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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032화 (32/112)



〈 32화 〉032화

 시간 뒤 기분 좋게 잠을 이룬 현수는 이른 아침 새소리와 얼굴에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오자마자 반대쪽 방에서 초췌한 모습의 효주가 나왔다.

그녀는 어젯밤 현수를 만나기 전보다 마음이 훨씬 더 심란해졌는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보였다.

“잘 잤어?”

현수는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지으며 효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수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효주는 인사를 건네는 현수의 모습에 잠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어제 현수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는지 미안함, 껄끄러움 등과 함께 감출  없는 호감이 복합적인 표정으로 나타났다.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일어난 아침에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애인까지 있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여자는 없을 것이다.

“응. 잘 잤어.”

효주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을 한 뒤 고개를 숙인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하지만 현수는 효주의 눈에 섞인 호감을 이미 확인한 뒤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다.’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랐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잘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현수도 화장실로 가서 하루의 시작을 준비했다.

효주의 눈에 띄어 부담감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현수는 최대한 숨어서 효주의 눈을 피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엠티의 둘쨋날은 크게  일이 없었고, 간단한 동아리 브리핑 이후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현수는 옆자리에 앉아 숙취를 호소하며 엄청난 코골이로 고막을 괴롭히는 성민을 보며 생각했다.

‘얘는 군대가면 고생 좀 하겠다.’

이어폰을 껴도 모조리 뚫고 들어오는 소음에 현수는 돌아가는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한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도 일단 효주가 한석이를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현수는 상황이 이렇게 됐어도, 아니 이렇게 되어 버린 탓에 오히려 더 효주를 한석과 사귀고 있는 상태에서 넘어뜨리고 싶었다.

원래의 미래에 결혼해 잉꼬부부라는 소리까지 듣는 그들의 사이에 끼여 농락하는  배덕감을 느끼고 싶었다.

현수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때쯤, 귓속으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을 빼자 어느새 잠을 잠시 깼는지 성민이 현수를 보며 말했다.

“쟤네 어제 싸웠다더니 화해하는 중인가 봐.”

현수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러게요. 다행이네요.”



현수는 어젯밤 술을 그렇게 마시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도 남아도는 체력을 보며 20대의 몸이 새삼좋다는 것을 느끼며 집에 도착했다.

띠리링.

가윤은 현수가 집에 도착하자 숨길  없는 표정으로 현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왔어요?”

현수는 그녀가 단 하룻밤을  봤을 뿐인데 이렇게 반겨주는 것을 보고 꼭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강아지….’

그녀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가윤을 꼭 끌어안아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곧장 침대에 쓰러졌다.

가윤은 현수가 걱정됐는지 최대한거슬리지 않게 옷을 벗겨주며 최대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마무리로 침대에 바로 눕혀둔 뒤 가윤은 현수의 품에 안겨 같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효주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드르렁, 드르렁.

저 환장할 정도로 커다란 코골이가 자꾸 방해해댔지만 심란한 그녀의 마음을 잊게 하지는 못했다.

효주는 코를 고는 성민의 옆자리에 앉은 현수를 바라보았다.

코골이가 아무렇지도 않은지 평온한 표정으로 밖만 바라보는 현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효주는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이게 정말 나쁜 짓인 거 알아. 하지만 나도 멈출 수가 없었어. 요즘 자꾸 싸우고 힘들어하는  보고 나한테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했어.’

‘난 너 포기는 못 할  같아. 아무리 주변에서 욕을 해도 네가 날 신경을 써주고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

‘네가 한석이를 만나고 있고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난 네가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만 있다면 상관없어.’

분명 선을 그어야 하는데 그을 수가 없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린 현수를 그어내려면 자신의마음 한켠을 떼어내야 하는 기분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효주는 그녀의 마음이 한석이로 가득 차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하루 사이, 그녀는 그런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효주는 자신이 그저 한석이 첫 연애 상대라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한 부분을 현수가 채워주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게 현수의 말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고 꼭 들어줘야겠다는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현수가 자꾸 자신에게 바라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도 들었다.

한석은 항상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채워주고 아껴주는 고마운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효주에게 자존감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녀가 자아를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효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수에게 자꾸 눈이 돌아갔다.

20년을 넘게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그녀에게 현수의 말은 반드시 들어야만 할 것 같은 부모님의 말씀 같았다.

효주는 자신의 옆자리에 꿍한 채 창밖을 바라보는 한석을 쳐다보았다.

너무나 미안했다.

감정이 올라오자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효주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한석의 손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었다.

한석이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온기에 고개를 돌리자 눈물을 흘리는 효주를 보고 크게 당황한 듯 허우적댔다.

곧장 효주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석이 말했다.

“왜 울어? 울지마. 응?”

효주는 그런 한석의 말에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한석은 자신의 말에 눈물을 더 쏟아내는 효주를 보고 곧장 자신의 가슴으로 효주를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더 잘할 게 효주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과를 해오는 한석을 보고 결국 효주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주변의시선이 모였지만, 어제 둘이 다툰  아는 사람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냥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한참을 울고 난  효주는 밀려오는 민망함에 울음이 그쳤음에도 한석의 품에 안겨서 가만히 있었다.

한석도  정도 눈치는 있었는지 피식 웃으며 효주를 계속 껴안아 주었다.

효주는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에 그간 쌓였던 한석과의 앙금이 조금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석아, 미안해. 지금부터라도 잘할게….’

한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둘은 여느 커플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하지만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효주가 위태롭게 휘청였고,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효주야, 일어나 도착했어.”

어느새 버스는 멈춰  있었고, 한석이 효주를 흔들어 깨웠다.

“벌써 도착했어?”

“응. 일단 내리자.”

버스에서 내린 둘은 잠깐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걸으며 대화를 했다.

“피곤한데 자기 집에서  쉴까?”

한석이 효주의 눈치를 슬쩍 보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효주는 한석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안돼. 집에 언니 있을 거야. 아니면 너네 집으로 가던가.”

한석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풀려서는 해맑게 웃으며 효주의 손을 잡더니 걸음이 빨라졌다.

“그럼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을까?”

효주는 신이 난 듯한 한석을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난 치킨 먹고 싶은데….”

한석은 효주의 말을 듣자마자 휴대폰을 꺼내더니 일 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뚝딱 주문을 끝내버렸다.

“40분 걸린대! 빨리 들어가자”

효주는 정말 오랜만에 되찾은 한석과의 평화로운 일상에 행복이 밀려왔다.

동시에 밀려오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애써 무시한 채.

. . .

남자 혼자 사는 방치고 깔끔하지만, 연식이 오래됐는지 허름함을 감출 수 없는 방안.

식탁 위에는 먹고 남은 뼈가 가득 쌓여있었고, 약간 좁은 듯한 침대 위에 젊은 남녀 둘이 쌔액쌔액 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이내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둘이 거의 동시에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고서 싱긋 웃는  사람의 눈빛에는 사랑스러움이 절로 묻어나왔다.

“오랜만에  번 할까?”

분위기는 잡지도 않고 대뜸 물어오는 한석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천천히 눈을 감으며 다가오는 한석을 보며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치  했는데….’

고민은 짧았고, 효주는 키스를 하는 대신 입술과 이마, 볼에 뽀뽀를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한석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는지 혼자 달아올라 효주를 애무한답시고 가슴과 목덜미 등을 빨아댔다.

효주는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직후에는 손톱을 다듬지도 않은 손가락이 자신의 질 속으로 들어와서 하나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어찌 젖기는 젖었는지 한석이 효주의 옷을 벗겨주는데 자꾸 버벅거리며 옷이 걸려서 딜레이가 생겼다.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 끼우는 한석의 물건은 콘돔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거의 딱 들어맞는 듯했다.

도무지 분위기가 잡히지가 않았다.

효주는 자꾸 머릿속으로 잡생각이 들었고, 이 상황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수가 떠올랐고, 현수와의 그 로맨틱했던 분위기가 자꾸 떠올랐다.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고, 효주의 이런 생각은 아래쪽에서 티가 났다.

효주의 속살에 들어온 한석의 그것은 별 느낌이 나지는 않았지만, 쓸리는 느낌이 들어왔다.

‘아직 덜 젖었는데….’

섹스에 집중을 전혀 할  없었던 효주의 그곳이 젖을 리가 만무했고, 이 상황을 깨고 싶지는 않아 그녀는 그냥 참아 보기로 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말라버리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자, 잠깐만 한석아….”

아파하는 효주의 비명소리가 신음으로 들린 걸까.

한석의 허리 놀림이 오히려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효주는  이상참지 못하고 한석을 멈춰 세웠다.

“갑자기  그래?”

의아하게 물어오는 한석에게 약간 짜증이 났지만, 효주는 한석의 기분을 깨지 않으려고 그냥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아파서…. 미안해.”

한석은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모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진짜? 나 싸기 직전이었는데….”

이 와중에 저런 소리를 내뱉는 한석에게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효주는 그저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에 또 하자.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약간 애교 섞인 효주의 목소리에 한석은 그새 표정이 풀려 효주를 끌어안았다.

“맞아. 나중에 또 하면 되지. 근데 많이 아팠어?”

눈을 껌뻑이며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약간 칭찬을 바라는 느낌이었다.

‘설마….’

한석은 아픈 이유가 자신의 물건이 커서 그런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효주는 머리가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응…. 많이 아팠어.”

효주의 말에 한석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현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한석과 대비되었다.

손을 잡고 이끌려간 나무 뒤, 그 두근거리는 분위기에 이끌리듯 저지른 현수와의 불장난.

‘오히려 현수랑 있을 때가 더 두근거렸던  같아….’

동아리 선배들의 방해가 없었다면 자신이 현수와 어디까지 선을 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한석에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능숙함과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어쩔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거절할  있을까….’

효주는 순간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랬다.

하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했던가.

효주는 이러면  되는 걸 알면서도 현수가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상상을 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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