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017화 (17/112)



〈 17화 〉017화

변호수는 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술의 향을 맡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똑똑한 건 알겠지만, 그게 전부면 내 주변엔 이미 그런 사람이지천으로 널렸어.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고 배웠겠지만, 난 그 성공한 놈들 돈 주고 부려 먹는 입장이거든.”

“그놈들 중에서도 전  탐나실 텐데요.”

호수가 매섭게 현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근거는?”

“어차피 인재도, 돈도 당장 필요하신 것도 아닐텐데요. 경영권 노리시려면 최소 이십 년은 걸리실 거 아닙니까.”

“위험한 말을 하네.”

“회사에서 죽어라 봉사하시면서 월급만으로 만족하실 분은 아니실 텐데요.”

“그래서?”

“네스퍼스가 텐센트로 대박 날지, 손정의가 알리바바로 대박 날지, 누가 알았습니까? 그냥 푼돈 넣었다가 대박 터지니까 그때부터 각 잡고 투자한 거지.”

변호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네가 놈이니까 너를 믿고 푼돈이라도 투자를 해달라?”

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돈 말고 자리 하나만 내주시면 좋겠는데요.”

“자리?”

“말씀하신 거처럼 인재야 넘친다고 하지만, 혹시 압니까. 적당히 거둬준 제가 십 년, 이십 년 뒤에 상무님 사람들  제일 요긴하게 써먹을 인재가 돼 있을지?”

변호수는 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의대까지 갔다면서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살지? 패기랑 객기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해.”

‘내가 지금 그딴  구별할 입장은 아니거든.   안에 국회의원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없었기에 적당히 그럴싸한 말을 둘러댔다.

“아직 어른은 아니라서요. 사람은 나이 때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변호수는지지 않고 받아치는 현수를 보더니, 결론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네가 지금 객기를 부리는지, 패기를 부리는지, 한  확인해보지.”

“알겠습니다.”

‘어떻게 확인을 하겠다는 걸까.’

현수는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변호수가 제시한 조건을 듣는 순간 그는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생각했다.

“일억을 주지. 한 분기 동안 알아서 굴려봐. 자금 출납 기록서 칼같이 쓰면서.”

어떤 의미에서 이 시험을 주는지 알 것 같았다.

후천적으로 배우기 가장 힘들다는, 금전 감각을 테스트해보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건 회귀자인 현수에게 있어선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현수가 재미있는지 변호수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한잔해.”

이 자리에 오고처음으로 그가 현수에게 잔을 내밀었다.

두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화려한  안을 울렸다.

현수는 조금 전까지 홀짝이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위스키가 굉장히 시원했다.

‘됐다!’

현수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돈으로 다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였다.

혈연, 학연, 지연, 혼맥, 좁디좁은 사회는 온갖 카르텔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렇기에 현수는  카르텔 속으로 파고들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현수는  시기를 자신이 본격적으로 돈을 번 이후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존재감이 강한 사람일 줄이야.’

회귀 전 세상에서 변호수는 그룹에서 내분을 일으켜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후, 계열사 몇 개를 일으켜서 독립을 한다.

그렇기에 현수는 그를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마주한 그는 상상 이상으로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서가윤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

그렇게생각하자 현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웃자 그걸 본 변호수가 물었다.

“뭐야?”

“오늘 하루가, 너무 드라마틱했던 거 같아서요.”

“난 코미디였어.”

“죄송했습니다.”

현수는 변호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가지를 물었다.

“서가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현수의 물음에 변호수는 당연한 걸 뭘 묻냐는 투로 대답했다.

“서민은 돈으로 밟으면 돼.”

두루뭉술한 대답이었지만, 현수는 이미 그가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린 상태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현수는 한 가지 고민이 일었다.

그가 고민을 하는 것을 느낀 변호수가 말했다.

“말해.”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뭐지?”

“이번에 상무님께서내주신 시험. 제가 통과하면 서가윤 제가 가져도 될까요?”

순간 변호수가 멍하니 현수를 바라봤다.

 후, 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완전 또라이네.  지경을 만들어 놓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선 또 가지겠다?”

그런 그를 보며, 현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가지고 싶어서 망가트린 것 같습니다.”

“진짜 미친놈이군. 맘대로 해.”

* * * *

그날 새벽.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집에 돌아온 가윤의 머릿속에는 어떡하지라는, 질문만이 터질 듯 반복되었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라고는 막연하게 큰일 났다는 감각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한 감각뿐이었다.

그 막연한 공포와 불안이 새벽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그녀를 잠식해갔다.

그렇게 가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새 심력을전부 소모한 가윤은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야 기절하듯 소파에서 잠들었다.

그러나 가윤은 채 한 시간이 되지 못해서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띵동. 띵동.

희미한 초인종 소리가 가윤의 귓가를 긁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가윤은  소리를 무시하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가윤은 잠이 싹 달아났다.

띡 띡 띡 띡.

갑자기 도어락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띠리링.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윤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년의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어? 안에 계셨네요?”

중년의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태도에 가윤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템포 늦게 분노가 끓어올랐다.

“저기. 이게 무슨 경우죠?”

“네?”

“사람이 없는데 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게 무슨 경우에요? 거기다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뭐 하는 분이에요?”

가윤이 매섭게 말을 했다.

그러자 중년의 여인이 당황한 투로 말했다.

“아, 남자친구분께서 말씀 안 하셨나 보네. 미안해요.”

“...남자친구요?”

가윤은 남자친구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곧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스폰서, 그중  집을 해준 남자.

중년 여인의 정체는 공인중개사였다.

그리고 그녀가 꺼낸 말은 충격적이었다.

“오늘 아침에 최대한빨리 방 빼야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늘 안에 계약하고 입주까지 가능하면 석  치 월세 대주신다고 하셨어요. 내일부턴 한 달 치밖에 안 된다고 하셔서 입주자 급하게 모셔온 참이에요.”

. .

잠시 후, 중개사가 나간 뒤 가윤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이렇게?’

이미 잠은 완전히 달아난 뒤였다.

순식간에 어제 새벽의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이렇게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하루아침에?’

가윤의 혼란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사실상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띵동. 띵동. 띵동.

또다시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윤은 그 초인종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초인종 소리에서 왠지 모를 조급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이번에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올  같았다.

가윤은 불편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순간, 아니나 다를까 문 앞의 사내는 도어락에 손을 가져가던 참이었다.

“누구세요?”

가윤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인지, 멀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가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남자친구분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이번에도 남자친구였다.

그리고 방금 전 집이 어떤 식으로 날아갔는지 봤기에 가윤은 눈앞의 남자가 어떤 용무로 왔는지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남자의 용건은 예상대로였다.

“차 키 좀 주시겠어요?”

. .

[어제  사단 내놓고 계약된 일이랍시고 남은 일 쳐내려는 건 아니지?
당장 오늘 일부터 전부 다 땜빵 구했으니까 나올 필요 없어.
그리고 이번에 정산받아야 할 돈은, 네가 받아야 할 돈 보다 게워내야 할 스폰비가 더 많으니까 받을 생각 말아.
게워내야 할 돈은, 뭐 내가 도둑년 만났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줄게. 더러운  받아서 뭐 하겠니.]

가윤은 멍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집도, 차도, 일도, 한순간에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일궜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가윤은 서서히 그것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

‘어떡하지….’

아직 진짜 벌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소파에 쪼그려 앉은 채로 얼굴을 파묻고서 굳어 있자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지난 두 번과 달리 매우 정중했다.

그러나  정중함에서 가윤은  것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윤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현관문을 열었다.

덜컥.

“오랜만입니다.”

가윤의 예상대로 찾아온 사람은 변호수의 비서였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가윤이 몸을 옆으로 틀자 비서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비서는 곧바로 의자에 앉으며 가윤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앉으시죠.”

비서의 말에 가윤은 긴장한 기색으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비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상무님께서 주신 선물들, 전부 다 처분하셨더군요.”

비서의 말에 가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걸렸구나.’

지금껏 가윤은상무에게 종종 명품 선물들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가윤은 그때마다 그것들을 처분하고서 그렇게 만든 돈으로 빚을 갚아왔다.

처분이 아닌 환불을 한다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있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상무에게 걸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가윤은 명품들을 처분하고, 철두철미하게 같은 모델의 가품까지 구매해서 구비를 했었다.

그러나  모든 알리바이도 작정한 변호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변호수의 비서는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왔으니 어디 변명할 게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였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온 건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 먼저 전해드려야겠군요. 지금 가윤씨의 부모님께서 주변 사람들에게 진 빚들, 해당 채권들 어제 자로 상무님께서 전부 매입하셨습니다.”

가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깜짝 놀랐다.

“...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걸까.

가윤은 제발 자신이 헛소리를 들은 것이길 바랐다.

그러나 비서는 야속하게도 꿋꿋이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가윤씨는 선택하시면 됩니다. 정신적 위자료까지 포함해서, 채권과 함께 그동안 받은 선물에 상응하는 돈의  배를 토해내실지, 아니면 그건 선물이니 남은 빚만 갚으실지.”

얼핏 듣기로는 당연히  번째를 골라야 한다.

그러나변호수가 가윤에게 저렇게 친절한 제안을 해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 제안이 소름 돋았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어떻게 되나요.”

비서가 피식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상무님께서 해당 채권을 추심 일 제일 잘하는 사채업자들에게 넘기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들은 가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채업자.

사실상 가윤을지옥으로 몰아넣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가윤의 선택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갚을게요…. 두 배로 해서….”

가윤이 선택을 하자, 비서는 곧바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냈다.

봉투 속에는 계약서 두 부가 나왔다.

“각각 사인하시죠.”

가윤은 계약서에 나와 있는 금액이 눈에 들어왔다.

8억.

육 년.

무려 오 년 동안 필사적으로 갚아나가서 2억도 채 남지 않았던 빚이, 순식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 금액을 보고 있자 손이 덜덜 떨렸다.

차마 사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가윤을 보더니, 비서가 말했다.

“두 번째 선택하시면, 당연히 사채업자한테 채권을 넘기는 게 끝이 아닐 겁니다. 상무님께서 지금 화가 많이 나셨거든요.”

끝으로 비서가 결정적인 말을 했다.

“가족들 생각도 하셔야죠.”

그 협박에, 가윤은 꾸역꾸역 사인해야만 했다.

비틀거리는 필체로 몇 번이고 비서가 시키는 장소에 ‘서가윤’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그렇게 볼일을 다 본 비서는 계약서 한 부를 남겨놓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혹시 몰래 모아둔 증거 같은 게 있었다면 이렇게 안 끝났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홀로 남겨진 가윤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마음속이 공허했다.

‘지금까지….  한 거지….’

육 년.

무려 육 년이라는 시간이었다.

가윤이 이십 대를, 청춘을 포기하면서 몸을 던진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년 동안 힘겹게 밀어낸 빚은 하루아침에 그녀의 앞으로 돌아와있었다.

“도대체…. 왜….”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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