하게 그녀에게 접근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 외모에 모태솔로로 남아있을 정도로 엄청난 철벽녀였다.

그렇게 혜정은 속으로 소연이 잘 풀리기를 기대하며 자신도 짐을 챙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혜정을 물렀다.


“언니!”


주영이었다.


“혼자서 뭐해요?”


“아. 소연이랑 있었어. 걔는 먼저 갔고.”

“아 그렇구나. 그런데 언니 소연이 요즘 무슨  있는 거 같지 않아요?”


“그래? 음. 나도 개인적으로 약간 고민거리가 있는 거 같아서 물어본 건데, 별 말 안하던데?”


“그래요? 흐음...”


혜정은 주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자.”

“아! 네!”


. .


며칠 뒤, 금요일의 낮.

아주 화창한 날씨는 신입생이 딱 놀기 좋은 날이었다.

그러나 소연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우울함이 심해졌다.


방안 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소연은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소연은 멍하니  앞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소연의 얼굴은 팅팅 부어서, 누가 봐도 울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멍하니 벽을 보던 소연은 이따금씩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푸시 알람이 하나 뜨자 소연이 곧바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서 스마트폰을 보던 소연은 얼마 가지 못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광고) 지금부터 딱 1시간! 두 배로 드려요!]


소연은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으로 들어가 방금 전의 푸시알람을  앱을 삭제해버렸다.

그렇게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른 소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나!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있어야 하는 건데?’

소연은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졌다.


그럼에도 소연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이 사람만 하루종일 신경쓰고 있어야 하냐고!’

어젯 밤. 소연은 현수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한참동안 현수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 새벽에는 참지 못하고 전화까지 걸었다.


당연히 현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소연은 하얗게 밤을 지새워야 했다.


잠시동안 씩씩거리던 소연은 어느새 표정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가라앉은 선을 넘어서서 침울해졌다.


‘진짜 어떡하지...’

소연은 밤새 현수가 아른거렸다. 마치 그가 없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일었다.

사실상 그녀가 현수와 고작 함께 있던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어느새 소연은 현수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소연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수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보인 금사빠의 전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지금 연락하면 받아줄까...?’

곧바로 소연의 생각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소연은 현수가 자신을 쳐내는 것이 덜컥 겁나기 시작했다.

소연의 생각이 복잡해져갔다.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온같 생각들이 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소연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쥐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있는  보다는!’

거의 하루를 새하얗게 지새우며 소연이 내린 결론이었다.

소연은 드디어 현수와 나눈 대화창을 켜서 톡을 치기 시작했다.


[오빠, 뭐해요?]


몇 분에 걸쳐 쓰다 지우다를 끊임없이 반복한 끝에 나온 심플한 말.

심지어 소연은 그것을 보내기로 결심하고서도 옆의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한  또다시 십여 분을 허비하고 있었다.

“아. 몰라.”

소연은 꾹 참던 심정을 내려앉고서 카톡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소연은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답장이 없지? 언제 오는거야? 아니 확인은 했나? 아냐 했겠지. 당연히 확인은 했을 거야. ...그럼 씹힌 건가? 그런데 혹시 못본 거일 수도 있잖아...’

소연의 속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빠르게 초조해져갔다.

.  .


[오빠 바빠요?]

현수는 스마트폰이 진동하자 미리보기로 뜬 톡의 내용을 확인했다.

소연의 톡을 읽는 순간 현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작됐네.’


현수는 일부러 어젯밤에  뭐하고 있냐는 톡을 무시했다.


심지어 그 직후, 새벽에 온 전화도 무시했다.

애당초 야행성이었기에 당연히 현수는 깨어있었다. 그리고 깨어있음에도 받지 않았다.


현수는  폰을 무시하고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주식 차트가 보이고 있었다.


[리프트 생명과학]

현수가 보고 있는 기업은 코스닥에 상장된, 조그마한 중소기업이었다.


주가 또한 현재 500원을 하회하고 있었다.


하루의 거래량도 미미했고, 차트의 흐름도 무의미한 횡보 뿐이었다.


현수는 그 가격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얼마치를 해야 할까.”

그런 현수의 뒤에서는 가윤이 그 모습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현수는 가만히 고민했다.


‘함부로 많이 지르면 작전하는 쪽에서도 알겠지?’

리프트 생명과학.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제약회사이지만, 이곳은 얼마 가지 않아서 바이러스 백신 관련 찌라시가 돌면서 어마어마한 주가 상승이 벌어진다.


의대생이었던 현수는 우연찮게 동기들이 그 종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을 계기고 한동안 주식에 빠지기도 했었다.


당연하게도 그 비정상적인 주가 상승은 외부 세력의 작전이라는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원한다면 현수는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다 쏟아붓고 싶었다.


‘근데 티가 나...려나?’


리프트 생명과학은 시가총액이 500억도 안될 정도로 조그마한 회사였다.

그래서 현수는 자신이 들고 있는 4억 가량의 현찰을 모조리 꽂아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이 티나게 넣었다가 작전회사에서 다른 곳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현수가 요 며칠 공부한 결과에 따르면, 작전 회사들은 자신들이 컨트롤하기 힘들어질 것 같으면 작전 시기를 미뤄버리던가 아예 다른 종목을 건드렸다.

문제는 현수의 돈 4억이 과연 작전 세력에게 티가 날 것이냐의 여부였다.

현수는 고민 끝에 결심을 했다.


그가 곧바로 매수 창에 숫자를 기입했다.

순식간에 300만원치가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렇게 현수는 장이 열려있는 하루동안 2000만원 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가윤은 옆에서 그런 현수를 조금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현수는 그런 가윤의 표정을 보고서 말했다.

“내가 뭐 돈 잃는  봤어? ...봤네.”

순간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떼인 기억이 떠오르자 현수는 서둘러 말을 주워담았다.

“...괜찮은 곳에 투자하시는 거죠?”

“회사? 이 회사야 개판 오분전이지.”

“...그런데 왜 투자를 하세요...?”

“기다려봐. 되게 재미있어 질거야.”

현수의 말에 가윤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그때, 현수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장이 끝나고 나서야 현수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 바쁘구나.]


[나중에 안 바쁘면 연락해줘요!]

[오빠...?]

[혹시 차단 한 건 아니죠...?]


[너무해요... 정말....]

‘이불킥 30년치네.’


현수는 그녀의 감정 변화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메시지를 보며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지간히 초조해졌구만.’

메시지가 뒤로 갈수록 점점 텀을 짧게 두고 도착해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현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 .  .

우울하게 누워서 하루 종일 밥 한 끼 먹지 않은  축 쳐져 있던 소연의 눈가에는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끝난 건가.’

혜정의 조언을 듣고서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현수는 그 사과조차 받을 마음이 없는  같았다.

소연은 이래서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는 것이고, 후회할 때엔 이미 늦은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우울함에 한참 잠겨있을 때였다.

우웅.

소연은 또다시 스마트폰이 진동을 하자 고개를 들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런 소연의 시선은 반 쯤 포기한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화면을 확인한 순간 소연의 눈빛에 생기가 살짝 돌아왔다.


스마트폰 화면에  미리보기 알람은 쓸데없는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메신저 톡의 알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소연이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쥐고서 자신의 눈 앞으로 가져왔다.

[현수오빠 : 나 과제하고 있었는데...?]


소연은  순간 눈빛에 초점이 확 돌아왔다.


동시에 그녀는 우울감에 푹 젖어있던 기분도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왔어! 진짜 왔어!”


소연은 뛸 듯이 기뻤다.

‘그래. 별 일 아니었고, 그냥 과제중이었구나. 어제 꺼는 못 봤나봐.’

그리고 기쁨을 만끽하고서 잠시 후.

소연은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이 우울할 때 보냈던 톡들이 머릿속을 단숨에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뜻했다.

‘아! 어떡해!’

소연은 자신이 무언가에 씌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스스로가 보낸 톡들을 보고서 멘탈이 흔들렸다.

‘오빠가 엄청 놀랐겠다. 어떡하지? 날 뭐라고 생각할까?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