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099화
현수는 약속장소로 잡은 지하철역 출구 앞에 서있는 소연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소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귀엽네.’
현수는 곧바로 소연에게 다가갔다.
그가 소연에게 다가가자 곧바로 소연도 현수를 알아채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삽시간에 환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 현수는 그녀가 어떤 속마음인지 빤히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현수가 노리던 반응이었다.
“먼저 와있었네.”
“네. 여기선 이모라고 안 부르네요?”
“당연하지. 덕분에 살았어.”
그렇게 말하며 현수는 슬쩍 그녀의 머리를한 번쓰다듬었다.
소연은 살짝 당황하는 듯 해 보였지만, 결코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현수가 소연과 조금 더 가깝게 밀착해서 서게 됐고, 순식간에 둘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감과 정서적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다.
“무슨 일이었는데요?”
소연은 지나가는 투로 슬쩍 물었다. 그러나 현수는그녀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솔은 진짜 다 티가 나는구나.’
현수는 그녀에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밥이나 먹자고 해서 나간 건데, 얘들이 놔줘야 말이지.”
이제는 수준급에 올라버린 현수의 연기에 소연은 곧바로 넘어가버렸다.
타당한 이유까지 들어버리자 소연은 그제야 긴장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렇게 소연의 표정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 현수는 새삼 그녀가엄청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예쁘긴 예쁘네.’
그런 생각이 든 이유 중에서는, 지나가는 남자들이 죄다 그녀를 힐끔거린 탓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방금 전 연희와의 데이트에서도 질릴 정도로 겪은 것들이었다.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외모의 여자를 낮과 저녁에 갈아치워가며 만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와닿자 현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부터 먹으러 갈까?”
“네!”
현수는 소연을 데리고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을 시작으로 데이트를 해 나갔다.
저녁을 먹고, 카페를 간 뒤, 길을 걸으며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내내 현수는 소연에게 굉장히 친절했다.
그러자 현수는 소연이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현수는 계획대로 소연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자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역시 내가 쥐고 흔들어야 해.’
뭐든 상황을 컨트롤하며 손에 쥐고 흔드는 것이 현수의 스타일이었다.
현수는 그렇게 소연을 데리고 몇 시간을 보냈다. 데이트 코스는 계속 걷는 일정이었다.
그러자 어느덧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거기서 조금 더 지나자 저녁에서 밤 사이에 걸쳐진 시간대가 되었다.
그 즈음 현수는 소연의 표정을계속 살피며 각을 쟀다.
그러다가 그는 소연이 확연히 피곤해 보이는 기색을 띄자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피곤하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음, 사실 조금 피곤하긴 한데 이 정도는 진짜 괜찮은 편?”
“표정에 써 있는데. 피곤하다고.”
현수의 말에 소연이 살짝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는 잠시 후 이어진 현수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어디 들어가서 잠깐 쉬지 않을래?”
그 말에 소연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나 소연은 차마 현수에게 면박을 줄 수는 없었는지, 곧바로 입을 떼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현수는 지금 이 순간,소연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가 훤히 보여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현수는 그 웃음을 굳이 감추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무슨 생각 하는거야? 룸카페 같은데 가서 영화 보면서 쉬자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 말에 더 의심이 깊어져야 했다.
그러나 현수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사심도 담기지 않았기에 소연은 순간 의아함이 들기 시작했다.
‘진짠가...?’
그녀의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현수가 속으로 생각했다.
‘안 믿고 네가 배기겠냐.’
실제로도 현수는 여유가 넘쳤다. 그는 오늘이 아니면 다음번에 진도를 빼도 무방하다는 태도였다.
정말극단적으로까지 간다면 소연을 이대로 놓쳐도 상관없었다.
그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순수한 척에 모태솔로 소연은 서서히 넘어오고 있었다.
현수가 소연을 보며 피식 웃더니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설마 진짜로 이상한 생각한 건 아니지?”
현수가 그렇게 묻자 소연이 발끈하며 받아쳤다.
“아니거든요!”
“그럼 가면 되지 뭐.”
“그래요! 가요!”
현수는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룸카페를 검색하는 척을 했다.
현수는 미리 찾아놓은 룸카페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평이 좋네. 여기 가자.”
“그래요.”
소연의 대답까지 들은 현수는 그녀를 데리고서 룸카페로 향했다.
막상 그곳을 향한다는 것이 확정되자 소연은 다시금 긴장했고, 현수는 그런 그녀가 마냥 귀여웠다.
두 사람이 룸카페에 도착하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은 뒤, 배정된 방으로 향할 때까지 소연의 긴장감 어린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막상 방문이 열리는 순간, 소연은 그 긴장을 완전히 풀 수 밖에 없었다.
현수가 그녀를 데리고 간 룸카페는 바닥에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좌식 구조가 아니라,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야 하는 입식 구조였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양 쪽 소파에 한 명씩 마주보며 앉았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는 소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진짜 이상한 생각 안 할 거지?”
“아 안했다니까요?!”
소연이 가볍게 발끈하자 현수는 웃으면서 테이블 구석에 놓인 모니터겸 TV를 켰다.
그 후 자연스럽게 그는 OTT를 켜서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뭐 볼까?”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고르기 시작하는 현수를 보며 소연은 완전히 의심을 거둬야만 했다.
‘뭐야... 진짜 아무일도 없네.’
그리고 소연은 그런 현수의 태도에 안심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현수는 빤히 보이는 그런 소연의 감정을 모른 척 그녀에게 무슨 영화를 볼 건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연도 자연스럽게 같이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된 뒤, 현수는 처음에는 영화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현수는 속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다시 봐도 재미없네.’
소연이 고른 영화를 자신도 좋아한다며 시청하고 있었지만, 영화는 현수의 취향이 전혀 아니였다.
그러나 현수는 상관없었다. 그의 신경은 소연을 관찰하는데 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소연이 그의 손을 중간중간 스치듯 힐끔거리는 것을 본 현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 정지는 안 시켜도 돼.어차피 본 거라.”
“아. 네.”
현수는 슬쩍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가볍게 손만 씻은 뒤 거울로 치아에 무언가가 끼지 않은 것을 체크하고서 머릿속으로 마지막에 먹은 것을 떠올렸다.
‘아메리카노. 오케이.’
현수는 입냄새가 날 일은 없겠다는 것 까지 체크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방문을 열자 폰을 끄적이고 있던 소연이 고개를 들어서 현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현수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앉던 자리가 아닌, 소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소연은 풀렸던 긴장이 다시금 확 올라왔다.
현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손을 잡고서 만지작거린다.
소연이 창피한 기색을 띄며 중얼거렸다.
“뭐예요….”
현수는 그녀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손잡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근데 맞은편에서 잡으려면 불편하잖아.”
“제가 언제 잡고 싶어 했어요.”
“아 미안, 싫으면 놓을게.”
그렇게 말하며 현수는 소연의 손을 붙잡고 있는 손에서 힘을 살짝 뺐다.
동시에 소연이 현수를 가볍게 노려보며 말한다.
“아 진짜. 그래요 놔요.”
“어라? 장난인데.”
그렇게 말하며 현수는소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동시에 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소연은 당황했지만, 그가 영화를 보는 듯 하자 거기에 대고 스스로가 무언가를 말하기는 창피했는지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현수는 그런 소연이 한껏 긴장하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아 미치겠네.’
현수는 웃음을 참으며 바짝 긴장해 있는 소연의 옆모습을 관찰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그녀의 옆테는 새삼 고왔다.
오똑한 코에 선명한 턱선으로 옆모습만 본다면 그림같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얘는 모델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가 알기로는 런웨이에서 모델들의 외모가 너무 부각되면 옷이 아닌 얼굴에 시선이 가기 때문에 너무 예뻐도 안된다고 들었다.
아마도그게 사실이라면 소연은 런웨이에 서기에는 벌써부터 글러먹었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긴, 혜정이나 주영이도 마찬가지긴 한데….’
멍하니 소연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현수를 그제서야 소연이 그의 눈길을 눈치채고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왜, 왜 그렇게 보고 있어요?”
현수는 대답없이 멍하니 보고 있던 그 눈빛 그대로 소연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소연은 현수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이곳이 밀폐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분위기 속에서 현수는 슬쩍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다가 점점 더 다가오는 그를 보고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키스를 했다.
소연의 입술을 파고들며 현수의 혀가 그녀의 것을 부드럽게 얽혀 들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나.’
첫키스를 하기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하면 지금의 키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첫키스를 할 때에는 완전히 얼어있던 그녀가 지금에서는 뭔가를 하려고 시도를 했다.
‘그냥 가만히 있는게 낫겠는데.’
현수는 부드럽게 그녀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연은 조금씩 현수의 리드를 따라왔다.
그가 소연의 입술을 살짝 가볍게 훑어주는 순간,소연이 멈칫거렸다.
입술로도 미약하게나마 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키스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그리고 현수는 그걸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제대로 뚫어놔야 이후도 쉽지.’
짧은 키스가 끝나고 나자, 소연이 새빨개진 얼굴로 현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런 소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봐야 다시 키스를 하지.”
현수의 말에 소연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다시 돌렸다.
현수는 소연의 볼을 쓰다듬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입술을 가져갔다.
그렇게 두 번째 키스가 시작됐다.
두 번째 키스는 처음보다 조금 더 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혀가 부드럽게 얽혀 들어갔다.
보통 첫 사랑과 나누는 초반의 키스는 무슨 맛으로 기억이 된다.
마지막에 먹은 음식 맛부터 치약 맛, 최악의 경우에는 침 맛까지.
그러나 현수는 그녀에게 키스를 ‘무슨 맛’이 아닌, 짜릿한 것으로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 생각으로 현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를 리드하며 애무하듯 키스를 신경써서 했다.
그렇게 한참을 키스한 뒤 두 사람의 얼굴이 떨어졌다.
소연은 살짝 달아오른 표정에, 약간 풀린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봤다.
그런 소연의 얼굴을 보며 현수가 속으로 생각했다.
‘어? 이대로면 그냥 더 밀고 나갈 수도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