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075화 (75/112)



〈 75화 〉075화

“하아….”

한석은 그날 효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락을 해볼까….’

한석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 상대는 효주가 아닌 현수였다.

하지만 이내 한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뺨을 두세 차례 때렸다.

“정신 차려라. 나도 자존심이 있어.”

한석은 그날 이후 효주가 코앞에서 따먹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며칠 동안은 흥분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흥분은 가라앉고, 전처럼 점점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은 퀭하니 명태눈깔을하고 있었고, 무기력하고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한석은 실제로  것은 아니지만 마치마약에 손을 댄 사람처럼 보였다.

효주를 만나면 괜찮을까 싶어서 그녀를 만나봤지만, 오히려 그녀를 본 이후로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보고싶다.보고싶다. 보고싶다….’

한석은 깨어있는 시간동안 내내 효주가 현수에게 따먹히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하지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수에게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이와중에도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한석의 무기력증이 심해져서 학교도 이틀동안 나가지 않았고, 걱정된 효주가 찾아왔지만 집에 없는 척을 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씨발! 이대로는 못살아. 자존심이  먹여줘?’

집에 틀어박힌지 3일 째 되는 날, 한석은 드디어 자존심을 버리고 현수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수야, 혹시 얘기 가능해?]

현수에게 연락을 보낸 뒤,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벌써 10분의 시간이 지났는데 답이 오질 않는다.

한석은 굉장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위이잉.

 15분의 시간이 지나서야휴대폰이 울리며 답장이 왔고, 한석은 허겁지겁 그것을 확인했다.

[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약간 차가워보이는 답장에 한석은 당황했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혹시 다음은 언젠지 알  있을까?]

한석이 몇 초도 되지않아 답장한 것과는 달리 현수는 또 다시 답장이 늦었다.

‘씨발! 대체 뭘하고 있는거야?’

한석은 답장에 집착하며 불안에 떨었지만,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대답을 강요할  없었다.

집안 곳곳을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며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답장이 와서 기쁠줄 알았던 한석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버렸다.

[무슨 다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메시지를 확인한 한석의 심장이 미칠 듯이 뛰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무슨 개소리야.’

“이 씨발!”

벌써 번째 신형 휴대폰이었지만, 분노를 참지 못한 한석이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퍽!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던진 휴대폰은 액정이 다 깨져버렸지만, 한석은 그딴것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며?  씨발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도저히  감정을 풀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고 생각한 한석은 곧장 휴대폰을 찾았지만, 액정이 다 부셔져버린 상태였다.

“개씨발!”

또 한 번 욕설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벽을 두들겨댔지만, 손만 아플 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한석은 약간 이성이 돌아오며 지금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내가 터트리면 김현수도 타격이 엄청 클거야. 절대 나를 이런식으로 버릴 수는 없어. 근데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지?’

한석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현수는 지금 정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고, 그에게 해를 끼친다면 다신 효주가 따먹히는 장면을  수 없다는 것.

현수가 이렇게 자신에게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한석은 자신이 철저한 ‘을’의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생 김현수한테 빌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평생까지는 억측이었고, 아마 자신의 상태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석은  금단현상에서 당장이라도 빠져나오고 싶었다.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깊고 거대한 욕망을 어서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번 현수에게 이런식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의자존심, 욕망을 저지시킬 정도로 강한 자존심이 한석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 무기력증에 빠진 한석은 다음날 해가 질때까지 잠도 자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찾아가자.’

결국 자존심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수에게 연락할 방법마저 잃은 그는 현수의 집을 수소문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현수의  근처 계단에 앉아 현수가 나타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던 한석은 기다린지 2시간이 지났을 때쯤에야 현수를 만날 수 있었다.

“현수야.”

한석이 그를 부르자 현수가 깜짝 놀래며 소리쳤다.

“아, 깜짝이야.  뭐야? 우리집은 어떻게 안거지?”

갑자기 말도 없이 찾아온 그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적대적인 현수에게 한석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현수야, 내가 다 미안해. 제발 보여줄 수 없을까?”

현수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한석에게 짜증을 냈다.

“하…. 야, 씨발. 내가 대체 왜 계속 너를 보여줘야 되냐?”

“우, 우리 분명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현수야, 내가 전부터 너한테 마음에 안들게해서 그건 정말 미안해. 내가 어떻게하면 될까? 제발 한 번만 용서해줘.”

여자친구를 뺏긴 남자친구가 그 당사자한테 찾아가 용서를 비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수의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한석은 그것을 보지도, 제대로된 판단을 내릴 형편이 되지도 않았다.

“넌 자존심도 없냐? 언제까지 나한테 빌면서 보여달라고 할거야?”

“그럼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자존심을 건드는 현수의 말에 한석의 언성이 높아졌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거잖아.  씨발!   때문이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악하는 한석의 모습을 한껏 비웃어주며 현수는 대답했다.

“야, 그게 왜 나 때문이야? 그래. 백번 양보해서 내가  여자친구랑 바람핀건 인정할게. 근데 네가 바라는건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네가 글러먹은 거잖아. 네 DNA에 각인된 성향이라고.”

“이런 씨발새끼가!”

한석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현수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며칠동안 폐인처럼 생활해온 한석이 평소 운동을 하는 현수를 맞추기엔 너무나도 힘도 없고, 느린 주먹이었다.

그러나 한석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현수는 그런 그를 제압할  밖에 없었다.

한석은 불쌍할 정도로 쉽게 제압당했고,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뭐야? 야, 우냐?”

우냐는 현수의 말에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한석.

“내, 내가 씨발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씨, 씨발놈아! 네가 날 이렇게 만든거잖아! 너도, 너도 좋아서 나보고 숨어 있으라고 한거잖아….”

한석은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고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와 존나 찌질하네 이새끼. 줘 패고싶네 진짜로.’

현수는 여자도 아니고 다 큰 남자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것이 너무 보기 싫었다.

자신의 집앞에서 저러고 있는 꼴을 보자니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때까지 두들겨 패버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도 있고해서 그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야, 그만 울고 내말 들어라.”

한층 누그러진 그의 말투에 한석은 기회가 왔다고 느꼈는지 코만 훌쩍이며 울음을 그쳤다.

“뭐, 뭔데?”

“어차피 너 나한테 매번 이럴수는 없을거 아니야. 맞지?”

한석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까 차라리 효주를 설득 시켜봐.  눈앞에서 나한테 몸을 대주라고.”

“뭐? 뭐라고  거야 지금?”

한석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이 만큼 당황스러워했다.

“네가 들은 거 맞아. 효주를 잘 설득해봐.”

“내가 대체 어떻게 그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 그럼  네가 알아서 잘해봐야지. 난 잘 모르겠네. 근데 오늘 이후로 널 다시 부를 일은 없을 거야.  생각하고 다시 연락해.”

그렇게 말한 뒤 현수는 멘탈이 나가버린 한석을 두고 집으로 올라가버렸다.

* * * *

‘효주한테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하라는건데!’

한석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멘탈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다.

현수에게 까인 이후로 한석은 절대 효주에게 만큼은 말할 수 없다며 버텨왔다.

현수는 정말로 연락이 한통도 오지 않았고, 한석은 계속 피폐해져 갔다.

어릴 적, 도박에 빠져 모든 재산을 날려먹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한석이 지금 이런 심정이었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머릿속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말할까…?’

위이잉.

한석이 말을 할까 고민을 할 때, 때마침 이번엔 중고로 구입한 휴대폰이 울렸다.

[한석아 너 학교 안나와? 요즘 무슨 일 있는거야?]

보이지 않아도 걱정이 묻어나는 효주의 메시지에 한석은 금세 울적해졌다.

‘그래, 그냥 말해보자. 효주도잘못한게 있으니까 해줄거야.’

현수의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에 목을 매달고 평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애초에 효주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한석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효주를 찾아간 한석은 곧장 그녀에게 말했다.

“효주야, 우리 얘기 좀 하자.”

“응? 무슨 얘기?”

한석은 마지막까지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결국  밖으로 내뱉었다.

“있잖아, 너…. 현수랑 바람 피고 있는거 다 알고 있어.”

한석의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효주가 입을 떡 벌리고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뭐, 뭐라고?”

“심지어 섹스까지 같이 한 것도 다 알고 있어.”

“….”

효주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석은 그녀가 먼저 말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효주가 입을 먼저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니까…. 정말 다 알고 말하는거야?”

“응. 모조리 다. 언제부터 만났는지도.”

“그, 그걸어떻게. 아니, 그니까, 아니지. 하, 한석아. 일단  얘기 좀 들어봐.”

“효주야. 나 지금 굉장히 이성적이야. 흥분하지말고 말해.”

이런 상황에 한석이 침착한게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 효주는 그게 더욱 무서운 듯 했다.

효주는 입을 다시 다문 채로 생각을 정리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한석아, 그니까 난 지금 누구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만큼  다 사랑해.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이건 진심이야 너에 대한 사랑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응?”

필사적으로 한석을 설득하려던 효주는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다고. 나도 내 부족함을 잘 알고 있고, 내 부족한 부분은 현수가 채워주고고 있으니까 다 이해할 수 있어.”

효주의 표정은 정말 복잡해보였다.

“그니까 한석아, 지금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 나랑 헤어지고 싶은거야?”

“아니.  너랑 아직까지 결혼해도 괜찮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나도 널 많이 사랑해.”

효주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석은 말을 이었다.

“효주야, 솔직히 말할게. 내가 너를 이해해주는 만큼, 너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부터 해줘. 이해해줄 수 있어?”

“하…. 일단 들어는 볼게.”

“사실 난 네가 현수랑 만나고 온 날이면 항상 흥분이 되더라. 아마 기억할거야. 내가 발기가  때가 있고,  될 때가 있었던거.”

효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사실 느끼고 있었어. 네가 현수랑 하고  날인지 아닌지. 신기하게도 현수랑 하고 왔다고 생각되는 날이면 너무 흥분되더라. 근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오히려 흥분이 전혀 되지가 않더라고. 그때 내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내가 변태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 나는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하겠어 한석아.”

“그니까 말이야…. 나는…. 너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다는 느낌이 좋아.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네가 현수를 만나는  좋아.”

한석의 계속되는 고백에 효주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석은 그녀가 충분히 충격에서 헤어나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있도록 시간을 주며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럼, 대체 내가 현수랑 만나고 있던건 언제부터 알았는데?”

“전부터 내가 현수가 마음에 안든다고 했을거야. 그때 조금 눈치 챘는데, 저번에 너희집 앞에서 네가 나한테나 짓던 행복한 미소를 현수한테 짓는 걸 보고 알았어.”

“….”

“….”

또 다시 정적이 흘렀고, 효주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래서 대체  어쩌고 싶다는 건데? 현수를 만나라는거야 만나지 말라는거야?”

“만나는 건 이제 전혀 상관이 없어. 다만…. 정말 이게 말도 안되는 부탁이라는거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네가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 된다면 딱 한가지만 들어줬으면 좋겠어.”

효주는 한석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이건 들어줘서는 아니, 들어서도 안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효주는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한석에게 말했다.

“뭔데…?”

효주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만큼 한석도 말할 준비가 필요했는지 잠시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효주는정말 입을 닫게 만들어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하…. 그니까…. 그때 현수랑 있으면서 지었던 행복한 미소를 보면서 느꼈는데….”

심호흡을 했음에도 말을 질질 끄는 한석에게 효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석아, 그냥 본론만 말해줘. 가슴이 너무 답답해. 그냥, 그냥 제발  번에 말해줘.”

“...너랑 현수가 섹스하는 걸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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